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반도체특별법엔 청소년·노동자 생명 안전이 없다"

반올림 등 "직업계고·청년 노동자, 안전망 없이 위험한 반도체 공장에 내몰려… 반도체특별법 즉각 중단"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기업 중심의 특별법을 추진하고, 반도체고등학교를 추가 신설하겠다는 발표를 보며 실망감이 컸다. 산업경쟁력도 중요하지만, 그 산업을 지탱하는 사람의 생명과 인권이 우선시돼야 하지 않은가? 내 아들처럼 사회적 경험이 부족한 청소년과 초년 근로자들은 더 위험에 취약하다. 우리 아이들은, 우리는, 안전하게 일하고 존중받으며 살아갈 권리가 있다."

마이스터고 졸업생 A 씨의 어머니가 지난 24일 서울 종로구 국정기획위원회 앞에서 열린 '국가와 기업의 합작, 반도체산업 인력양성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 기자회견에서 말했다. 2020년 고교 3학년 때 학교 추천으로 반도체 후공정 기업 스태츠칩팩코리아에서 일을 시작한 A 씨는 1년 2개월 만에 독성 간질환에 걸려 생사의 고비를 오갔다.

A 씨의 어머니는 "회사는 방독면조차 지급하지 않고 얇은 면 마스크 하나를 줬고, 숄더페이스트라는 화학 접착제를 다룰 때도 쉽게 찢어지는 장갑에만 의존해야 했다"며 "사용하는 약품은 매주 바뀌었지만, 어떤 성분이고 어떤 독성이 있는지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이 그저 '무해하다'는 말뿐이었고, 아들은 안전교육도 형식적이고 실효성이 없었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가 국정기획위원회 앞을 찾은 이유는 지난 4월 국회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되고 이재명 대통령도 핵심 공약으로 내건 반도체특별법 때문이다. 오는 10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법안엔 '반도체고' 증설도 포함됐다. 반도체고등학교, 반도체특성화대학교와 대학원을 증설해 30만 명 인력을 양성하겠단 취지다. 충북반도체고교와 인천반도체고교가 근래 개교했고, 일부 시도 교육청도 반도체고를 유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이들을 보호하는 대책은 법안과 정부 계획에 없었다. 노동자의 유해 물질 알 권리 규정, 산업안전 및 노동인권 교육 의무화, 중대재해 발생사업장 취업 제한, 고교생 현장실습 규제 등의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반도체노동자의건강과인권지킴이 반올림은 "반도체 재벌기업에 노동, 환경과 관련한 각종 규제 조치를 풀어주고 수조 원의 세제 혜택을 주는 내용만 담겨있다"고 비판해 왔다.

▲2020년 반도체 후공정 기업 스태츠칩팩코리아에서 일하다 독성 간 질환에 걸려 투병 중인 A 씨의 어머니가 7월 24일 서울 종로구 국정기획위원회 앞에서 열린 반도체고 설립 규탄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반올림

삼성전자 휴대전화를 생산하는 하청업체의 백혈병 피해자 B 씨의 어머니도 이날 국정기획위에 의견서를 전하기 위해 부산에서 올라왔다. B 씨도 특성화고 3학년 때 학교 추천으로 경북 구미에 있는 '케이엠텍'에 취업한 지 2년 만인 2023년 백혈병에 걸렸다.

B 씨 어머니는 "전자산업이 깨끗한 사업장인 줄 알았는데 절대 그렇지 않았다. 유해화학물질을 취급하는데 무엇이 유해한지도 가르쳐주지 않았다"라며 "그런데 우리 아들과 같은 현장실습생, 혹은 노동자들이 정작 크게 아팠을 때, 그것도 직업병이 의심되는 상황에서 회사도, 교육기관도 다 외면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금 기업의 인력양성 방안으로 반도체 고등학교를 무작정 늘린다고 하는데, 너무나 걱정된다"며 "아직 성인이 되지 못한 고등학생 아이들을 데려다 일을 시킬 때는 뭐가 위험한지 가르쳐주고, 위험할 때 어떻게 대처해야 자신의 몸을 보호할지 가르쳐줘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것이 우리 아이들을 지키는 길이며 나아가 기업도 발전을 이룰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직업교육바로세우기·현장실습폐지공동행동, 반올림, 재벌특혜 반도체특별법저지 공동행동, 서울노동광장, 건강한노동세상 등 6개 단체와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이날 국정기획위원회에 반도체 고등학교 설립에 관한 단체 의견서를 제출했다. △반도체고 산업안전 보건교육 필수 지정 △중대재해 발생사업장, 반복된 직업병 발생 사업장 취업금지 △반도체고 현장실습 폐지 검토 등의 요구가 골자다.

