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술강사다. 처음 예술강사로서 학교에 들어서던 그 날을 이십 년 넘게 잊지 못하는 예술강사다. 그날, 대학로 무대에서 활동하는 현직 예술가인 나를 보고 모두 신기한 눈빛을 보냈다. 학생들뿐 아니라 교직원과 교사들도. 쑥스러워하면서도 신비롭게 바라보는 그 눈빛, 눈빛들. 나는 작품만 해야 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예술적인 어떤 경지를 성취하는 것만이 나를 채워 줄 수 있는 줄 알았는데, 내 예술 세계를 교육이라는 직접적인 방식으로 타인과 함께 나누는 것이 이토록 자부심을 줄 줄은 몰랐다.
나는 그렇게 예술강사를 시작하였다.
2000년 학교예술강사지원사업은 국악강사풀제로 시작하여 2002년 연극강사풀제가 추가, 이후 영화, 무용, 만화 애니, 공예, 사진, 디자인 8개 분야로 확장되었다. 예술강사가 되려면 서류, 면접, 실기시험 등 엄격하게 자질 평가를 받아야 했다. 그로부터 우리 예술강사는 26년의 세월 동안 전국의 초중고등학교에서 예술교육을 지켜왔다. 예술가로서 예술을 즐길 줄 아는 시민을 육성하는 일에 자부심을 갖고, 불안정한 처우는 개선되리라 정부의 선한 의지를 믿으며 악조건을 견뎌왔다. 무려 26년. 그러나 학교예술강사지원사업은 2000년 처음 만들어진 그대로다. 아니, 더 나빠졌다. 어느 누구도 예술강사의 처우를 개선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처우가 어떠하냐고? 우리 예술강사는 최저임금 수준보다 못한 임금을 받고 있다. 예술강사의 임금은 수업 시수 당으로 받는다. 수업 준비에 쏟은 시간, 수업 이후의 학생들 케어, 수업 중 업무 강도가 얼마나 심한지 등은 고려되지 않는다. 2000년에 예술강사는 한 시수에 4만 원을 받았다. 나의 경우 2004년에 예술강사를 처음 시작했는데, 연봉이 227만 원이었다. 생계비로는 턱도 없었지만, 그 당시의 나는 돈보다 본래 나의 업인 공연을 하면서 학생들 마음도 풍요롭게 키워내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이 일을 했다.
2017년, 예술강사 시수당 강사료가 4만 3000원이 되었고, 식대 8만 원이 생겼다.
2024년, 예술강사의 평균연봉은 685만 원이 되었다.
2025년, 평균연봉은 588만 원으로 깎였다.
이것은 최저임금의 1/4수준이다.
그리고 우리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매년 바뀌는 정책으로 직업의 유지가 극도로 불안하다는 현실이다.
윤석열 정권 들어서 예술강사의 삶은 더욱 힘들어졌다.
2023년 학교예술강사지원사업은 국고 예산이 574억 원이었다. 윤 정권 들어 2024년은 287억 원으로 반이 썰려 나가더니, 2025년엔 갑자기 80억 원이 된다. 2년 동안 86% 삭감이라니... 매우 비상식적인 조치다. 학교예술강사지원사업은 존폐 위기에 몰렸다.
윤석열 정권이 예산삭감 명분이랍시고 댄 것은 이러하다. ‘예술교육은 교육 분야이기에 교육부 사업이며 교육을 담당하는 지방교육청으로 이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20년 넘게 진행한 문체부의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예술교육 사업을 갑자기 교육청으로 이관한다는 것도 왜? 물음표만 떠오르는데, 예산을 86% 삭감한다. 이관과 예산 삭감은 무슨 상관인가요? 그 둘을 잇는 논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뭐라도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정말로 없다.
갑작스러운 정책에 각 지방교육청도 반대했다. 그러나 이 정권은 반대에도 굴하지 않고 국고를 삭감하고 예술교육의 책임을 교육청에 떠넘겼다. 이에 각 교육청도 예산을 동결할 수밖에 없었다. 소수 교육청은 있는 힘껏 미비한 증액으로 견뎌내고 있다.
