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님 무사와 앉은뱅이 주술사. 이 소름끼치는 비유는 윤석열 대통령 부부의 많은 것을 설명해 준다.
김건희의 국민대학교 박사 논문 "아바타를 이용한 운세 콘텐츠 개발 연구: 애니타 개발과 시장적용을 중심으로"를 읽어봤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제 처가 쓴 논문은 점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고 디지털 아바타 이야기"라고 말했다. 맞다. 디지털 아바타의 궁합에 관한 이야기다. '애니타' 홍보자료를 그대로 베꼈다는 논란은 논외로 한다 쳐도, 이 논문이 사실상 사업 제안서 수준이라는 평가는 틀리지 않다. 이용자가 본인 사주와 관상을 아바타에 반영해 사람들을 '매칭' 해주는 서비스다. (디지털 아바타 이야기라면서, 주역과 음양오행에 대한 설명을 논문에 장황하게 나열한 이유는 여전히 모르겠다.)
장님 무사와 앉은뱅이 주술사는, 이 논문에 따르면 최고의 매칭에 해당된다. 김건희가 말했다. "우리 남편도 영적인 끼가 있어서 나랑 연결이 된 거야." 영적으로 연결된 장님 무사와 앉은뱅이 주술사, 듣고싶어 하는 이 말을 명태균이 딱 집어 해 줬으니, 얼마나 기뻤을까. 사기란 건 '호구들' 몇명의 마음만 뺏으면 된다. 모두를 속일 필요가 없다.
'주술', '점술', '예지력'부터, '무속', '풍수', '미륵'까지 동서고금의 '이교'와 '마법'을 아우르는 김건희의 이 신념들을 어떻게 수식할 수 있을까. 이를테면 주술과 무속은 다르고, 풍수와 점술은 다르다고 한다. 온갖 전문가들이 나와 장황하게 설명하지만, 김건희는 사실 스스로 자신의 능력을 밝힌 바 있다. "웬만한 무당이 저 못 봐요. 제가 더 잘 봐요." 스스로를 '메타 무속'의 자리에 위치시킨 이 비범한 인물의 사고 방식을 우리는 알아야만 한다. 그가 필부필부가 아니고 대통령의 부인이기 때문이다.
막스베버에 의하면 주술(혹은 마법)은 전근대의 상징이다. 베버는 전근대와 근대 사회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탈주술화(disenchantment)를 제시한다. 제사장이 '신탁'을 받아 통치하는 시대를 벗어나 이성을 통해 선출된(혹은 선별된) 시스템에 의한 합리적 통치의 시대로 넘어온 것이다. 현직 대통령의 정신적 지주로 알려진 김건희의 '마법'이 합리적 통치 시스템에 개입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은, 그래서 우리를 전근대의 시간으로 옮겨 놓는다. 현대를 살아가는 대한민국 사람들이 대통령 부부를 보면서 인지부조화를 겪고 있는 원인은 여기에 있다.
인간은 마법과 주술에 의한 통치 방식을 버렸다. 하지만 마법과 주술은 사라진 게 아니다. 막스 베버도 겪지 못한 2차세계대전은 '합리'와 '이성'이 어떻게 실패하는지에 관해 지독한 자기 반성을 요구했다. 칼 융 같은 학자는 그 틈에서 합리로 설명할 수 없는 '영적인 세계'가 사회 안에서 어떻게 의미를 갖는지 규명하려 했다. 사회의 영역에서 '탈주술화'된 마법은 개인화하기 시작했다. 사주와 관상, 궁합과 풍수, 현대인이 점집을 찾고 귀인을 찾는 이유는 인간의 본성이 '합리'로만 이뤄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 주술이 살아남은 이유는 철저히 그것이 '개인화' 됐기 때문이다. '공적인 자리'에 개입하는 주술은 억압하되 사적인 주술은 널리 장려됐다.
그리하여 현대 사회의 '재주술화'(reenchantment)는 두 가지 상반된 의미를 갖는다. 이성의 한계를 보완하는 의미로서 '주술'은 필요하다. 신정 시대를 지나온 종교가 현대 사회에서 살아남은 이유는 어찌됐든 '종교'의 긍정적인 의미가 사회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주술은 양면성을 갖고 있다. 세속화된 종교가 폭력과 사랑을 동전의 양면처럼 모두 품고 있는 것처럼.
'이성의 토대 위에 쌓은 근대 국가들은 전쟁과 같은 어리석은 우를 범하지 않을 것'이라던 가설이 무너진 건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다. 그래서 인류가 베트남전쟁을 맞닥뜨리자 '재주술화'(reenchantment)의 물결이 시작됐다. 문명을 거부하고 인간 본성을 인정하자는 68혁명과 반전 히피 운동은 그 사례라 볼 수 있겠다. 히피 커뮤니티 세례를 받고 자란 스티브 잡스와 같은 인물이 기술과 감성을 접목해 인간 세계를 (좋든 싫든) 새로운 연결의 시대로 끌고 들어온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본다. 지금 SNS 시대를 보라. 어디에 합리와 이성이 공존하는 이상향이 존재하는가. SNS는 기술과 이성이 빚어낸 욕망과 허영, 그것을 먹고 자라는 대중 권력의 주술과 마법의 시대, '재주술화'를 상징한다. 전근대와 현대가 뒤섞인 곳이 바로 현재의 세계다.
