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에서 야간노동 줄이니, 거짓말처럼 돌연사가 사라졌다"

[새벽배송, 현실과 과제] ④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

야간노동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은 의학적 정설이다. 야간노동 규제는 국제적 대세다. 한국으로 눈을 돌리면, 산업안전의 중요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거의 이뤄진 듯 보였다. 그러나 최근 새벽배송 논란이 그 합의가 어떤 영역에서는 단단하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 균열은 왜 생겼을까. 모두가 안전한 일터를 만드는 데 있어 우리가 놓친 것은 무엇이며,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그 실마리를 찾기 위해 <프레시안>은 전문가와 활동가들에게 새벽배송 논란을 지켜보며 한 생각을 물으려 한다. 편집자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은 오랜 기간 노동운동을 해 온 활동가다. 야간노동과 관련해서는 자동차 공장 주간 연속 2교대제 전환 과정을 직접 겪었고, 현재는 플랫폼노동희망찾기 집행위원으로서 대리운전기사들과 함께하고 있다.

오 실장은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현대차 공장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돌연사가 이어진 일을 회상했다. 그게 과로사라는 건 이런저런 공부를 한 끝에 알게 됐다. 이와 함께 야간노동을 줄이기 위한 노조의 싸움이 시작됐다.

기업과 노동자는 물론 지역사회까지 가세한 이런저런 논쟁 끝에 현대차의 주간 연속 2교대제 전환 작업은 결실을 맺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돌연사가 사라졌다. 지금 노동자들은 다시는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한다고 오 실장은 전했다.

오 실장은 인간은 밤에 잠을 자고, 낮에 활동하도록 진화한 존재라며 이를 거스를 때 건강이 악화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지금도 야간노동을 하고 있는 대리운전기사들이 각종 근골격계질환, 치아질환, 우울증 등에 시달린다는 점도 함께 이야기했다.

새벽배송 사업을 주도한 플랫폼 기업에 맞서기 위해 필요한 일로 오 실장은 플랫폼에 기대 살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을 착취하며 돈을 버는 쿠팡의 현실을 알리고 마땅한 책임을 요구하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새벽배송 이용의 토양인 한국의 장시간 노동에 대한 문제제기도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래는 지난 24일 서울 중구 대리운전노조 사무실에서 오 실장과 한 인터뷰를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 ⓒ프레시안

프레시안 : 과거에 야간노동이 일반적이었던 자동차 노조에서 오래 활동했다. 자동차 공장도 한때 24시간 운영됐지만, 지금은 주간 연속 2교대제가 보통인 걸로 안다. 변화가 일어난 과정에 대해 듣고 싶다.

오민규 :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쯤 현대차 공장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죽음이 연달아 발생했다. 자다가 돌연사한다거나, 일 끝나고 공장 안 샤워실에 씻으러 들어갔는데 나오지를 않아서 들여다보니 죽어 있다거나…. 무슨 전염병이 도는 것도 아닌데,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도대체 이런 일이 왜 벌어지는 거냐 살피기 시작했다.

1970년대에 현대차 공장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때 20대였던 청년 노동자들이 1990년대, 2000년대가 되면서 40대 후반, 50대 초반이 됐다. 근속이 한 20년 쌓이는 과정에서 계속 주야 맞교대를 돌고, 심지어 주말, 휴일 특근도 하다 보니 생체리듬이 깨진 거다. 1, 2년 사이가 아니라 20년에 걸쳐 벌어진 일이었다.

이런저런 공부를 하면서 이게 과로사라는 걸 알게 됐다. 명백히 야간노동과 교대노동에 기인한 죽음이었다. 그것 말고는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교대노동과 야간노동을 없애지 않으면 자동차 공장 노동자의 수명이 엄청나게 짧아지겠다는 걸 몸으로 체감했다. 그때부터 주간 연속 2교대를 만들자는, 노동시간 단축 투쟁이 벌어졌다.

프레시안 : 과로사가 사회적으로 조명되고 해법을 찾기 시작한 역사가 생각보다 짧게 느껴진다.

