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창] 석탄은 충남에서 태웠는데, 본사는 왜 떠나야 하나

‘지방소멸’이라는 서늘한 단어가 충남 보령에서는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

수십 년간 대한민국 산업화를 위해 석탄을 태우고 미세먼지와 환경오염을 감내했던 보령시민들이 이제는 지역 경제의 버팀목인 한국중부발전 본사마저 잃을 수 있다는 위기감에 휩싸였다.

지난 6일 보령지역 27개 시민단체 60여 명이 참여한 시민토론회와 결의대회는 이런 절박함을 그대로 보여줬다. 관 주도가 아니라 시민사회가 먼저 나섰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더욱 무겁다.

충남은 전국 석탄화력발전소 52기 가운데 절반이 넘는 28기가 몰려 있는 대한민국 전력산업의 최전선이었다. 그만큼 주민들이 치른 대가도 컸다. 미세먼지와 환경오염, 건강권과 재산권 피해를 감수하며 수도권과 산업현장에 전기를 공급했다.

하지만 탄소중립과 에너지 전환이라는 국가 정책에 따라 석탄화력발전소가 단계적으로 문을 닫으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발전소 폐쇄에 따른 일자리 감소와 인구 유출, 상권 침체가 지역의 생존 문제로 번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발전공기업 통합 논의까지 본격화되고 있다. 한국중부발전 본사마저 보령을 떠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

정부에 묻지 않을 수 없다.

국가를 위해 수십 년간 희생한 지역에 또 다른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 과연 ‘정의로운 전환’인가.

발전공기업 통합이 불가피하다면 적어도 통합본사의 입지는 정치적 셈법이나 지역 안배가 아니라 국가 전력산업에 대한 기여와 희생, 산업 기반과 효율성을 기준으로 결정해야 한다.

그 기준에서 충남은 충분한 명분을 갖고 있다.

충남에는 이미 한국중부발전과 한국서부발전 본사가 자리 잡고 있다. 발전산업과 연계된 행정·산업 인프라와 협력업체 생태계가 구축돼 있고 오랜 기간 축적된 숙련 인력과 발전산업 운영 경험도 갖추고 있다.

새로운 지역에 막대한 비용을 들여 부지와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보다 기존 산업 기반을 활용하는 것이 통합에 따른 비용과 혼란을 줄이는 현실적인 선택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통합본사 충남 유치는 단순한 공공기관 하나의 유치 문제가 아니다.

석탄화력 폐쇄 이후 지역경제를 어떻게 지탱할 것인지, 국가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희생지역을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에 대한 정부의 철학을 보여주는 시험대다.

전진석 보령지역 발전공기업 통합본사 충남유치 민간추진위원회 집행위원장은 “중부발전 본사가 떠나면 지역 소멸은 불 보듯 뻔하다”며 정부의 결단을 촉구했다.

그 절박한 목소리를 지역 이기주의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정의로운 전환’의 핵심은 발전소의 문을 닫는 데 있지 않다. 그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는 노동자와 경제 기반을 잃는 지역, 수십 년간 환경 피해를 감내해 온 주민들에게 새로운 생존 기반을 마련해 주는 데 있다.

석탄은 충남에서 태웠고, 그 피해 역시 충남이 감당했다.

이제 에너지 전환의 비용까지 충남에 떠넘겨서는 안 된다.

발전공기업을 통합한다면 통합본사를 어디에 둘 것인지에 대한 답도 여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국가 전력산업을 떠받쳐 온 지역의 희생에 국가가 책임으로 답하는 것, 그것이 정부가 말하는 ‘정의로운 전환’의 최소한이다.

정부와 국회가 이제 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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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원

프레시안 대전세종충청취재본부 이상원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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