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교육계 워치독' 박고형준 "시민운동은 외로운 길…문제 제기하면 모두에게 적"

창립 16주년 맞은 '학벌없는 사회를 위한 시민모임' 이끄는 상임활동가

'학벌없는 사회를 위한 시민모임'. 다소 낯설고 긴 이름의 이 시민단체는 광주광역시교육청에게는 저승사자와 같은 존재다. 매번 날카로운 비평과 견제로 교육청 공무원들의 간담을 서늘케한다.

올해로 창립 16주년을 맞은 '학벌없는 사회를 위한 시민모임'은 광주교육청 인근인 광주 서구 화정동의 한 주택가 2층에 자리한다.

이 작은 사무실에서 상임활동가 박고형준씨가 광주 교육계를 날카롭게 지켜보고 있다.

지난 9월 30일 가파른 계단 끝에서 마주한 시민모임 사무실은 분주했다. 마침 그는 대전 국가정보관리원 화재로 전산망이 마비돼 불법 종교계 대안학교 고발장을 우편으로 부치려던 참이었다. 오랜 세월 한자리를 지켜온 그는 이곳에서 시민운동가로서의 삶과 단체의 활동에 대해 진솔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30일 광주 서구 화정동 시교육청 인근 주택가 2층 학벌없는 사회를 위한 시민모임 사무실에서만난 박고형준 상임활동가.2025.09.30ⓒ프레시안(김보현)

Q. '학벌없는 사회를 위한 시민모임' 활동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고등학생 때인 2000년 중·고등학생연합 광주지부 멤버로 활동하면서 두발자유, 대학평준화를 외치며 학생운동을 했다. 고3 수능날에 수험장 대신 교육청 앞에서 '대학평준화' 팻말을 들고 1인 시위를 했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직접 겪지는 않았지만 학력·출신학교에 따른 차별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학생인권에 관심 있던 몇몇이 모여 동아리처럼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후원금이 모이고 규모가 갖춰지면서 2009년 공식 출범하게 됐다. 그때 제가 직원화 되면서 지금의 자리에 오게 됐다.

Q. 단체는 어떻게 구성돼 있나?

기성의 조직의 룰을 따라가기보다 구성원들이 책임의식을 갖고 공동의 책임을 통해 조직을 운영해 나가자는 생각에 '살림'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 살림위원 회원수가 500여명 된다.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총회에 참석해 활동하게 되고 대의제 기구로 살림위원회가 있다.

Q .초기와 비교했을 때 조직 역량이나 활동 범위에서의 변화가 있다면?

시민운동의 형태가 바뀌어 왔다. 기존에는 단체 이름처럼 학벌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학력이나 출신학교 차별 문제 해결하기 위해 사안 중심으로 문제를 제기해왔다. 지금은 종합선물세트처럼 시민들 인식개선을 위한 교육사업, 출신학교 차별에 대응, 교육행정 감시 이런 3가지 틀 속에서 일을 한다.

▲30일 광주 서구 화정동 주택가에 자리한 학벌없는 사회를 위한 시민모임 사무실에서 박고형준 상임활동가가 단체의 활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2025.09.30ⓒ프레시안(김보현)

Q. 광주 교육현장의 부조리에 맞서 싸워 왔는데 활동 방식이 남다른 것 같다.

초기에는 학벌 문제 해소를 위한 강연이나 캠페인 등 거시 담론에 집중했다. 하지만 공교육 정상화라는 목표를 이루려면 우리 지역 교육 행정부터 제대로 감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광주시교육청의 정책과 사업을 면밀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단순한 문제 제기에 그치지 않고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근거 자료를 확보하고 안 되면 국가인권위나 헌법기관에 문제제기를 하는 방식으로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고자 했다.

Q. 활동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시민운동은 외로운 길이다. 피아식별이 없다. 문제제기를 하다 보면 어제의 동지나 친한 친구, 서로 형·동생 하던 이가 오늘의 '적'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같은 사안을 두고 관계에 따라 다르게 대응할 수는 없다. 시민운동은 공정하고 정직해야 하고 양심에 따라야 한다. 누구보다 높은 순도의 도덕성이 요구되는 직업이기에 늘 조심스럽다.

Q. 개인의 삶과 활동가로서의 삶, 균형을 맞추기 쉽지 않을 것 같다.

일과 가정은 철저히 분리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저녁과 주말에는 활동가가 아닌 '자연인 박고형준'으로 돌아간다. 술 마시고 집안 살림도 하고 아이도 챙긴다. 이 일 자체가 여러 감정을 불러일으키지만 그런 감정들을 일상까지 끌고 오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학벌없는 사회를 위한 시민모임 사무실에 걸려 있는 시민모임 티셔츠에 그간의 활동들이 함께 프린팅 돼 있다.2025.09.30ⓒ프레시안(김보현)

Q. 시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시민운동에 대한 관심과 후원을 부탁드린다. 사회가 민주화되고 행정이 거대화될수록 그 행정이 제대로 운영되는지 감시하는 시민운동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진다. 세월호 참사 당시 유가족들이 직접 시민운동가의 역할을 해야 했던 아픈 기억이 있다. 우리 사회에 건강한 시민운동 집단이 더 많았다면 참사의 원인을 더 빨리 규명하고 유가족들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릴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시민들이 더 많이 참여하고 관심을 가져주시는 것이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가장 큰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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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현

광주전남취재본부 김보현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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