오민규 : 그때만 해도 과로사라는 단어 자체가 생소했다. 지금도 잘 조사해 보면, 과로사가 어디 무슨 학명이나 병명으로 인정된 게 아니다. 일본의 '카로시(かろうし)'가 유일한 이름일 거고, 영어로도 카로시(karoshi)를 음차해 쓰거나 직역한 단어(death from overwork)만 쓸 거다.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1960년대에 많은 사람이 픽픽 쓰러져 죽었다. 그러다 1970년대에 드디어 카로시라는 말을 처음 쓰기 시작했다. 1982년에 의사 3명이 <카로시>라는 책을 썼다. 이게 과로사라는 단어가 대중화된 배경이다. 아직도 학명으로는 그런 게 없고, 보통 심혈관계질환, 뇌혈관계질환으로 부른다. 번아웃(burnout) 정도가 그나마 가까운 개념일 거다.

이와 비슷한 과정을 거친 게 근골격계 질환이었다. 마찬가지였다. 이유를 모르겠는데 자동차 노동자들이 팔을 못 쓰고, 허리를 못 쓰고 무릎을 못 쓰고 그랬다. 외상은 하나도 없으니까 꼭 꾀병 같다. 지인들이 '너 일하기 싫어서 그러냐'고 놀리고, 동료들은 '왜 쟤는 맨날 아프다면서 우리를 힘들게 하냐'고 하고, 회사도 면박만 줬다. 가족들은 한약방에 가보라는데, 돈을 쏟아부어도 안 낫는다.

이것도 사고가 나거나 갑자기 유해물질에 노출돼 생긴 일이 아니었다. 아주 오랜 기간 몸에 쌓이다 발병한 거였다. 이런 일들이 실제로는 산재고, 특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걸 인정하게 하기까지 굉장히 치열한 투쟁을 해야 했고, 긴 시간이 걸렸다.

"'이게 가능할까?' 의문도 있었지만…돌아가겠다는 사람 없다"

프레시안 : 주간 연속 2교대제 도입에 대한 당시 자동차 노동자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오민규 : 주간 2교대제는 노조 위원장 선거만 하면 모두가 외치는 거였으니까 옳다고 생각했다. 다만 실제로 한다고 하면 저항감이나 두려움이 있었다. 노동시간이 단축되는 만큼 임금이 줄어든다고 생각했으니까.

'이게 과연 가능할까?' 의문도 있었다. 기계를 가진 기업주가 공장을 24시간 돌리려는 게 인지상정인데, 5~6시간 공장 안 돌린다는 게 상상이 안 되는 거다. 해외 사례를 소개하고 학습해도 끝까지 저항감이 있었다.

그러다 이게 진짜 거짓말처럼 사라진 계기가 있었다. 2013년 초에 주간 연속 2교대제를 4주 정도 시범 실시했다. 임금하락? 한 달짜리는 감수할 수 있다. 그러면서 현장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야 이거 너무 행복한 거다. 아니 세상에 이렇게도 공장을 다닐 수 있구나. 그때 분위기가 정말 엄청났다.

프레시안 : 주간 연속 2교대제 도입에 대한 기업이나 당시 지역사회의 반응도 궁금한다.

오민규 : 지금도 마찬가지인데, 사용자들은 마치 노동자들을 위한 것처럼 노동시간이 줄면 임금도 줄 거라고 이야기했다. '너 집 사느라 빚도 많이 졌을 텐데' 이런 이야기를 막 했다. 무슨 고양이가 쥐 생각을 그렇게 많이 해주는지….

그 다음에 '여가 늘어나도 솔직히 할 일 없잖아. 술 마시는 게 다 아니냐' 이런 말도 했다. 노동자들도 그런 걱정을 좀 했다. 그때만 해도 노동자들이 여가라는 걸 즐겨본 적이 없었으니까. 실제 지역에 여가 산업이 많이 발전하지 않았었다. 심지어는 집에 일찍 가면 가족들이 어색해한다는 이야기도 나왔었다.

그러니까 이게 단순히 현장 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지역경제 전체가 현대차에 기대고 있었으니까 지역 전체가 논쟁을 했다. 완성차 업체 노동시간이 바뀌면 부품사도 노동시간을 바꿔야 한다. 그러면 식당 피크타임이 달라진다. 식재료를 공급하는 회사 스케줄도 달라진다. '이게 과연 가능해?' 하는 논쟁이 붙었었다.

