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트리는 아담의 사과나무? 산타는 튀르키예인이라고?

[프레시안books] 마크 포사이스 <크리스마스는 왜?>

크리스마스 시기, 연인이 없는 '솔로부대'들이 종종 하는 푸념이 '12월 23일 저녁에 잠들어 26일 아침에 깨어나고 싶다'는 것이다. 남들이 가족·연인과 함께 설레고 들뜨고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게 배아프다는 얘기. 밸런타인 데이를 '제과 회사의 상술'로 치부하는 것과 같은 애교 섞인 심술이다.

이들의 심통어린 마음에 역사적·문화인류학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책이 나왔다. 냉소적이고 심술궂기로 유명한 나라 영국의, 역시 그렇다고 소문난 직업인 언론인 출신 작가가 쓴 책 <크리스마스는 왜?>(마크 포사이스 지음. 오수원 옮김. 비아북 펴냄)이다.

저자는 우리가 크리스마스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대부분 사실이 아니거나, 누군가가 지어낸 것임을 지적한다. 예컨대 크리스마스는 예수의 탄신일이며 그 날짜는 12월 25일이라는 기본적인 '사실'부터 그렇다.

"신약성서 그 어디에도 예수가 언제 태어났는지 말하는 내용은 없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생일을 축하하지 않았다. 이들은 죽은 날만 기념했다. 생일 축하란 원래 이교도들이나 하는 짓이므로, 생일 따위를 축일로 정해서 지내는 것은 이교도들이나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책 29쪽)

그러면 크리스마스는 왜 12월 25일인가?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이렇다. 초기 기독교도들은 창세기에서 창조주가 '빛과 어둠을 나누었다'는 구절에 착안, 세상이 창조된 때는 빛과 어둠이, 즉 낮과 밤의 길이가 똑같은 춘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예수가 이 땅에 온 것 역시 세상에 빛이 존재하기 시작한 날과 같은 춘분이라고 생각했다.

고대 율리우스력에 따르면 춘분은 3월 25일이다. 그러나 예수가 '이 땅에 온' 날이란 예수의 출생일이 아닌 성모 마리아의 수태고지를 말하며, 따라서 예수는 3월 25일에 잉태돼 9개월 후인 12월 25일에 태어났다고 초기 기독교 신학자들은 계산했다. 이는 서기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결정'된 교리다.

12월 25일은 고대 달력에 따르면 동짓날이기도 하다. 해가 가장 짧아졌다가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는 시기인 태양의 한 주기를 기념하는 날은 기독교뿐 아니라 여러 문화권에서도 의미있는 날이다. 한국에서도 오래 전부터 동지 팥죽을 끓였고, 고대 로마인들도 동지를 태양신 축일로 삼았다.

세계의 많은 곳에서 일어난 일처럼, 다신교 등 전통 신앙이 지배한 세계가 기독교의 치하로 편입되면서 이교도의 전통은 기독교의 풍습으로 대체됐다. 크리스마스는 로마, 즉 당시의 서방 문명세계에서 기존의 태양신 축일을 대체한 것으로 보인다. 니케아 공의회가 환갑을 맞는 시기에 이는 이미 성공적으로 자리잡았다.

"서기 386년이 되자 이미 크리스마스는 '모든 축제의 어머니'라고 불릴 정도로 성장해 있었다. 나치안츠의 성 그레고리우스는 이즈음부터 익숙한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크리스마스가 '과도하게 들뜬 분위기가 되어, 사람들은 먹고 마시며 춤추고 문에 화환을 걸어놓는 등 난리다'라며 영적인 의미가 충만한 본래의 취지를 다시 살려야 한다고 훈계한 것이다. (중략) 크리스마스는 적어도 서기 386년부터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참뜻을 잃은 축제'로 욕을 먹고 있다." (41쪽)

한국에서 2010년대 들어 유행하기 시작한 '어드벤트 캘린더'는 원래 '강림절 달력'이란 뜻이다. 가톨릭 성당을 다녀본 이들이라면 크리스마스 4주 전부터 보라색·분홍색·흰색 촛불을 켜며 성탄을 기다리는 풍습에 익숙할 것이다.

