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 생산, 끼니, 희망"…외국인 학생이 한국어 단어장에 쓴 말들

[2026 한국어교원, 교단 너머 이야기] ② 당신과 나의 삶을 잇다

스승의날을 앞두고 지난 4월 직장갑질119와 온라인노조 한국어교원지부가 '교단 너머 이야기'라는 이름으로 제2회 한국어교원 수기 공모전을 열었다. 수기에는 외국인이 한국에 와 처음 만나는 선생님이자 초단기 계약과 공짜 노동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인 한국어교원들이 겪는 고충과 애환이 담겼다. 다섯 편의 수상작을 최우수상 한 편과 우수상 두 편, 가작 두 편 순으로 싣는다. 편집자

매일 아침 지하철 2호선을 타고 학교로 향하는 길, 내 어깨 위에는 커다란 가방 하나가 놓여 있다. 그 안에는 출석부와 교재, 그리고 어제 미처 다 채점하지 못한 쓰기 과제물 뭉치가 들어 있다. 사람들은 K-팝과 K-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한국어를 가르치는 우리가 화려한 조명 아래 서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방의 실질적인 무게보다 나를 더 짓누르는 것은, '한국어 교원'이라는 이름표 뒤에 숨겨진 서늘한 현실의 무게다.

교실에 들어서면 학생들의 맑은 눈망울이 나를 반긴다. 하지만 수업이 끝난 뒤 행정실로 내려가 마주하는 것은 '주 15시간 미만'이라는 숫자가 적힌 계약서다. 퇴직금을 주지 않기 위해, 혹은 사대보험 가입 의무를 피하기 위해 정교하게 설계된 '쪼개기 계약'. 우리는 대학이라는 거대한 상아탑 안에서 '전문가'로 불리지만, 정작 신분은 언제든 대체 가능한 '무늬만 프리랜서'인 경우가 허다하다. 방학이 시작되면 학생들은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여행을 떠나지만, 우리에게 방학은 '임금 0원'의 보릿고개다. 강의 시수에 포함되지 않는 수업 준비 시간과 학생 상담, 그리고 밤늦도록 이어지는 채점의 시간들은 노동의 영역 밖에서 표류한다. 이것이 오늘날 한국어 교원이 마주한, 지극히 현실적인 풍경이다.

나의 교실에는 대학생만 있는 것이 아니다. 주말이면 다문화가족지원센터나 외국인 노동자 지원센터에서 또 다른 학생들을 만난다. 그들은 한국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낮은 곳의 기둥들이다. 수업 시간에 배운 '주거'라는 단어를 설명할 때, 나는 작년 겨울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스러져간 한 이주 노동자의 기사를 떠올리며 목소리를 가다듬어야 했다.

임금 체불로 고통 받으면서도 "사장님, 돈 주세요"라는 말을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학생, 산재를 당하고도 강제 출국이 두려워 병원조차 가지 못하는 학생들의 사연을 들을 때면 내가 가르치는 한국어가 그들에게 어떤 의미일지 고민하게 된다. 내가 가르치는 이 단어들이 그들에게 방패가 되어줄 수 있을까, 아니면 그저 한국 사회에 순응하기 위한 굴레가 될 뿐일까. 그런 날이면 퇴근길의 노을이 유난히 시리게 느껴지곤 한다.

어느 비 오는 화요일이었다. 공장에서 야근을 마치고 곧장 수업에 왔다는 학생 아룬 씨가 수업이 끝난 뒤 수줍게 다가와 내게 노트를 내밀었다. 질문이 있다는 그의 말에 노트를 펼쳐 든 순간, 나는 그대로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시장에서 파는 흔한 천 원짜리 연습장이었지만, 그 안의 풍경은 결코 흔하지 않았다. 까만 기름때가 군데군데 묻어 있고 모서리가 닳아 너덜너덜해진 종이 위로, 한국어 단어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임금', '생산', '끼니', '희망', '인도네시아'….

단순한 글자가 아니었다. 그것은 누군가의 삶이 꾹꾹 눌러 담긴 흔적이었다. 공장의 소음 속에서, 차가운 컨테이너 숙소의 불빛 아래에서, 떨리는 손으로 하나하나 옮겨 적었을 그 글자들. 받침 하나하나가 비뚤비뚤하면서도 한 획 한 획에 실린 힘이 너무나 형형해서, 나는 그 낡은 노트에서 숭고함마저 느꼈다. 아룬 씨는 말했다. "선생님, 한국어 어려워요. 하지만 저 할 수 있어요."

그 순간, 내가 겪어온 부당한 대우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전한 것은 단순한 문법이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이 낯선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붙잡아야 할 유일한 동아줄이었던 것이다. 그 빼곡한 노트는 나에게 다시 일어설 용기를 주었다.

