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성의 기억을 낭독하다… 핵발전이 낳은 희생을 기억하기

[월성원전 이주농성 12년의 질문] ② 기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2014년 8월 25일,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주민들이 월성 핵발전소와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로부터 안전하게 이주할 권리를 요구하며 천막 농성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났지만,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은 실질적인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주민들이 새로운 전환점을 모색하는 때, 환경운동연합이 핵발전소의 비용을 떠안아 온 지역의 목소리를 기고한다. 두 차례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

아주 오래전의 기억 하나를 떠올린다. 어린 내가 커다란 달 앞에 서 있다. 달이 비현실적으로 너무 거대해서 옴짝달싹 못 하고 무서움에 얼어붙고 말았고, 그때의 기억은 아직도 잊히지 않고 있다. 그저 절기상 보름달이 지구에 가장 가까이 접근했던 것일 텐데, 자연은 인간인 내가 감히 어찌할 수 없는 감각을 전해주었거든. 이런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들려준다. 기억은 내게서 머무는 게 아니라 옮겨간다. 이야기를 듣는 사람에게로 말이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야기는 퍼져나간다. 때론 기억은 기억하는 이들에 의해 지켜지고 많은 이들에게 전해질 수 있다. 그게 기억의 중요성이지 않나.

작년 여름 월성에서의 경험도 그랬다. 월성의 이야기를 나는 시로 옮겼고, 그걸 낭독하면서 누군가에게 전해지길 바랐다. 혼자만 알아선 안 될 이야기들이 사방으로 옮겨가길 원했다. 그래야만 했다. 알려야 관심을 끌게 될 테고, 잘못된 것은 바로잡힐 테니까. 나는 기억하는 사람 쪽에 서 있고 싶었다. 그래서 기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만 했다. 기억하지 않으면 우리는 계속 똑같은 실수와 실패를 반복하면서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하리란 생각이 들었다.

월성원전 1호기를 보던 날에 기억은 1년이 넘은 지금도 생경해서 잊히지 않는다. '제한구역 알림' 표지판을 곳곳에서 발견한 그날, 핵발전소 건물과 냉각수가 빠져나온다는 바닷가와 평범한 해변에 놀러 온 것 같은 피서객들과 들쭉날쭉한 경계선을 만들어 내는 녹색 펜스까지.

그리고 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천막농성을 하고 계신 월성군 나아리 이주대책위원회 분들의 이야기 또한 세세하게 기억하려고 했다. 제한구역에 포함이 되고 안 되고의 차이가 불과 팔을 뻗을 정도의 간격이란 게 아이들 장난 같지 않나.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도 아니고, 이게 뭐지. 그런 생각들로 주변을 서성였던 게 떠오른다. 실제 거주지로 나눈 것이 아닌 지도상의 행정구역으로만 나눈 티가 역력해 보여, 정작 이곳에 사는 마을 주민을 위한 결정은 이제 없다는 것처럼 느껴졌다. 겉으로는 너무나 평화로운 마을로 보인다는 게 이상하다 못해 무서워졌다.

그리고 곧 나는 '녹색 모자를 쓴 저 사람'으로 찍혀 핸드폰을 검열당한다. 아마도 함께 온 우리(환경연합 활동가들과 기후 시집 <여름, 연루>를 쓰기 위해 모인 시인들)를 CCTV로 감시 중이었던 것 같다. 그저 이곳에서 사진을 찍으면 안 된다고 저지하는 경비업체 직원들에게 막혀 더는 해변에 머물 수 없었다. 발전소 해변 근처에서는 아이들이 웃고 있는데 말이다.

▲2016년 월성원전 인접지역 이주대책위원회 천막농성장 풍경. ⓒ함께사는길(이성수)

바닷가에서 파도를 앞에 두고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여느 해변의 일반적 풍경이었지만, 배경처럼 서 있는 핵발전소 건물은 위화감이 들기 딱 좋았다. 어서 아이들을 이곳에서 데리고 나가고 싶어졌다. 정말 이상하고 기이한 일 같았다. 방사능이 어떻게든 주변에 영향을 끼친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지금 비현실적인 세상에 놓인 것만 같았다.