▲ 현대자동차가 창사 45년 만에 처음 주간 2교대 근무를 시범 시행한 2013년 1월 7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3공장 승용차 생산라인에서 노동자들이 근무하고 있다. ⓒ연합뉴스

"주간 연속 2교대제 시행하자 거짓말처럼 돌연사가 사라졌다"

프레시안 : 주간 연속 2교대제를 도입한 실제 결과는 어땠나?

오민규 : 가능할 뿐만 아니라 만족도가 엄청났다. 노동자들한테 '월급 더 줄테니까 과거로 돌아갈래?' 그러면 '절대 안 된다', '돈 더 줘도 나는 주야 맞교대 못 돌아간다', '내가 어떻게 그 고생을 했는지 모른다'고 한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의문사, 돌연사가 사라졌다.

프레시안 : 듣고 보니 현대차에서 과로사 이야기를 들은 지 좀 된 것 같다. 지역사회 영향은 어땠나?

오민규 : 어쨌건 지역경제를 먹여 살리는 건 자동차 노동자들인데 '저 사람들 임금이 만약 줄면 먹고 살아지겠나'하는 걱정이 있었는데, 사실 임금을 많이 보전해서 그런 충격은 거의 없었다.

또 자연스럽게 심야영업, 24시간 영업을 하던 곳들이 다 영업시간을 감축했다. 그런 데서 일부 소득 저하가 있을 수 있겠지만, 지역민과 자영업자도 심야노동에서 해방됐다.

프레시안 : 추적 연구는 없겠지만, 지역사회 전체가 좀 건강해졌을 수도 있겠다. 주간 연속 2교대제 시행이 기업경영에 미친 영향은 어땠나?

오민규 : 공교롭게도 그 직전 2008~2009년이 글로벌 금융위기였다. 생산량 충격이 있었는데, 역설적이게도 노동시간 단축이 그 문제를 흡수해버렸다. 주야 맞교대 상황이었으면 억지로라도 노동시간을 단축하거나 휴업을 해야 했을텐데, 휴업 안 하고 그냥 16시간 공장 돌리면 되는 상황이 됐다.

그리고 이건 숫자놀음인데, 주야 맞교대면 주간 10시간, 야간 10시간 20시간을 기준으로 공장 가동률을 계산한다. 공장을 20시간 풀로 돌려야 가동률이 100%다. 그런데 주간 연속 2교대 시스템에서는 16시간이 100%다. 그래서 공장 가동률은 더 높아졌다.

그러면서 놀랍게도 2013년부터 2016년까지 완성차, 부품사 할 것 없이 한국 자동차 산업 전체 이윤율이 올라갔다. 자본가들은 이윤율이 높아지고, 노동자들은 만족도가 높아지고 사회적으로는 과로사가 사라졌다.

"과로사가 사라지며 줄어든 사회적 비용은 조명되지 않았다"

프레시안 : 주간 연속 2교대제 시행에 따른 사회적 이익은 잘 조명되지 않은 것 같다.

오민규 : 과로사가 만만치 않은 사회적 비용을 초래한다. 그 비용을 보통 기업이 아니라 유가족이나 근로복지공단이 책임진다. 그리고 이걸 둘러싸고 노사 갈등이 벌어지면 또 비용이 엄청나게 깨진다.

과로사가 없어지면서 그 비용이 없어졌다. 과로사가 많이 나면 사회적 쟁점이 되는데 사실 줄어든 건 쟁점이 안 되고, 뉴스에 안 나온다. 주간 연속 2교대제로 아끼고 있는 사회적 비용에 대해서도 제대로 조명할 필요가 있다.

프레시안 : 실제로 산업안전 문제는 사고가 나고 손해가 있을 때만 조명되는 것 같다.

오민규 : 비슷한 사례가 또 있다. 2016년 구의역 김군 사건이 있었다. 스크린도어를 고치던 노동자가 산재사고로 사망했다. 그 전에도 스크린도어 정비 노동자를 직접고용한 5~8호선에 비해 유독 2호선에서 사고가 많았다. 2010년 강남역, 2014년 성수역, 2016년 구의역….

