대구의 심장이라 불리던 중앙로와 동성로 일대의 불 꺼진 건물과 줄지어 붙은 '임대 문의' 현수막은 이제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됐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동성로 일대 중대형 상가의 공실률은 26%대에 달한다. 2025년 16년 만의 최고치인 27%에 육박한 데 이어, 최근에도 26.3%를 기록하며 높은 수치를 이어가고 있다. 전국 평균인 13~14%대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자, 대구 도심 번화가 건물 매장 네 곳 중 한 곳 이상이 비어 있다는 뜻이다.
코로나19 충격을 딛고 외국인 관광객이 몰리며 4.4%까지 공실률을 낮춘 서울 명동이나, 13%대를 유지하는 홍대와 비교해도 격차가 크다. 이들과 달리 동성로의 텅 빈 점포들은 일시적 충격을 넘어 도심 상권의 깊은 구조적 정체를 보여준다.
원도심의 쇠락을 마주하며 나온 대책은 엉뚱하게도 길을 향했다. 도심 상권 침체의 주범으로 '중앙로 대중교통전용지구'가 지목된 것이다. 승용차가 다니지 못해 손님이 오지 않는다는 해묵은 주장이다.
승용차 안 다녀서 상권 죽었다? 번지수 잘못 짚은 진단
과연 26%에 달하는 빈 점포가 승용차를 막아서 생긴 일일까. 유통 환경은 이미 온라인 쇼핑 중심으로 바뀌었고, 2016년 동대구역 신세계백화점 개점 이후 소비의 중심축이 신도심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여기에 청년 인구 유출과 경기 침체까지 겹친 거대한 구조적 변화를 도로 정책 탓으로 돌리는 것은 번지수를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은 진단이다. 승용차 통행을 허용한다고 해서 온라인 장바구니를 이용하던 시민이 도심 한복판으로 차를 몰고 나와 옷을 사고 밥을 먹지는 않는다.
관련 법령이 정한 대중교통전용지구의 공식 목적을 들여다보면 지금 논란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법적 정의에 명시한 전용지구의 본래 목적은 "침체된 도심에 경제적 활력을 불어넣고 전용지구의 안전성과 상업성을 높여 도심 경쟁력을 향상"하는 데 있다. 일반 차량을 통제하고 대중교통수단만 다니게 한 까닭 역시, 그렇게 확보한 쾌적한 거리에서 "보행자가 편안하게 쇼핑하고, 걸어 다니고,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함이다. 즉, 대중교통전용지구는 상권을 억누르는 규제가 아니라, 도심 상권을 살리기 위해 만든 상생 모델이다.
100억 예산과 17년 역사의 가치, 쉽게 되돌릴 순 없어
대구시는 2009년 약 100억 원의 예산을 들여 차도를 줄이고 보행로를 대폭 넓히며, 반월당에서 대구역까지 1.05킬로미터 구간에 전국 최초로 대중교통전용지구를 만들었다. 그러나 상권 활성화 민원에 밀려 2023년 대구역네거리에서 중앙네거리까지의 북측 450미터 구간을 우선 해제한 데 이어, 최근에는 남은 남측 600미터 구간의 운영 방안을 두고 시민 의견 수렴 토론회를 여는 등 존폐 논의를 본격화하고 있다. 100억 원의 시민 세금으로 닦아놓은 보행 인프라와 17년 넘게 축적해 온 도시 자산이 자칫 단기적 민원에 밀려 허물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이런 정책적 갈등은 비단 대구만의 문제가 아니다. 2009년 대구가 문을 연 이후 2014년 서울 신촌 연세로와 2015년 부산 서면 동천로가 뒤를 따랐다. 그러나 애초부터 출퇴근 시간대(오전 7시~9시, 오후 5시~7시 30분)만 차량을 제한하도록 설계된 데다 단속 위반까지 반복되며 부산 동천로는 사실상 일반 차도로 흐지부지됐고, 보행 문화의 상징이던 서울 신촌 연세로는 상권 침체 민원에 밀려 끝내 일반 차량 통행을 허용했다. 대한민국 보행·교통 혁신의 실험실들이 차례로 시험대에 오르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서울 신촌 연세로가 시범 해제 기간(2023년 1~9월)에 매출이 늘었다는 통계를 들며 차도 개방의 효과를 내세우기도 한다. 그러나 이 시기는 코로나19 엔데믹 전환과 맞물려 대면 개강과 축제가 일제히 재개된 때였던 만큼, 매출 증가를 곧바로 차도 개방의 효과로 단정하기보다는 그 시점에 겹친 기저효과일 가능성도 함께 짚어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2025년 1월 연세로가 전면 개방된 뒤에도 상권이 뚜렷이 살아난 정황은 확인되지 않는다. 신촌 상권의 매출과 점포 수, 유동인구는 개방 이후에도 2년 연속 감소세를 이어갔고, 이대까지 합친 인접 상권 전체의 소규모 상가 공실률도 2025년 말 기준 서울 평균의 세 배에 가까운 15%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부진의 원인을 차량 통행 여부보다는 임대료 등 상권 자체의 구조적 문제에서 찾고 있다. 차를 들이면 상권이 살아난다는 기대는 도시 상권의 실제 소비 구조를 간과한 얕은 셈법이다.
기후위기, 왜 도시는 대중교통 중심으로 가야 하는가
남은 반월당~중앙네거리 600미터 구간마저 차도로 되돌리는 것은 결코 지속 가능한 해법이 될 수 없다. 상권 침체의 구조적 원인을 풀기보다, '차도 개방'이라는 단기 처방으로 눈앞의 갈등을 봉합하려는 쉬운 유혹에 빠져서는 안 된다. 왕복 2차로에 불과하고 주차 여건이 열악한 도로에 차량이 늘어난다고 해서 소비까지 늘어난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도심을 가로지르는 통과 차량이 늘어나 매연과 정체, 보행 단절이라는 피해가 시민에게 고스란히 돌아온다.
더 멀리 내다보아야 한다. 기후위기 시대에 세계 주요 도시들은 승용차 진입을 줄이고 걷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승용차 한 대가 도심을 달릴 때 발생하는 온실가스와 대기오염, 그리고 도로를 차지하는 면적 비용은 막대하다. 반면 버스와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은 승용차 수십 대 분량의 인원을 적은 공간과 적은 탄소 배출로 실어 나른다. 대중교통 중심 도시는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가장 확실한 길이자, 교통체증과 사고 위험을 줄여 도시 전체의 효율을 높이는 유일한 해법이다.
차도 열지 말고 대중교통전용지구를 '걷고 싶은 길'로 강화해야
시민이 찾아와 머물고 싶은 시내는 결코 승용차가 쌩쌩 달리는 거리가 아니다. 대중교통전용지구의 본래 목적대로, 보행자가 안전하고 편안하게 머물며 쇼핑할 수 있는 거리 환경을 고도화할 때 비로소 상권도 살아난다. 폭염 속에서도 쉴 수 있는 그늘과 보행 공간을 더 넓히고, 맞닿은 골목상권과 문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거리를 채워야 사람이 모이고 머문다. 대구시의 이번 공론화 과정은 성급한 해제를 향한 수순이 아니라, 전용지구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키는 계기가 돼야 한다.
대중교통전용지구는 도심 침체의 주범이 아니라 원도심 부활의 마지막 보루다. 차도를 다시 열어 승용차가 뿜어내는 매연과 정체의 시대로 되돌아갈 것이 아니라, 보행권을 지키고 머무는 즐거움을 채워 진정한 의미의 '시민 중심 거리'로 강화하자.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