그러나 '크리스마스 4주 전 주일(일요일)'이 아닌 12월 1일부터 25일까지로 날짜를 일률적으로 정하고, 매 날짜에 해당하는 칸마다 사탕·초콜릿을 넣어 꺼내 먹게 한 방식의 '어드벤트 캘린더'는 1908년 독일인 출판업자 게르하르트 랑이 처음 도입했다. 랑은 19세기 초부터 독일 지역에서 집집마다 만들던 강림절 달력을 최초로 대규모로 인쇄해 세상에 내놨다.

크리스마스 트리는 아담의 사과나무? 산타는 터키인?

▲<크리스마스는 왜?> 마크 포사이스 지음. 오수원 옮김. 비아북 펴냄. ⓒ비아북

우리의 집 거실과 거리의 상점마다 장식된 크리스마스 트리의 기원도 예상 밖이다. 크리스마스 트리는 크리스마스 전날, 즉 이브에 고정 상연된 중세의 신비극 소품으로 처음 고안됐다고 저자는 고증한다.

이 연극은 창세기의 아담과 이브 이야기를 재현한 것인데, 크리스마스에 왜 '요셉과 마리아'가 아니라 '아담과 이브'인지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기독교 신학적으로는 완벽히 말이 된다. 예수는 인간의 원죄를 대속한 이다. 그 원죄를 지은 이가 아담과 이브다. 예수 탄생 이전의, 즉 크리스마스 전날까지의 인간은 원죄를 짊어지고 있지만, 예수의 탄생으로 비로소 인간은 죄의 굴레에서 벗어난다.

그렇다면 '아담과 이브 이야기의 배경에 서 있는 나무'란 뭘까. 물론 사과나무다. "과일이 주렁주렁 열린 나무는 낙원 연극의 핵심 요소"(52쪽)임이 당연하다.

크리스마스 이브마다 상연된 이 연극은 중세 프랑스와 독일 등지에서 인기를 끌었으나, 프랑스에서는 종교개혁 이후 종교극을 포함한 모든 연극이 금지돼 실전됐고 독일 일부 지방에서만 이 전통이 살아남았다. 그리고 독일 귀족의 피를 이은 영국 왕실에 의해 영국에서도 크리스마스 트리가 등장했다.

"크리스마스 트리는 몇백 년 동안 독일에서만 찾아볼수 있는 물건이었다. 크리스마스 트리에 촛불을 장식했다는 최초의 언급도 1708년 오를레앙 공작의 독일인 아내가 남긴 것이다. 크리스마스 트리를 영국에 도입한 것도 독일 왕족이었다. 조지 3세의 아내는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웠다." (55쪽)

영국 작가 찰스 디킨스는 "오늘 저녁 나는 아름다운 독일 장난감, 즉 크리스마스 트리 주변에서 옹기종기 모여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구절로 시작하는 에세이를 남기기도 했다. 원조 크리스마스 트리는 산타가 사는 북극 지방의 침엽수도, 교황청이 있는 이탈리아산 소나무도 아닌 '독일산'이었음을 디킨스의 글은 방증한다.

그렇다면 산타는 왜 북극에 살게 됐을까? 산타클로스의 기원이 된 인물은 성 니콜라스로 알려져 있다. 그는 초기 기독교 시기 튀르키예 지방의 주교로, 가난한 이들에게 익명의 선행을 베푼 이다. 그의 유해는 이탈리아로 옮겨져 교회당 지하에 봉헌됐고 유럽 전역에서는 그에 대한 성자 신앙이 유행했다. 그 유행은 네덜란드도 비켜가지 않았는데, 네덜란드어로 성 니콜라스는 '신타클라스'이다.

산타클로스라는 이름 외에 그가 입는 붉은 옷, 순록이 끄는 썰매, 굴뚝을 통해 집집마다 선물을 배달한다는 아이디어는 후세에 조금씩 덧붙여졌다. 크리스마스 이브 밤에 순록 8마리가 끄는 마차를 타고 집집마다 선물을 배달하며 모든 어린이들에게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기원하는 산타의 이미지는 1822년 미국 뉴욕역사협회 회원 클레멘트 클라크 무어의 '크리스마스 전날 밤'이라는 시에서 기원했다고 한다.

