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세상 멋진 천재인지, 구제 불능 바보인지, 결정을 내릴 수가 없다"

[최재천의 책갈피] <예술이라는 일> 애덤 모스 글, 이승연 번역

미국의 저널리스트 애덤 모스가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의 기념품점에서 <프랭크 게리 드로잉> 책을 들춰보다가 낙서 비슷한 것을 발견했다. 게리의 표현을 빌자면, '시끄럽게 생각하는' 방법 중 하나다. 낙서가 구겐하임미술관이 되었다.

책 430면에는 에드워드 호퍼의 드로잉과 설명이 실려 있다. 많은 예술가들은 스케치 단계에서 작업 계획에 대해서 충분히 생각한다. 하지만 호퍼만큼 꼼꼼했던 이는 드물다. 드로잉은 431페이지의 그림으로 완성된다.

두 가지 점에서 이 책은 특별히 놀랍다. 첫째, 예술가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사람들일까. 예술가들은 어떤식으로 생각할까. 어떤 과정을 거쳐 작품에 이르게 되는 걸까. 책은 '영감에 목마른 젊은 예술가들을 위한 창작의 박물관'이다. 둘째는, 편집이다. 책은 읽거나 보는 데 그치기 때문에 제작 과정에서의 '편집'에 대해 의식할 때가 드물다. 이 책은 책의 편집에 대해 특별한 고마움과 아름다움을 남겨준다. 대단히 독창적이면서도 백과사전을 들춰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가 쓴 문장은 창작 과정의 혼란을 기가 막히게 설명한다.

"글쓰기의 엄중함에 어느 정도 익숙한 사람이라면 이 이야기를 자세히 들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썼고 어째서 그게 좋아 보였는지. 읽어보면 그것이 못 견디게 느껴질 정도다. 교정하고 찢어버린다. 잘라내고. 집어넣고. 황홀해하고. 절망에 빠지고. 평안한 저녁을 보내고 불쾌한 아침을 맞이하는지. 구상안을 낚아채고 그것을 잃어버리고. 자기 책이 눈앞에 펼쳐져 보였다가 사라져버리고. 밥을 먹으면서도 등장인물들을 연기하고. 걸어 다니면서도 그들의 말을 떠들어대고, 울었다가 웃었다가. 이런 식으로 할까 저런 식으로 할까 망설이고. 웅장하고 화려한 게 좋았다가 다음에는 평범하고 소박한 게 좋았다가. 그리스의 템페 계곡이었다가 영국 남서부의 켄트나 콘월의 들판이 되었다가. 작가가 세상에서 가장 멋진 천재인지 구제 불능 바보인지 결정을 내릴 수가 없다."

책은 40건이 넘는 사례 연구이기도 하고 인터뷰집이기도 하고 예술과 예술가에 대한 이력과 안내이기도 하고 예술 창작에 대한 교과서이기도 하고 백과사전이기도 하다. 한편 대단히 방대하고. 하나 덧붙여야겠다. 놀라움에 대한. 이런 창조적 발상을 해낸 저자에 대하여, 이를 번역하고 편집해 낸 번역자와 편집자와 출판사의 정성이 놀랍다.

▲<예술이라는 일> 애덤 모스 글, 이승연 번역 ⓒ어크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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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예나 지금이나 독서인을 자처하는 전직 정치인, 현직 변호사(법무법인 헤리티지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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