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장애가 욕설로 사용되거나 약점이 될까 숨기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당당히 자신의 장애를 드러내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드라마, 유튜브, 연극, SNS 등 다양한 분야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며 대중의 편견을 깨부수고 있다. <프레시안>은 장애를 소재로 대중문화 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이 살아온 과정, 활동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을 들었다. 편집자
한동안 청년들 사이에서 근육질의 탄탄한 몸매를 촬영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기록하는 '바디프로필'이 크게 유행했다. 극단적인 체중 감량으로 인한 건강 문제와 선정성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자신의 가장 멋진 순간을 담을 수 있다는 생각에 많은 청년이 바디프로필에 도전하곤 했다.
바디프로필을 공개한 수많은 청년 가운데 유독 화제가 된 인물이 있다. 하반신 마비로 휠체어를 타면서도 꾸준한 운동으로 선명한 근육을 선보인 정새얀(26) 씨다. 2023년 정 씨가 비장애인들과 함께 제주도에서 바디프로필을 촬영하는 과정을 담은 유튜브 영상은 현재 조회수 253만 회를 기록하고 있다.
정 씨는 올해 다시 한번 바디프로필을 촬영하기 위해 근력 운동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 19일 충북 청주의 한 카페에서 <프레시안>과 만난 정 씨는 인터뷰 전 헬스장에서 역도를 하고 왔다며 "트레이너 선생님들이 '본인이 본 여자 수강생 중에서 가장 무게를 잘 친다'고 했다"고 뿌듯해 했다.
인스타그램에 게시한 사진 속 등 근육이 인상 깊었다는 말에 정 씨는 "등은 내 몸 중에서 가장 근육이 덜 발달한 부위"라며 다른 부위 근육은 더 많이 발달해 있다고 답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겠다는 듯, 정 씨는 며칠 뒤 인스타그램에 자신의 팔과 어깨 근육이 도드라져 보이는 사진을 게시했다.
아무래도 노력으로 키운 근력과 근육에 자부심을 갖고 뽐내는 건 장애인·비장애인 구분 없이 근력 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인 듯하다.
정 씨는 지방척수수막류로 하반신 신경이 마비된 휠체어 이용자다. 지방척수수막류는 척수와 신경 조직이 지방 성분과 결합해 손상되고 그로 인해 하반신 마비 등이 나타나는 질환이다. 치료를 위해 수차례 대형 수술을 받았지만, 결국 실패해 청소년기부터 휠체어를 타야 했다.
이런 정 씨의 바디프로필 촬영은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국내에서 바디프로필을 찍은 휠체어 이용자는 여전히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체 운동을 할 수 없는 것은 물론, 하반신 마비 장애인이 상체 운동을 하는 모습도 비장애인이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기에 그 과정이 더욱 관심을 받기도 했다.
물론 정 씨가 처음 운동을 시작하는 과정은 녹록치 않았다. 기존에 다니던 재활치료센터는 거리가 너무 멀어 주기적으로 방문하기 어려웠다. 대신 등록한 회사 근처 헬스장은 시설과 운동 방법이 비장애인에게 맞춰져 있어 정 씨가 이용하기에는 효율적이지 않았다.
정 씨가 원활히 운동할 수 있게 된 건 헬스장 트레이너 덕이다. 휠체어 이용자를 처음 가르치게 된 정 씨의 트레이너는 재활운동을 비롯해 정 씨가 편하게 운동할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통상적으로 수행하는 상체 운동을 정 씨가 할 수 없을 땐 대체 운동을 시키고, 도저히 방법을 모르겠을 땐 "이 운동을 내가 좀 더 연구해 올게"라고 한 뒤 관련 자료를 찾아봤다.
트레이너의 노력 덕에 정 씨는 큰 어려움 없이 헬스장에서 운동할 수 있었다. 이는 정 씨의 일상생활에도 도움이 됐다. 휠체어를 타거나 휠체어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할 때 전보다 가뿐히 움직일 수 있다. 한 시간 넘는 거리도 휠체어를 타고 이동하는 데 문제 없을 정도로 체력도 길렀다.
