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해체가 남긴 것들: 끊어진 관계, 무너진 건강관리

[서리풀연구通] 결혼 관계가 무너진 자리에 종종 담배나 술이 놓인다

건강행동은 겉보기에 개인의 단순한 습관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삶의 전환기나 관계의 변화와 같은 생애 과정 속에서 사회적으로 구성되고 선택되는 실천이다. 개인은 자신이 속한 사회적 환경 안에서 흡연과 음주 같은 실천을 통해, 비록 바람직하지 않은 방식일지라도 자신의 주체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이와 같은 건강행동은 단기적인 선택에 그치지 않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누적되며 이후의 건강 상태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삶의 전환기에서 건강행동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파악하는 것은 공중보건학적으로 적절한 개입 시점을 식별하고 효과적인 건강 개입 전략을 설계하는 데 중요한 근거가 된다.

오늘 소개할 연구는 결혼 관계의 해체라는 전환적 사건을 중심으로 흡연, 음주와 같은 건강행동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분석했다. (☞논문 바로가기: 이별 이후, 건강행동은 어떻게 달라지는가: 결혼 해체 전후의 변화 분석)

이 연구는 호주의 대규모 패널조사인 '가구·소득·노동 변화 추적조사(Household, Income, and Labour Dynamics in Australia)' 데이터를 활용해, 별거 이전부터 이후까지 최대 20년에 걸친 개인의 건강행동 궤적을 추적한다. 특히, 법적 이혼이 아닌 '별거'를 전환기의 출발점으로 삼은 점이 특징적이다. 호주에서는 법적으로 이혼을 신청하려면 최소 12개월 이상의 별거 기간이 요구되기 때문에, 실제 생활의 변화는 별거 시점에서 이미 시작된다. 연구진은 이 시점을 기준으로 건강행동의 변화를 별거를 발생하기 전, 별거를 경험한 해, 별거 이후로 시점을 구분하여 분석을 진행하였다. 이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성별, 교육 수준, 자녀 유무 등 사회적 조건도 함께 살펴보았다.

음주는 응답자가 술을 주 1회 이상 술을 마시는지를 기준으로 정기 음주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구분하였으며, 술을 마시는 날의 평균 섭취량을 바탕으로, 여성은 5잔 이상, 남성은 7잔 이상 마신다고 응답한 경우를 '폭음'으로 분류하여 별도로 분석하였다. 흡연의 경우 현재 흡연 여부를 기준으로 흡연자와 비흡연자를 구분하였고, 그중에서도 매일 흡연하는 사람은 ‘일일 흡연’이라는 고위험 행동으로 따로 구분하여 분석하였다.

음주의 경우, 별거 시점을 전후로 일정 수준 증가하는 경향이 나타났으며, 그 양상은 성별, 교육 수준, 자녀 유무에 따라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우선 여성은 별거 시점에 정기 음주 가능성이 급격히 증가하였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소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으나 별거 이전 수준으로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았다. 반면 남성은 정기 음주보다 '폭음'에서 더 큰 변화를 보였으며, 증가된 폭음 수준은 별거 이후에도 장기간 유지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교육 수준에 따른 차이는 주로 남성에게서 관찰되었다. 고학력 남성은 별거 전후 음주 행동에 큰 변화가 없었던 반면, 저학력 남성은 정기 음주 가능성이 뚜렷하게 증가하였다. 이에 대해 연구진은 사회적 지지를 상대적으로 적게 받는 남성들이, 교육을 통한 사회 자본이 부족할 경우 음주와 같은 해로운 대처 행동에 의존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해석하였다. 자녀 유무는 여성에게서만 음주 행동의 차이를 유의미하게 만들어내는 요인으로 나타났다. 별거 이전 자녀와 함께 살았던 여성은 정기 음주와 폭음 모두에서 증가폭이 더 크고, 그 영향이 더 오랜 시간 지속되었다. 연구진은 이러한 경향을, 단독 양육과 돌봄·생계의 이중 부담에서 비롯된 스트레스의 결과로 해석하였다.

▲서울 시내에 한 흡연구역 모습. ⓒ연합뉴스

흡연 역시 음주와 비슷한 패턴이 발견됐다. 여성과 남성 모두 별거 시점에 흡연 가능성이 증가했으며, 여성은 남성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받고, 그 영향이 더 오래 지속되는 경향을 보였다. 다만 해석에 있어 유의할 점은, 음주와 달리 흡연의 경우 별거 이전부터 남성의 흡연률이 여성보다 높았다는 점이다. 교육 수준에 따라서는 저학력 남성에게서 흡연 증가가 두드러졌고, 자녀 유무에 따라서는 자녀와 함께 살던 여성의 흡연 가능성이 더 높게 유지되는 경향이 확인되었다.

이 연구는 별거라는 삶의 전환적 사건이 음주와 흡연 같은 건강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장기간 추적한 분석으로, 이 시기에 발생하는 건강행동의 변화가 일시적인 반응을 넘어, 성별과 사회적 조건에 따라 지속되거나 심화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여성은 자녀 양육과 생계 부담이 결합되었을 때 건강행동 악화의 폭과 지속 기간이 길어졌고, 남성은 사회적 지지가 부족하거나 교육 수준이 낮을수록 해로운 대처 행동에 의존하는 경향이 더 뚜렷하게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는 결혼 해체를 단순히 개인의 관계 종료로 볼 것이 아니라, 건강 불평등이 확대될 수 있는 사회적 사건으로 인식해야 함을 시사한다. 한국 사회에서도 이혼과 별거가 점점 보편화되는 가운데, 삶의 전환기를 맞는 사람들이 어떻게 감정과 스트레스를 대처하고,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건강행동에 스며드는지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별거 이후 누군가는 술을 끊고, 누군가는 담배를 다시 피운다. 그 차이는 단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돌봄의 책임, 소득의 불안정, 사회적 지지의 유무처럼 구조적인 조건과 깊이 맞물려 있다. 이 연구는 그런 일상의 선택들이 어떻게 사회적 경로로 이어지는지를 조명하며, 개인의 변화에서 사회를 다시 읽어야 할 필요성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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