왜 그랬나. 돈 아끼려고 2인 1조 해야 하는데 안 했다. 하청 노동자에게 원청업체가 직접 연락하면 불법파견 소지가 있다고 원하청 간에 열차 운행에 대한 소통도 안 했다. 산업안전에 대한 지휘체계가 일사불란하게 작동해야 하는데, 하지 않았다.

그래서 '하청 노동자를 원청이 직접고용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왔다. 보수진영이 뭐라고 했나. '정규직화가 능사냐. 비용은 누가 대냐'고 했다. 그런데 실제로는 정규직화가 다 해결했다. 놀랍게도 지난 10년 2호선에서 스크린도어 정비 중에 사고가 안 났다. 정규직 전환하고 인력 충원하면서 그렇게 됐다.

물론 거기에도 비용이 들었고 그건 뉴스에 나왔다. 그런데 구의역 사건 때까지 우리가 치른 어마어마한 사회적 비용이 감축됐다는 건 안 나온다.

▲ 스크린도어를 고치다 숨진 김군 8주기인 지난해 5월 28일 오전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 9-4 승강장에 김군을 추모하는 메모들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뒤로 숨은 플랫폼기업이 문제를 키웠다"

프레시안 : 새벽배송 이야기로 넘어가보자. 자동차 공장에서 야간노동을 없앨 때는 그렇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새벽배송 문제에 대해서는 반대 여론이 거세 보인다. 왜일까?

오민규 : 자동차 공장에서는 이를테면 링 위에서 노사가 싸움을 벌이고, 시민들은 밖에서 관객의 시선으로 문제를 본다. 그러면 시민들이 제3자적 관점에서 누가 더 맞는 말을 하고 있냐에 따라 점수를 줬다.

새벽배송은 다르다. 내가 물건을 직접 받는다. 소비자 편익이라는 관점이 들어오면서 시민들이 관전자가 아니라 선수가 됐다. 내가 자동차 공장 사장이라는 생각은 잘 안 하는데, 새벽배송에서는 자꾸 사장에게 감정이입을 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 문제가 복잡해졌다.

라이더 문제도 비슷하다. 시민들이 자꾸 라이더에게 불만을 쏟아낸다. 문제는 플랫폼기업이 일으켰는데. 말도 안 되는 기피 콜을 배정하고 위험운전을 하게 몰아갔는데, 알고리즘 뒤로 쏙 빠지고 욕은 라이더가 먹는다. 그러다 보니 산재 문제에 있어 노동자를 온정적으로 보던 시각이 바뀐 것 같다.

프레시안 : 노동자가 새벽배송을 스스로 선택했다는 시각도 강력하게 작동하는 것 같다.

오민규 : 법원은 실질을 보니까, 최근에 플랫폼 노동과 관련해 '선택으로 포장된 강요'라는 식의 표현을 쓴 판결을 많이 한다. 사용자들이 지휘·감독을 하면서도 자꾸 이상한 기술이나 꼼수 뒤에 숨어 고용관계를 감추니까 자발적 선택이라는 이야기가 자꾸 나오는 것 같다.

근본부터 따져볼 필요도 있다. 택배 노동자들이 새벽배송을 자발적으로 선택했다고 하려면, 그 사업을 스스로 개척했어야 한다. 실제로는 쿠팡이나 마켓컬리 같은 곳이 이 사업을 만들었고, 노동자들은 먹고 살려다 그리로 빨려 들어갔다. 선택이란 단어를 좀 가려써야 한다.

"노동자의 죽음, 질병 토대로 이윤 벌었다면 노동자 위해 써야"

프레시안 : 새벽배송을 포함해 야간노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적 대안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오민규 : 자동차 공장도 완벽하게 야간노동을 철폐하지 못했다. 잔업을 포함하면 새벽 1시 넘어서까지 공장이 돌아간다. 일단 사회 전체적으로 야간노동 구간을 최대한 줄이고, 야간노동자가 쉴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해줘야 한다.

다만 그러면 임금 손실이 있을 수 있다. 보전 논의도 시작해야 하다. 노동시간을 단축하면 그만큼 임금이 줄어야 정상 아니냐고 하는데, 아니다. 한 번도 그래본 적이 없다. 전액은 아니어도 임금 보전을 위한 사회적 논의나 노사 간 논의가 항상 있었다. 주 44시간제가 주 40시간제가 될 때도 법 시행 6개월 안에 임금 보전을 위한 노사 협의를 개시해야 한다는 부칙을 근로기준법에 뒀다.

