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들의 그림 속에는 자연스러운 평화의 모습이 담겨있다

[어린이어깨동무 30년, 다시 묻는 평화] ③ 세계 분쟁지역을 잇는 '드로잉 호프'

지난 몇 해 동안 어린이어깨동무의 평화그림전, '드로잉 호프(Drawing Hope: Children's Art for Peace)'는 한반도를 넘어 세계 여러 분쟁과 분단의 현장을 잇는 평화의 여정으로 확장되어 왔다. 1996년 '안녕? 친구야'로 시작된 어린이어깨동무의 남북 어린이 그림 교류는, 이제 다양한 역사와 갈등의 경험을 지닌 분쟁 사회들을 연결하는 트랜스-로컬 시민사회 네트워크로 발전하고 있다. 이 여정 속에서 '드로잉 호프'는 우리에게 계속해서 질문한다. '전쟁과 분열이 일상이 된 시대에, 사람들은 어떻게 함께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가?'

'드로잉 호프'는 이 질문에 대해 정치적 해법이나 거대한 담론이 아니라, 어린이들의 자화상과 희망 메시지를 통해 응답한다.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 그리고 갈등의 역사적 배경 속, 어린이들은 자신의 얼굴을 그리고, 아직 만나지 못한 미래의 친구에게 인사를 건넨다. 그 그림 속에는 놀라울 만큼 닮아 있는 희망이 담겨 있다. 함께 놀고, 웃고, 춤추며 살아가고 싶다는 바람, 이것은 특별한 이상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삶의 모습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이 자연스러움을 끊임없이 부정한다. 국경과 이념, 군사적 경계선은 사람들을 나누고, 서로를 낯선 존재이자 때로는 적으로 상상하도록 만든다. 어린이들이 서로 만나 함께 놀고 싶어 하는 마음조차 '안보'라는 이름 아래 제한되거나, 때로는 법적 처벌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전쟁과 분단의 구조는 인간의 기본적인 관계 맺음을 왜곡시키고, 우리가 본래 가지고 있던 공동의 인간성을 잊게 만든다.

▲2025년 11월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드로잉호프 전시회 포스터. ⓒ어린이어깨동무

안데르센의 동화 '벌거숭이 임금님'에서, 그 마법의 옷은 어리석거나 자신의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못한다.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는 순간, 자신이 어리석거나 부적절한 사람으로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임금님도, 신하들도, 거리의 어른들도 모두 그 침묵의 약속에 갇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척한다. 그 약속을 깨뜨리는 것은 오직 한 어린이 뿐이다. 정치적 계산도 체면도 없이, 이 어린이는 자신이 본 그대로 말한다. 임금님은 아무것도 입지 않았다고.

'드로잉 호프'의 어린이들이 그리는 그림도 이와 다르지 않다. 국경과 이념, 군사적 경계선이라는, 우리 모두가 마치 당연한 듯 입고 있는 그 '보이지 않는 옷'을, 아이들은 두려움 없이 벗겨낸다. 함께 놀고 싶다는 단순한 그림과 인사말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우리가 걸치고 있던 분열의 옷이 얼마나 헐벗은 것이었는지를 마주하게 된다.

그렇기에 '드로잉 호프'가 보여주는 것은 단순한 어린이 미술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잊고 지내온 자연스런 인간성에 대한 기억이며,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 들여온 분열의 세계가 얼마나 인공적이고 비자연적인 인지를 비추는 거울이다. 이러한 '드로잉 호프'가 비추는 거울은 서로 다른 분쟁 사회들을 공동의 인간성을 통해 연결한다. 각 사회는 고유한 역사와 맥락 속에서 분쟁을 경험해 왔지만, 그 차이는 오히려 서로에게 배우고 힘을 주는 연대의 가능성을 만들어낸다.