한국어 교원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화려한 보상이 주어지는 길은 아니다. 여전히 고용은 불안정하고, 우리의 전문성은 가끔 '봉사'라는 이름으로 희석되곤 한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우리는 단순히 언어를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징검다리를 놓는 사람들임을 말이다.

나의 학생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누군가는 공장에서, 누군가는 농장에서, 또 누군가는 강의실에서 자신만의 삶을 일궈낸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삶이 한국어라는 매개체를 통해 나와 연결되는 이 기적 같은 순간을 사랑한다. 비록 현실의 강물은 거칠고 차갑지만, 우리가 놓은 한국어라는 징검다리가 있기에 우리는 서로의 손을 놓지 않고 건너갈 수 있다.

불합리한 제도와 열악한 처우는 우리가 함께 힘을 합쳐 고쳐나가야 할 숙제다. 하지만 그 지난한 과정 속에서도 잊지 말아야 할 진실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서로에게 건네는 "안녕하세요"라는 한마디에 담긴 진심이다.

오늘도 나는 가방을 챙긴다. 어깨를 짓누르던 가방의 무게는 이제 더 이상 고통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지켜내야 할 학생들의 꿈과, 우리가 함께 건너야 할 징검다리의 무게다.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한국어'라는 징검다리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이 현실에, 진심으로 감사하며 나는 다시 교실 문을 연다.

교실에서 학생들에게 텍스트의 구조를 가르칠 때마다 나는 묘한 기시감에 사로잡힌다. 이론서 속의 텍스트는 논리 정연한 체계를 갖추고 있지만, 내 앞의 학생들이 써 내려가는 삶의 문장들은 결코 매끄러운 인과관계로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학생의 글에서 '열심히 일했다'라는 원인은 '부유해졌다'라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 대신 그 자리에 '아프다'거나 '고향이 그립다'라는 예상치 못한 문장들이 비죽 튀어나오곤 한다. 구조론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오류에 가까운 이 문장들 앞에서, 나는 붉은 펜을 든 손을 멈춘다. 교사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은 이들의 문장을 매끄럽게 다듬는 것이 아니라, 행간 속에 숨겨진 고단한 삶의 논리를 묵묵히 읽어주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우리가 배우는 한국어는 단순히 시험 점수를 얻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뒤엉킨 삶의 타래를 한 올씩 풀어내어 세상과 소통하기 위한 절실한 몸짓이다.

때때로 나는 우리가 공들여 가르치는 이 과정이 얼마나 '비효율적'인가에 대해 생각한다. 클릭 몇 번이면 완벽한 번역이 쏟아지는 인공지능의 시대에, 굳이 서툰 발음을 교정하고 땀 밴 손으로 단어장을 넘기는 행위는 시대착오적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효율성이라는 잣대로는 결코 측정할 수 없는 '아날로그적 연결'의 힘을 말이다.

학생들이 직접 손으로 쓴 편지 한 통, 수업 시간에 서툴게 뱉어낸 감사의 인사 한마디는 디지털 신호가 닿지 못하는 마음의 깊은 곳을 울린다. 우리는 가장 느린 방식으로 서로에게 다가간다. 비록 강의실 밖의 세상은 우리를 숫자로 환산하고 효율로 따지려 들지만, 이 교실 안에서만큼은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눈을 맞추는 그 '비효율적인 정성'이 우리를 사람답게 만든다.

내가 준비한 100개의 단어 리스트가 학생들의 가방 속에서 구겨지고 닳아가는 동안, 그 단어들은 비로소 생명력을 얻는다. '사과'라는 단어가 시장에서 값을 치르는 실질적인 수단이 되고, '미안합니다'라는 말이 굳게 닫혔던 타인의 마음을 여는 열쇠가 될 때 언어는 비로소 완성된다.

우리는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아주 작은 물방울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처우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고, 내일의 고용을 담보할 수 없는 불안한 현실은 여전히 나를 흔든다. 하지만 아룬 씨의 낡은 노트를 보며 느꼈던 그 전율이 내 안에 이정표로 남아 있는 한 나는 길을 잃지 않을 것이다. 부당한 현실에 침묵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내 곁의 사람들을 사랑하는 법을 나는 이 서툰 한국어 수업을 통해 배운다.

비록 우리가 딛고 있는 돌들이 작고 흔들릴지라도 그 돌들이 모여 하나의 징검다리를 이룬다는 사실만은 변하지 않는다. 나는 그 다리 위에서 때로는 학생의 손을 잡고, 때로는 동료의 어깨에 기대어 한 걸음씩 나아갈 것이다. 이 길의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으나, 우리가 '한국어'라는 이름으로 서로의 인생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는 이 경이로운 사실만으로도 오늘의 고단함을 씻어내기에 충분하다.

▲ 외국인 한글백일장에 참가한 외국인이 글짓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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