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마저 불평등한 '노동 카스트' 사회

[서리풀연구通] 인도의 카스트 차별로 인한 불평등한 폭염 경험 연구…한국은?

어느 순간부터 여름이 되고 나서 '폭염'이라는 단어는 일상이 되었고, 문자 그대로 폭염으로 인해 사람이 죽는다. 이번 7월 초에 본 기사만 해도 택배기사, 고령자 농민, 공사장 이주민이 야외에서 일하다 죽었다. 그러나 질병관리청에서 발표하는 온열질환 사망자 통계에는 포함되지 않는데, 전국 응급실 운영 의료기관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도출되는 감시 결과라 병원에 오지 못하고 현장에서 죽으면 통계에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응급실로 이송된다고 할지라도 다른 질환과 비슷한 증세를 보여 온열질환으로 분류되지 않는 경우도 발생한다. 실제로 지난 9일 경남 고등학교 급식소 조리실무사가 일하다가 두통, 혈압 상승, 위염, 췌장 수치 상승 등 열 스트레스 증상으로 인해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온열질환자로 분류되지 않았다. 이 밖에도 배달 노동자를 포함한 야외 노동자, 쿠팡 물류센터, 카트 정리 노동자와 같이 밀폐된 공간에서 일하는 많은 노동자가 열 스트레스에 노출된다. 따라서 실제로는 공식 통계보다 더 많은 사람이 폭염으로 고통받거나 죽었을 가능성이 높다.

사실 폭염으로 인한 건강 문제가 올해에서야 나타난 것은 아니다. 지속해서 증가하는 폭염사망자로 인해 지난해 9월 산업안전보건법에 '폭염' 관련 조항이 추가되었고, 체감 온도 33도 이상시 2시간 이내 20분씩 휴식을 보장하는 의무화 조항이 올해 6월부터 시행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규제개혁위원회(이하 '규개위')에서 "영세 사업장에 과도한 부담이 우려되고, 폭염 작업 때 적절한 휴식 부과 의무와 별개로 추가 규정할 이유가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두 차례 철회시켰고, 연일 이어지는 폭염으로 인해 노동자가 사망하고서야 질타받고 11일에 통과시켰다. 그럼에도 해당 조항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게만 적용돼 배달·택배 노동자 등 특수 형태 고용 노동자들은 여전히 폭염에서 안전하지 못한 문제가 남아있다.

한 건설노동자가 "책상에 앉아서 안 된다고 할 게 아니라, 현장에 와서 얼마나 더운지 직접 봤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듯이 규개위와 현장 노동자 간의 이러한 괴리는 열 스트레스에 노출되는 직업 환경의 분리에서 기인한다. 사회가 작동하기 위해 우리 모두 동등한 노동을 하고 있는데, 학력이 낮다는 이유로, 가난하다는 이유로,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로, 고용 형태가 불안정하다는 이유로 어떤 이들은 폭염 속에서 목숨을 걸고 노동하는 것이다.

이러한 형태는 인도의 카스트 기반의 노동시장 분리, 직업 차별과 너무나 닮았다. 한국 역시 부모의 재산, 본인의 학력, 인종 등에 따라 노동시장에서 불평등을 경험하고 직업의 귀천을 나눈다. 오늘 소개하는 연구는 인도에서 폭염에 노출되는 직업이 카스트에 기원하고 있으며, 카스트 집단에 따라 받는 열 스트레스가 얼마나 불평등한지에 대해 분석한 글이다(☞논문 바로가기: 인도에서 폭염에 대한 직업적 노출의 카스트 불평등).

인도의 카스트는 크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①고립된 부족 공동체 내에서 살아온 인도 토착 부족 - 지정 부족민(STs), ②'불가촉천민'이라고 불렸던 지정 카스트(SCs), ③인도의 전통적 농민 및 노동 카스트를 대표하며 "교육적 또는 사회적으로 낙후된" 기타 소외 카스트(OBC), ④ '상위' 카스트 집단과 그 외 카스트 집단을 모두 포괄하는 기타(OTHERS)로 분류된다.

인도는 카스트에 기반한 차별을 해소하고자 지정 부족민(STs), 지정 카스트(SCs), 기타 소외 카스트(OBC)에게 공직 임명과 공공기관 취업, 고등교육기관 입학 등 할당제를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교육 수준과 교육비 지출은 기타(OTHERS) 집단이 가장 높고, 사회적 신분을 규정하고 차별하는 관습이 노동시장 내에 남아있기에 생계 수단 역시 불평등하게 분포된다.

이로 인해 하위 카스트(ST, SC, OBC)는 여전히 저임금에 불안정하고 위험한 일자리에 노출된다. 실례로 인도 내에서 안전 장비나 하수도 청소 기계 없이 하수구와 정화조를 수작업으로 청소하는 것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정 카스트(SC)인 달리트들은 여전히 그 직종에서 일하다 사망한다. 이들은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기 때문에 하수도 사망자 데이터에도 포함되지 않으며 폭염으로 인해 더 큰 위협에 노출될 수 있다.

연구자들은 2019년과 2022년 4~6월 폭염 기간 동안 인도의 모든 지역에 대한 시간당 '세계 열 기후 지수(UTCI)'와 분기별 노동력 조사(PLFS) 데이터를 결합하여 야외에서 일하는 개인의 열 스트레스 노출량을 측정했다. 여기서 '세계 열 기후 지수(UTCI)'는 인간이 경험하는 열 환경을 파악하는 종합적인 지표로 '체감 온도'를 나타낸다.

