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민주당, 남태령에 선 여성들 마주할 자격 없다"

[전진하는 여성들과 멈춰있는 국회 ①]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장

여성 청년들이 광장에 우뚝 섰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 계엄 선포로 촉발된 민주주의의 위기 상황에서 여성 청년들이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선봉장에 섰다. 이들은 깃발 대신 응원봉을 들었고, 걸그룹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불렀다. '페미니스트'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여성 청년들의 목소리가 광장에 울려퍼졌다.

여성 청년들은 칼바람이 부는 남태령 고개를 지켜냈다. 창문이 깨진 트랙터에 주저앉은 농민들을 위해 이들은 콘크리트 바닥에서 꼬박 밤을 새웠다. 농민들을 고개 너머 용산으로 보낸 승리를 뒤로하고 이들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출근길 시위, 동덕여대의 공학 전환 반대 시위로 향했다. '여성가족부 폐지'를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한 대통령이 촉발한 민주주의의 위기 상황을, '페미니스트' 여성들이 연대를 통해 민주주의의 회복으로 이끈 순간이었다.

정치권은 이들을 '칭찬'했다. 국회에서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은 이들의 상징인 '응원봉'을 함께 들기도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국회에는 본인을 '페미니스트'라고 당당히 말하는 정치인 하나 존재하지 않았다. 광장에 선 여성들은 '다시 만난 세계'로 갈 수 있을까. <프레시안>은 광장에 선 이들을 제도권 정치가 어떻게 수용해야 할 지에 대한 고민을 담아 연속 인터뷰를 연재한다.

비상 계엄이 선포된 직후 여성 청년들은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을 외치며 응원봉 불빛으로 광장을 가득 메웠다. '여성가족부 폐지'를 내세워 여성혐오에 편승했던 윤 대통령이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여성 청년들에게 전복당한 순간이었다. 지난 대선 더불어민주당에 합류했던 '추적단 불꽃'의 박지현 전 비대위원장은 "지금이 윤석열과 이준석이 만들어낸 '페미니스트 혐오'가 잘못되었다고 말할 때"라고 힘주어 말했다.

지난 10일 <프레시안>과 만난 박 전 위원장은 "윤석열과 이준석, 그리고 일부 정치 세력은 페미니즘에 여성 우월부터 시작해서 남성을 혐오하는 이상한 이미지를 페미니즘에 덧씌워왔다. 지금이 페미니즘에 덧씌워진 그런 오해들에서 탈피하는 시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특히 "민주당도 그 오해를 같이 탈피해내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300명의 국회의원 중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국회의원은 단 한명도 없는 국회의 현실에 대해 박 전 위원장은 "말도 안 되는 상황"이라며 "민주주의를 지키고 수호하는 사람들이 2030 여성이라는 것을 이번 기회를 통해 확인하지 않았나. 우리가 이야기하는 페미니즘은 적어도 화장실 갈 때 불안하지 않게 해달라는 것, 모두가 더 안전하게 살아가자는 너무나 당연한 의제들"이라고 말했다.

▲지난 10일 박지현 전 민주당 비대위원장이 <프레시안>과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 ⓒ프레시안(한예섭)

여성 청년들은 왜 광장으로 나왔을까. 그들이 남태령 고개에서 일면식도 없던 농민들과 연대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박 전 위원장은 그 답을 '분노와 간절함'에서 찾았다. 그는 "안 그래도 지금 내가 내 자리에서 살아가는게 힘든데, 계엄으로 인해 민주주의까지 훼손된다면 진짜 낭떠러지 밑으로 떨어질 수 있겠다는 분노와 간절함이 이들을 광장으로 이끌지 않았을까"라며 "어떻게 보면 분노의 임계치가 달하면서 그 분노가 연대의 모습으로 뿜어져 나왔던 게 남태령이었다"라고 말했다.

