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학 한국어 교원, 내가 가능한 피해온 자리

[2026 한국어교원, 교단 너머 이야기] ④ 인생이 귤을 줄 때

스승의날을 앞두고 지난 4월 직장갑질119와 온라인노조 한국어교원지부가 '교단 너머 이야기'라는 이름으로 제2회 한국어교원 수기 공모전을 열었다. 수기에는 외국인이 한국에 와 처음 만나는 선생님이자 초단기 계약과 공짜 노동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인 한국어교원들이 겪는 고충과 애환이 담겼다. 다섯 편의 수상작을 최우수상 한 편과 우수상 두 편, 가작 두 편 순으로 싣는다. 편집자

영어에는 "When life gives you lemons, make lemonade(인생이 레몬을 주면 레모네이드를 만들어라)"라는 표현이 있다. 인생이 신 레몬을 건네더라도 그것을 기회로 바꾸고, 시련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으라는 뜻이다. 미국에서 학생들이 많이 이야기하는 한국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의 영어 제목은 제주라는 지역적 특성을 살려 'When Life Gives You Tangerines(인생이 귤을 줄 때)'가 되었다. 레몬 대신 귤을 넣은, 꽤 재치 있는 번역이다.

내가 있는 인디애나 대학교는 보통 IU라고 부르는데, 공교롭게도 한국 가수 IU가 이 드라마에 출연한다. 그래서 학생들 사이에서는 구글에 IU를 검색했을 때 우리 학교가 먼저 나올지, 한국 가수 IU가 먼저 나올지가 은근히 재미있는 화제가 되곤 한다. 흥미롭게도 미국 학교 계정으로 로그인한 상태에서는 인디애나 대학교가 먼저 뜨지만, 아무런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는 한국의 가수 IU가 먼저 나오는 경우가 많다. 어떤 학생은 본인의 학교가 먼저 나오는 것에 놀라고, 또 다른 학생은 한국의 가수가 먼저 나온다는 사실에 놀라곤 한다.

나는 아직 '폭삭 속았수다'를 보지 않았다. 정말로 내 인생이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신 레몬을 건네는 날이 오면 그때 보려고 아껴두고 있는 것일 수도 있고, 아직까지는 내 한국어 교원으로서의 삶이 그렇게까지 신 레몬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보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혹은 신 레몬이 주어지기 전에 내가 먼저 그 상황을 피해 왔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2018년부터 한국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국내에서 강의를 했지만, 그 이후의 대부분은 해외 파견교원으로 지내며 한국어를 가르쳤다. 앞으로 한국으로 돌아가 다시 한국어 교원으로 살아갈 기회를 얻게 될 수 있을지도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런데 설령 그런 기회를 얻게 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오히려 내 인생에서 가장 신 레몬을 받아드는 순간이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크다.

내가 오랫동안 가능하면 피해 왔던 자리는 바로 국내 대학 한국어학당 강사 자리였다. 역설적이게도 그것은 과거 내가 고등학교 영어 교사를 그만두게 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고, 지금은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가 되었다. 국내 대학의 학생 수 감소는 굳이 뉴스로 확인하지 않아도 내 주변의 조카들 숫자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더구나 수도권이 아닌 지방, 그 중에서도 내 고향 부산만 하더라도 내가 일하던 시절의 어학당 강사 수와 지금의 강사 수를 비교해 보면 그 감소폭은 꽤 크다. 주변에서 한국어 교원이라는 직업에 대해 물어오면, 나는 어차피 말려도 결국 할 사람은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능하면 하지 않는 편을 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역설적으로 이 일을 거의 9년째 하고 있다. 왜 일까? 굳이 그 이유를 찾아본다면 전공도, 직업도, 인종도, 학습동기도, 나이도 모두 다른 학생들이 모두 '한국'이라는 공통점을 품고 나와 함께 서로 한국에 대해 배우고 가르치며, 그들의 성장을 지켜보는 일이 주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그 감정 때문이 아닐까 한다. 지금은 잠시 미국에 와 있지만, 전 세계 어디에서든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다는 사실 역시 이 직업의 큰 매력이다.

