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어르신돌봄종사자 종합지원센터'와 '권역별 지원센터' 는 7월 1일 요양보호사의 날을 맞아 상호 존중받는 돌봄 노동의 필요성을 알리고 좋은돌봄 사례를 발굴해 '돌봄'과 '돌보는 이'의 가치를 확산하고자 매년 돌봄사례 공모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올해도 <돌봄의 마음을 적다>라는 주제로 '2025년 장기요양 돌봄사례 공모전'을 진행했고 <프레시안>을 통해 수상작을 소개드리고자 합니다. 편집자
안녕하세요, 선생님. 이 편지를 쓰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속에 머물던 감사의 말은 단 한 순간도 흐려진 적이 없습니다. '돌봄'이란 단어가 단지 몸을 보살피는 일이 아니라 마음까지 어루만지는 일이라는 걸 저는 할머니께서 요양원에 입원하시고 나서야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 곁을 지켜주신 요양보호사 선생님 덕분에 저는 '돌봄'이라는 말 속에 담긴 깊은 온기를 비로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게 할머니는 단순한 가족 그 이상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바쁘신 부모님을 대신해 저를 품에 안아주시고, 매일 따뜻한 밥을 지어 먹이시며 저를 키워주셨습니다. 항상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시고, 처음 보는 음식도 손녀를 위해 익혀가며 학교 앞 문방구에서 피카츄 돈까스를 사주시던 분, 세상의 다정함과 온기를 가장 먼저 가르쳐주신 분이 바로 할머니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자라면서 그 사랑을 어떻게 되돌려드려야 할지 몰라 망설이기만 했습니다. '아직 시간은 많겠지'라는 안일한 생각 속에 늘 말과 마음을 아꼈고, 그 자만은 끝없는 후회로 되돌아왔습니다.
어느 날, 할머니는 밤중에 화장실을 가시다 넘어지셨고 병원에 입원하게 되셨습니다. 증세가 악화되면서 요양병원으로 옮기셨고, 코로나 시국으로 인해 마음대로 면회조차 할 수 없는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본 할머니의 얼굴은 제 기억 속 다정하고 온화한 모습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치매로 인한 섬망 증상으로 갑자기 화를 내시기도 하고, 말씀이 흐트러지며, 기억이 뒤섞인 채 저를 알아보지 못하실 때도 많았습니다.
예전 같지 않은 모습의 할머니를 마주하는 건 어린 보호자였던 저에게 큰 혼란이었습니다. 마치 다른 사람처럼 느껴져 가까이 다가가기도 어려운 날이 많았습니다. 그런 할머니를 선생님께서는 마치 오래 알고 지내온 딸인 양 따뜻하게 안아주셨습니다.
때로는 아이를 달래듯 손을 꼭 쥐어주시고, 때로는 친구처럼 눈을 맞추며 이야기를 나누어 주셨습니다. 화가 나신 할머니에게 미간 하나 찌푸리지 않으시고, "우리 공주님, 오늘은 기분이 조금 안 좋으셨나 봐요" 하고 다정하게 말씀해주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할머니는 평생 누군가를 위해 살아오신 분이었습니다. 가족을 위한 식탁을 차리고, 설거지통 앞에서 하루를 마무리하며, 뒷바라지와 고생뿐인 삶을 살아오셨습니다. 그런 할머니가 누군가의 정성 어린 보살핌 속에서 식사를 드시고, 흘리며 먹어도 다정하게 닦아주시며 "오늘은 잘 드셔서 다행이에요. 꼭꼭 씹어 드셔야 해요."라고 이야기해주시는 모습을 보며, 저는 처음으로 돌봄을 받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게 됐습니다.
고생만 하셨던 삶의 끝자락에서, 누군가의 손길 속에 편히 누워 계신 모습, 불편한 감정을 대신 풀어내 주는 손길, 세상에서 제일 귀한 공주처럼 존중받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제 마음 깊은 곳에도 설명하기 안도감이 스며들었습니다.
그 시절의 저는 너무 어리고 막막해서 아무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선생님은 저보다 더 따뜻하고 단단하게 할머니 곁을 지켜주셨습니다. 할머니께서 삶의 마지막을 그렇게 따뜻하게 보내실 수 있었던 건 선생님 덕분입니다. 흩어진 기억들과 낯선 병원 침대, 짧기만 했던 면회 시간, 제 마음만 앞섰던 그 짧은 만남들 속에서 할머니의 마음이 조금은 덜 외로우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선생님께서 해주신 돌봄은 단순한 직무 그 이상이었습니다. 그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가는 온기였고, 무너진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이었으며, 남은 가족이 안심할 수 있도록 내미는 따뜻한 손길이었습니다.
그때 다 전하지 못했던 마음을 이제야 이렇게 전합니다. 우리 할머니의 마지막 시간을 그렇게 따뜻하게 채워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고생만 하셨던 분을 공주님처럼, 어린아이처럼 예쁘게 대해주시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제 마음까지 함께 어루만져주셔서 감사합니다.
돌봄은 단지 생을 유지하는 일이 아니라, 삶의 마지막을 지켜주는 소중한 일이자, 남겨진 이들의 마음까지도 다독여주는 깊고 숭고한 일임을 선생님을 통해 배웠습니다. 그 소중한 역할을 묵묵히 해내는 요양보호사님들의 노고가, 우리 사회에서 더 많이 존중받고, 더 환하게 빛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2025년 여름
고맙고 또 고마운 마음을 담아
할머니 손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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