남태령의 승리는 여성 청년들에게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청년 여성들은 경찰 차벽에 의해 서울 진입이 가로막힌 농민들의 트렉터가 이동할 때까지 밤을 새워 연대했고, 동이 터오르며 농민들은 이태원 고개를 넘을 수 있었다. 박 전 위원장은 "여성들이 늘 약자로만 호명받다가 누군가를 지켜줄 수 있는 집단으로 호명된다는 게 뿌듯했다"며 "우리 사회에서 50대 남성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지위와 20대 여성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지위는 너무나 다르지 않나. 특히 저는 국회 안에서 그 간극을 너무 많이 느껴왔다. 그래서 남태령에서의 장면 자체가 남다르게 느껴졌다"고 회상했다.

윤 대통령이 체포되며 조기 대선이 점쳐지는 가운데, 민주당은 남태령에 선 여성들의 선택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묻자 박 전 위원장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의 민주당으로서는 그럴 자격이 없다. 민주당은 지난 20대 대선 당시 수많은 여성의 표를 가져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 민주당이 보여준 모습은 2030 여성이 원하는 정책이나 아젠다에 부응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민주당이 반성 하고 더 나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 여성 청년들이 원하는 정치의 모습이 무엇인가에 대해 민주당이 응답해야 할 때다."

특히 민주당도 윤 대통령과 이준석이 만들어낸 '안티페미(反여성주의)'에 편승했던 과거를 반성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민주당에서도 안티페미 기류가 주축이 돼왔다. 지난 20대 대선을 돌이켜보면 초반 김남국, 김용민 의원이 주축이 되어 소위 '이대남'을 위한 전략을 계속 해왔다"며 "이재명 당시 후보의 닷페이스, 씨리얼 인터뷰가 취소됐고 남초커뮤니티인 에펨코리아에 '펨둥이들 안녕?'이라는 제목의 글을 쓰고, '광기의 페미니즘을 멈춰달라'는 글을 공유했다. 그러니까 그들을 대상으로 한 전략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런 반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 이재명, '백래시 분열의 정치'에 올라타나?)

만약 민주당이 반성하지 않는다면, 한겨울 거리로 나간 여성들의 분노는 민주당을 향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박 전 위원장은 "이 겨울에 거리로 나가본 사람은 동감할 것이다. 너무너무 춥다. 뭐라도 해야 해서 광장으로 나가는 그 간절한 마음에 민주당이 응답하지 않는다면 '너희를 위해 이 추운 계절 싸운 게 아니다'라는 분노를 듣게 될 것"이라며 "민주당이 앞으로도 페미니즘을 배척한다면 국민에게 선택받지 못할 것이다. 이제는 깨달아야 한다. 더 이상 국민의힘 뒤에 숨을 수 없다"고 했다. 다음은 박 전 위원장과의 일문일답.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인근에서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주최 메리퇴진크리스마스 민주주의 응원봉 콘서트가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프레시안 : 박 위원장은 지난 대선 텔레그램 n번방 추적단 '불꽃' 활동가로 민주당에 들어와 당시 윤석열 대선 후보와 국민의힘의 '갈라치기' 정치와 맞서 싸웠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2030 여성들의 정치 참여가 높은 것이 당시를 생각나게 한다.

박지현 : 이 나라에 태어난 여성은 태생적으로 진보적일 수밖에 없다. 한국 사회를 살아가면서 '내가 언제 죽을지도 모른다'는 위협을 느끼며 사회가 안전하지 않다는 걸 체감해왔다. 세월호, 이태원 참사 그리고 최근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까지 정부의 역할이 비어있는 것을 목격하면서 2030 여성들은 분노와 불안을 가슴에 안고 살았을 것이다.

그렇게 일상을 살다가 분노와 불안이 터져나온게 12.3 계엄 사태다. 지난 대선에서도 윤석열 대통령은 여성들을 노골적으로 배제하고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겠다는 정책을 펴지 않았나. 여성 청년들의 정치 참여는 '더는 나의 목소리를 잃지 않겠다, 더는 나의 자리를 뺏기지 않겠다'는 처절한 외침이라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이번 탄핵 시위에서 여성 청년이 주축이 되었다는 보도가 쏟아져 나오는데, 특히 남태령 시위가 기억에 많이 남는다. 농민들이 경찰에 의해 진압 당하는 모습을 보고 여성 청년들은 밤새워 그 자리를 지켰다.

