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초 동구라파 붕괴는 나의 인생에 큰 전환을 이루려는 전조(前兆)였습니다. 그 소식은 1980년 광주 5.18 항쟁에서 살아 남은 자의 최소한의 몸짓 - 청년 운동과 교회 운동(민중교회와 전국목회자정의평화평화실천협의회)을 병행하며 지내는 나에게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어요. 새로운 세상을 일구며 사는 것을 시대적 소명으로 알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동구권 몰락 이야기는 새로운 고민과 모색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21세기는 문명대전환의 시대다
그때,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다고 길잃은 한 마리 양이 주인을 만나 집으로 돌아간 것처럼 나도 한 사람을 만나는 은총을 받았지요. 그 사람을 통해 노자(老子)와 무위당(无爲堂) 장일순 선생, 마하트마 간디, 달라이 라마 등 시대의 지혜자를 만나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어르신들께 이번 생(生)에 나에게 주어진 임무가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할 지를 여쭈며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10여 년을 방황하는 중에 전남 영광에 있는 성지고등학교에 근무하면서 1999년 6월, 영성잡지 <월간 풍경소리> 첫 권을 펴내게 되었고, 여류 이병철 선생의 권유로 2003년, 지리산생명평화결사 창립에 합류하게 되면서 한국사회의 새로운 변혁운동에 동참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2009년 순천 시민사회가 힘을 모아 세운 사랑어린학교(옛 평화학교)에 합류, 지금껏 밥을 빌어먹으며 살고 있답니다.
새로운 천 년, 2000년을 맞이하며 온 세계는 설레였고 인류 최초로 한 마음이 되었지요. 인류는 새로운 세상이 올 것이다 라고 예감했고, 그 세상은 인류가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상이 될 것이라 했습니다. 그것의 이름을 ‘문명대전환의 시대’라 불렀지요. 21C를 우리는 그렇게 맞이했고, 그 세상을 영성의 시대 여성의 시대라고도 말했습니다. 그 전환의 움직임은 지금도 지구 행성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지요. 그러다가 인류는 뜻밖에 코로나 펜데믹을 맞게 되고, 급격한 기후변화와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인 인공지능을 통한 혁명의 시기에 들어섰습니다. 저마다 '문명대전환', '문명대변혁 인류혁명시대', '인류문명대변화', '4차문명혁명'이라 부르지만 그 알짬은 같아요. 큰 변화를 겪고 있고, 내일을 알 수 없는 일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는 우선 그 길을 마하트마 간디와 비노바바베에게서 보았어요. 함석헌 선생은 일찍이 1961년 2월 사상계 <간디의 길>이라는 글에서, "나는 이제 우리의 나아갈 길은 간디를 배우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왜 그런가?…이만했으면, 일제시대 및 해방 후 10년 동안 우상처럼 기대해왔던 소위 ‘해외지사(海外志士)’란 것이 무엇이었는지도 환해졌고, 대통령의 독재에 진저리가 나서 젊은 피를 뿌리고 바꾸어 세운 장면(張勉) 내각의 역량도 이만했으면 금새가 드러났고, 4‧19 이후 그 좋은 기회를 가지고도 아무것도 한 것 없이 옥신각신하는 데 해를 지어 보낸 민주당의 뱃속도 드러났고,… 살길을 열려면 이때까지 오던 모든 길을 버리고 근본에서 새 길을 시작하여야 할 것인데, 그 새 길을 찾는 것은 간디가 보여준 길을 따라가는 데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간디가 인도 민중에게 한 것 같은, 깊은 속의 혼을 불러내는 진리운동(사티아그라하satyāgraha, '사티아'는 진리, '그라하'는 장악이라는 뜻으로, 간디와 그의 동역자들이 벌인 비폭력 저항운동)이 아니면 불가능할 것이다."라고 말하셨어요.
삶을 위한 학교, 나의 삶이 나의 메세지다
"나의 삶이 나의 메시지다"라고 말한 마하트마 간디! 그의 자서전, <나의 진리 실험 이야기>를 읽으며 나도 이렇게 살고 싶다, 내 생애 마지막에 '나의 삶은 진리 실험을 하는 것이었다'라고 말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 수십 수백 번 다짐했던 날이 있었습니다. 간디의 장례식에서 네루(Nehru)는 "이는 앞으로 인류가 천 년을 두고 생각할 일이다"라고 했고, 티벳의 자유와 평화, 인류의 행복을 위해 자비를 실천하는 달라이 라마(Dalai Lama) 성하께서도 간디를 정치적 스승으로 모신다 하더군요. 간디 선생의 제자이자 친구였던 비노바 바베(Vinoba Bhave)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관옥 이현주 목사께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비노바 바베가 젊은 시절에 늘 고민하던 것에는 두 가지가 있었다고 해요. 고민한다기보다는 추구한다고 그럴까, 그런 거죠. 자기가 인생을 살면서 해결해야 할, 자기가 감당해야 할 일에 대해서 두 가지 큰 목적이랄까? 그중 하나가 사람들과의 연대입니다. 같은 시공간을 사는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문제지요. 그러니까 이것은 어떻게 보면 바람직한 사회나 세상을 만드는 일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좀더 정의롭고 아름다운 삶을 추구해 이른바 현장에 들어가서 사람들과 함께 살며 바람직한 사회를 만들고자 했지요. 그런데 마음 한편에서는 히말라야로 가고 싶은 거예요. 세속을 멀리 떠나서 궁극적인 가치라든가 그런 것에 자기를 바치고 싶은 욕망이 있었던 겁니다. 그러니까 히말라야로 가고 싶은 마음과 사회변혁에 참여하고 싶은 두 가지 마음이 항상 같이 있었던 거지요. 그러다가 간디 선생을 만나고, 간디한테서 두 가지가 한 사람에게 있을 수 있음을 발견합니다.