이들은 의견서에서 "학교는 반도체산업의 우수성과 미래지향적인 측면만을 홍보하고 있으나 실제 반도체산업의 위험성, 그리고 반도체산업에 종사할 때 반드시 알아야 할 산업안전 관련 교육을 하는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다"며 "반도체고는 산업안전 관련 교육을 필수로 해야 하며 특히 반도체산업의 전 공정에 걸친 여러 위험에 대해서, 작업장과 노동환경에 대해서 정확히 인지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산업안전 교육 및 노동인권 교육을 필수로 지정하고 일정한 시수 이상을 반드시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이러한 전제조건이 마련되지 않는 상황에서 반도체고등학교가 신설되거나 인준을 받기 위해 준비하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반도체 제조 공정의 위험성이 여전하고 산업재해가 발생한 공장임에도 여전히 청소년들은 그곳으로 현장실습이나 취업을 나가도록 제안받고 있다"며 "정부와 교육청은 산업재해가 발생한 기업에 대한 철저한 관리감독 및 기업의 안전 점검을 진행할 책임이 있다. 중대재해가 발생한 사업장, 반복적으로 직업병이 발생한 사업장은 청소년 노동자를 채용하지 않도록 조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와 관련, A 씨가 일했던 스테츠칩팩코리아는 지난 5월 인천교육청이 시내 직업계고 학생을 대상으로 개최한 기업설명회에 참여했다. A 씨는 자신의 독성 간질환을 두고 산업재해를 인정받기 위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반올림 등 6개 단체는 "그러나 스테츠칩팩코리아는 여전히 산재를 인정하지 않고 인천반도체고의 가장 긴밀한 협력기업으로 학교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으며, 이를 넘어 공공기관인 교육청의 기업 설명회에도 참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반도체고 현장실습 폐지 검토도 주장하며 "반도체고 졸업 이후 노동환경에 대한 실태조사 및 연구, 대안 마련 등을 전문가와 현장 교사, 청년 노동자, 기업이 함께 모색하는 것"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들은 "반도체고는 실습실을 설치하고 각종 장비를 '클린룸' 수준으로 만들겠다고 장담하지만, 반도체를 졸업한 청년노동자들이 취업하게 되는 곳은 삼성이나 SK 같은 대기업 클린룸이 아니"라며 "대다수는 스테츠칩팩코리아와 같은 하청, 협력업체에서 일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인천반도체고는 올해도 7월부터 스테츠칩팩코리아에서 현장실습 채용을 한다고 안내한다. 7월이면 3학년 1학기가 채 끝나지도 않은 시점"이라며 "반도체산업이라는 위험천만의 특수한 산업 현장에 대한 대비와 점검도 없이 산재가 발생하고 있는 공장으로 다시 청소년들을 현장실습이라는 이름으로 내보내는 것은 즉시 중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우리 주장은 모든 반도체 생산을 모두 멈춰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라며 "반도체가 우리 사회의 필수품이라면 정의롭게 생산해야 한다. 반도체 기업들의 이윤보다 노동자들의 건강과 생명이 먼저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또 "반도체특별법 및 정부의 반도체 인력 양성 계획 어디에도 반도체 산업의 본질인 집약적인 첨단 화학 산업이라는 말은 없다. 안전보건 대책도 전혀 언급이 없다"며 "재벌기업의 이윤을 위한 재벌특혜법이자, 반노동, 반환경 악법인 반도체특별법 폐기하라"고도 주장했다.

▲서울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직업교육바로세우기·현장실습폐지공동행동, 반올림, 재벌특혜 반도체특별법저지 공동행동, 서울노동광장, 건강한노동세상 등 6개 단체는 7월 24일 서울 종로구 국정기획위원회 앞에서 반도체특별법 폐지를 주장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반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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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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