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은 더 이상 흰 코끼리가 아니다.
서해안 바다를 메워 땅으로 만든 단군 이래 최대 국책사업인 새만금은 1991년 11월 첫 삽을 뜬 이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장밋빛 청사진과 후속 실행의 부재로 기본계획만 돌려 바꾸는 무원칙을 일관해왔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를 두고 작년 12월 12일 진행된 새만금개발청 부처별 업무보고 자리에서 "도대체 어디를 개발하고 비용은 어떻게 조달할지 분명하지 않다"며 "대선 때마다 계획이 바뀌는 것은 주권자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라고 강도 높게 문제를 제기했다.
이 대통령은 '새만금=희망고문'을 언급하며 기업이 들어올 수 있도록 실현 불가능한 민자계획을 과감히 구조조정해야 할 것이라고 냉철하게 진단했다.
지역에서는 역대 정권마다 허울 좋은 공약만 남발한 채 실행력을 보이지 못한 새만금의 '아픈 현실'을 통렬히 비판하고 정확하게 진단해 대안을 제시한 첫 대통령이란 분석이 나왔다.
대통령의 진단이 나온 지 두 달여 만에 현대차그룹이 새만금에 향후 5년간 10조원을 투자해 인공지능(AI), 수소, 로봇 산업 거점 확보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현대차그룹의 '새만금 통 큰 투자' 계획은 새만금이 더 이상 '흰 코끼리'가 아니라 적은 비용으로 장기적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황금 거위'로 변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선언이다.
경제학에서 '흰 코끼리'는 유지비만 많이 들고 실질적 수익이나 효용이 거의 없는 자산이나 사업을 뜻한다.
새만금은 그동안 세계 최장의 33㎞ 방조제 건설에 엄청난 예산을 쏟아붓는 '밑 빠진 독'으로 치부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전 세계 유일의 1억평 대파노라마 현장은 애물단지로 전락했고 역대 정부는 매년 투자비용의 가이드라인조차 없이 엿가락 주무르듯 해왔다.
최종 완공 연도가 오는 2050년으로 축 늘어져 있는 것도 역대 정부의 무원칙에 기업들의 무관심이 더해진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지난 2023년 8월 '새만금 잼버리 대회'가 파행으로 마무리된 후 이곳을 바라보는 전 국민적 시선은 더욱 더 싸늘해졌다.
전북은 국가예산이나 빼먹는 꿍꿍이가 있는 지역이라는 현재 야권의 비아냥을 받아야 했다.
우려곡절의 논란 속에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미래전략산업에 대규모 투자를 하겠다는 선언은 새만금이 예산만 잡아먹는 미운오리가 아니라 꾸준히 현금을 창출할 수 있는 국책사업의 '캐시 카우(Cash Cow)'로 전환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낳게 한다.
전북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의 대규모 투자계획에 전북도민들이 즉각 크게 환영한 것도 이런 희망이 담겨 있다"며 "삼성의 23조원 투자가 지난 2016년 물거품으로 되돌아간 이후 10년 만에 듣는 빅뉴스"라고 말했다.
이원택 의원은 "현대차그룹의 10조원 투자는 전북이 미래 첨단산업 중심지로 도약할 수 있는 역사적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AI 데이터센터, 대형 수전해 설비, 로봇 생산시설, 태양광 발전 등을 단계적으로 조성하고, 지역 재생에너지를 활용하는 '지산지소' 모델을 적용한다는 점에서 매우 전략적이고 의미 있는 결정"이라고 반겼다.
이제 남은 과제는 현대차의 투자를 기폭제 삼아 전북의 산업지도를 일거에 바꿀 수 있도록 도와 지역 정치권·경제계·학계가 초당적으로 협력해 총력 대응체계를 즉시 가동하는 일이다.
이원택 의원은 "새만금이 국가 AI·그린에너지 허브로 브랜드화할 수 있는 서남권 산업벨트 구축 청사진도 그려내야 한다"고 제안했다.
삼성의 새만금 투자를 끌어오는 일도 새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삼성은 지난 2011년에 국무총리실·전북자치도 등과 3자 MOU를 체결하고 2021년부터 2040년까지 2단계에 걸쳐 23조원을 투자해 새만금 신재생에너지용지에 풍력발전기·태양전지 등을 포함한 '그린에너지 종합산단'을 구축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삼성은 협약 체결 이후 태양광 산업을 전담했던 신사업추진단을 전격 해체하고 새만금 투자 일정도 일절 언급하지 않는 등 진정성을 의심케 했다.
급기야 협약 체결 5년 후인 2016년 5월경에는 삼성 측 상무급 임원 2명이 전북도를 찾아 글로벌 경기침체와 내수부진 등으로 새만금에 투자할 여력이 없다고 알려오는 등 대규모 새만금 투자를 철회한 바 있다.
전북환경운동연합은 이와 관련해 새만금기본계획에서 사라진 '신재생에너지용지'를 복원하고 삼성의 23조원 새만금 투자약속 이행을 강하게 요구해 왔다.
전북 환경단체는 삼성의 새만금 투자약속 이행과 신재생에너지 용지 복원을 지역사회의 핵심과제로 삼고 정책적·사회적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송전탑 건설 백지화 전북대책위도 최근 논평을 통해 "현대차의 새만금 투자는 '용인산단 재배치'가 정답임을 증명한 것"이라며 "삼성전자도 따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회단체의 한 관계자는 "삼성 투자까지 더해진다면 새만금은 그야말로 국토균형발전이라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대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전북이 대도약의 기회를 살려 새로운 발전적 동력을 만들어 가는데 힘을 합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새만금은 더 이상 흰 코끼리가 아니며 그렇게 되어서도 안된다는 주장이 갈수록 설득력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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