"우리는 내내 피폭당하는 중이에요."

원자력 홍보관 앞에 천막 농성장을 짓고 목소리를 내고 계시는 부위원장님의 말씀이었다. 우리는 잠시 다녀가는 것이었지만, 그 주변에 살고 계시는 주민들에겐 목숨에 영향을 끼치리란 생각이 들었고, 아니나 다를까, 암 발병률이 높아지고 있다고 했다. 주민들은 살기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이주대책위원회가 10년이 넘도록 한국수력원자력에 저항하는 일은 계속됐지만, 우리가 찾아뵌 날 이후로 농성장은 철거됐다고 들었다. 이분들은 원전이 만들어질 당시에 아는 것이 거의 없다고 했다. 현행법상 원자로 914미터 바깥의 주민분들은 이주 비용을 받지 못하고 눌러앉을 수밖에 없었고, 한수원은 아무 책임이 없다며 피해 가기만 하는 것이었다. 원전 인접 지역 주민들이 천막농성을 하는 이유는 오로지 방사선 피해를 보지 않을 곳으로의 이주였다. 그저 안전하게 살아가야 할 권리를 박탈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게 벌써 12년이 됐다. 분명 마을 주민들은 내 짧은 기억보다 더 많은 기억을 품고 있을 것인데, 그게 평화로운 고향의 기억이 아니리란 생각이 든다. 이주만이 살길이라는 것을, 방사선의 피해를, 핵발전소의 위험을, 알리는 일을 계속해서 이어오고 있는 것은 어쩌면 기후 위기 시대의 우리도 함께해야 할 현재의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이미 우리는 전 세계적으로 충격을 안겨준 사고를 기억하고 있지 않나.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그 사고 이후로 핵에 대한 인식은 바뀌었지만, 여전히 '친핵'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두 사고의 피해는 아직도 현재진행 중이란 이야기를 들었다. 망각이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이런 일에 있어선 무엇보다 기억하기에 힘을 쏟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나라에서도 그와 같은 사고가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걸 간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원자력 발전소라는 이름으로 세워진 여러 핵발전소의 방사능으로부터 안전하게 살고자 하는 마음은 인접 주민들 포함해 우리 모두 같을 것이다. 그러나 폭염과 폭한의 기후 위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전기가 필요하다. 이 모순적인 상황에서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것이 근시안적인 해결책은 아니었으면 한다. 그리고 편리 뒤에 숨은 희생되고 있는 존재들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함께 나누어 가질 필요가 있음을 기억했으면 한다.

더 나아가서는 우리나라도 탈핵 선언과 함께 재생 에너지로의 전환을 위한 길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과거의 일들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모두와 연루되어 있다는 감각, 자연과도 깊이 연루되어 있다는 감각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린 시절에 본 달처럼, 인간이 감히 어찌할 수 없다는 그 감각으로 지구를 대한다면 좋겠다.

얼마 전 팔레스타인 주제로 한 강의를 듣다가 '반복'의 힘에 대해 다시금 알게 됐다. 우리는 계속해서 세세한 것들까지 모두 기억해야 하고, 기록해야 하고, 자기만의 언어로 반복해서 말해야 한다는 활동가님의 말씀에 무척 공감했다. 내 언어도 어떻게 하면 평화와 안전의 바탕이 될 수 있을지 고민이 되는 부분이었다. 아마 기억을 가진 자라면, 이야기를 전해 듣는 자라면, 언제, 어디서든, 기어코, 반복해 벼르고 별러 이야기를 퍼트릴 방법밖에는.

▲월성원전 이주대책위의 천막농성 5주년 대구 기자회견(2019.9.18) ⓒ평화뉴스(김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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