분석 결과, 기타(OTHERS) 집단은 근무시간의 27~28%를 실외에서 보내는 반면, 지정 부족민(STs), 지정 카스트(SCs)의 경우 최소 65개 지역에서 근무시간의 75% 이상을 실외에서 보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외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업무 중에 에어컨, 선풍기, 기타 냉방 수단을 이용할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열 스트레스에 더 많이 노출된다. 열 스트레스가 높아지면 인지·신체 능력이 저하될 수 있고, 탈수, 열사병, 온열질환 등 건강 문제에 더 큰 위협을 겪는다.

저학력자일수록 야외 작업에서 일하는 직종에 종사할 가능성이 더 높았고, 특히나 낮은 계급의 카스트 집단의 경우 일용직 임금 노동에 종사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근무시간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이 떨어져, 업무 시간이 증가할수록 더 높은 열 스트레스에 노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꼭 실외가 아니더라도 덥고 습한 실내 환경에서 열 스트레스에 노출될 수 있다. 고강도 활동을 하는데 열 스트레스를 낮춰줄 인프라가 취약하다면 실외에서 일하는 것과 같은 열 스트레스를 경험할 수밖에 없다.

또한 낮 동안 열 스트레스에 더 높게 노출되는 집단은 지속되는 열대야로 인한 실내 열 스트레스에도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인도 역시 한국처럼 야간 더위를 보통 에어컨, 쿨러, 선풍기 등으로 대처하는데, 냉방비용이 부담되거나 냉방 수단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높기 때문이다. 낮에 노출되는 직업적 열 스트레스는 밤 동안의 열 스트레스로 인해 악화되어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수면의 정상적인 생리를 방해하고, 체온 조절에 영향을 미쳐 심각한 건강 위험을 초래한다.

이러한 열 스트레스 불평등은 더운 지역에 따라 나타나는 문제가 아니며, 명백히 직업적 분리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인 것이다. 따라서 동일한 환경이라도 할지라도 하위 카스트는 더 높은 수준의 열 스트레스를 경험할 수 있다.

인도의 폭염 불평등은 한국이 경험하는 것과 매우 닮았다. 폭염으로 죽은 이주노동자는 일용직이었는데, 혹서기에는 단축 근무를 시행하는 공사장이었지만 이주민에게는 이같은 조치가 시행되지 않았다. 학교에서 일하는 조리실무사는 냉방기나 적절한 휴식 공간이 마련되지 않은 고온 다습한 환경에서 고강도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데, 한 학교는 '전력 소비가 많아 급식 후 청소하는데 에어컨을 켜지 말라'며 끄고 갔다. 이렇게 같은 장소에 있더라도 직업에 따라서, 같은 일을 하더라도 내가 어떤 지위에 있느냐에 따라서 노출되는 열 스트레스가 다른데, 이걸 카스트 외에 달리 뭐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폭염으로 인해 건강과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것에 의문을 품어야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왜 누군가는 위협으로부터 안전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그렇지 않은지 문제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 혹자는 일하는 환경이 덥고 습한데 어쩔 수 없지 않냐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폭염으로 나타나는 건강 문제들은 예방과 대책 마련으로 해결할 수 있는 명백한 '인재(人災)'다.

익산시 사례를 보자. 익산시는 올해 '폭염 대응 특별팀'을 꾸려 대응체계를 마련했다. 외국인 노동자를 포함한 농작업 노동자 안전을 위해 매일 안전 점검을 실시하고, 폭염 대응 장비도 지원하며, 건강 상태를 수시로 확인하면서 문자, 마을방송 등을 통해 폭염 예방수칙을 누구나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대처했다. 폭염뿐만 아니라 폭우 문제도 선제적 예방을 통해 큰 피해를 막았다. 배수펌프장, 저수지 등 수리시설과 배수시설, 산사태 취약지역, 대피소 등을 점검하여 사전에 침수를 방지했던 것이다(☞관련기사 바로가기).

이는 연일 폭염으로 인한 사망 소식과 지난 16일부터 5일 간 집중 호우가 쏟아지며 수많은 재산·인명피해를 남겼던 지역들과 대조된다. 결국 이러한 위험과 피해가 단지 개인들이 당한 '불운한 사고'가 아니라, 공동체인 우리가 해결할 수 있었던 '사회적' 문제라는 사실이 명확하다. 수해 피해 주민과 자원봉사자, 공무원 등이 복구작업을 하고 있지만 열악한 환경과 곧바로 이어지는 폭염으로 인해 또 다른 위협에 노출되고 있다. 폭염이 사회가 대응해야 하는 문제임을 인식하고, 특히 한국판 노동 카스트에 따라 불평등하게 발현되는 폭염 피해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 접근과 노력이 필요하다.

* 서지정보

Shah, A., Thapliyal, S., Sugathan, A., Mishra, V., & Malghan, D. (2025). Caste inequality in occupational exposure to heat waves in India. Demography, 62(1), 35-60.

▲폭염특보 일주일째인 3일 울산 울주군 온산읍 에쓰오일 샤힌프로젝트 건설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작업하고 있다. 이날 울산에는 폭염 영향예보 '경고' 단계가 발령됐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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