내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지금의 나는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며 얻는 보람, 그 보람이 주는 일종의 도파민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감사함보다는 타성에 젖어, 학생들의 시험 답안을 채점하다가 문득 DJ DOC의 노랫말 한 구절이 떠오를 때가 있다. "젓가락질 잘해야만 밥 잘 먹나요." 한국어를 꼭 획순대로 써야만 한국어를 잘하는 것일까. '여보세요'든 '여버세요'든, 의미를 이해할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은 아닐까. 그런데도 내가 굳이 그것에 점수를 깎는 것이 옳은가.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 더 나아가 한국어 교육이란 과연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요즘 나는 바로 그런 질문 앞에 자주 멈춰 선다.

한국어 교원 초임 시절, 태국의 한 시골 지역에서 파견 생활을 하던 때가 있었다. 생활은 단조롭고 심심했고, 그 무료함 속에서 무언가 기록을 남기고 싶다는 마음으로 유튜브 채널을 만들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다소 경솔했지만, 당시 유행하던 "절대로 하지 마라"류의 형식을 따라 "한국어 교원 절대로 하지 마라!"라는 제목의 영상도 올렸다. 고작 2년 정도 한국어를 가르쳐 본 사람이 무엇을 얼마나 알았겠느냐마는, 그 짧은 시간 동안 겪은 경험이라도 누군가와 나누고 싶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7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애석하게도 한국어 교원의 처우는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다만 온라인노조 한국어교원지부가 생겼다는 소식도 들었고, 덕분에 처우 개선이 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도 종종 듣는다. 시차 때문에 쉽지는 않지만 노조에서 여는 온라인 강의에도 가능한 한 참석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 역시 한때는 한국어 교원의 처우 개선을 위해 무엇인가 해 보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던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지금의 나는 내 직업의 열악한 현실을 애써 외면하고, 어쩌면 그 현실로부터 도망치며 살아온 스스로에게 미안하고 또 부끄럽다. 지금의 나는 다시 학생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한국어 교원의 처우 개선이라는 과제를 비겁하게 미뤄두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한국어 교원 절대로 하지 말라"고 말해 놓고 정작 나는 왜 계속 이 일을 해 왔는가. 언젠가는 그 질문에 대해 영상을 만들어 보고 싶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의 나는 미국 정치 상황이 어수선하다는 이유로, 또 미국 내에서는 학교 밖 수익이 발생하면 안 되는 학생비자 신분이라는 이유로, 그저 여러 변명 뒤에 숨어 지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요즘 나는 언어인류학(linguistics anthropology)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한국 사회의 언어 이데올로기, 더 구체적으로는 표준어의 정의를 둘러싼 문제를 더 공부해 보고 싶다. 대한민국은 세계적으로도 드물게 표준어의 정의 안에 '교양'이라는 표현을 포함하고 있다. 그것은 차별적이라고도 할 수 있고, 계층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개념이다. 더구나 21세기에도 헌법재판소는 국가 권력을 통해 그 정의를 유지하도록 했다. 나는 이 점이 한국사회를 세계에서 다소 특이하게 만다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내 유튜브 영상에는 이런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외국인에게 사투리 가르치세요?"

"어떻게 사투리 쓰는 사람이 한국어를 가르치나요?"

나는 그 댓글들에 답하는 영상을 만든 적도 있다. 그러나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우리는 외국인에게 사투리를 가르치면 안 되는 것일까. 애초에 '교양이 있다'는 것은 무엇으로 측정할 수 있는가. 그렇게 모호하면서도 차별적인 개념을 왜 21세기의 대한민국은 헌법재판소의 공권력을 동원해서 여전히 유지하기를 선택했는가? 요즘의 나는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만큼이나, 한국 사회의 언어와 그것을 둘러싼 이데올로기에 대해 더 자주 생각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주 월요일이 되면 나는 다시 학생들 앞에 서서 공공장소 예절에 관한 한국어 수업을 할 것이다. 그리고 학생들과 함께 이런 문장을 배울 것이다.

"영화관에서 큰 소리로 이야기하지 마세요."

▲'세종학당 집현전 한국어교실'에 참가한 외국인들이 한글 창제의 원리와 자음-모음 구성에 대한 수업을 경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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