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의 '마법' 새벽배송, 수도꼭지 틀면 나오는 물처럼 노동자 대한다"

[새벽배송 논란, 현실과 과제] ③ 이승윤 중앙대 사회복지학 교수

야간노동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은 의학적 정설이다. 야간노동 규제는 국제적 대세다. 한국으로 눈을 돌리면, 산업안전의 중요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거의 이뤄진 듯 보였다. 그러나 최근 새벽배송 논란이 그 합의가 어떤 영역에서는 단단하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 균열은 왜 생겼을까. 모두가 안전한 일터를 만드는 데 있어 우리가 놓친 것은 무엇이며,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그 실마리를 찾기 위해 <프레시안>은 전문가와 활동가들에게 새벽배송 논란을 지켜보며 한 생각을 물으려 한다. 편집자

이승윤 중앙대 사회복지학 교수는 새벽배송 문제를 오래 들여다 본 연구자다. 올해도 쿠팡의 로켓배송을 소재로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한 노동통제와 사용자 책임 은폐 매커니즘을 다룬 공저 논문을 발표했다. 저서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에서도 새벽배송은 한 장을 차지한다.

새벽배송에 대한 이 교수의 관심은 독일 베를린 체류 당시의 경험과 귀국 후 마주한 한국의 현실을 대비하며 시작됐다. 독일에도 편리한 배송 서비스가 있었지만, 한국과 같은 새벽배송은 상상도 하기 힘든 '마법' 같은 일이었다. 그 뒤에서 노동자들은 어떻게 일하고 있을까. 그가 새벽배송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이유다.

연구를 수행하며 이 교수는 새벽배송 기사들이 처한 현실을 나타내기 위해 '액화노동'이라는 개념을 고안했다. 수도꼭지를 틀면 나오고 잠그면 멈추는 물처럼, 기업이 노동자를 독립 계약자, 긱 노동자(일회성·초단기 업무 노동자)와 같은 불안정한 지위에 묶어둔 채 필요할 때만 쓰고 책임은 지지 않는 현실을 나타낸 말이었다.

모성보호 등 야간노동에 대한 최소한의 근로기준법적 보호장치도 독립 계약자인 새벽배송 기사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그 속에서 새벽배송 기사들은 우울증, 수면장애, 사고 위험 등에 시달리며 고강도 노동을 수행하고 있었다.

이 교수는 한국사회에 소비자의 권리가 누군가의 생명보다 우선할 수 없다는 합의에 이르고 야간노동에 대한 규제를 만들 수 있는 힘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노동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것이라며, 이는 나와 내 가족, 동료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점을 아울러 짚었다.

아래는 지난 20일 서울 동작 중앙대 연구실에서 이 교수와 한 인터뷰를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 이승윤 중앙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프레시안(최용락)

프레시안 : 새벽배송 문제에 관심을 갖고 지속적인 저술 작업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

이승윤 : 불안정 노동 연구를 계속해 왔다. 특히 변화하는 노동과 기존 제도가 부정합해 생긴 간극에 놓인 분들이 경험하는 불안정성에 관심이 많았다. 사회복지 연구자로서 그걸 이해해야 사회보장 등과 관련한 제도 개혁 원칙을 세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독일 베를린에 교환 교수로 체류하게 됐다. 그때도 식료품, 신선제품 등의 배달 서비스를 매우 편리하게 이용했지만, 당일배송 선택지는 아예 없었다. 오늘 오전에 주문하면 다음날 오후 뒤로 배송시간을 선택할 수 있게 돼 있었다. 기본값으로 설정된 시간에 물건을 받으면 무료배송이고, 더 빨리 받으면 추가 요금을 냈던 걸로 기억한다.

2020년에 중앙대로 이직하며 한국에 돌아왔다. 아파트 입구에서 '자기 전에 주문하면 아침에 도착한다'는 배송광고를 봤다. 믿을 수가 없어서 한 번 해봤다. 식구들끼리 '정말 내일 아침에 물건이 오면 마법 같은 일'이라는 이야기도 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물건이 와 있었다.

에어캡과 보냉팩을 활용한 완벽한 포장도 인상적이었다. 독일에서는 쇼핑백에 물건을 담아 배송하는 정도였다. '상품 보호는 완벽하게 하는데 노동자 보호도 그럴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국에서 한 첫 연구주제를 새벽배송으로 잡고 이후로도 팀을 꾸려 추적 연구를 했다.

"쿠팡, 노동자를 수도꼭지 틀면 나오는 물처럼 대한다"

프레시안 : 연구 과정에서 본 새벽배송 기사의 특성은 어땠나.

이승윤 : 대부분 새벽배송이 주업이었는데, 불안정성이 상당히 중첩돼 나타났다. 표준적 고용형태에서 벗어나 회색지대에 놓인 노동자들이 겪는 극단적 불안정성을 표현하기 위해 '액화노동'이라는 개념을 고안했다.