박지현 : 저도 화들짝 놀라 22일 아침 남태령으로 갔다. 다른 현장의 여성 청년 비율이 70% 정도라면, 남태령에는 여성 청년들의 비율이 80~90%로 압도적으로 컸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이미 2030여성들은 민주시민으로서 연대하고, 함께 싸우면서 다른 사람을 지키려고 하는 마음이 늘 마음 속에 있어왔다는 것을 느꼈다. 어떻게 보면 분노의 임계치가 달하면서 그 분노가 연대의 모습으로 뿜어져 나왔던 게 남태령이었다. 나이 지긋하신 농민들이 트랙터를 타고 이태원으로 넘어가는 길에 우리에게 활짝 웃으면서 인사를 하고 갔다. 그 모습을 보는데 되게 뭉클했다.

여성들이 늘 약자로만 호명을 받다가 누군가를 지켜줄 수 있는 집단으로 호명된다는 게 뿌듯했다. 우리 사회에서 50대 남성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지위와 20대 여성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지위는 너무나 다르지 않나. 특히 저는 국회 안에서 그 간극을 너무 많이 느껴왔다. 그래서 남태령에서의 장면 자체가 남다르게 느껴졌다. 또 2030 여성들이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모두의 광장에서 주축이 되었다는 것이 감격스럽기도 했다.

프레시안 : 왜 여성 청년들이 광장에 많이 나왔을까.

박지현 : 여성들이 발언대에 올라가서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각자의 자리에서 힘든 삶을 살고 있다. 계약직 노동자로서 본인의 자리를 위협받는 사람, 퀴어로서 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 수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늘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사람. 비교적 살만한 사람들은 그렇게까지 많이 나오지 않은 것 같다. 그래도 지금 내가 내 자리에서 살아가는게 힘든데, 계엄으로 인해 민주주의까지 훼손된다면 진짜 낭떠러지 밑으로 떨어질 수 있겠다는 분노와 간절함이 이들을 광장으로 이끌지 않았을까.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간절함이 가장 큰 원동력이었던 것 같다. 윤 대통령에 대한 기존의 2030 여성들의 분노와 우려는 애초부터 컸다. 그가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그런 분노들이 쌓이고 쌓이다가 그걸 표현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하나의 자리가 된 것이다.

▲윤석열 구속을 촉구하며 트랙터·화물트럭 등을 타고 상경하던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봉준투쟁단을 경찰이 막았다는 소식을 들은 시민들이 2024년 12월22일 오전 서울 관악구 과천대로 남태령고개 인근에 모여 경찰에 철수를 촉구하고 있다.ⓒ세상을 바꾸는 네트워크

프레시안 : 동시에 여성들이 광장에 갑자기 등장한 것처럼 주목하는 시선을 어떻게 봤는지 궁금하다. 지난 대선이 전부터, '미투' 국면의 서울시장·부산시장 선거에서도 여성 유권자들은 유의미한 정치적 움직임을 보여왔고 광장에서 목소리를 내왔는데, 여성들이 갑자기 광장에 등장한 것처럼 보는 시선에 대한 지적이 나왔다.

박지현 : 늘 그랬다. 우리 사회가 2030 여성들을 대하는 시선이 늘 그래왔다. 민주당에서도 '경제는 잘 모르지만 돈은 벌고싶다'는 현수막이 논란된 적이 있었는데, 정치권의 그릇된 청년 인식도 그런 언론 보도들이 나오는 한 축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는 청년 세대를 경제도 사회 문제도 잘 모르고, 정치에 관심 없고, 본인들 각자 살아가기 바쁜 경험 없는 새내기들로만 봐왔었는데, 2030 여성들은 지난 서울·부산시장선거에서도 그렇고 민주주의 시민으로서의 권한을 행사하고 정치적으로도 행동해왔다.

