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3년 전에 예상했던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3년 후에는 반도체 경기 호황으로 정부가 이른바 '슈퍼 예산'을 편성하게 될 것이라고. 당시만 해도 긴축 재정을 하다 못해, 국가 R&D 예산을 줄이기까지 했다. 긴축 재정이 통상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는 지출부터 줄이고, 공공의 인프라를 약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고 보았을 때, 확장 재정은 반대로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고, 사회 전반의 공공성 강화에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를 갖게 만든다.
그러나 이 슈퍼 예산이 사람들의 실제 삶의 고통과 불안을 얼마나 줄여주고, 특히 사회적으로 목소리가 묻히는 사람들의 삶을 얼마나 나아지게 할지는 불확실하다. 커다란 예산은 미래대응기금을 통해 반도체와 AI 데이터센터, 피지컬 AI 등 정권이 바뀌어도 되풀이되는 '미래성장동력' 투자로 흘러갈 전망이다. 물론 정부가 예산을 전부 산업정책에 쏟는 것은 아니다. 민생 회복과 양극화 완화, 재난 대응도 함께 말하고 있고, 실제로 그 부분에도 예산이 투입될 것이다. 얼마 전에는 대통령이 직접 '청년예산 언박싱' 행사를 열어 청년 정책에 신경쓰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갈수록 양질의 일자리를 찾기 어려워지고 고립되는 청년들의 현실을 고려할 때, 청년의 삶을 개선할 정책과 예산은 매우 중요하다.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이 실제 청년의 고통을 줄이고, 불평등을 완화하는 데 기여하길 희망한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예산 책정의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청년 문제가 실제로 심각하고 중요하기도 하지만, 현 정권에 불만이 큰 세대가 다음 선거의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는 상황에서 이들의 마음을 달래야 한다는 정치적 계산이 크게 작용했으리라는 해석은 우리만의 것이 아니다.
반대로 말하면, 그다지 표가 되지 않고 정권의 위협이 되지 않는 사안이나 인구집단에 대한 예산 투입은 좀처럼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거나 구호나 생색내기 수준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고 짐작할 수 있다. 아직 구체적인 예산이 모두 나오지 않았지만, 모든 복지 사업의 대상자를 결정하는 기준중위소득은 그러한 징조를 확인시켜 준다. 2027년 기준중위소득은 여전히 2024년의 실제 중위소득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즉 2027년이 되어도 복지의 기준선은 3년 전 현실조차 따라잡지 못하는 셈이다(☞관련자료 바로가기).
사회적 약자와 공공성 강화를 위한 예산이 뒷전으로 밀리는 것은 전 정부나 현 정부나 큰 차이가 없고, 긴축 재정을 할 때나 확장 재정을 할 때나 마찬가지인 듯 보인다. 이는 결국 '자원 부족'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와 권력관계의 문제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반도체 호황 특수를 놓치지 않고 산업에 재투자해야 세수도 늘고 결국 복지 재원도 커진다는 '선 성장 후 분배론'은 공허하게 들린다.
예산이 정부의 방향성이자 지금의 담론 지형과 권력관계를 반영한 결과라고 했을 때, 이는 정부 뿐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이 경제 성장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고, 대기업과 첨단산업에 커다란 권력이 집중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중요하게 여기는 숫자는 코스피와 GDP 등 각종 경제지표이고,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인 노인빈곤율이나 자살률 같은 숫자는 주변으로 밀려난다. 그러나 경제 성장으로 인한 과실은 소수에 집중되고, 사회 구성원 모두의 삶의 질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정부 스스로 'K자형 양극화 대응'을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예산 배분 결과가 불평등하게 작동하는 것뿐 아니라 예산을 책정하는 방식도 우려스럽다. 반도체 등 첨단산업에 예산을 몰아주는 것을 밀어붙이며, 지금 투자 안 하면 나라가 망할 것 처럼 국가 단위의 불안을 조성하는 방식은 그에 대한 우려조차 '한가한 소리'로 만들어 버린다. 미래대응기금의 상당 부분이 투입될 3대 메가프로젝트를 둘러싸고는 환경과 노동, 지역불평등 등 다양한 차원에서 우려가 제기되고 있고, 메가프로젝트의 장밋빛 희망이 과연 현실적인지 의문도 나온다. 그럼에도 정부는 속도전이 중요하다며 별다른 숙의 없이 독단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게다가 미래대응기금 자체도 국회의 심의를 일부 우회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그만큼 더욱 비민주적인 방향으로 흘러갈 위험도 커지는 셈이다.
이러한 위기 조장의 방향은 한쪽으로만 향하지 않는다. 국가가 조성하는 공포와 불안은 "지금 산업에 투자하지 않으면 한국이 뒤쳐질 것"이라는 데에만 있지 않다. 반대로 "지출을 줄이지 않으면 미래에 큰일이 날 거야"도 있다. 정부가 추진하려는 기초연금 개편이라든지,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손질이 그러한 예다. 고령화로 관련 지출이 너무 커지고, 학령인구 감소에 비해 지출이 많다는 논리다.
그래서 정부는 슈퍼예산을 준비하는 동시에 '역대 최대 수준의 지출 구조조정'을 준비하고 있다. '지금 예산을 투입하지 않으면 안 돼'라는 불안과 '지금 예산을 줄이지 않으면 안 돼'라는 불안을 동시에 만들어내는데, 복지와 공공인프라는 첫 번째 불안에 들어가는 법이 없고, 대기업과 산업에 들어가는 자원이 두 번째 불안에 속하는 법이 없다. 이러한 대비는 국가가 미래 전망을 통해 어떤 방향으로 현재에 개입하는지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예산 배분의 양상과 방식의 문제 의식에서 볼 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예산 배분을 더 민주적으로 바꾸는 일이다. 커다란 예산을 투입할 때도, 지출 구조조정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미래대응기금'이라는 기존에 없던 것을 만들 정도라면, 그 기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일 것인지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지출 구조조정을 해야한다면, 거기에 영향을 받는 당사자들이 배제된 채 논의가 이어져서는 곤란하다. 진짜 민생을 위한 예산을 마련한다면, 사람들이 무엇으로 고통받고 무엇을 원하는지부터 듣는 과정이 빠질 수 없다.
민주적인 의사결정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과 관련된 문제에서 소외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중요하고, 더 나은 결정을 내리는 데도 도움이 된다. 설령 현재와 같은 방향으로 결론이 나더라도 독단적으로 추진함으로써 발생하는 빈틈과 무리수, 실수를 미리 짚어내고 보완할 수 있을 것이다. '슈퍼 예산'의 진짜 가치는 예산 규모가 아니라, 결국 그것이 결정되는 방식과 더불어 누구의 삶을 어떻게 바꾸는가로 평가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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