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현장의 비명 "현 상태로 1~2주 이상 못 버텨"

의료현장 비상 상황…노조, 의사 향해 "정부보다 국민이 더 강경, 현실 돌아보라"

의대 증원을 놓고 정부와 의료계의 극한 대치가 지난 20일 이후 일주일 째 이어지는 가운데 의료 현장에서는 비상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은 26일 기자회견을 열어 의사들에게 진료 거부를 즉각 중단하고 의료 현장을 정상화할 것을 촉구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이날 서울 영등포 노조 생명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환자 피해가 속출하는 등 의료 현장 파행 상황을 공개하며 이 같은 입장을 밝혔다.

의료현장 비명 "현 상태로 1~2주 이상 못 버텨"

최희선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의료현장에서 환자와 병원 노동자 모두의 고통이 커지고 있다"며 "의료현장에서는 앞으로 1~2주 이상을 버티기 어렵다는 소리가 나온다"고 호소했다.

최 위원장은 전공의 이탈에 이어 3월부터 의대교수들도 투쟁에 동참할 상황임을 강조하며 "이것은 한마디로 파국"이라며 "환자들에게 최악의 상황, 비극적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대한의사협회(의협) 비상대책위원회는 다음달 3일 '전국의사 총궐기대회'에 전국 의사들이 총동참하라는 입장문을 회원에게 배포하며 "이번 집회는 끝이 아니라, 정부 정책에 항거하는 대장정의 시작점"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이에 노조는 "의대 증원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백지화하기 위해 날짜를 정해 사직서를 내고 일제히 환자를 버려두고 의료현장을 떠난 것은 직업선택의 자유가 아닌 명백한 집단 진료거부"라며 "출근은 하면서 근무는 하지 않는 꼼수 출근도 명백한 집단 진료거부"라고 비판했다.

노조는 이제 병원이 나서 의사의 업무복귀를 설득할 때라고 주장했다.

노조는 "(의사 공백으로 인해 간호사가) 불법의료행위에 내몰리는 상황을 심각하게 우려한다"며 "병원과 전임의, 교수 모두 조속한 진료 정상화를 위해 전공의들에게 조속한 업무복귀를 설득해 달라"고 호소했다.

▲최희선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이 26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보건의료노조 생명홀에서 열린 '의사 진료거부 중단과 조속한 진료 정상화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금 정부보다 강경한 건 국민"

노조는 의료계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우선 노조는 '의사가 부족하지 않다'는 의협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노조는 "의사가 부족하지 않다는 주장은 의사만이 하고 있다"며 "보건의료노조가 지난해 12월 12일 전문 여론 조사기관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국민의 93.4%가 의사가 부족한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고 했고, 국민의 89.3%가 의대 정원 확대를 찬성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노조는 "의사 이기는 정부 없다"는 노환규 전 의협 회장 발언을 인용해 "국민 이기는 의사가 되지 말라"고 경고했다.

노조는 "존경하는 의사선생님 앞에 숨 죽이는 환자와 국민이 지금 왜 의사협회와 의사 집단에게 분노하고 등을 돌리는지 한 번쯤 돌아보라"며 '현시점에서 정부보다 더 강경한 것은 국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노조는 의사들을 향해 "국민생명을 위태롭게 하면서 국민과 맞서지 말고 환자들 곁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공의 의존 대형병원 시스템 근본 대응책 내야

노조는 의대 증원 2000명은 필요한 최소 규모임을 강조하며 이는 타협할 수 없는 사안임을 강조했다. 정부 주장과 궤를 같이 했다.

특히 노조는 근본적으로 전공의에 과도하게 의존하며 수익을 올리려는 한국 대형병원의 기형적 인력 수급 형태를 근본적으로 바꿀 방안을 마련할 것을 주문했다.

노조는 "우리나라 대형 종합병원은 전문의 대신 전공의의 값싼 노동력에 의존하는 기형적 의료시스템으로 운영된다"며 "서울대병원(46.2%), 세브란스병원(40.2%), 삼성서울병원(38.0%), 서울아산병원(34.5%),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33.8%) 등 우리나라 의료를 선도하는 상급종합병원 전체 의사의 37.8%를 교육생이자 수련생인 전공의에 의존하고 있는 것은 지극히 기형적이고 비정상적"이라고 일침했다.

일본의 경우 전공의 비중은 10%대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는 "피교육자 신분인 전공의들의 진료거부로 상급종합병원의 진료 기능이 마비되고 있는 현실은 대한민국 의료시스템이 지극히 기형적이고 비정상적임을 웅변한다"고 덧붙였다.

관련해 노조는 정부가 발표한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에 이미 △병원의 인력구조를 전공의 의존에서 전문의 중심으로 전환 △전문의 고용 확대 △교수 정원과 채용 확대 △전문의 고용 확대에 따른 정책 가산 △전문의 업무 효율성 확대와 장기근속 여건 마련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따라서 "수련병원 전문의 인력채용 확대를 요구하는 전공의들이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전면 백지화를 요구하며 진료를 거부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고 전공의들의 주장이 설득력이 없다고 일침했다.

이와 별개로 전공의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은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고도 노조는 주장했다. 이 역시 의사 인력 확충 필요성을 입증하는 사례라고도 지적했다.

노조는 "(한국 전공의들은) 36시간 연속근무와 주80시간 장시간 노동, 계속되는 당직근무, 낮은 보수 등의 열악한 근무환경에 처했다"며 "인건비를 절감하기 위해 전공의 인력을 갈아넣는 기형적인 인력운영체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조는 이어 "더는 지속가능하지 않은 전공의들의 근무 여건은 의사인력 확충의 필요성을 웅변해주는 확실한 증거"라고 주장했다.