조금 더 시간을 돌려서 3.1 운동 시대로 돌아가보면, 유관순 열사 빼고 여성 독립운동가를 이야기 해보자고 했을 때 5명 이상 얘기할 수 있나. 남성 독립운동가들은 머리에 떠오르는데 여성은 떠오르는 이름이 없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여성들은 민주시민으로서 이 사회에 목소리를 내왔는데, 이 사회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민주시민의 한 사람 몫으로 취급해왔는가. 원래 여성들은 그래 왔었고, 싸워왔던 주체다.

프레시안 : 이준석 의원은 이 상황을 또 다시 갈라치기의 소재로 사용했다. 남자 청년들이 이번 시위에 적었던 것은 군대에 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여성의 정치 참여를 폄훼했다. 여성의 정치 활동을 왜 '갈라치기'로 소비한다고 생각하나.

박지현 : 본인이 '갈라치기 정치'를 통해 인지도를 쌓고, 그렇게 정치활동을 해왔다. 그렇게 힘들게 국회의원이 되었는데도 아직까지 그 전략을 고수하는 게 굉장히 안타깝다.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로 국가가 이렇게 위기에 빠졌는데, 그 상황 속에서도 목소리 내는 여성 청년들과 남성들을 비교해서 20대 남성들 20%가 군대에 가 있어서 그렇다? 수치 자체도 틀렸지만 사회 현상을 제대로 바라보는 눈이 그에게는 없다.

여성 청년들이 광장에 나간 것은 민주주의를 더는 훼손시키지 않겠다는 결의이자 다짐이다. 광장에서 남성 청년들도 보았다. 다만 그 수에 비해서 여성 청년들이 훨씬 더 많은 수로 나왔다. 이준석 의원과 그를 지지하는 일부 남성들은 본인들이 선두에 서서 윤석열을 지지해왔지 않은가. 그들에게는 윤석열의 탄핵을 이야기하는 광장이 과거의 자신을 반성해야 하는 일, 납득하기 어렵고 마주하고 싶지 않은 본인의 모습을 마주해야 하는 일일 것이다.

프레시안 : 사실 탄핵 시위로 여성들의 움직임이 주목받고 있지만 그간 국회에서 여성 이슈에 대한 정책적, 정치적 논의는 전무하다시피하지 않았나. 국회 안에는 페미니스트 의원이라고 자처하는 이들도 전무했다.

박지현 : 19대 대선에는 문재인 당시 후보에게도 페미니스트 정치인이냐고 물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페미니스트냐고 묻는 게 '너 일베야?' 라고 묻는 것과 같은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 되어가고 있다. 페미니스트라고 했을 때 정당을 가리지 않고 공격받는 대상이 되다 보니 본인을 페미니스트라고 지칭하는 게 쉽지 않다. 하지만 저는 적어도 정치인이라고 한다면, 욕을 먹더라도 본인의 생각과 이념을 밝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국회의원 300명이 페미니스트인 게 당연한 건데 지금은 그 300명 중에 한 명도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자처하는 사람이 없다는 게 말도 안 되는 상황이다.

미국, 영국에서는 정치인에게 페미니스트냐고 물었을 때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정치인에게 페미니스트냐고 물었을 때 '아니'라고 대답할 사람들이 더 많다. 저는 '페미니스트'에 대한 재정의를 국회 차원에서 다시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이제 이 이야기를 다시 할 때가 되었다. 지난 20대 대선에서 윤석열과 이준석이 만들어낸 페미니스트 혐오가 너무 크다. 이젠 다시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때다. 윤석열의 비상계엄부터 시작해서 그의 모든 행적이 잘못됐다는 것을 밝히고, 페미니스트를 재정의하면서 모든 국회의원들이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국회를 이번 사태를 계기로 만들어내야 하지 않을까.

프레시안 :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그들이 만들어낸 '페미니스트 혐오'도 전복해야 한다는 것인데,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왜냐하면 '페미니스트 혐오'는 비단 윤석열과 이준석만이 만들어 낸 것은 아니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소위 '이대남'을 위한 정책이라며 그 흐름에 편승하려는 움직임이 있지 않았나.

