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서울시, 성교육서 성소수자→사회적 소수자, 연애→이성교제…"성소수자 배제" 반발 나와

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 운영매뉴얼에서 성소수자·젠더 관련 용어 삭제 결정

서울시가 성교육에서 성소수자 관련 용어를 삭제하는 내용의 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 운영 매뉴얼을 만들었다. 성소수자는 '사회적 소수자'로, 연애는 '이성교제'로 바꾸는 식이다. 서울시는 최신 교육부 고시를 따르는 취지라고 설명했지만, 성교육 강사들은 서울시가 성교육에서 성소수자를 지우려는 것 아니냐고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12일 '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 운영 매뉴얼 제작 TF 회의 결과'를 공지하고 앞으로 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가 청소년들에게 성교육을 진행할 때 사용하지 말아야 할 용어와 변경해야 할 용어를 발표했다.

우선 성교육 시 포괄적 성교육과 섹슈얼리티를 다루지 않도록 했다. 포괄적 성교육은 성과 관련해 전 생애에 걸친 신체와 심리 발달, 인간관계, 문화와 윤리 등을 다루는 교육을 말하며, 섹슈얼리티는 성과 관련한 감정, 욕망, 행위 정체성 등을 포괄하는 용어다.

또 연애를 이성교제로, 성소수자를 사회적 소수자 또는 약자로 가르치도록 했다. 이 밖에도 여성계가 주로 사용해온 포궁은 자궁으로, 체험관은 센터 교육장으로 교육하라고 명시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18일 <프레시안>에 "청소년성문화센터 강사들이 학교에 찾아가서 교육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과정에서 민감한 내용에 대해 학부모가 의견을 내는 경우가 많았다"며 "6개 기관으로 분리 운영해온 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를 통합 운영하는 과정에서 교육 매뉴얼을 바꾸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 관계자는 포괄적 성교육과 섹슈얼리티 사용을 금지한 이유에 대해 "2015년 교육부가 고시한 교육과정에는 섹슈얼리티 등의 용어가 있었으나, 2022년 교육과정에 해당 용어가 빠졌으니 현행 교육과정을 준수하자는 취지"라고 했다.

성소수자를 사회적 소수자로 바꿔 가르치라는 매뉴얼에 대해서는 "우리가 교육하는 대상에 장애 청소년도 있다. 이런 청소년들까지 다 포괄하자는 의미"라고 했으며, 연애를 이성교제로 가르치라는 내용은 "학교에서 교감을 역임했던 장학사들이 현장에서 적절한 표현으로 이것(이성교제)이 더 적절하다는 의견을 다수 냈다"고 했다. 다만 개인 또는 소규모 그룹 상담에서는 협의에 따라 매뉴얼 외 교육을 진행해도 된다는 게 서울시 설명이다.

▲서울시는 지난 12일 '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 운영매뉴얼 제작 TF 회의결과'를 공지하고 앞으로 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가 청소년들에게 성교육을 진행할 때 사용하지 말아야 할 용어와 변경해야 할 용어를 발표했다. ⓒ서울시

서울시의 이번 매뉴얼을 두고 성교육 활동가들 사이에서는 "성적 다양성을 인정하고 포괄적 성교육을 추구하는 세계 추세와 벗어난 결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유네스코는 2009년과 2018년 포괄적 성교육 가이드라인을 발표해 전 세계적으로 시행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중국은 유네스코의 지원을 받아 포괄적 성교육 지침을 개발, 실제 현장에 적용하고 있으며 프랑스도 성교육을 생물학적, 심리정서적, 사회적 영역으로 나눠 실시하고 있다.

학계에서도 포괄적 성교육에 대한 긍정적 연구가 드러나고 있다. 김희란 인제대학교 교수가 지난 2022년 발표한 '남자 청소년 대상 포괄적 성교육 프로그램 효과'에 따르면, 2021년 아하 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에서 개발한 포괄적 성교육 프로그램을 받은 남자 중학생들의 성 인식을 분석한 결과 성 고정관념 인식, 성적 주체성 인식, 성평등(페미니즘) 인식에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효과가 입증됐다.

연애를 이성교제로 바꾸는 것과 관련해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은 <프레시안>에 "청소년이 연애를 할 때 반드시 이성에게만 끌리는 것이 아니라 동성에게 끌릴 수도, 모든 성에 끌릴 수도 있고 이 밖에 다양한 형태의 끌림이 있다"며 "이성교제를 사용하라는 건 청소년들에게 다양한 생각의 기회를 차단하고 박탈한다는 점에서 가장 큰 문제가 있다. 사람을 너무 납작하게 바라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매뉴얼 제작 과정이 현장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 6명, 시설 관계자 3명, 서울시 관계자 2명으로 구성된 운영 매뉴얼 TF팀은 총 3차례 내부 회의를 진행했다. 익명을 요구한 성교육 강사 A 씨는 이를 "토론회나 연구용역 하나 없이 성교육에 전문성이 없는 공무원이 매뉴얼을 결정하는 체계"라고 비판하며 "매뉴얼이 강제력은 없을지언정 교육과 프로그램 기획 등에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성교육에서 동성 간의 연애 자체를 없애버리려는 것이 이번 매뉴얼의 목표로 보인다"며 "청소년들이 사람과 사람 간 평등한 관계 맺기를 배우고 느낄 수 있는 성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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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혁

프레시안 박상혁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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