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창일 전 주일대사 "한·일 관계, 대한민국이 균형자 역할해야"

한·일평화포럼 정기 토론회서 "국제 정세 대응 위해 한·일 간 협력 반드시 필요"

강창일 전 주일대사가 급변하는 동아시아 정세와 한·일 관계 회복을 위해 대한민국이 균형자이자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강창일 전 주일 대사가 한·일평화포럼 정기 토론회에서 기조연성을 하고 있다.ⓒ프레시안

강 전 대사는 지난 3일 국회의원 회관에서 열린 한·일평화포럼 정기 토론회 '다카이치 사나에 내각시대의 대일정책' 기조발언에서 급변하는 국제 정세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한·일 간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국제사회는 지난 9월 3일 중국 전승절 열병식에 중국·러시아·북한 등 3국 정상이 함께 모습을 드러내며 반미 연대를 과시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열병식은 베이징의 천안문(천안문광장)과 장안가(장안가) 일대에서 진행됐으며, 중국 인민해방군(인민해방군) 병력과 여러 신무기가 공개됐다

한·미·일 3국은 전승절 열병식에 즉각 반발해 같은 달 15일부터 5일간 제주도 남부 해역 인근에서 대규모 연합 훈련으로 대응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과 중국·러시아의 군사활동 증가에 대응하기 위한 공동 준비태세의 일환이다. 동아시아 패권을 놓고 벌어지는 열강의 움직임은 단순한 위력 과시용이 아니라, 미국 중심의 자유주의 질서에 맞서는 신냉전의 징후로 평가된다. 실제 군사적 대응 역량이 과시되는 상황에서 복잡하게 얽힌 한·일 간 협력은 그 어느 때 보다 중요해졌다.

강 전 대사는 최근 심상찮은 동아시아 정세에 대해 "급부상하고 있는 동아시아의 신냉전체제를 거부하고, 한반도의 평화 체제 구축에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전 대사는 "북·중·러 3국은 느슨하지만 전략적 공조체제를 형성하고 있다"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방의 제재로 외교적으로 고립되며, 북한과의 군사 협력이 강화됐다"고 지적했다. 특히 "북한은 무기 공급과 기술 지원을 통해 러시아의 전쟁 수행을 도왔다"면서 "중국은 이러한 공조를 통해 미국과의 대립 구도 속에서 동방 진영의 영향력 확대를 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1950년대 이후 중국과 북한의 관계는 김일성의 연안파 숙청(1958), 김정남 암살 사건(2013), 장성택 숙청(동년) 등 굵직한 사건으로 인해 양국 간 불신이 양극단으로 치달았다. 그러나 최근 미국의 대중 관세전쟁과 대북 압박 정책으로 이들의 불신은 전략적 협력 관계를 회복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게다가 중국은 최근 미국과 대등한 G2로 부상하며, 자유무역의 수호자인 '팍스 시니카(Pax Sinica)'라는 새로운 국제질서의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강 전 대사는 "과거 보호무역과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웠던 '팍스 아메리카나'의 보편적 질서는 사실상 종결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같은 구조 변화는 동아시아 각국에 새로운 외교 전략과 안보 재편을 요구하고 있다"며 "한·미·일 3국은 자유민주주의, 인권, 시장경제라는 공통의 가치 위에, 북·중·러의 반미 연대가 강화될수록 가치 동맹(value alliance)을 통해 협력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일평화포럼 정기 토론회 '다카이치 사나에 내각시대의 대일정책'ⓒ프레시안

특히 "경제적으로는 첨단 기술·에너지 안보·공급망 안정성 강화, 안보적으로는 미사일 방어체계와 정보공유 체계의 통합이 핵심"이라며 "한국은 과거와 달리 더 이상 약소국이 아니라, 분단의 아픔을 극복한 후 정치·경제·기술·문화 영역에서 글로벌 중추국(middle power)으로 성장했고, 한국과 일본은 과거의 비대칭적 관계를 벗어나 수평적 파트너십을 논의할 수 있는 시대에 들어섰다"고 덧붙였다.

그는 일본의 정치 변화와 한·일 관계는 항상 '변수'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전대사는 "지난 9월 일본 자민당은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상을 총재로 선출해 우익 정당 유신회와 연립정권을 구성했다"며 "다카이치는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정치적 후예로 불리며, 강경 보수 노선의 상징적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그의 과거 발언과 행보에 대해 "야스쿠니 신사 참배, 독도(다케시마) 관련 입장 등은 한·일 관계를 악화시킬 수 있지만, 최근 다카이치 총리는 온건 보수를 표방하며 실용적 노선으로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다카이치 총리의 변화된 모습은 지난 10월 열린 APEC 한·일 정상회담에서도 드러났다.

강 전 대사는 "양국 정상은 중요한 이웃으로서 미래지향적 관계 구축에 공감했고, 외교 복원의 투트랙 전략 즉, 과거사 문제와 실질 협력의 분리를 채택했다"며 "이는 한·일 관계가 다시 협력의 궤도로 복귀하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한·일 양국은 이미 상호 보완적 산업 구조와 문화적 공감대를 가지고 있다"며 "한국은 한·미·일의 자유주의 진영과 북·중·러의 권위주의 진영 사이에서 균형자 역할을 수행할 잠재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이 세계 전략의 중심으로 구체화되어야 한다는 점도 부각했다. 구체적인 전략으로 ▷미·일과의 전략적 공조 강화 ▷중·러와의 실용적 연대 유지 ▷북한과의 평화적 공존 등을 제시했다.

강 전 대사는 이 전략적 균형은 "단순한 외교술이 아니라, 급변하는 다극 체제 속에서 한국이 취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생존전략"이라며 "일본의 정밀함과 한국의 진취성, 양국의 기술력과 시장력이 결합된다면 동아시아를 넘어 세계 경제의 새로운 중심축으로 부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과거의 상처를 되풀이할 때가 아니라, 글로벌 시민으로서의 공동 책임의식과 협력의 실천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현재는 사회주의 국가와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대결처럼 보이지만 다양하게 이해관계가 얽혀있고, 이 속에서 한·일 양국의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한 상황이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한일평화포럼 정기토론회는 한·일평화포럼과 박지원 의원실, 이학영 의원실, 김영배 의원실이 주최하고, 한일평화포럼이 주관했다. 이수훈 전 주일대사, 오태규 전 오사카 총영사와 더불어민주당 박지원·김영배·이병진 의원, 오승희(국림외교원)·김현철(서울대)·김기정(연세대)·양기호(성공외대)·채희원(중부대) 교수, 이신철 한일평화포럼 운영위원장, 유길종 더불어민주당 정책위 부의장, 박종수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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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창민

제주취재본부 현창민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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