박지현 : 최근 전 나꼼수 멤버인 유튜버 김용민씨가 광장에서 '페미니스트들은 본인의 정체성에 대해서 얘기하지 말아라, 왜 본인이 페미니스트인 것을 이야기하느냐'고 말해 이슈가 됐다. 페미니스트 혐오는 사실상 이준석과 윤석열을 넘어서 민주당과 진보 진영 내에서도 계속 되어왔다. 지난 대선에서 정춘숙 전 의원을 비롯해서 여성 의원들이 저를 영입해야 한다고 하고, 제가 이슈가 되니 그 이후에 그들의 입지가 줄어든 것이지 민주당에서도 안티페미 기류가 주축이었다.

지난 20대 대선을 돌이켜보면 초반 김남국, 김용민 의원이 주축이 되어 소위 '이대남'을 위한 전략을 계속 해왔다. 이재명 당시 후보의 닷페이스, 씨리얼 인터뷰가 취소됐고 남초커뮤니티인 에펨코리아에 '펨둥이들 안녕?'이라는 제목의 글을 쓰고, '광기의 페미니즘을 멈춰달라'는 글을 공유했다. 그러니까 그들을 대상으로 한 전략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런 반성이 필요하다.

민주주의를 지키고 수호하는 사람들이 2030 여성이라는 것을 이번 기회를 통해 확인하지 않았나. 우리가 이야기하는 페미니즘은 우리 사회가 더 나아지게 만드는 방향, 우리가 적어도 화장실 갈 때 불안하지 않고 같은 일을 하고 같은 임금을 받고 모두가 더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너무나 당연한 의제들을 이야기 하는 게 페미니즘이다. 하지만 윤석열과 이준석, 그리고 일부 정치 세력은 페미니즘에 여성 우월부터 시작해서 남성을 혐오하는 이상한 이미지를 덧씌워왔다. 지금이 페미니즘에 덧씌워진 그런 오해들에서 탈피하는 시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민주당도 그런 것들을 같이 탈피해내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지난 대선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공유했던 페이스북 게시글. ⓒ이재명 대표 페이스북 갈무리

프레시안 : 민주당이 페미니즘에 덧 씌워진 오해를 탈피해내는 주체가 되어야 하는 이유가 있나.

박지현 :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든 책임자는 국민의힘과 윤석열이지만, 이후에 앞으로 민주주의의 회복을 완수해야 할 주체는 민주당이지 않나. 그 때의 책임자는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이다. 민주당이 이제껏 해온 대로 이전의 전략들을 고수하고 변화하지 않는다면, 여성들로부터 내가 그 추운 날 거리를 나가 민주주의를 수호하려고 함께 싸운 게 이재명과 민주당 좋자고 나간 줄 아느냐는 분노를 들을 수밖에 없다. 곧 7공화국을 마주할 이 시기에 민주당이 앞으로도 페미니즘을 배척한다면 국민에게 선택받지 못할 것이다. 이제는 그것을 인지할 때가 됐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프레시안 : 22대 국회에서는 여성 이슈에 대한 주목도도 현저히 떨어졌다. 지난 해 딥페이크 제작·유포 범죄가 전국적으로 확산하고 있었지만 민주당은 물론 어느 정당 하나 입장을 내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입법 과정에서 민주당 김용민 의원의 '알면서'로 부적절한 논란을 야기했다 다시 수정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박지현 : 최근 제가 내린 정치의 정의 중 하나는 '법이 비어있는 곳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법은 시대에 뒤떨어질 때가 있는데, 그 상황에서 정치는 그 간극을 메우고 그 빈 곳에 있는 시민을 챙기는 일이어야 한다. 딥페이크 문제도 사실상 피해자들을 보호할 만한 법이 아직 제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계속 문제가 발생하고 있지 않나. 그렇다면 정치가 발빠르게 문제에 대처해야 하는데, 이 문제를 대처할 인식과 전문성을 가진 이가 300명 중 한 명도 없다.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할 정치인들이 문제의 근본을 모르니까 '알면서' 논란이 생긴 것이라고 생각한다.