바디프로필은 정 씨와 트레이너의 노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결과물이다. 정 씨와 동료들은 제주도 해변가와 숲길 등을 찾아다니며 멋진 풍경 속에 탄탄한 몸매를 담았다. 휠체어로 이동이 어려울 땐 동료들이 정 씨를 업고 다니기도 했다. 정 씨는 "중간에 힘들어서 선생님 조언을 안 들었던 적도 있어 살짝 후회가 남는다"면서도 "많은 분이 도와주신 덕분에 촬영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했다.
정 씨는 운동 과정을 비롯한 장애 당사자의 일상을 영상으로 소개하고 있다. 하반신 마비 장애인은 책상 모서리에 발을 찧어도 아프지 않다는 웃기고도 슬픈 이야기를 전하기도, "장애는 기세"라며 자신감 갖고 살자는 메시지를 전하기도 한다. 정 씨가 올리는 영상은 수십~수백만 조회수를 기록할 정도로 많은 사람에게 가닿고 있다. 정 씨의 밝고 유쾌한 에너지에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도 많다.
장애를 드러내는 데 거리낌 없는 태도에는 어머니 이금자(57) 씨의 영향도 작용했다. 이 씨는 정 씨가 장애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히 살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정 씨가 유년 시절 보조기를 차고 이동할 때 보조기를 숨기지 않고 짧은 치마나 반바지를 입히곤 했다. 운동회가 열리면 "지금밖에 뛸 기회가 없다. 못 뛰어도 되니까 빨리 나가서 뛰어 봐"라며 정 씨를 내보내기도 했다.
"처음엔 저도 많이 울었죠. 남들 해코지하지 않고 잘 살았는데, 왜 우리 애가 아프게 태어났을까 했어요. 하지만 저는 제 아이를 잘 돌봐야 하잖아요? 장애는 숨겨야 하는 일이 아니기도 하고요. 학교에 휠체어 리프트를 설치하게 하고, 장애 아동이 원활히 수업을 들을 수 있게 특수반을 설치해 달라고도 요구했어요. 이런 요구로 밉보일 수 있지만, 그래도 해야죠. 새얀이가 학교라는 작은 사회에서 도태되면 큰 사회에서는 더 도태될 거 아녜요? 사람들의 시선이 두렵다고 하더라도 할 일은 해야 해요"(이금자 씨)
어머니 덕에 높은 자존감을 가질 수 있었지만, 장애인을 향한 부정적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질 순 없었다. 정 씨는 종종 휠체어 패션 모델로 활동할 정도로 자신을 잘 꾸민다. 학창 시절 "장애인은 우울하고 자기 관리도 잘 안 한다"는 편견, 장애인에 대한 동정을 피하고자 화장과 패션에 신경을 많이 쓰기 시작했던 까닭이다.
지금 정 씨에게 남은 가장 큰 고민은 '취업'이다. 휠체어 이용자라는 이유로 아르바이트만 100번 넘게 탈락했다. 2023년부터 다니던 직장에서 지난해 5월 퇴사했는데, 휠체어 이용에 제약이 없고 장애인 화장실이 구비된 회사를 찾다 보니 지원에 제약이 크다.
일자리를 포함 장애로 인해 겪는 제약을 해결하려면 정부 지원이 강화돼야 한다고 정 씨는 이야기했다. "척수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대소변 활동이 원활하지 않아 변비약, 기저귀 같은 보조물품이 필요하다. 이런 물품에 대한 지원은 잘 이뤄지지 않는다. 경증장애인 콜택시 미지원, 중증장애인이 너무 적은 시간 일하는 문제 등도 빠르게 개선되면 좋겠다"고 했다.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정 씨는 앞으로도 거리낌 없이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며 살 계획이다. 또 미디어를 통해 장애와 관련한 자신의 에피소드,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 등을 자유롭게 풀어내려 한다.
"앞으로도 너무 진지하지도 재미 없지도 않게, 유쾌하게 장애를 풀어내고 싶어요. 편견 갖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저를 사랑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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