▲전공의 집단 이탈 일주일째인 26일 광주 동구 조선대병원에서 전공의 당직실 앞 복도가 한산하다. ⓒ연합뉴스

"의사 없어 간호사가 의사 이름으로 처방전 내는 상황"

한편 노조는 이미 의료 현장에서 환자 생명권은 심각한 수준으로 침해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노조는 이번 사태로 인해 "수술이 50% 이하로 줄어들고, 병상가동률이 50% 이하로 떨어지는 등 의료대란이 벌어지고 있다"며 "당장 수술 받아야 할 환자들의 수술이 기약없이 미뤄지고, 1분 1초가 급한 응급환자들은 치료 가능한 응급실을 찾아 뺑뺑이를 돌고 있"으며 "중증환자들이 방치되어 투석치료와 혈액검사조차 제 때에 받지 못하는" 사태가 의료 현장에서 보고되고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급성기 환자들이 요양병원에 입원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고 개탄했다.

한편 전공의의 이탈로 인해 전임의와 교수들이 업무량 폭증에 시달리고 있으며 "5시에 퇴근해야 할 병원 노동자들이 밤 11시까지 근무하고, 공공병원 노동자들은 토요일·일요일·공휴일 근무까지 감내하고 있다"고 현장의 어려움을 노조는 전했다.

구체적으로 노조에 따르면 의료 현장에서 "EKG(심전도 검사), ABGA(동맥혈액가스 검사), Blood culture(혈액배양검사), PCD(경피적 카테터 배액술), irrigation(세척), sore Dx(욕창 드레싱), L-tube insert(위관 삽입), Foley insert(도뇨관 삽입), chemo port insert(항암포트 삽입), Enema(관장), 채혈, 처치, 정맥주사, 동의서 작성 등 의사가 해야 할 업무들을 간호사, 임상병리사, 방사선사, 응급구조사들이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또 응급실에서 의사 대신 응급구조사들이 환자 치료를 하는 사례, CPR(심폐소생술)을 해야 하는데 의사가 없어 흉부압박과 수동 산소공급 같은 의사 업무를 간호사가 하고 있다고도 전했다.

아울러 "처방권이 없는 간호사들이 의사 이름으로 처방을 내는" 사태까지 발생하고 있다고 노조는 호소했다.

이에 관해 내일부터 정부는 전공의 공백을 메우는 진료 지원(PA)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명확히 해 이들을 법적으로 보호하는 시범사업을 시작하기로 했다.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박민수 중대본 제1총괄조정관(보건복지부 2차관)은 "의료행위가 다양하다 보니 PA 간호사가 할 수 있는 일인지 아닌지 모호한 측면이 있다"며 "정부는 전공의 이탈로 발생하는 진료 공백을 완화하기 위해서 가능한 진료 지원 업무 범위를 현장에서 명확히 할 수 있도록 진료 지원 인력 시범사업 지침을 금일부로 안내하고, 내일부터 시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미 의료 현장에서는 의료진 공백으로 인해 응급환자가 사망하는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이날 대전소방본부에 따르면 지난 23일 오후 12시경 80대 여성이 심정지 상태로 53분 만에 대전의 한 대학병원에 이송됐으나 도착 10여 분 만에 숨졌다.

이 여성은 의료진 부재 등으로 인해 7곳의 병원에서 진료불가 통보를 받았다.

정부 향해서도 쓴소리 "의사 겁박 말고 대화해야"

한편 노조는 정부를 향해서도 현 태도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다. "의사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지 말고 대화를 통한 해법을 제시"하라는 지적이었다.

노조는 "정부가 발표한 2000명 의대 증원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는 필수의료·지역의료·공공의료 위기를 해결하고, 급속한 고령화와 국민들의 의료수요에 대비해 국민생명을 살리기 위한 소중한 마중물"임을 인정했다.

그러나 "의대 증원 추진 방식과 교육의 질 향상 방안, 정책 패키지 세부 내용과 추진 방식, 정책 추진에 필요한 재정 지원방안 등을 보면 우려되는 점도 있고 구체적이지 않은 내용도 있다"며 "정부는 의대 증원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에 반대하는 의사들을 법과 원칙에 따라 처벌하겠다고 압박하면서 벼랑 끝으로 내몰 것이 아니라 즉각적인 대화 자리를 만들어 설득하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우려점을 보완하고 세부 추진방안과 재정대책을 구체화하여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밝혔다.

노조는 또 "정부가 대화와 설득의 자리를 마련하지 않고 면허 박탈, 구속 수사, 법정 최고형 등 강경대책을 언급하며 의사들을 벼랑 끝으로 몰아세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구속 수사와 형사 처벌로 의사단체를 굴복시키겠다는 태도가 아니라 대화를 통해 조속한 진료 정상화를 위한 업무복귀를 설득하겠다는 태도가 바람직하다"고 일침했다.

다만 노조는 전공의들이 제시한 '과학적인 의사 수급 추계를 위한 기구' 설치 필요성은 인정했다.

노조는 "의사 수급 추계는 인구 추이, 고령화 추세, 의료수요도 추이, 의료 이용량 추이, 의대생 배출 현황, 의사인력 고령화와 은퇴 추이, 의료이용체계 변화, 의료인력간 업무분장 등 다양한 요소들을 반영하여 보다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조사를 바탕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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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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