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지하철·조선하청…그들의 '싸움'은 우리와 연결돼 있다

[시민건강논평] 시민사회의 이해와 관심, 지지가 필요한 시점

서울 지하철 1호선 승강장에 들어서면 전국철도노동조합의 태업으로 열차가 지연 운행되니 급한 사람들은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라는 안내방송이 들린다. 준법투쟁을 하루 앞두고는 한국철도공사가 태업으로 운행이 지연될 수 있다는 안내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안전 수칙을 지켜가며 일하는 것이 '태업'이 되고, 큰 잘못인 것처럼 다뤄지고 있다. 언론에서는 출퇴근길 시민들의 불편함을 강조한다. 당장 불편을 겪으니 격한 반응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따지자면 법과 지침을 지켜 안전하게 일하는 것이 '투쟁'이 되는 현실이 문제라 할 수 있다.

전국철도노동조합과 서울교통공사노동조합의 요구사항은 임금인상과 더불어 대규모 인력 감축 추진을 중단하고 안전을 위한 인력을 충원하라는 것이 핵심이다. 이는 단지 노동자들의 편의와 이득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안전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다만 준법투쟁이나 총파업으로 인한 불편이 즉각적인 데 반해, 평상시에는 인력 부족으로 인한 결과가 잘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구의역 참사를 비롯한 관련 사건·사고가 발생해도 인력 확충 등 근본 대책을 마련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하는 사이 노동자의 죽음은 끊이지 않는다.

공공기관이 끊임없이 인력 감축을 시도하고, 그에 따라 노동자들이 위험한 노동 환경에 노출되는 상황은 이번 정부에서 갑자기 드러난 것은 아니다. IMF 이후 정부는 공공기관의 부채를 줄이는 것을 우선하며 민영화를 시도하거나 예산 투입을 줄이고 민간기업과 다름없이 운영했다. 그 가운데 경쟁 원리 도입의 필요성과 재정 적자를 강조하며 이를 정당화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대개 기본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과 질을 저하하고,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며, 여러 측면에서 불평등을 야기시킨다. 국가는 계속해서 재정 적자 액수를 말하며 불안감을 심어주지만, 사람들이 삶에 필수적인 서비스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국가의 책무라는 측면에서, 재정 적자 그 자체를 문제 삼아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 적자 규모가 적정한지 결정하는 것은 단순히 금액의 크기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무엇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다.

국가가 사람들의 생활에 필수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있어서 책임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노동조합 투쟁의 의미를 확장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정도는 국가가 마땅히 책임져야지'와 '이런 건 개인이 알아서 해야지' 사이에서 현재 사람들의 인식과 실천을 후자로 끌고 가려는 것이 국가권력이라면, 노동조합은 그에 맞서는 주요 세력이다. 이런 노동조합의 투쟁은 단지 하나의 사업장 내 노동자의 권리만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국가권력의 책임회피 경향에 대한 사회적 저항이라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자본의 착취에 대항하기 위해 조직된 노동조합은 국가권력뿐 아니라 경제권력에 대한 견제도 수행한다. 철도노조와 교통공사노조와 다르게 이슈조차 잘되지 않지만, 각각의 사업장에서 누군가는 고공농성을, 또 누군가는 단식농성을, 그리고 또 어딘가에서는 삭발투쟁이 이어지고 있다. 한화오션의 하청노동자 억압에 대항해 단식 투쟁에 돌입한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이하 하청지회)는 그중 하나다(☞관련자료 바로가기). 이들은 2년 전 '이렇게 살 순 없지 않습니까!' 피켓을 들고 농성에 들어갔던 노동자들이고, 한화오션은 당시 하청업체 뒤에 숨어 있다가 470억 원 손해배상청구 소송 등 노조를 탄압하던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한 회사다. 최근에는 대통령 부부 공천 개입의 핵심인물이 관여한 것으로 드러나 다시 조명되고 있다.

회사를 경영하는 주체는 대우조선해양에서 한화오션으로 바뀌었지만, 하청노동자를 쓰고 버리는 물건으로 대하고, 노조를 탄압하는 행태는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지속되는 다단계 하도급 관행과 불합리한 계약 속에서, 한화오션은 689억의 영업이익을 올렸지만 하청노동자는 임금체불을 경험하고 있다. 위험한 노동 현장과 그 위험의 외주화 역시 그대로다. 올해만 3명의 하청노동자가 작업 중에 사망했는데, 한화오션은 아무런 책임이나 재발방지책도 마련하지 않았다. 2010년대 조선업 위기는 한편으로 기업에게 구조조정과 노동자 임금 삭감의 기회였다. 경기가 회복되면 다시 이전처럼 대우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채 이후에도 그 처우가 바뀌지 않아, 2년 전 벼랑 끝에 몰려서 파업을 했던 하청지회가 지금은 단식을 하고 있다.

사람을 노골적으로 도구화하는 기업에 대항하는 투쟁의 영향은 단지 그 사업장에 국한되지 않는다. 자본이 노동자에 행하는 상식 밖의 부조리와 경제권력 친화적인 제도의 모순을 드러내는 것은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 논의를 촉발하는 계기가 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아직까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통과되지 못했지만, 노란봉투법 논의는 하청지회의 투쟁과 대우조선해양의 행태로 더욱 활기를 띠었다. 이러한 저항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억압받는 다른 이들에게는 희망을 주고, 다른 자본가들에게는 사람을 도구화하는 행태를 주춤하게 만들 수 있다.

노동조합과 자본을 선과 악으로 구분할 수는 없다. 노동조합이라 해서 문제점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이를테면, 정규직 중심의 활동과 이주노동자 차별 등 타개해야 할 과제들이 있다. 하지만 이는 노동조합을 더 낫게 만들어야 할 이유지, 혐오할 이유가 될 수 없다. 사회 변화가 거시적으로 국가권력, 경제권력, 노동조합을 비롯한 사회권력 간의 권력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 이해한다면, 현재 힘의 구도와 맥락에서 우리 '모두'가 살 만한 사회로 만드는 변화는 국가권력과 경제권력에 대한 사회권력의 통제력 강화로부터 나온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철도노조와 교통공사노조, 그리고 하청지회를 비롯한 곳곳의 투쟁이 더 안전하고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면, 이는 저절로 혹은 그들만의 힘으로 가능한 것은 아니다. 투쟁의 결과가 노동자에게는 허망함을 남기고, 정부와 자본에게는 지금처럼 하던 대로 밀어붙이면 된다는 신호로 남지 않아야 한다. 노동조합의 투쟁에 대한 시민사회의 이해와 관심, 그리고 지지가 필요한 시점이다.

▲지난 2022년 7월 19일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이 경남 거제시 아주동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독(doke) 화물창 바닥에 스스로 용접한 가로, 세로 높이 각 1m 철 구조물 안에서 농성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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