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호주의는 호주만의 현상일까?

[안치용의 노벨문학상의 문장] 패트릭 화이트 <전차를 모는 기수들>

"저 여자가 누구였죠?" "아." 석든 부인이 대꾸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헤어 아가씨 말씀이 시구나." "사람이 좀 유별나 보이는데." 커훈 부인의 말에서는 조심스러운 기대감이 느껴졌다. "글쎄요." 석든 부인이 대답했다. "헤어 아가씨가 좀 남다르다는 건 부정할 수 없겠네요."

<전차를 모는 기수들>(패트릭 화이트 지음, 송기철 옮김, 문학과지성사)

소설 <전차를 모는 기수들>은 주인공인 메리 헤어에 관한 주변 사람들의 인용문의 이러한 뒷담화로 시작한다. 유별나고, 남다르다는 완곡한 표현을 썼지만 이들의 속마음은 '미쳤다'이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땅에서 부모에게서 대저택을 물려받은 광인 소녀 메리는 인간관계에 서툴지만, 그녀와 마찬가지로 유별나고 남다른 건 부정할 수 없는 사람들과는 잘 소통하고 깊은 관계를 형성한다. 광인끼리 소통이 잘 된다니, 소통이 아니거나 그들이 미쳤거나 둘 중의 하나여야 한다. 이러한 구분이 비(非)광인의 문법일 수가 있긴 하다.

특별한 인간 실험의 계획에 따라 백인 목사가 입양한 앨프는 훌륭한 교육을 받지만 원주민인 '애버리지니'의 피가 섞인 탓에 사회적으로 소외된다. 백인 목사 가정에서 라틴어 동사 활용과 성서를 배웠어도 태생 때문에 앨프는 정상적인 사람대접을 받지 못한다.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아 이곳까지 흘러든 유대인 히멜파르프 또한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는다. 전쟁이 끝났는데도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박해를 받은 것이다. 유대계 독일인으로서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고 학문적으로 탁월한 성취가 있는 저명한 학자이지만 나치 집권 이후엔 그저 한 명의 유대인일 뿐이었다. 가스실 문턱까지 갔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후 종전과 함께 팔레스타인 이주의 기회를 얻는다. 그러나 히멜파르프는 새로운 이스라엘을 건설할 꿈에 부푼 유대인 사이에서도 낯섦과 회의를 느끼는 뼛속까지 이방인이다. 자신을 고독의 극한으로 몰아붙이며, 벼랑 끝에서 뛰어내리는 심정으로 오스트레일리아를 떠올린다. 세상의 끝처럼 여겨진 그곳으로 숨어든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그는 유대인이었고, 유대인인 예수처럼 십자가 매달리는 수모를 당한다. 이밖에 쓰러져가는 오두막에 살며 여섯 딸을 키우는 가난한 여인 루스 등 그 존재만으로 주변을 불편하게 만들고 내내 배척당하는 이들이 소설의 주인공들이다.

대저택이 허물어지고 광인 메리가 종적을 감추며 소설은 비극의 얼개를 취한다. 그러나 그런 비극 안에다 작가는 희망의 장치를 넣는다. 제목 '전차를 모는 기수들'(Riders in the Chariot)은 '불의 전차'를 몰고 승천한 구약성서의 선지자 엘리야를 직접 가리키는데, 엘리야처럼 메리 등이 세상의 핍박과 천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존재라고 말하는 듯하다.

오스트레일리아인의 정체성을 고민한 작가

패트릭 화이트(1912~1990년)는 오스트레일리아를 대표하고 오스트레일리아인의 정체성을 고민한 작가이지만, 태어난 곳은 영국 런던이었다. 부모는 오스트레일리아에 정착한 영국인 이민 2세대로 대저택과 방대한 목장을 소유한 부유층. 결혼 후 장기간의 유럽 신혼여행을 떠났다가 패트릭을 낳았다.

부모와 함께 귀국하여 시드니에서 자랐고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공부하러 다시 영국에 가는 등 영국과 오스트레일리아를 오가면서 교육을 받았다. 2차 대전이 일어나자 영국 군인으로 참전해 북아프리카와 중동, 그리스 등에서 복무했다. 이후 유년기를 보낸 오스트레일리아에 정착해 13편의 장편소설과 많은 단편소설, 희곡, 영화 각본 등을 남겼다.

