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전후 사태, 수직적 '태극기집단'의 반격

[복지국가SOCIETY] 한국사회, 무엇이 윤석열 사태를 만들었나?

2024년 12월 3일 신흥선진국 대한민국에서 현직 대통령이 뜬금없는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왜? 국회는 대통령 탄핵소추까지 의결했지만 우리 사회는 탄핵찬반 갈등이 국가적 위기로 치닫는 혼란에 처했다. 계엄선포라는 정치행위 자체를 유발한 행위자 주체(인물), 그리고 그러한 행위 결정을 불러일으킨 맥락적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비상계엄 선포라는 정치행위 자체의 의미는 그 목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대통령은 국정운영의 걸림돌로 인식한 야당과 일부 정치권 및 사회단체 등을 반국가세력으로 간주하고 이들 '반국가세력을 척결하기 위해서' 계엄을 선포했다고 했다. 한마디로 삼권분립이 보장된 민주국가에서 행정부 수반이 입법부와 사법부 권한까지 독차지해 독재적 권한을 무소불위로 부려보겠다는, 진짜 '왕놀이'를 해보겠다는 말이다. 비상계엄을 선포한 주인공, 윤석열이라는 인물의 내재적 문제로도 볼 수 있으나 이 글에서는 정치행위의 정치사회적 배경론을 집중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소용돌이형' 대통령 권력집중제를 허용하는 현행 헌법

그는 언론 등에서 민주적 토론 자체를 할 줄 모르는 '꼰대형 리더'로, '권총을 든 5살 꼬마'로 표현됐다. 윤석열은 파시즘적 절대권력을 국가적 비전 달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개인적 욕망 차원에서 맛보고자 했던 전근대적 사고를 가진 미성숙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선진국에서는 사례를 찾아볼 수 없는, 평시의 비상계엄 선포행위를 저지르게 한 사회적 배경은 무엇일까? 정치체제는 한 국가의 정치시스템에 대한 통칭으로 국가형태 및 체제, 정치적 조직과 형태를 아우르는 포괄적인 개념이다. 이는 누구나 알 수 있듯이, 그 나라의 당시 헌법체제로 정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현행 '87년 헌법체제는 1987년 6월 민주항쟁에 힘입어 만들어진 것으로 대통령 직선제와 지방선거 복원 등의 민주주의를 부활시켰다. 그러나 문제는 제왕적 대통령 중심제, 과도한 중앙집권제, 시민의 통제를 받지 않는 엘리트 지배의 대의민주제, 승자독식 선거제를 특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비상계엄사태 발생과 관련해 현행 헌법체제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가? 그것은 바로 대통령으로하여금 더 큰 권력을 탐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안성호 대전대 석좌교수가 말하는 소위 '소용돌이형' 대통령 권력집중제를 허용하는 헌법체제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 헌법은 분단체제 속에 국가안위를 우선적으로 중시해 대통령에게 너무나 많은 권력을 부여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현직 대통령이 과도한 권력 맛에 취해 더 큰 권력, 즉 홉스(T. Hobbes)의 리바이어던(1인 권력자)이 되고자 한다면 나치와 같은 강력한 국가주의 또는 군주제도 꿈꿀 수 있는, 다시 말해 탐욕 작동이 가능한 맹점이 있다. 윤석열이란 인물의 과욕과 어리석음도 있지만, 현행 '87년 헌법체제가 리바이어던 국가체제를 유혹하는 매우 불안정한 체제다.

수평적 사회집단과 수직적 사회집단 간의 충돌

우리나라 정치문화의 배경이 되는 사회구조적 특성을 알아보자. 필자는 직접민주제 운동가로 지역에서 풀뿌리 민주주의와 주민자치 실효화 운동에 애를 써왔다. 현장에서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할 때 권위주의적 특성을 보이는 사람들과는 진전이 안 되는 경험을 많이 가지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터득한 사실은 우리 사회에는 수평적이며 민주적 사고와 행동적 특성을 보이는 집단과 권위적 내지 위계적 사고와 특성을 보이는 집단이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민주적 단체나 인사들에게서도 위계적 질서나 의식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필자에게는 이번 계엄과 탄핵정국에서의 갈등이 이러한 사회집단 간의 충돌로 읽혔다. 수평적 사회집단과 수직적 사회집단의 충돌, 쉽게 말하면 '꼰대문화'와 'MZ문화'의 충돌로 보인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20일이 지난 12월 23일 전·현직 대학교수 123명으로 구성된 '자유와 정의를 실천하는 교수모임'은 이른바 내란사태를 옹호하는 탄핵반대의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윤 대통령 탄핵에 대해 "거대 야권의 선동"이라며 "대한민국의 국권을 흔드는 반국가적 행위"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연세대, 이화여대, 서강대 등의 재학생들은 "교수님 더 이상 추해지지 마십시오. 국민 80%가 공유하는 상식을 교수님들은 저버렸다."라는 문장 등의 학내 대자보를 붙였다. 극명하게 상반된 인식의 갈등이 드러났다.