피해자는 피해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모르는 게 딥페이크 범죄의 무서운 점이다. 범죄를 인식하더라도 가해자가 주변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무도 신뢰하지 못하게 된다. 최근 딥페이크 문제를 다룬 국회 법사위와 과방위 회의록을 다 봤는데, 상황을 잘 알지 못하니 기존의 성폭력 처벌법 14조에 딥페이크를 넣는 정도에 그친다거나, 형량을 늘린다거나 하는 방식으로만 법이 개정됐다. 이 문제를 본질적으로 타개할 수 있는 부분의 논의가 이뤄지지 못해 아쉬웠다. 사실 정치권에 들어온 게 디지털 성폭력을 뿌리 뽑기 위해서인데, 디지털 성범죄 문제는 앞으로 심해지면 더 심해졌지 지금의 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이 문제에 있어서는 앞으로도 계속 앞장서서 싸우겠다.

프레시안 : 이번 동덕여대 시위에 대응하는 정치권 태도도 이전과 다르지 않았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지만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동덕여대 훼손에 대한 '법적 조치'를 언급 한 것이 정치권의 첫 목소리였다.

박지현 : 학생들이 왜 싸우는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보다 결과만 보고 법적 조치를 하겠다는 것은 정치인으로서 해야할 말이 아니다. 정치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지 이해와 타협을 바탕으로 해결점을 찾아 나가야 한다. 민주당은 동덕여대 학생들을 보호하고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 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사실 동덕여대 사태에는 많은 문제가 얽혀 있다.

사학재단 비리 논란, 인구 소멸 시대의 대학 통폐합 문제 등 대학이 이런 현실에 맞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도 논의되어야 하는데, 본질적인 부분은 논의하지 않으면서 페미니스트들의 극단적인 싸움으로만 본 것이다. 동덕여대 사건에 침묵하고 있는 정치권을 통해서 우리는 한 번 더 페미니즘 이슈를 다루지 않으려고 하는 정치권의 모습을 확인하게 된 셈이다.

이번에 광장에 나온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동덕여대와 함께 하겠다, 전장연과도 함께하겠다고 연대의 뜻을 밝히는 것을 봤다. 광장에서는 동덕여대 사건이 학내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행동으로 인식되고, 또 그렇게 합의가 됐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광장에 모인 이들과 함께 우리가 체감하는 민주주의의 수용성이 넓어졌다고도 느꼈다.

프레시안 : 지난 비대위원장 시절 공론화했던 박완주 전 의원 성추행 사건도 1심 결과가 나왔다. 1심 결과 징역 1년에 도주 위험이 있다며 법정에서 구속 되었다. 민주당에서는 어떠한 언급도 없었다.

박지현 : 슬프긴 하지만 기대도 안했다. 박완주 전 의원은 제명당했으니까 더는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이 아니긴 하지만, 민주당에서 세 번이나 국회의원을 했던 사람이고 정책위원회 의장까지 했던 사람이다. 무엇보다 피해자는 20년 넘게 민주당에서 적을 두고 일하던 사람이다. 피해자에게 연대하는 말이 한 마디라도 나왔으면 민주당에 실망했던 사람들도 민주당에 희망이 남아있다고 볼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국회의원이나 지도부 일원이 지금의 민주당에 없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정치는 사람을 지키는 일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시 사건의 공론화를 고민하면서 지배적이었던 이야기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으니 선거가 끝나고 하면 안 되냐는 것이었다. 피해자는 이미 대선 때문에 본인의 사건을 공론화하지 않고 참아왔는데 지방선거가 있으니 또 참아달라는 것은 너무나 잔인한 일이고,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우리 당의 당원인 피해자조차 지키지 못하는 조직이라면 선거에서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타협의 여지가 없었던 부분이라 (공론화에 있어) 제가 강경하게 나갔다.