문학뿐 아니라 오스트레일리아의 여러 사회문제에 발언했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을 뜻하는 '애버리지니' 인권에 평생 관심을 보이며 지지하는 활동을 다방면으로 펼쳤다. 동성애자로서 자신의 사생활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소수자 인권 보호에 목소리를 높였지만, 대중에 노출되는 것을 꺼려 노벨문학상 시상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현재까지 오스트레일리아인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유일한 작가다.

위대한 호주의 공허함

18세기 말 영국은 오스트레일리아를 새로운 유형지로 삼아 죄수들을 보냈다. 19세기 중반엔 금맥이 발견되면서 일확천금을 노리고 세계 각지에서 자발적으로 사람이 모여들었다. 그러자 유색인종의 유입을 막는 백호주의가 생겨 20세기 중반까지 이어졌다. 백호주의가 상징하듯 유색인종 차별은 오스트레일리아 내 원주민인 애버리지니에 대한 차별로 이어졌다. 안팎으로 철저하게 백인 우월주의를 관철한 셈이다. 백인이라고 다 대접받은 건 아니었다. 미국 독립 이후 전개된 상황에서 확인되듯, 가난한 하층민 백인은 마찬가지로 소외의 대상이 됐다.

제임스 조이스, D. H. 로렌스, 버지니아 울프 등에 영향을 받은 작가는 이러한 오스트레일리아의 사회 현실에 눈감지 않았다. 물질주의를 비판하면서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과 비주류 인물의 내면을 탐구하였고, 종교적인 탐색을 이러한 작업에 결합하여 '위대한 호주의 공허함'에 일침을 가했다.

<전차를 모는 기수들>은 이러한 경향이 고스란히 담긴 작품으로 특히 구약성서 엘리야의 불의 전차를 가져다 모티브로 활용했다. 네 주인공은 이 전차의 말이자 기수로, 스스로 구원받으면서 동시에 전차를 몰아 구원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예언자로도 볼 수 있는 네 명의 이름에 작가가 하려는 말이 담겼다.

먼저 메리 헤어(Mary Hare)의 '메리'가 성모 마리아를 뜻하는 건 너무 뚜렷하다. 세상의 죄악과 무관한 존재가 광인 메리와 연결되며 토끼를 의미하는 '헤어'는 부활절 상징의 하나로 '메리'와 비슷한 기능을 한다. 모르데카이 히멜파르프(Mordecai Himmelfarb)의 '모르데카이'는 구약성서 에스더서에 등장하는 유대인 영웅 모르데카이에서 따온 이름이다. 성서에서 모르데카이는 페르시아 왕국에서 유대인 박해를 막아낸 인물이다. 히멜파브는 독일어로 '하늘의 색'을 의미한다.

루스 고드볼드(Ruth Godbold)의 '루스'는 구약성서 룻기의 주인공으로 이방인이지만, 믿음과 헌신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다. '고드볼드'는 'God+bold'로, 신 앞에서 담대한 사람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된다. 앨프 더보(Alf Dubbo)는 다른 세 명보다 얼핏 종교성이 약해 보이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앨프'는 그리스어 '알파'와 유사한 발음으로 성서의 시작과 끝인 'Alpha and Omega'에 연결된다. '더보'는 원주민 정체성과 서구 기독교 문화 사이의 이중성을 상징하고, 원주민 말로 '땅'을 뜻하기도 한다. 이중성을 극복하고 하나로 모은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다.

네 주인공 이름의 뜻을 생각하며 소설을 의미하는 게 유효한 독법이 되겠다. 또한 작가가 분명 가난하고 약하며 힘없는 사람들의 희망을 말했을 텐데, 소설에 어떻게 구현됐지지 생각해 보면 좋겠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혐오 등 우리 안의 백호주의를 떠올리는 계기이기도 하다. 1973년 수상.

▲'Advance, Australia!' (1891), Sir John Tenniel (English, 1820-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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