종사상 지위로 보면, 독립계약자나 긱 노동자가 많았다. 독립계약자인 이들은 자영업자와 노동자의 중간지대에 있었다. 주유비 등 업무에 필요한 돈은 자기가 내는데, 지위나 비용부담에 걸맞은 업무 자율성은 없었다. 설문에서 74.3%가 작업 내용을 바꿀 수 없다고 했다. 64%는 작업순서조차 바꿀 수 없다고 했다. 임금노동자와 비슷한 수준이다. 사실상 지휘·감독을 받는다고 볼 수 있는 결과였다.

종사상 지위가 야간노동의 위험도 가중시킨다. 근로기준법에 그나마 있는 모성보호 등 야간노동에 대한 규제가 독립계약자인 새벽배송 기사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산재보험, 고용보험 등 다른 사회안전망을 적용받기까지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고, 여전히 가입률이 전체 평균의 3분의 2 수준이다.

지휘·감독은 알고리즘을 통해 이뤄졌다. 알고리즘으로 노동시간, 일 양, 속도, 순서 등이 영향받냐는 질문에 대해 '그렇다'는 답의 비율이 유럽의 조사와 비교해 압도적으로 높았다. 알고리즘 통제의 핵심은 사용자 은폐다. 형식적으로는 독립계약자고 사용자도 알고리즘 뒤에 숨어 있으니, 노동강도가 높아져도 자발적 선택에 따른 것이라는 느끼는 착시현상이 나타난다.

요컨대, 종사상지위, 보호 부재, 알고리즘 통제라는 세 요소가 중첩돼 기사들의 불안정성을 높이고 있었다. 쿠팡이 수도꼭지를 틀면 나오고 잠그면 멈추는 물처럼 노동을 다룬다는 생각도 했다. 그속에서 노동자들은 예측가능성, 안정적 소득, 휴식 등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었다.

프레시안 : 연구에서 확인한 새벽배송 기사의 노동강도나 건강 위험은 어땠나?

이승윤 : 택배 과로사 대책위 연구를 보면, 주 평균 노동시간은 64.6시간이었고, 일 평균 배송 건수는 77건이었다. 31.4%는 주 6일 근무했다.

우리 연구에서는 세 명 중 한 명 정도가 교통사고가 날 뻔한 경험을 했다고 답했다. 상당히 위험한 노동을 하고 있었던 거다. 20.7%는 새벽배송을 마치고 곧바로 다른 일터로 출근한다고 했다.

정신적 위험신호도 있었다. 일반 노동자 대비 수면장애가 3.3~3.9배, 우울증이 3배 이상, 자살생각은 6.7배 높았다. 야간노동이 생체리듬 교란은 물론 사회적 관계 단절로도 이어지기 때문이다. 가족이나 친구들의 생활시간과 자신의 생활시간이 달라 고립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고, 잠을 자다 가족들이 왔다 갔다 하면 깬다는 사람도 꽤 됐다.

▲지난 19일 국회 소통관에서 제주 쿠팡 새벽배송 택배기사 사망 사고 유가족이 기자회견을 하며 쿠팡 측의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야간노동, 국제적으로는 규제가 원칙…한국도 달라질 것"

프레시안 : 독일에서 생활할 때는 새벽배송 같은 서비스는 상상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왜 그런 차이가 날까?

이승윤 : 야간노동 규제가 이미 상당히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선 규제'가 있으면, 기업은 사업을 확장하기 전에 그에 따른 비용을 떠올리게 된다.

국제노동기구(ILO) 171호 '야간노동에 관한 협약'도 야간노동을 0~5시를 포함해 7시간 일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그 위험성을 지적한다. 이에 따라 휴식권 보장, 연속 야간노동 제한, 무상 건강검진권 보장 등 조치를 해야 한다고 적혀 있다. 그러려면 비용이 든다.

한국에는 야간노동에 대한 규제가 거의 없다. 그 규제마저 비켜나갈 수 있는, 모호한 고용관계에 놓인 사람도 많다. 쿠팡이 그런 사람들을 활용해 새벽배송을 확대한 것 같다. '후 규제' 방식으로 이를 해결하려니 어렵다. 소비자도, 이익집단도 늘었다.

프레시안 : 실제 새벽배송 규제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얼마 전 페이스북에서 '택배노동자의 과로를 고려할 때 새벽배송의 필요성'을 묻는 말에 65.8%가 '불필요하다'고 답한 택배과로사대책위원회의 지난해 10월 여론조사를 인용했다. 이 간극은 어떻게 해석하나?

이승윤 : 설문조사를 할 때 '노동자의 과로를 유발하는 서비스를 이용하겠나'라고 묻는 것과 그냥 '새벽배송, 빠른배송이 좋나'라고 묻는 게 다르다. 질문을 하기 전 과로를 언급하는 건 그에 대한 숙의와 판단을 요청하는 거다.