특히 서울시교육청의 대응을 살펴보자. 1:1 매칭 사업으로 정부 예산에 따라 교육청도 예산을 편성하고 있었다. 2025년 정부의 예술강사 인건비 편성은 0원, 이에 따라 서울시교육청도 예산 0원 편성으로 맞대응했다. 그 결과 서울의 학교 예술강사들은 해고 통보를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국고와 서울교육청예산으로 예술강사 인건비로 쓰고 있는데 예산을 책정하지 않다니, 그나마 추경이 된다면 2학기부터는 수업이 가능하겠지만, 불확실하다. 수업을 할 수 없는 예술강사들은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상태로 다른 알바 등으로 생계비를 벌면서 ‘기다리고’ 있다. 2학기에는 사랑하는 학생들과 예술교육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기다리는 방법 밖에 없다.
그러니, 현재 우리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의 예술강사조합원들은 문체부와 교육청에 추경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최소한 2023년 수준의 예산복원을 원하며, 주먹구구식으로 계획조차 없이 학교예술강사지원사업을 문체부에서 교육청으로 이관하는 부분도 반대하고 있다. 이관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과의 충분한 소통을 통해 예술교육의 정상화를 원하는 것이다. 누구보다 현장을 잘 알고 열정이 넘치는 예술강사 당사자들과 소통 없이 어떻게 바른 예술교육이 이루어지겠는가. 그러나, 지금의 윤석열 정권 하에서는 어떠한 논의도 할 수 없다.
윤석열 정권은 예술가를, 예술을 즐길 줄 아는 시민이 늘어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충분히 그럴 만 하다. 예술은 어떠한 비참한 현실에서도 아름다움을, 빛을, 희망을 찾는 일이다. 인간은 삶의 의미를 느끼지 못하면 불행해지는 존재며, 예술은 그런 인간에게 필수적인 것이다. 동굴 속에 모여 살며 늘 굶주림에 시달리고 포식동물의 공포에 떨던 구석기인도 예술을 했다. 예술은 인간 본능이며, 문화 예술을 향유할 권리는 시민의 기본권이다.
모두 알다시피 우리나라의 예술 향유 문화는 매우 척박하며, 특히 지방으로 갈수록 제대로 된 전시 하나, 공연 하나 즐기기 어려운 형편이다. 기회가 주어졌다 해도 그것으로 어떻게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지 방법을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 공교육에서 무상급식을 하듯 예술교육을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며, 아이들뿐 아니라 성인인 지역 주민들에게도 확대해나가야 하는 일이지 축소해야 할 일이 아니다. 이 거친 세상에서 버텨나갈 정신력과 창의력과 자기 주도 능력을 키우는 일이 바로 예술교육이다.
윤석열 정권이 물러나면 이 문제는 해결될까? 예산은 복원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걸로 충분한가? 예술강사가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시수료를 받으며 고용불안정에 시달리는 것이 과연 윤 정권 하에서만 있었던 일이었나? 예술교육이 ‘곁다리’로 취급받고 언제든 삭제될 수 있는 것처럼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던 것이 과연 윤 정권 때문만이었나?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는 윤 정권 이후를 꿈꾼다.
예술교육이 정상화 된 세상이란 이런 것이다.
정부는 예술교육의 미래를 위해 모든 초중고 학생이 예술교육을 받을 수 있게 예산을 대폭 늘린다. 기존 예술강사의 처우를 개선하고 신규 강사를 보충하며, 예술강사의 고용안정을 위해 최소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여 대우한다. 그리고 문화체육관광부든 교육청이든 사용자로서 책임감을 갖고 예술강사 노동자와 마주 앉아 노사협의를 통해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며 함께 예술교육을 설계해 나간다.
이것이 우리 예술강사들이 요구하는 바이며, 꿈이다. 이 꿈이 실현된 세상에선 우리 예술강사들도 학생들도 그 학생들의 가족들도 예술의 넘치는 풍요로움을 즐기며 표현하며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세상을 위해 오늘도 나는 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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