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된 디지털성범죄, 정치는 아직도 '과대평가'라며 거짓 선동"

서지현 "디지털성범죄 대책, '갈아 넣어' 만들었다…더 늦기 전에 법제화해야"

"국민의힘 한동훈 당대표가 법무부 장관에 취임할 시절에 가장 먼저 한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법무부 내 디지털 성범죄 대응 TF를 사실상 해체했었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고 하고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하는 등 일련의 행위들이 우리 사회와 가해자들에게 준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요(김민문정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여성단체들이 지난 10일 서울 마포구 중부여성발전센터에서 '텔레그램 딥페이크 성폭력 긴급 집담회'를 열고 디지털 성범죄의 심각성을 십수 년간 경고했음에도 여성의 신체를 합성해 성적 모욕을 가하는 딥페이크 성범죄를 막지 못한 정부와 정치권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집담회 참석자들은 20여 년간 지적해온 디지털 성범죄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안타까운 현실에 개탄해 발언 중 목이 메어 발언을 중단하는가 하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현장에 참여한 60여 명, 유튜브 생중계에 접속한 500여명의 시민들은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를 내며 성착취에 동조하는 이들을 단죄하고 디지털 성범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의논했다.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여성단체들은 10일 서울 마포구 중부여성발전센터에서 '텔레그램 딥페이크 성폭력 긴급집담회'를 열고 디지털 성범죄의 심각성을 십수년간 경고했음에도 딥페이크 성범죄에 대응하지 못한 정부와 정치권의 태도를 규탄했다. ⓒ프레시안(박상혁)

권김현영 "20년간 이어져온 디지털 성범죄 해결 못한 '정치'에 책임 물어야"

전문가들은 장기간 이어져 온 디지털 성범죄가 해결되지 않는 원인이 문제를 과소평가하는 정치권에 있으며, 시민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그들에게 사태 해결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 소장은 "2004년 6월 카이스트 출신 개발자 15명을 포함한 총 71명의 홈페이지 제작자가 포르노사이트를 제작한 혐의로 적발됐고, 2007년 유명 여자 연예인의 사진을 합성해 성범죄물을 제작한 가해자는 집행유예를 받았다"며 "이 문제(디지털 성범죄)는 오래된 문제였지만 해결하지 못했고 점점 더 확산되는 상황"이라고 짚었다.

또한 권김 소장은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의 '딥페이크 성범죄 위험이 과대평가되고 있다', '카카오톡과 커뮤니티 사이트 등에 전수조사 검열이 들어갈 수 있다' 등 발언과 관련해 "거짓 선동을 벌였다"고 지적하며 "국가는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고 정치인은 시민이 겪고 있는 문제에 제대로 응답하지 않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 사태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정치의 실패를 인정하고 정부에게 대책 마련을 요구할 수 있는 정치적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여진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도 "여성 지인의 사진을 합성해 성범죄물로 제작하고 성적 모욕을 가하는 '지인 능욕'에 대한 문제 제기는 2015년부터 있어왔던 일"이라며 "디지털 성범죄를 젠더권력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으로 이해해야 한다. 딥페이크 성폭력은 '여성혐오 딥페이크'"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현 정부는 디지털 성범죄에서 젠더권력구조의 문제를 삭제하고자 기술적 측면으로만 문제를 강조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에서 디지털 성범죄가 '여성' 분야가 아닌 '디지털' 분야에만 들어간 것이 대표적 사례"라며 "국가는 이 모든 게 젠더 문제라는 걸 인정하고 온라인에서 발생하는 젠더 폭력을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지현 전 검사가 10일 열린 '텔레그램 딥페이크 성폭력 긴급집담회'에서 디지털 성범죄 대응 권고안을 냈음에도 딥페이크 성범죄에 대응하지 못한 정부를 규탄했다 ⓒ프레시안(박상혁)

서지현 "전문가 '갈아 넣어' 만든 디지털 성범죄 대책…더 늦기 전에 법제화해야"

정부가 디지털 성범죄의 심각성을 아예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것은 아니다. 미성년 여성들을 집단 성착취한 'N번방 사건' 이후 법무부는 제도 공백으로 디지털 성범죄에 대처할 수 없는 현실을 타개하고자 2021년 디지털 성범죄 대응 태스크포스(TF)를 조직했다. 2018년 국내 미투 운동을 촉발했던 서지현 전 검사를 포함한 10여 명의 전문가가 모여 대중의 기대를 받기도 했다.

이들은 열띤 논의를 거쳐 반 년 만에 디지털 성범죄에 관한 60개 제도 개선안을 담은 11개 권고안을 발표했다. △성범죄 피해자 지원 제도, △성범죄 영상물 삭제 처리 과정, △가해자 처벌 기준, △성적 괴롭힘 처벌의 법적 근거 마련 등의 내용이었다. 당시 팀장을 맡았던 서 전 검사는 "통상 다른 TF팀들은 위원들을 갈아 넣었기 때문에 가능한 성과였다"고 회고했다.

TF팀의 권고안은 당시 피해자와 피해 조력인들에게 큰 호응을 받았다. 서 전 검사가 변호사단체에서 권고안 내용을 발표했더니 "성범죄 피해자들이 겪고 있는 고통은 국가가 법과 제도를 만들지 않아 겪었던 고통이었다"며 많은 변호사들이 울 정도였다.

그러나 법무부는 2022년 정권이 바뀌자마자 서 전 검사를 인사발령 내고 TF팀을 해체했다. '주어진 임무를 완수했다'는 이유였다. 서 전 검사는 "윤석열 대통령 취임 5일 만에 폐지 통보를 받아 굉장히 서운했다. 이전까지 법무부는 한 번도 업무 진행 상황과 종결 여부를 물은 적 없었다"고 토로했다.

갑작스러운 TF팀 해체로 권고안 내용 대부분은 입법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그 여파로 정부와 수사기관은 올해 벌어진 딥페이크 성범죄 사태에서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 보호에 애를 먹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제22대 국회는 딥페이크 성범죄 사태로 TF팀의 권고안이 다시 조명받자 부랴부랴 입법 활동에 나서고 있다.

서 전 검사는 "이번 기회를 놓치면 제도 개선이 더 늦어질까 마음이 급하다"며 정부와 국회가 11개 권고안을 시급히 법제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아울러 "기술이 굉장히 빠르게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2년 전에 낸 권고안은 이미 늦은 개선책"이라며 "장기적으로 디지털 성범죄를 대응할 수 있는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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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혁

프레시안 박상혁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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