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포항 지진과 관련해 국가 배상 책임을 인정한 1심 판단이 항소심에서 뒤집혔다. 지진이 국가의 지열발전 사업으로 촉발되었다고 하더라도 관계기관의 고의·과실이 없다는 취지다.
지난 5월 13일 대구고법 민사1부(정용달 부장판사)는 지진이 촉발 지진에 해당하나 유발 지진과 차이가 있다고 봤다. <사이언스>는 지진의 원인이 지열발전을 위한 시추·물 주입으로 분석된다는 논문 2편을 실었다. 한국 연구팀은 포항 지진에 프로리치 진단법을 적용해 물 주입과 지진 시간, 주입정과 진앙 거리, 주입정과 진원 깊이, 주입정과 단층 위치의 일치를 확인해 유발 지진임을 입증했다.
재판부는 정부가 고도의 기술을 가진 사업단의 재량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관리할 수밖에 없다며 지진을 사전에 예측·통제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는 점을 고려했다. 아시아 최초로 심부 지열발전 방식을 채택한 포항 지열발전소는 지열발전 건설 기술 수준이 낮았고 안전 관리도 부재했다.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은 포항 지진이 정량적으로 예측 가능한 지진임을 밝혀낸 논문을 게재했다.
재판부는 부지 선정 과정에도 위법이 없다고 했다. PX-2 시추 중 지하 3800m 지점에서 이수(泥水)가 집중 유실됐고 단층비지대(단층 활동 결과로 암석 등이 부서져 생긴 점토)도 확인됐다. 원마도가 좋은 암편이 발견되고 지하 4200m 지점에서 추가 이수 누출이 발생하는 등 단층 활동이 있다는 증거가 여러 개 나왔지만 사업단은 비용 문제를 들어 지진 위험성 검토를 생략했다.
재판부는 수리자극 과정에서 주입된 물의 양이 외국의 지열발전에서 주입된 양보다 현저히 적고 지열발전으로 인한 미소지진이 맥가르 이론 범위에 부합한다며 추가 분석 필요성을 부인했다. 그러나 응력이 쌓인 단층에 직접적으로 물이 주입되면 이론적으로 예측한 것보다 큰 지진이 일어날 수 있다.
재판부는 지진이 5차 수리자극이 끝난 때로부터 약 2개월이 지난 후 갑자기 발생했다며 신호등 체계의 미준수 때문이 아니라고 봤다. 암석이 응력을 받아 균열돼 체적이 증가하는 현상인 다일레이턴시가 발달할수록 물이 균열을 메우는 데 걸리는 시간이 증대한다. <사이언스>에 논문을 게재한 국제 연구팀도 "유발 지진은 물 주입이 끝난 뒤 며칠에서 몇 달 뒤 발생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한 목소리로 규모 3.1 지진이 발생했을 때 물 주입을 중단하고 정밀 조사를 실시했다면 포항 지진을 막을 수 있었다고 지적한다. 재판부 는 스위스 바젤과의 지질적 특성 차이 등을 고려하지 않았다며 이조차 부인한다.
지열발전 주관사인 넥스지오는 지진 원인으로 지열발전소를 지목한 이진한 교수를 고려대 윤리위원회에 자료 무단 도용 혐의로 제소했고 <사이언스>에도 논문을 내려달라고 요구했다. 국책사업임에도 지열발전 측은 지진 관련 자료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재판부는 오히려 포항 시민에게 담당자의 과실 입증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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