이런 시대에 김건희와 같은 캐릭터가 한국 사회에 등장했다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전근대와 근대, 주술과 비주술을 오가며 사업을 성공시키고 박사 학위를 딴 그는 '영적인 끼'가 있는 사업가로, 세속의 '사법 권력'을 가진 남편을 만났고, 이 사회에서 추구할 수 있는 궁극의 '개인적 욕망'과 '개인적 허영'을 주술에 녹여냈다.
그 욕망은 '남편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것', 즉 '권력' 그 자체를 대상으로 한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 검사'로 세속적 스타성을 쟁취한 후 대중들의 지지를 받아 최고 권력을 획득하는 것, 그만큼 가슴 뛰게 하는 일은 없었으리라.
김건희의 문제는 '주술'이 '개인의 욕망' 실현의 도구에서 그쳐버렸다는 점이다. 과거 '주술의 시대'에 제사장(혹은 제사장이자 왕)은 백성의 안위나, 풍년의 기원, 나라의 윤리적 기반 확보 등 '대의'를 위해 주술을 부렸다. 그리고 국가 대사를 결정했다. 세속화하기 전 신정국가들의 제정신 박힌 리더도 '신민'을 앞세우고 신의 뜻을 이 땅에 뿌리내리는 '대의'에 천착했다. 하지만 김건희는 달랐다.
남편이 검사 생활에 적응 못해 로펌행을 택했을 때 김건희가 남편을 다시 검사직으로 돌려보낸 이유는 '돈'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 때문이었다. '큰 일'을 하기 위해선 억대 연봉의 로펌보다 박봉의 검사가 더 유리하다는 걸 잘 알았기 때문이다. 명태균은 김건희의 꿈해몽을 하며 그가 간절하게 원하는 게 무엇인지 정확하게 꿰뚫어 보았다.
강혜경의 주장에 의하면 "해외 방문할 때 (명태균이) '꿈자리가 좀 안 좋다. 비행기 사고가 날 거다'라고 해서 (김건희가) 일정을 변경한 적"이 있다. 그리고 남편이 젊은 여성을 만나 떠나는 꿈은 '대통령이 될 꿈'으로 해석되고, 남편을 솥에 삶아먹는 '윤핵관'으로부터 남편을 구해내야 하는 것이다. 중요한 건 국가대사가 아니라 자신과 남편의 안위, 자신의 안위다. 주술의 가장 나쁜 면을 수렴해 권력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사용하고자 하는 그 마음가짐 자체에서 사람들은 질리고 있다. 공적인 마인드의 부재다.
그러니 대통령이 된 후에 뭘 할지, 이른바 '프레지던시'에 대한 아무런 철학이 없었던 것이다. 후보 토론회에서 윤석열이 '손바닥 왕'자를 새겼을 때의 그 마음은, 대통령직 그 자체에 대한 욕망일 뿐이다. 스스로 왕이 되고자 하는 '주술'에 다름아니다. 손바닥 왕자에서 애국심과 국가관을 읽어낼 수 있는가? 공적 목적이 결여된 주술은 심지어 전근대의 그것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대통령의 페르소나를 흉내내고 있었으니, 급조된 정책들이 설익은 채로 시장에 나왔다가 철회하기를 몇 차례나 반복했던가. '동해 석유'를 캐자면서 갑자기 '국정 브리핑'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었으나 단 한 차례에 그쳤고, 도어스테핑은 '바이든 날리면' 보도에 불만을 품고 없애버렸다. 뜬금없이 '부산 엑스포' 유치를 위해 세계를 누비더니, 119대 19의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고 흐지부지 마무리한다. "청와대에 가면 뒈진다"는 소름끼치는 소리에 반응하는 것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 이른바 '급살'에 대한 두려움의 발로이지, 거기 어디에 '국가관'이나, '애국심'이 엿보이는가.
김건희가 차라리 '4대 개혁의 방향'에 대한 점을 치거나, '예지력 있는 귀인'으로부터 '국가 발전 방향'에 대한 얘기를 경청했다면 조금 쯤은 달리 생각해 볼 여지가 없지 않았을 거다.
이 부부는 자신들의 운명과 욕망을 위해서만 주술에 기댔다. 그들의 '주술'은 이기적 주술이다. '이타적 주술'이 좋다는 건 아니지만, 남을 위해 주술을 부리는 이타적 주술조차도 안 보인다.
대통령 부부에게 이 말을 들려주고 싶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에게 걸린 마법을 풀어내기 위해 온갖 수를 썼지만, 신은 그를 정해진 운명으로 돌려 놓았다. 오히려 운명에서 벗어나려 시도했던 그 방법이, 그를 정해진 운명의 길로 가도록 한 아이러니를 교훈으로 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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