산타의 집이 북극권이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저자는 이를 '산타의 이사'라고 표현했다. 1875년까지도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자신의 딸에게 '산타는 달에 있는 궁전에 산다'고 했지만, 1869년 조지 웹스터의 시에서 산타가 북극에 산다는 개념이 처음 제기됐고 이는 시간을 두고 유행하기 시작했다.

현대의 산타 신앙(?)은 대부분 미국에서 그 원형이 정립됐다. 네덜란드계 이민자들에 의해 신대륙의 뉴암스테르담, 후의 뉴욕에서 유행한 산타 구전은 구대륙으로 역수입됐다.

"미국의 산타클로스가 영국에 당도한 것은 1860년대쯤이었다. 산타는 미국의 수출품이었다. 책과 이야기와 그림 형태를 띤 온갖 크리스마스 전통도 덤으로 따라왔다. 참 희한하게도, 산타클로스야말로 미국이 수출한 최초의 위대한 문화 상품이었다." (126쪽)

그리고 아마도 전 세계 어린이들이 가장 사랑하는 사슴일 루돌프는 1939년에야 비로소 등장했다. 1939년생인 배우 오지명·양택조 씨나 손경식 전 대한상의 회장,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처음 맞은 크리스마스까지는 산타는 있었겠지만 루돌프는 없었다는 얘기다. 정말로 최근의 일인 셈이다.

1822년 무어의 시에서 산타의 썰매를 끄는 순록 8마리는 대셔, 댄서, 프랜서, 빅센, 코멧, 큐피드, 돈더, 블릿젠으로 명명됐다. 1939년 미국 시카고의 몽고메리 워드 백화점은 크리스마스 쇼핑을 한 고객에게 나눠줄 아동용 색칠 그림책을 로버트 L. 메이라는 이름의 카피라이터에게 의뢰했고, 메이는 이 그림책의 줄거리가 된 시에서 꼬마 순록 루돌프가 빛나는 코 때문에 따돌림을 받았지만 안개낀 성탄절에 산타에게 안개등이 필요했던 사정 덕분에 '인싸'로 거듭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지어냈다.

이 그림책은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됐고, 6년 후 메이의 처남은 이 시를 바탕으로 노래를 썼다. 참고로 루돌프와 다른 8마리의 순록은 모두 남자 이름이지만, 순록은 수컷의 경우 겨울에는 뿔이 빠지고 봄에 다시 자라난다. 크리스마스에 뿔이 있는 순록은 모두 암컷인 셈. 저자는 이를 놓고 "루돌프는 성전환 순록"이라며 루돌프가 따돌림을 받은 이유가 그의 성 정체성 때문이 아니었겠느냐고 비꼰다.

다음은 크리스마스 만찬. 이웃나라 일본에서 크리스마스는 '치킨 먹는 날'로 알려져 있어 크리스마스 전후에 KFC 등 치킨 프랜차이즈가 엄청난 호황을 맞는다고 하는데, 꼭 치킨이 아니라도 전 세계적으로 크리스마스 만찬은 대부분 고기다.

저자는 중세 유럽의 겨울은 고기가 풍족한 계절이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풀은 마르고 건초는 충분치 않으니 겨우내 건초를 먹일 가축만 남겨놓고 나머지는 추수 후 도축했다는 것. 또 추수가 끝났으니 농부들이 숲이나 늪으로 새를 잡으러 다녀, 크리스마스 절기에는 흡사 '새를 상대로 한 성전'이 치러졌다고 한다. 다만 산업혁명을 거치며 영국의 크리스마스 음식은 '로스트비프와 자두 파이'로 정형화됐는데, 그렇게 보면 오히려 크리스마스엔 꼭 치킨을 먹어야 한다는 일본의 국적불명 풍습이 의외로 크리스마스 전통에 부합할지도 모른다.

"나는 크리스마스 풍습에 냉소를 보내지 않는다"(책 서문)라고 짐짓 물타기를 해봐도 여전히 심술궂게만 보이는 이 영국인 저자의 책을 들춰보며 '그래, 이런 서양 명절 따위'라고 낄낄대는 것도, 책 따위는 외면하고 사랑하는 연인과 가족의 품에 안겨 보내는 것에 못지않게 즐거운 성탄 연휴를 보내는 한 방법일 것이다. 모두에게,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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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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