우리 사회는 수평적 사회로 바뀌는 중이다. 수평적 사회란 어떤 사회인가? 1990년대 말 인터넷의 등장으로 확실한 수평적 사회로의 진전을 예측한 미국 스탠포드대학의 법사학자 로렌스 M. 프리드만 교수는 90년대 말 미국의 사회발전을 평가하면서 <수평적 사회>라는 책을 냈다. 그는 책에서 권위와 위계가 있어 상하간 영향력 차이가 있는 전통적 사회가 수직적 사회였다면, '남녀노소 관계없이 개인적인 자율성 인정 하에 횡적으로 서로 동등한 영향력을 가진 동료적 집단사회'를 수평적 사회라고 설명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90년대 말부터 사회심리학자들은 우리나라 사회구조를 설명할 때 수평적인가 수직적인가 하는 구분 기준을 사용해왔다. 미래학 저널리스트라고 평가받는 <매일경제>의 최은수 기자는 <최은수의 미래이야기>에서 21세기 최고의 대변혁 사건으로서 넥스트 패러다임은 바로 수평사회의 탄생이라고 주장했다.( 2015.6.1) 한국사회는 쌍방향 소통이 중시되는 수평적 조직이 점차로 힘을 얻기 시작하면서 위계적 질서를 근간으로 하는 수직사회는 끝나고 수평적 사회로 바뀌었다고 그는 보았다. 여기서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은 쌍방향 소통을 기본으로 하는 인터넷의 대중화였다는 것이다. 필자도 절대적으로 공감하는 부분이다.

수평적 사회는 개개인이 존중받으며 상호 공감과 공생의 인식 하에 개인의 발전이 모아져야 사회나 국가가 발전한다는 철학으로 형성, 운영되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시대가 기술적으로 발전해갈수록 특히 스마트폰 등의 정보통신 기술이 좋아져 SNS 이용의 정보공유가 쉽게 되면 될수록 수평적 사회는 진전될 수밖에 없다. 이외에도 연구자들은 과학기술 발전에 따른 가부장제 등 사회제도가 변화한 점, 그리고 사회구성원의 지적 능력과 정보 리터러시(정보 파악능력) 향상 등을 동인으로 보고 있다.

사회심리학자들은 이들 수평적 사회집단의 특성으로 인간 동등성 공유, 개인적 자유와 공정성 중시, 민주적 사회관계 유지 등을 들고 있고 반면 수직적 사회집단 특성으론 국가와 같은 공동체 중시, 서열과 상하 권력차이 인정, 공익우선 등을 제시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난해 12월 3일 서울역에 관련 뉴스가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집단을 대표하는 MZ세대와 태극기부대

수평적 사고를 가진 대표적 사회집단으로 MZ세대를 들 수 있고 수직적 사회집단의 대표적 예시로는 태극기부대를 들 수 있다. 90년대 후반 이후 태어난 MZ세대는 쉽게 말하면 인터넷 세대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소통을 중시하고 재미 추구도 대단하다. 이들의 대표적 집단적 가치 특성은 사회적 형평성과 공정을 매우 중시한다는 점이다. 최순실의 딸 정유라 씨의 입시 특혜나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의 딸 조민 씨의 입시 부정에 엄격했던 이들인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한편 태극기부대는 경험을 중시하는 가운데 친일적 성향과 친미 및 반공주의, 그리고 국가우선주의를 근간으로 행동한다. 이들은 개인적 가치 보다 집단적 가치, 국가이익을 중시해 위계와 권위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반국가세력을 퇴치해야 한다는 상부 특권층의 주장에 부당여부를 따지지 않고 추종하는 특성을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를 집단주의가 강하고 상하간 위계적 권력차이를 인정하는 수직적 사회로 보았던 과거와 달리 90년대 후반부터 학계에선 한국사회를 수평적 사회로 보기 시작했다. 1999년에 제조업체 직장인들과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규석·신수진 실증연구에서 이미 응답자 848명 중 74%, 즉 3분의 2 정도 이상이 수평적 사회집단의 사고를 하고 있음을 보였다. 필자도 강단에서 동일한 문항으로 2024년 퇴임할 때까지 격년으로 조사해왔는데 수평적 사회 가치관을 가진 대학생들의 비중은 대략 80%선으로 나타났다. 젊은 층이니 다소 높게 나온 측면도 있을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현실적 상황에선 크게 달랐는데 속마음과는 달리 실제 현장에서는 여전히 전통적인 예의를 지켜야 하는 등 위계적 인간관계에 적응하는 모습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비율이 50%가 넘는 수준이었다.

