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슨 집게손 사상검증' 기자회견 고발 남성 "집게손은 남성혐오…나무위키 보면 알 수 있어"

한국여성민우회, 미신고 집회 고발당해 1심 벌금 100만원…"사법부가 혐오세력 용인"

여성 애니메이터가 남성을 비하하기 위해 창작물에 집게손가락을 그렸다는 억지 주장을 규탄한 한국여성민우회가 미신고 기자회견으로 고발당해 1심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고발인은 "집게손은 남성혐오 표현"이라며 "자세한 내용은 나무위키를 검색하면 자세히 알 수 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민우회는 이를 두고 "법이 혐오세력의 무기로 활용되는 것을 사법부가 용인했다"며 고발인의 주장을 받아들인 사법부를 규탄했다.

12일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형사제11단독(재판장 강면구)은 지난 2023년 11월 28일 경기도 성남시 넥슨코리아 본사 앞에서 사전 신고 없이 '집게손 사상검증' 규탄 기자회견을 열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위반 혐의로 고발당한 최진협 한국여성민우회 상임대표에 벌금 100만 원을 선고했다. 집시법은 개방된 공간에서 열리는 집회와 시위에 대해 120시간 전부터 48시간 전에 관할 경찰서장에 신고서를 제출해야 하며, 이를 위반하는 경우 징역 또는 벌금형에 처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재판부는 사안이 긴급했으며 언론보도를 위해 소규모로 진행된 기자회견이기 때문에 집시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민우회 측 주장에 대해 "외형상 기자회견이라는 형식을 갖추고 있었다 하더라도 넥슨코리아를 비판하는 공동의 의견을 형성해 이를 대외적으로 표출·전달하기 위한 목적 아래 다수인이 일시적으로 일정한 장소에 모인 것으로서 실질적으로 집시법상 신고의무 대상이 된 집회에 해당된다"고 판단했다.

이어 "인터넷상에서 집회 인원들에 대한 테러 예고들까지 이뤄져 경찰들 다수가 출동했던 당시 상황 등을 고려하면 여러 가지 위험이 존재해 이를 사전에 예방할 필요가 있었다고 여겨진다"며 당시 기자회견은 사전 신고가 필요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처벌의 근거가 된 집시법 제6조 1항과 제22조 2항이 명확성과 평등성 등 헌법을 위반한다는 민우회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사전신고는 공공의 안전과 시설 보호, 집회 참가자와 반대자 사이의 충돌 방지, 교통 장애, 주거 평온 침해 방지 등을 위해 정당성이 인정된다. 또한 즉시 신고 가능한 긴급집회까지 이 사건 법률조항으로 처벌하는 건 아닌 점 등을 고려하면 침해의 최소성도 인정된다"며 민우회 측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을 기각했다.

▲12일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형사제11단독(재판장 강면구)은 지난 2023년 11월 28일 경기도 성남시 넥슨코리아 본사 앞에서 사전 신고 없이 '집게손 사상검증' 규탄 기자회견을 열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위반 혐의로 고발당한 최진협 한국여성민우회 상임대표에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선고 직후 성남지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법부가 집시법이 혐오세력의 무기로 활용되는 것을 용인했다"며 강력하게 규탄했다. ⓒ프레시안(박상혁)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선고 직후 성남지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법부가 집시법이 혐오세력의 무기로 활용되는 것을 용인했다"며 강력하게 규탄했다. 최진협 민우회 상임대표는 "고발인은 기자회견 내내 현장에 있었던 사람 중 하나"라며 "(고발인은) 여성혐오를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나무위키를 보고 집게손을 둘러싼 혐오몰이가 정당하다고 착각했다. 또한 민우회를 '남성혐오단체'라고 오인해 집시법의 한계를 이용해 민우회를 고발했다"고 했다.

이날 민우회가 공개한 고발인 진술조서를 보면, 남성인 고발인은 경찰에 "집게손 모양은 남성혐오의 표현"이라며 "게임 유저들이 남성혐오와 관련된 집게손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고 넥슨 측이 수용해 삭제 조치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집게손과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인터넷에서 나무위키를 검색하면 자세히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최 대표는 "사법부에 묻는다. 우리가 보호해야 할 사회의 법익이 혐오세력의 악의적 신고로 사회적 약자의 이야기가 사회정의를 향한 의미 있는 목소리를 우리 사회에서 사라지게 하는 것이냐"며 "우리 법이 모두의 인권과 우리 사회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보루가 될 수 있도록 또 다른 싸움을 이어갈 것"이라고 했다.

민우회는 이날 벌금형의 근거가 된 법률조항에 대한 헌법소원을 고려하고 있다. 이 사건 공동변호인단인 김두나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반드는법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평화적으로 이뤄진 집회는 헌법에 따라 보호돼야 한다는 헌법재판소 입장에 반하는 것이며 미신고 집회 주최자를 체포하거나 형사기소해서는 안 된다는 유엔자유권위원회 논평에도 반하는 것"이라며 "현행 집시법이 이번 사건처럼 헌법으로 보장하고 있는 시민들의 집회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크므로 개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손가락 모양으로 남성 비하 논란에 휩싸인 메이플스토리 여성 캐릭터 홍보 영상 일부

지난 2023년 11월 디시인사이드 등 다수의 인터넷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넥슨이 운영하는 게임 '메이플스토리' 홍보 영상 속 여성 캐릭터의 손가락 모양을 지적하며 '페미니스트인 애니메이터가 남성을 비하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넣은 장면'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해당 영상을 제작한 애니메이션 업체 소속 애니메이터들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뒤져 페미니즘 관련 게시물을 올린 A 씨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신상털이 등 집단 괴롭힘을 가했다.

업체의 반박과 경찰 조사 등을 통해 A 씨가 해당 그림을 그리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으나 괴롭힘은 계속됐다. A 씨는 이 사건으로 인해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 등으로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다 회사를 그만뒀다.

민우회는 A 씨에게 가해진 집단 괴롭힘과 더불어 게임업계에서 반복되는 억지 논란을 규탄하기 위해 넥슨코리아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당시 이 기자회견을 지켜본 한 남성은 민우회 기자회견은 미리 신고하지 않은 불법 집회라며 민우회를 집시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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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혁

프레시안 박상혁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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