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버린 산야와 마을이 아직 잿빛 그대로다. 피해를 입은 이재민들의 마음 또한 시커멓게 멍들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경각심은 벌써 사라진 듯하다.
경북 안동과 의성, 청송, 영양, 영덕 등지를 뒤덮은 대형 산불이 발생한지 채 몇 달도 지나지 않은 지금, 다시 그 현장에 위험의 불씨가 살아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3월, 경북 지역에서 발생한 초대형 산불은 수만 헥타르의 산림을 삼키고, 25명이 목숨을 잃는 참사로 기록됐다. 그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아직도 논밭두렁에서 불을 놓는 행위가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1일 오전 7시 50분께, 경북 안동시 남선면. 주말농장을 운영하는 조 모씨(65세 추정)가 밭두렁에 불을 지피는 모습이 목격됐다. 출동한 경찰은 조씨에게 ‘위험한 불씨 사용’ 혐의로 5만원의 범칙금을 부과했다. 주민 등에 따르면 밭두렁에 묵은 잡초와 영농부산물, 비닐 등을 태우기 위해 불을 지른 것으로 전해진다.
불씨 하나가 다시 대형 산불로 번질 수 있는 현실에서, ‘위험한 불씨 사용’ 혐의로 부과된5만원의 범칙금. 단 5만원이다.
위험한 불씨 사용(경범죄처벌법 제3조 제1항 제22호)조항은 화재 위험성이 있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지만, 솜방망이 처벌에 그 효과는 미미하다. 그나마 적발되어도 고작 범칙금 몇 만원에 그치니, 산불 예방에 대한 인식 개선도, 실효성도 낮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산불의 대부분은 ‘부주의’에서 시작된다.

최근 10년간 발생한 산불 가운데 상당수가 실화 및 소각 행위로 인한 것이었다. 봄철마다 반복되는 이 ‘예고된 참사’는 이제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人災)로 불려야 마땅하다.
이번 사건이 벌어진 남선면에서도 불에 탄 주택의 잔해 철거가 막 마무리 되고 있다. 그런데 그로부터 불과 50미터 떨어진 곳에서 또다시 불씨가 피어올랐다.

한 주민은 “경찰에게 ‘불이 번지면 끌 준비를 해놨다’며 고무통을 보여주는 어이없는 변명까지 들었다”며 “이 정도 인식이라면 산불은 해마다 되풀이될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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