나는 시민들이 소비자의 권리가 노동자의 생명에 우선한다고 생각할 만큼 우리 시민사회가 후퇴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새벽배송 노동자가 어떤 위험에 노출됐는지가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다. 해외에도 사례가 거의 없어 축적된 연구도 없다. 그래서 반대 여론이 더 강해 보인 것 같다.

프레시안 : 왜 새벽배송만 규제하느냐는 여론도 있다.

이승윤 : 잘 드러나지 않았을 뿐 한 업종에서 이렇게 많은 산재사고가 일어나는 건 정말 특이한 상황이다. 물류, 택배를 합쳐 코로나19 이후로 쿠팡에서만 20명이 넘는 과로사 의심 사례가 있었다. 그러면 그에 맞는 특수한 기준을 만들기 위한 논의를 해야 한다.

왜 다른 데 놔두고 새벽배송만 문제 삼느냐고 묻는다면, 다른 데가 문제라면 거기에도 개입하자고 답하고 싶다. 다른 업종에서도 단기간에 이렇게 많은 산재가 일어나면, 당연히 개입해야 한다.

프레시안 : 지금도 산재가 빈발하는 건설업이나 작은 사업장에 대해서는 특수한 산재대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데에는 논란이 없다.

이승윤 : 그렇다. 새벽배송의 위험성도 더 널리 알려야 한다. 새벽배송의 위험에 대해 인식하면 시민들도 다른 판단을 할 거라고 믿는다. 그래도 시민들이 새벽배송을 원할 거라고 말하는 건 솔직히 시민들을 너무 무시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워킹맘 대 새벽배송 기사' 식의 대립구도를 만들거나, 2000만 명의 소비자가 피해를 본다는 식으로 말하는 건 정확하지도 않고 발전적 논의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는 지금 한국사회가 새벽배송 논의를 통해 야간노동에 대한 새로운 사회적 기준을 만들려는 논의 중에 있다고 생각하다. 내 권리가 누군가의 생명만큼 중요하지 않다는 데 대한 합의가 이뤄지고 시민들이 비용을 더 지불할 의사를 밝히면, 기업은 그에 따른 선택지를 만들어야 한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기업의 책임이다. 지금은 고강도, 고위험으로 일할 수 밖에 없는 구조를 놔둔 채 노동자와 소비자의 선택이 낳은 결과라는 논의 속에서 가장 중요한 주체인 기업은 빠져있다. 이런 식으로 논의가 앞으로 나가야 한다.

"야간노동 규제 만들고, 노동자 오분류 문제 바로잡아야"

프레시안 : 새벽배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정책적 대안이 필요할까?

이승윤 : 먼저 야간노동 일반에 대해 말하면, 한시라도 빨리 ILO 야간노동 협약을 비준해야 한다.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국제사회가 수많은 논의를 거쳐 만든 협약을 한국사회도 무겁고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 토대 위에서 0~5시를 포함한 7시간 이상의 야간노동은 최소한의 필수성이 있는 곳에만 허용해야 한다. 병원, 소방서, 경찰처럼 공익적 목적이 있는 곳이 대표적이다. 또 산업 구조상 야간에도 연속작업이 필요한 곳이 있다. 그런 업종도 한번 살펴봐야 한다.

야간노동이 꼭 필요한 경우에도 교대제를 시행한다든지, 최소한의 휴식시간과 건강검진을 도입하되 소득 감소로 이어지지 않게 하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

프레시안 : 새벽배송 기사들을 위한 특별한 조치도 필요할까.

이승윤 : 결국 노동자 오분류 문제를 바로잡아야 한다. 지금처럼 택배기사들이 독립 계약자 신분으로 배달 건수에 따라 돈을 벌면, 휴식시간을 부여해도 실제로는 못 쉴 수 있다. 특수건강검진도 마찬가지다. 검진을 받는 시간만큼 일을 못해 소득이 감소하는 상황이라면 안 받을 수도 있다.

노동자처럼 일하면 노동자로 인정하고 그에 맞는 법 제도를 적용해야 한다. 예컨대, 임금노동자는 적어도 근로기준법에 따라 휴게시간을 부여받고, 소득감소 없이 건강검진을 받는다.

프레시안 : 그런 일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승윤 : 사회를 유지하고, 개개인이 삶을 영위하는 데 있어 보이지는 않지만 상당히 촘촘하게 노동자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걸 우리가 계속 환기하고, 인지하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그들을 위해 어떤 기준을 만들지도 이야기할 수 있다.

노동자끼리 혹은 기업과 정부가 알아서 하라고 하지 말고, 시민 모두가 책임감을 갖고 그런 논의에 참여했으면 좋겠다. 물건을 시키면 마법처럼 문 앞에 와 있지만, 그 뒤에는 분명 보이지 않는 노동자가 있다. 그건 나일 수도, 내 자식이나 동료일 수도 있다.

▲ 서울 시내 쿠팡 차고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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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락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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