프레시안 : 결국 기업이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비용을 써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는 이야기다.

오민규 : 쿠팡을 비롯한 택배사의 영업이익이 어마어마하다. 노동자의 죽음과 질병을 토대로 벌어들인 이윤이라면, 마땅히 노동자를 위해 쓰는 것이 맞다. 쿠팡이 지금까지 입을 다물고 있다는 건 정말 심각한 문제다.

특히 쿠팡은 택배노동자들이 분류노동을 하지 않게 한 사회적 합의도 따르지 않고 있다. 그것부터 이행하면서 택배노동자의 노동시간을 줄이고 야간노동을 덜 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정부도 야간노동에 대한 장기적 연구를 시작하고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

▲지난 18일 서울 서대문구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에서 열린 '제주 쿠팡 새벽배송 택배노동자 사망사건 관련 유족 및 시민사회 공동기자회견'에서 한 유가족이 '쿠팡이 책임져라'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쿠팡이 주는 편익, 플랫폼에 기대 사는 사람들을 착취하는 데서 온다"

프레시안 : 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말에 공감한다. 야간노동은 지금까지 이야기한 자동차 공장이나 새벽배송 분야의 문제만은 아니다.

오민규 : 인간이라는 게 밤에는 자고 낮에는 활동하게끔 진화한 존재다. 멜라토닌(수면 조절 기능 등을 가진 호르몬)이 분비되는 시간이 그렇다. 그걸 거스를 때 몸에 무지막지한 문제가 온다는 건 의학적 정설이다.

대리운전노조와도 여러 일을 같이 하고 있는데, 대리기사도 밤에 일하니 비타민D가 부족해 뼈와 근육이 약해진다. 또 계속 앉아서 일한다. 그러다 보니 대리기사의 근골격계 위험이 높다는 보고가 많다. 치아가 무너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제대로 치료해 주거나 심야노동에 걸맞은 건강진단을 해주는 제도는 없다. 플랫폼기업에서 일해서 그렇다.

또 야외 취객을 상대하는 게 어마어마한 감정노동인데, 야간노동까지 겹쳐 우울증을 겪는 사람도 많다. 사람이 누구든 잠을 못 자면 스트레스를 받고 화도 많아진다. 그런 상황에서 취객을 응대하며 받는 심리적 어려움이 엄청나다.

프레시안 : 끝으로, 새벽배송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적 대안을 실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오민규 : 새벽배송 문제는 21세기에 빅테크 기업을 어떻게 사회적 필요에 맞게 제대로 규제할 거냐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한국에서 쿠팡을 상대하는 건 미국에서 아마존이나 테슬라를 상대하는 것과 비슷하다.

자본이 만든 이데올로기지만, 빅테크 기업이 얼마나 멋지게 보이나. 그런 기업이 나에게 어마어마한 편익을 준다. 쿠팡이 지금처럼 할 수 있는 것도 강력한 소비자 편익 이데올로기 때문이다.

그 편익이라는 건 '이 가격에 이런 가능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서비스에서 온다. 그런 서비스가 가능한 중요한 이유는 쿠팡이 물류센터 일용직 노동자, 택배 노동자, 쿠팡이츠 라이더, 이 4대 주체를 효과적으로 착취하기 때문이다.

쿠팡이 소비자에게 돈을 버는 게 아니다. 플랫폼이 아니면 먹고 살 수 없는 사람들을 후려친다. 이 구조를 제대로 알려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지금 쿠팡에 있는 여러 노조가 힘을 칠 필요도 있다.

또 직장인 대 새벽배송 노동자 이야기가 자꾸 나오는데, 새벽배송을 못 받으면 육아나 가사노동을 못할 정도라면, 본인이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러면 저출생 해결은 불가능하다. 정말 심각하게 봐야 할 문제다.

쿠팡만 규제해 새벽배송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사회 전체의 노동시간을 감축하자는 논의가 같이 시작돼야 한다. 죽자 사자 장시간 노동하는 사람만 모여 있으면, 새벽배송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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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락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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