늙어가는 어둠이 어찌 새벽을 여는 젊은 햇살을 막을 수 있겠는가?

아무튼 우리 사회는 수평화로 변화해가고 있다. 갈등이 생기고 충돌까지 발생하는 지점을 살펴보자. 사회집단 간의 인식차이 존재는 갈등 유발의 소지가 된다. 수평적 사회 특성을 가진 세력이 점차로 커져가고 수직적 사고를 가진 세력이 사회전체의 비중에서 적어진다고 느껴질 때 어느 쪽에서 위기의식을 가질까? 당연히 줄어드는 세력에서 위기감을 더 가질 수밖에 없다. 그들은 수직적 사고를 가진 채 확실한 이데올로기(반공주의)와 굳건한 종미로 나라를 지켜왔고 근대화의 성공을 맛본 세대이다. 이들 수직적 사회집단이 쳐다보기엔 개방적이고 개인적 자유와 가치를 최우선으로 하는 MZ세대를 위시한 민주진보세력은 가만히 두어선 안 되는 위험한 사회집단이다. 주변 어르신들의 말씀이기도 하다.

민주진보세력과 젊은 세대는 국가 의식이나 공동체의식도 없이 이기적이고 힘든 일은 하지 않으려는, 다시 말해 자기네들과는 너무 다른 집단으로, 잘못된 방향으로 달려가는 망아지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는 것이다. 이번 사태는 바로 이렇게 위기를 느낀 수직적 사회집단의 반격이다. 이들 세력이 느닷없는 비상계엄 선포, 그리고 그 비호세력으로 등장했다.

필자가 작금의 사태를 수직적 사회와 수평적 사회의 충돌로 분석하면서 지적하고픈 중요한 판단 포인트 두 가지는 이렇다. 첫째, 역사적 흐름상 수많은 순행과 역행의 역사적 사건이 존재해왔다는 사실 속에 수직적 사회집단의 반격도 이러한 역사적 흐름 속 또 하나의 역행적 반동이다. 둘째, 이러한 반동적 보수주의 발호는 세계적 흐름상 어느 곳이든 유사성을 가질 수밖에 없고 자연스런 충돌이지만 미래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

현재는 충돌지점에 있지만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역사는 무엇인가?>의 저자 카(E. H. Carr)가 인용한 위대한 과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말한 것처럼 고풍스런 표현대로 '그래도 그것은 움직인다.' 세상은 이전과 다르게 더 확실하게 민주화가 진행되어 직접민주제를 선호하는 수평적 사회구조로 변화해갈 것이다. 늙어가는 어둠이 어찌 새벽을 여는 젊은 햇살을 막을 수 있겠는가?

12.3 내란 사태와 이후 혼란, 그 원인 분석이 상기와 같이 가능하다면 처방전은 쉽게 나온다. 사회구조는 수평적 사회로 더 진전될 수밖에 없기에 고정 상수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핵심은 헌법체제이다. 리바이어던을 부르는 과도한 권력집중형 체제를 고쳐야 한다. '87년 현행 헌법은 수직적 사회구조 속에서 나온 것이다. 개헌을 하되 이 시대 '수평적 사회구조에 맞는 분권형 헌법체제'로 바꿔야 한다. 단순히 제왕적 대통령 권한을 내각제나 이원집정제와 같이 위정자 간의 분권으로 완화하면 수직적 체제에 머문다.

주권자인 국민과 위정자 간의 분권, 즉 주인과 대리인 간에 수평적 권한 배분으로 이루어진 헌법이 필요한 시대라는 말이다. 적어도 국가적 중대안건은 국민의 집단지성을 활용하는 준직접민주제를 도입해야 한다. 그리고 수평적 사고와 행동을 할 줄 아는 대통령을 뽑으면 오늘날과 같은 갈등은 훨씬 줄어들 것이다.

*조규호 님은 서원대 경영학부 교수를 정년퇴임하고, 현재는 '시민의회전국포럼' 기획운영위원, 충북민회 등 직접민주주의 활성화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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