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부 "쿠팡 택배기사, 노동자 아냐"…"불법경영에 면죄부" 비판

노동계·야권 "배송구역 회수제도·야간노동 등 과로사 원인에 대한 감독도 없었다"

고용노동부가 '쿠팡 택배기사는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니다'라는 판단을 담은 근로감독 결과를 발표했다. 배송구역 회수제도, 야간노동 등 택배기사 과로사의 원인으로 지목받는 문제들에 대한 근로감독은 이뤄지지 않았다. 노동계와 야권은 쿠팡의 불법파견과 과로사 문제에 정부가 나서 면죄부를 준 꼴이라고 비판했다.

노동부는 쿠팡의 물류배송 자회사 쿠팡로지스틱스(쿠팡CLS)에 대한 종합근로감독 결과를 14일 발표했다. 근로감독 실시 분야는 택배기사 불법파견 감독, 산업안전보건 기획감독, 일용노동자 '가짜 3.3계약' 등 기초노동질서 감독이었다.

노동부 "쿠팡 택배기사는 근로기준법상 노동자 아니다"

택배기사 불법파견 감독에서 노동부는 쿠팡 택배기사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되지 않아 쿠팡CLS와 택배기사 간 파견관계도 성립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쿠팡CLS의 택배기사 불법파견 논란은 고 정슬기 씨의 과로사에서 촉발됐다. 정 씨는 쿠팡 택배 영업점과 위수탁 계약을 체결하고 개인사업자 신분으로 택배기사 일을 했지만, 정 씨 계정의 카카오톡에는 쿠팡CLS 관리자의 배송 독촉 요구에 정 씨가 “개같이 뛰고 있긴 해요”라고 답한 내용이 남아있었다.

이 때문에 쿠팡CLS가 택배기사를 직접 지휘·감독하며 실제로는 노동자처럼 일을 시키면서도 계약서상으로는 개인사업자로 위장해 불법파견을 저지르고 있다는 지적이 일었다. 파견법상 원청이 하청 노동자에게 업무지시를 하고 있다면 양자 간에 파견관계가 성립하고, 원청은 2년 이상 근무한 파견 노동자에 대한 직접고용의무를 진다.

하지만 노동부는 쿠팡CLS 직원 및 택배기사 137명을 대면조사하고 택배기사 1245명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분석한 결과 쿠팡CLS의 직접 업무지시가 없었다고 결론지었다. 노동부는 △택배기사들이 화물차량을 소유·관리하며 차량유지비를 부담하는 점 △본인 재량으로 입차시간을 조정할 수 있고 배송이 끝나면 회사 복귀 없이 바로 업무가 끝나는 점 △고정된 기본급이 없이 배송 건당 수수료를 받는 점 등도 택배기사의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은 근거로 삼았다.

산업안전보건 기획감독에서 노동부는 감독대상인 쿠팡CLS 본사, 서브허브, 배송캠프, 택배영업정 등 총 82개 소 중 41개소에서 산업안전보건법령 위반사항을 적발했다. 노동부는 그 중 4건을 사법처리하고 53건에는 과태료 처분(약 9200만 원), 34건에는 시정조치를 했다.

위반사항은 △지게차 운전을 정지하고도 열쇠를 꽂아높은 채 방치 △컨베이어 위 걸림상품 제거 작업 시 작업발판 미설치△감전위험이 있는 컨베이어 충번부 방호조치 미실시 △산재 발생 시 보고 의무 위반 △휴게시설 설치·관리 기준 미준수 △위생시설 미설치 △안전화 및 안전모 미지급 등이다.

기초노동질서 감독에서 노동부는 '가짜 3.3계약' 수백 건을 적발했다. '가짜 3.3계약'은 노동자를 사업소득자로 위장 신고해 4대 보험료 및 퇴직금 등에서 이득을 취하는 위법행위다. 이밖에 1억 5000만 원 임금체불, 노동조건 서면 명시 의무 위반 등 136건의 근로기준법 위반사항도 적발됐다.

노동계·野 "쿠팡 불법경영에 면죄부 준 근로감독"

노동계와 야권은 노동부가 이번 근로감독을 통해 쿠팡의 "불법경영"에 면죄부를 줬다고 비판했다. 클렌징 제도(쿠팡이 제시한 배송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택배영업점의 배송구역을 회수하는 제도), 야간노동 등 과로사의 원인으로 지목받는 문제의 근로감독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왔다.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는 이날 논평에서 노동부가 쿠팡 택배기사의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은 데 대해 “과로사 원인 규명과 해법 마련을 의도적으로 외면한 것과 다름 없다”며 “더불어 택배노동자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보다 법·제도적으로 열악한 지위에 있는 특수고용노동자라는 점을 분명히 해 (택배기사의 노동조건을 챙겨야 할) 노동부 자신의 책임을 덜어내는 꼴이 됐다”고 비판했다.

대책위는 또 "노동부는 이번 근로감독에서 과로와 고용불안을 유발하는 클렌징이나 대리점 재계약 기준인 SLA(서비스수준협약) 평가지표에 대해 감독하지 않았고 당연히 아무런 권고조치나 요구를 하지 않았다"며 "고 정슬기님의 죽음을 설명할 수도, 예방할 수도 없는 수준 미달의 근로감독"이라고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 환경노동위원들도 이날 성명에서 노동부의 쿠팡 근로감독에 대해 "미흡한 수준을 넘어 사실상 쿠팡 측의 불법경영에 면죄부를 주는 근로감독"이라며 △반복적이고 고정적인 야간노동 △'공짜노동'이라는 지적을 받는 택배기사의 분류작업 △노동조합 활동을 이유로 택배기사의 일감을 끊어버리는 부당노동행위 등에 대한 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환노위원들은 "노동부의 근로감독은 사용자에 편향된 윤석열식 노사법치주의라는 것이 드러났다"며 "노동부는 쿠팡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재실시하라"고 촉구했다.

▲ 서울 시내 한 주차장에 세워진 쿠팡 배송차량. ⓒ연합뉴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최용락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