▲전쟁 때문에 우크라이나에서 리투아니아로 피난 가서 사는 7살 소녀가 고향 친구와 친척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자신이 노래 부르기와 음악 듣기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그림으로 이번 서울 전시에서 만날 수 있다. ⓒ어린이어깨동무

분쟁은 사람들을 고립시키고, 기존의 경계를 넘어서는 상상력을 제한한다. 어떤 주제는 사회적으로 금기시되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지역 사람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어린이들의 시선을 통해 공동의 인간성과 마주할 때, 우리는 우리가 처한 사회적 현실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과 희망을 가지게 된다. 지금까지 한반도를 비롯해 남아공,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미국, 일본, 캄보디아, 콜롬비아 등 다양한 사회의 어린이들과 시민사회 단체들이 이 희망가꾸기 여정에 함께해 왔다. 그리고 이제 이 연대는 더욱 확장되고 있다.

지난 해 11월, 유엔 창설 80주년을 맞아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전시는 이 여정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어린이어깨동무가 미국친우봉사회(AFSC) 및 아일랜드 유엔대표부와 함께 준비한 이 전시에는, 경기도의 지원으로 남과 북, 일본,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미국, 캄보디아, 콜롬비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9개국 어린이 100여 점의 그림이 유엔본부 대표단 출입구 로비를 채웠다.

개막식에는 각국 외교관과 국제기구 관계자들이 참석해 어린이들의 그림이 전하는 메시지에 깊이 공감했고, 이튿날에는 갈등 사회에서 어린이와 예술이 트랜스로컬 평화구축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함께 나누는 자리도 마련되었다. 전시는 그 후로도 멈추지 않았다. 워싱턴과 런던, 더블린, 헤이그를 거치며 '드로잉 호프'는 각 도시의 시민사회와 만나 왔고, 이제 그 여정은 다시 한반도로 이어지고 있다.

▲2024년 1월에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열린 전시를 현지 어린이들이 관람하고 있다. ⓒ어린이어깨동무

오는 6월 25일부터 국회와 임진각에서 열리는 전시에는 기존 참여 국가들에 더해, 팔레스타인, 스리랑카, 아르메니아, 우크라이나, 리투아니아, 벨라루스 등 여러 다른 분쟁 지역 어린이들의 그림이 새롭게 함께한다. 이 전시는 단순히 더 많은 국가가 참여하는 것을 넘어, 전 세계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는 전쟁과 갈등의 현실 속에서도 어린이들의 희망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고 확산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특히 분단의 상징적 공간인 임진각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어른들이 그려 놓은 군사적 경계선이 얼마나 인위적인지, 그리고 그것이 인간의 본래 모습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어린이들은 말한다. 함께 놀고 싶다고. 함께 웃고, 춤추고, 살아가고 싶다고. 이들의 메시지는, 우리가 복잡한 정치와 이념 속에서 잃어버린 사람됨에 대한 진실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드로잉 호프'는 어린이들을 전쟁으로부터 보호의 대상으로만 보지 말 것을 요청한다. 전쟁의 시대에 처한 우리는 오히려 어린이들에게서 배워야 한다. 우리가 익숙해진 지식과 사고방식을 잠시 내려놓고, 다시 어린이와 같은 사람으로 돌아갈 때, 우리는 비로소 자연스런 인간 사회의 출발점에 다시 설 수 있다. 유엔본부에서, 그리고 워싱턴, 런던, 더블린과 헤이그에서 울려 퍼졌던 어린이들의 목소리는, 이러한 메시지가 단지 지역적 차원을 넘어 전 지구적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동시에 그것은 오늘날의 제도화된 국내외 정치와 국제외교가 과연 이 어린이들의 희망에 얼마나 응답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우리에게 남긴다. 이번 여름 한반도에서의 드로잉 호프 전시가, 전 세계 어린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공동의 인간성을 재확인하고, 전쟁의 시대를 넘어 서로 어깨동무하며 살아가는 세상을 향한 평화의 희망을 함께 그려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안내>

'어린이어깨동무' 창립 30주년 기념식

: 2026년 6월 25일(목) 오후 6시 30분.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

국제 어린이 평화그림전 '드로잉 호프(Drawing Hope)'

: 국회의원회관 2층 로비(6월 23일-27일). 임진각 한반도 생태평화 종합관광센터 전시회랑(6월 26일-7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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