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뒤에 남겨두지 않으려면 '시선의 폭력'을 거두라

[프레시안 books] <장애학의 시선>

약자를 향한 내 사회적 관대함의 시험대, 내가 조금 양보한 이익과 편리를 뿌듯함으로 교환하는 대상. 장애인에 관한 비장애인의 선의는 마땅히 이렇게 발현되는 거라고 무의식이 말한다.

장애인단체의 지하철 시위를 너그럽게 용인하는 언론 프레임도 대체로 그 언저리다. 장애 이슈를 섹스와 젠더, 기후위기, 노동의 문제와 결부해 논하자면 여간 골치 아픈 게 아니다.

'장애학'은 배려해야 할 타자로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을 걷어내고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지우려는 실천적, 학문적 분투다. 나아가 "장애는 사회 일반의 문제에 부차적으로 덧붙여진 문제가 아닌, 인간사회의 모순과 차별을 온전히 해명하는 하나의 열쇠"가 된다. <장애학의 시선>(김도현 지음. 오월의봄 펴냄). 지향에 공감하더라도, 장애학은 여전히 낯설다.

장애학에선 '서 있는' 지점을 뜻하는 '스탠드포인트(standpoint)' 대신 휠체어에 '앉아 있는' 존재의 관점을 부각하고자 '싯포인트(sitpoint)'라는 조어를 사용한다고 한다. 저자는 '시선(施善. 자선을 베풂)'의 폭력을 장애인의 '시선(視線. 싯포인트)'에서 논파한다.

▲ <장애학의 시선> ⓒ오월의봄

"손상은 손상일 뿐이다. 특정한 관계 속에서만 손상은 장애가 된다." 장애 혐오를 혐오하는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시선을 더 낮추기 위한 첫 관문은 장애인들의 존재를 감각하고 대등한 관계를 수긍하는 것이다. 신체적 손상이 있는 사람들을 장애인으로 구별하고 이들을 주류 사회활동에서 배제하고 격리하는 것은 바로 사회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차이(남성/여성, 손상/정상)가 차별을 낳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차이를 만들어내고, 장애인이기 때문에 차별받는 것이 아니라 차별받기 때문에 장애인이 된다." 하기에 이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한 출발점은 차별금지법 제정, 즉 차별하는 주체와 차별받는 주체의 관계를 해체하는 것이다.

장애인은 사회구성원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존재로 재현돼 혐오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언론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정신질환자 범죄', '조현병 범죄'라는 표현이 그렇다. 실제로는 비장애인 범죄율이 월등히 높은데도 정진질환자들의 격리와 배제를 정당화하는 메커니즘이다.

특히 장애인을 배제하는 견고한 아성은 노동이다. 동서고금의 장애사(史)를 고찰한 저자는 '장애인'이라는 개념이 "근대사회의 전환기에 자본주의적 노동 체제에서 배제당한 '불인정 노동자' 계층을 가리키기 위해 발명된 것"이라고 한다. 장애 개념의 핵심은 노동 문제이며, 능력주의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자본주의적 노동 체제에서 배제당한 사람들이 보내졌던 별도의 시설이 장애인 시설의 기원"이라고 한다. 따라서 격리와 배제의 원형인 장애인 시설이 정책적으로, 현실적으로 기능하는 한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가 무너질 수 없다. 그러나 탈시설의 디딤돌인 우리의 장애인 복지 지출은 GDP 대비 0.71%에 불과해 OECD 평균(1.98%)에 크게 못 미치고 자본주의를 주도하는 미국(0.98%)보다도 낮다.

'기본소득' 실현이 장애인 노동 문제의 출구가 될까? 저자는 회의적이다.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동일한 금액을 지급하는 기본소득 제도의 원칙과 경직성 때문에 노동시장에 이미 편제된 이들에게는 이득일지 몰라도, 원천적으로 노동에서 배제된 장애인들에게는 유의미한 소득 재분배 효과를 내기 어렵다는 이유다.

저자는 "노동은 시민의 권리이므로 공공 영역에서 보장돼야 한다"며 장애인운동 진영이 제기하는 '공공시민노동' 운동에 적극적이다. 재분배 영역인 기본소득을 넘어 노동의 재구조화가 이뤄져야 장애인이 '불인정 노동자'라는 역사적 굴레를 벗는다는 것이다.

책의 부제는 'Leave no one behind(누구도 뒤에 남겨두지 않아야 한다)'다. '누구도 뒤에 남겨지지 않는다(No one left behind)'보다 적극적으로 '가장 뒤에 있는 이들'에게 기준을 맞추라는, 공동체를 향한 활동가이자 학자의 호소다.

차별금지법은커녕 장애인 이동권 문제조차 답보하는 상태라 전환이 쉽지는 않겠다. 장애인 시설 철폐와 만인을 위한 노동사회 구축을 염원하는 저자 역시 기존 질서와 토대가 한 방에 무너질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다른 세상은 끊임없는 저항 속에 '차별의 재생산이 조금씩 실패하면서' 온다"는, 그의 '싯포인트 분투'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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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구

2001년에 입사한 첫 직장 프레시안에 뼈를 묻는 중입니다. 국회와 청와대를 전전하며 정치팀을 주로 담당했습니다. 잠시 편집국장도 했습니다. 2015년 협동조합팀에서 일했고 현재 국제한반도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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