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년 훌쩍 넘었다. 서울이나 서울 가까이에 있던 사람들은 여의도에서, 광화문에서, 한강진에서, 남태령에서 형형색색의 응원봉과 깃발을 들고 2024년 12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거리에서 보냈다. 때로는 멀리 부산에서 대전에서 대구에서 올라온 사람들도 있었다. 인권과 일상을 위협하는 친위쿠데타를 일으킨 윤석열을 탄핵하기 위해 다양한 나이, 직업, 젠더의 사람들이 모였다.
'고양이로 힐링하는 극내향인 협회', '우리 함께라면, 사막도 바다가 돼', '작업하다 나온 수공예가 연맹', '전국집에 누워있기연합', '우리는 서로를 구한다', '하오문'(무협지의 문파), '가시화된 에이엄'(에이엠브렐라의 약칭으로 무성애 스펙트럼을 말한다, '전국갱년기연합','헤비메탈은중금속이다', '전국고양이노동조합' 등등. 깃발과 응원봉은 단순한 집회 도구가 아니었다.
깃발을 자발적으로 제작해서 나온 사람들은 자신의 목소리와 존재를 깃발로 드러내면서 광장을 채웠다. 깃발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고, 바라는 세상에 대한 염원이기도 하고 즐겁게 집회를 보내는 연행의 도구기도 했다. 광장이란 그런 곳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리며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과 서로를 알게 되며 서로에게 스며드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렇게 광장은 민주주의를 시민들이 어떻게 만들어 내는지 보여주는 곳이었다. 광장의 집회는 개인을 연결하는 곳이자 의제를 연결하는 곳이었다. 이는 발언에서도 드러났다. 자신의 소수자성(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민, 농민, 비정규직 노동자 등)을 드러내며 말했다. 왜 광장에 나왔는지, 어떤 세상이 되면 좋을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농민의 의제와 성소수자의 의제가 만났고, 팔레스타인의 식민지 현실이 한국의 비상계엄과 만났다. 많은 비국민들이 집회에 함께 했다. 국가폭력이 어떻게 개인의 일상을 무너뜨리는지 자신의 서사로 말해주었다. 윤석열 퇴진광장은 평등과 다양성을 배우는 장소이자 웃고 울고 춤추는 뜨거운 정동의 장소였다.
오세훈이 세우려는 '받들어총'의 국가주의와 군사주의
그런 광장 중 하나인 광화문광장에 임기도 얼마 남지 않은 오세훈 서울시장이 '받들어 총' 조형물을 세우겠다고 한다. 서울시는 작년 100미터(m) 높이의 태극기 게양대가 국가주의라고 비판을 받자 급하게 '감사의 정원'으로 계획을 변경했다. '감사의 정원'은 6·25전쟁 당시 참전한 22개국의 희생과 공헌을 기리는 상징으로 광화문 일대를 국가 정체성과 동맹의 상징 공간으로 재구성하겠다는 구상이다.
'받들어총'을 형상화한 조형물은 '감사자의 정원'에 포함된다. 지하에는 미디어월 등의 전시 공간을 만든다고 한다. 태극기 게양대와 완전 다른 사업임에도 행정절차를 제대로 하지 않아 국토부가 공사중지 명령을 내릴 정도였음에도 그 후 진행된 행정절차도 형식적이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국토부가 내린 공사중지 명령 등에 대한 설명도 없었고, 도시계획시설 변경에 앞서 14일간 하게 돼 있는 주민열람공고와 관련해서도 "주민 의견은 없었다"는 간단한 보고와 그리고 위원 중 1명의 발언이 전부였다.
한글문화연대가 전문업체에 의뢰해 최근 20~74세 서울시민 504명을 상대로 여론 조사한 결과, 82.3%의 시민이 감사의 정원 사업 자체를 전혀 모르고 있다고 답변했다. 광장 정비에 524억 원, 조형물에 206억 원이 드는 대규모 공사를 임기 만료를 앞둔 4월에 마치겠다는 것이 상식적인 시정업무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여러 번 강조하지만, 광장은 오세훈 시장 개인의 것이 아니다.
더 문제는 큰돈이 드는 대형사업일 뿐 아니라 '받들어총'이 상징하는 국가주의와 군사주의 문화다. 이미 서울에는 용산전쟁기념관이 있어 한국전쟁의 비극 형상화와 연합군에 대한 감사는 충분하다. 이미 한국전쟁이나 연합군의 노력를 형상화한 공간이나 조형물은 전국 도처에 있다. 더구나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침략전쟁으로 온 세계가 경제위기와 전쟁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어느 때보다 평화가 강조돼야 할 시기에 군사적 상징물인 '받들어총'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그런데도 이를 강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전쟁을 보수의 이념으로 전유하려 하기 때문이다. 누군가에는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눈 비극의 경험이지만 극우들에게는 한국전쟁은 냉전 시대의 반공주의와 군사주의를 강변하고, 대중들을 정치적으로 동원하는데 유효한 기제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서울신문사 앞에 유엔 참전 국가의 깃발을 인도에 세운 전시물은 보수단체가 한 불법 설치물이지만, 서울시도, 중구청도 문제 삼지 않고 있는 이유다.
열린 공간에서, 광장에서 서로 다른 사회질서에 대해 말하고 경합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누군가는 자본주의를 옹호할 수 있고 누군가는 반자본주의 공동체를 지향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 사회의 지향은 트럼프식 군사력에 의해 달성되어선 안 되는 것임에도 군인들이 희생을 강조하는 군사적 조형물로 광장을 채움으로써 은연 중 미국의 힘이나 미국과의 군사적 동맹을 강조하는 조형물은 어떤 효과를 낳을지 눈에 선하다.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군사주의의 힘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이게 되지 않겠는가.
광장의 힘, 공공성과 다양성
광장에 거대한 조형물이 세워진다면 사람들로 채워져야 할 광장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 2016년 박근혜 퇴진 투쟁 때, 그리고 2024년과 2025년의 윤석열 퇴진 투쟁때, 광장에 모였던 다양한 사람들의 몸들을 만날 공간은 그만큼 좁혀지게 된다. 물론 집회에 출현하는 다양한 몸들과 다양한 감성들이 그깟 조형물에 눌리지는 않겠지만 광장의 기능이 줄어드는 것은 사실이다. 아니 어쩌면 극우정치세력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광장에 모였던 다양한 목소리와 몸짓, 감정들을, 기억들을, 기회들을 지우고 차단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거대한 조형물로 열린 광장의 힘을 삼켜버리고 싶은 것일까.
게다가 BTS 공연으로 광장의 공공성과 다양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는 시점에 국가주의와 군사주의 조형물을 성급하게 세우겠다는 오세훈 시장의 계획을 누가 환영하겠는가. 상업 공연만 허용함으로써 광장의 공공성과 다양성이 보장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아들여 성찰하고 변화를 줘야 마땅한 시점인데,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다.
광장을 채우는 사람들, 거기서 나오는 다양한 문화와 목소리는 기존 정치사회에 대한 비판적 개입이자 실천이다. 광장 조형물은 이를 가로막기에 문제적이다. 민주주의를 끌어내는 힘도, 한국 사회를 평등과 다양성으로 가져가는 힘도 광장에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다양한 사람들이 만나고 더 다양한 의제들이 만나고 접촉함으로써 생성되는 힘이 민주주의의 바탕이다. 그것이 광장에서 만들어질 수 있도록 비워두어야 한다.
오세훈 시장은 광화문 광장에 시대착오적이고 극우적인 '받들어총'을 세우는 공사를 당장 집어치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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