다행이면서도 답답했던 것은, 성폭력 사건에 있어서 남성 정치인들이 이야기하기를 어려워하고 꺼려했기 때문에 당시에 강경했던 저의 태도에 그들도 수긍을 할 수밖에 없었다. 말을 잘못 했다가 본인의 처지가 곤란해지니까. 남성 정치인들은 성폭력 사건을 여성들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보니까, 그들은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여성들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보려는 인식 자체도 잘못됐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10일 박지현 전 민주당 비대위원장이 <프레시안>과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 ⓒ프레시안(한예섭)

프레시안 : 특히 박완주 전 의원의 매 재판마다 피해자 측에 방청연대를 했다고 들었다. 그렇게 한 이유가 있나.

박지현 : 피해자와의 약속이었다. 박완주 전 의원이 마땅한 처벌을 받을 때까지 피해자와 함께하겠다고 약속했다. 민주당은 피해자와 연대한다고 시민들께 공언하기도 했다. 당의 비대위원장으로서 최소한의 도리였고 마땅히 해야할 일이었다. 제가 비대위원장 직을 내려놓는다고 해서 그 약속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피해자와 함께 하겠다는 생각으로 재판마다 방청에 참여했다.

프레시안 : 윤석열 대통령이 체포되고 탄핵 정국이 되면서 조기 대선이 점쳐지는데 민주당은 남태령 고개에 서있던 여성들의 선택을 받고, 그들을 마주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나.

박지현 : 지금의 민주당은 그럴 자격이 없다. 민주당은 지난 20대 대선 당시 수많은 여성의 표를 가져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 민주당이 보여준 모습은 2030 여성이 원하는 정책이나 아젠다에 부응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민주당이 반성 하고 더 나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 청년 여성들이 원하는 정치의 모습이 무엇인가에 대해 민주당이 응답해야 할 때다.

남태령 고개를 지킨 여성들이 원하는 세상과 지금의 민주당이 보여주는 모습은 괴리가 있다. 여성들이 나가서 싸우는 이유는 윤석열이라는 거대 악과 내란 공범을 자처하는 국민의힘을 몰아내기 위함이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더 나은 세상을 원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민주당의 역할을 못한다면 분노의 화살은 민주당을 향할 수밖에 없다. 책임감을 더 크게 느껴야 한다. 남태령의 시민들이 요구하는 목소리를 면밀히 파악하고 받아 안을 준비가 된 사람들이 지금의 정치 이끌어 나가야 한다.

프레시안 : 민주당은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나.

박지현 : 지금까지 외면해온 여성들의 목소리를 받아 안는 것부터 시작이다. 민주당은 이제껏 국민의힘과 적대적 공생을 통해 반사이익을 추구해왔다. 윤석열과 국민의힘이 사라지면, 민주당에는 스스로 어떤 모습을 보일 것인지가 숙제로 다가올 것이다. 이 겨울에 거리로 나가본 사람은 동감할 것이다. 너무너무 춥다. 뭐라도 해야 하니 나가는 그 간절한 마음에 민주당이 응답하지 않는다면, 너희를 위해 이 추운 계절 싸운 게 아니라는 분노를 듣게 될 것이다. 이제는 민주당에 그 화살이 갈 것이다. 지금까지의 민주당이 보여온 모습에 대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

근본적인 제도 개선을 해야 한다. 새롭게 다가올 7공화국에서는 여성 비율이 20%인 국회를 받아들일 수 없다. 기계적으로라도 남녀 동수의 국회를 만들려고 노력해야 한다. 5060 세대에게 보수와 진보의 기준이 검찰 개혁이라고 한다면, 2030 세대에게 보수와 진보의 기준은 차별금지법이다. 제게 비대위원장을 제안할 때 이재명 대표, 송영길 당시 대표, 윤호중 위원장 등이 차별금지법을 입법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하며 설득했다. 이제는 정말로 그 발언을 실천해야 할 때다. 말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야 할 때다. 민주당이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국민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이제는 깨달아야 한다. 더는 국민의힘 뒤에 숨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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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연

프레시안 박정연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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