그래서 간디 밑에 들어가 공부하고 함께 일하고 그러다가 간디 사후에는 선생이 하던 일을 계속하면서, 간디가 꿈꾸었던 사회를 이루려고 애써보는 것입니다. 자본주의도 아니고 사회주의도 아닌, 두 이데올로기를 함께 극복해 내는 모두 함께 사는 그런 세상 말이죠. 사랑과 실천. 이 두 단어. 실천 밑에 사랑이 바탕으로 된, 그것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볼 수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유명한 부단운동(토지헌납운동)을 벌입니다. 그 운동이 벌어질 때에 불가사의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서 세상을 놀라게 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지금도 계속되어야 할 실험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합니다만, 하여튼 그런 발자취를 남긴 분들입니다."
비노바 바베의 고뇌는 지금 한국사회의 진보적 삶을 추구하며 살았던 사람,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참으로 깊이 생각해 봐야 할 중요한 과제라고 봅니다. 때마침 관련한 문제의식을 다룬 김상봉 교수의 <영성 없는 진보>라는 책이 나왔습니다. 일독해 볼 합니다.
그리고 만나게 된 분이 달라이 라마 성하였고, 그분의 기도를 내가 머물고 있는 (교육)현장에서 실현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그분을 따르는 사람으로서 지금.여기에서 할 수 있는 도리(道理)라 여겼거든요. 물론 그 실험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언제고 공교육 기관들이 내가 '가슴 교육'(Educating Heart) 이라고 부르는 내용에 관심하는 것이 나의 꿈이고 희망이다. 기본적인 학문에 적절히 숙달될 필요를 우리 모두 인정하듯이, 아이들이 학교 커리큘럼으로 사랑, 자비, 정의, 용서 같은 내적 가치들의 필요불가피성을 배우는 그런 때가 오기를 나는 희망한다."(달라이 라마)
그리고 한 사람, 덴마크의 그룬투비를 만났어요. 그는 어릴적 경험했던 죽음의 학교(School for death)를 벗어나 삶을 위한 학교(School for life)를 꿈꾸었습니다. 인간이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꼭 필요한 소속감, 인류애, 생에 대한 기쁨, 열린 정신이 인간의 내면에 든든히 서 있는 기둥으로 존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교육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했지요. 무엇보다 그는 나라를 빼앗기고 사람을 잃은 뒤 문제를 안에서 찾고자 했으며 그것을 말그대로 실천하는 현장을 교육으로 삼았다는 것이 나를 크게 감동시켰습니다.
우리가 만들어갈 새로운 전환의 미래는?
이와같은 인연으로 순천(順天)에서 순천(順天)하며 교육(현장)에서 새로운 꿈을 꾸는 사람들과 어울려 살고 있습니다. 어찌어찌 하며 살고있는데 시절 인연이라 싶은 일이 벌어졌어요. 지속가능한 생태도시 그리고 생태적 인간을 꿈꾸는 지방자치단체장, 순천 시장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강한 추진력을 지닌 단체장으로 이름난 시장이지요. 조례가 만들어지고 전담팀이 새롭게 생기고… 가칭) 순천 생태컬리지 팀원들과 어울려 한국에 있는 현장과 사람을 주마간산(走馬看山)으로 만났어요. 그리고 ‘문명전환, 順天길을 가다’라는 주제로 강연과 공연 마당이 두어달 남짓 펼쳐지고 있습니다.
얼마전에는 ‘이 시대의 광대’라 불리우는 임진택 소리꾼의 ‘백범 김구’ 창작 소리를 듣는 행운을 누렸습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경제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국방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라는 김구 선생의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를 함께 노래하며 힘찬 갈무리를 했습니다.
이제 씨는 뿌려졌으니 싹이 나고 가지가 치솟아 올라 그곳에 생명이 깃드는 그날이 올 것을 믿습니다. 함께 걸어가요 우리 걸어서 별까지! 때마침 새로운 교육, 새로운 대안에 대한 지혜를 모으는 일이 순천에서 열리니 복지국가소사이어티 홈페이지를 참조하시고, 가을빛이 익어가는 때에 선사(禪師)의 시 한 구절 읊으며 인사 올립니다.
천지여아동근天地與我同根이요 만물여아일체萬物與我一體라,
하늘과 땅이 나와 같은 뿌리요 만물이 나와 한 몸이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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