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명품백', '한동훈 설전' 아닌 '뉴' 서사를 어필해야 한다"

[‘누칼협’의 시대] 전수경·이상윤 노동건강연대 공동대표 좌담 下

'누칼협(누가 칼 들고 협박했나)'으로 요약되는 지금의 세태에서 노동자들이 누군가에게 의지하거나 기대기는 요원하다. 자신이 일하는 노동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은 스스로가 해결해야 하는 식이 되어버렸다. 자연히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지키는 일은 쉽지 않다.

이런 분위기가 고착되면서 노동 현장의 문제를 지적하기란 쉽지 않게 됐다. 문제가 발생해도 자신이 일하는 현장을 개선하기보다는 다른 일을 찾아 떠나는 식이다. 설사 개인이 노동 현장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해도 그 개인이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는 식이다. 일하다 사람이 다치거나 죽더라도 기존 시스템이 유지되는 비결이다.

그나마 노동조합이 있거나, 대규모 사업장일 경우는 개선의 여지가 있지만, 중소사업장이나 노조가 부재한 곳에서는 개선이 더욱 요원하다. 작은 사업장에서 산업재해가 큰 사업장보다 많이 발생하는 이유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있어야 할까. <프레시안>은 첫 회에 이어 두번째 좌담으로 전수경 노동건강연대 공동대표(프레시안 기획위원)와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공동대표(직업환경의학 전문의)와 우리 사회 내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시스템의 문제, 그리고 이는 왜 바뀌지 않는지를 살펴보았다.

아래 좌담 내용.

(관련기사 : [‘누칼협’의 시대] 上 "주69시간, 나이롱 환자… 윤 정부의 약자혐오, 파편화 만들고 있다")

ⓒ매일노동뉴스(정기훈)

"기후 위기 문제 계속되지만 시스템을 바꾸지 못했다"

이상윤 : 지난번에는 한 해를 마감하면서 일어났던 주요 노동이슈를 다뤘다면, 이번에는 현안으로 확 떠오르지는 않았지만, 우리 사회 깊숙이 잠복돼 있는, 장기적으로는 언제든 터질 수 있는 이슈에 대해 점검하고 검토해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것이 어떻게 해결될 수 있는지도 이야기해봤으면 한다.

프레시안 : 그런 이슈가 뭐가 있을지 궁금하다.

이상윤 : 기후위기부터 이야기해보자. 기후위기는 사실 노동자의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폭염, 홍수 등에 취약한 계층이 밖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다.

전수경 : 작년 여름에 비가 많이 와서 물난리가 나지 않았나. 그때 지방 출장을 갔다가 밤늦게 서울로 올라온 날이었는데, 서울 시내 대중교통이 다 마비되었다. 광명역 KTX역이었는데, 당시 물난리 상황을 정리하는 이들이 노동자였다. 역내 물이 역류하는 것을 양동이로 퍼 나르는 청소 노동자도, 온통 도로가 물로 차 있는데도 서울 시내까지 승객을 실어 날라야 하는 버스기사도, 역사 계단과 인도에 바리케이트를 설치하는 이도 모두 노동자였다.

기후 위기 문제는 계속되고 있지만, 우리는 아직 이에 맞춰서 시스템을 바꾸지 못했다. 문제는 계속해서 발생하고 커져가지만, 정작 이를 해결하고, 기존 시스템을 떠받치는 일은 오롯이 육체노동자, 즉 가장 밑단에 자리 잡은 노동자의 몫으로 남겨진 듯하다.

이상윤 : 우리가 코로나를 겪으면서 명확히 드러난 것 중 하나는 재난 상황에서 그동안 보이지 않던 ‘노동’들이었다. 그간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이 사회를 운영하고 집행하는데 매우 중요한 노동, 즉 필수 노동자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들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일을 하지만 임금이나 노동의 질, 대우 등이 매우 낮았던 게 사실이다. 그나마 코로나를 거치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흐지부지됐다.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기후 위기에 따른 노동자 문제에서 우리 사회가 안아야 할 과제가 있다면 받아 안고 해결하는 노력을 해야 하지 않나 싶다.

전수경 : 코로나 시기에도 필수 노동자 이야기가 나왔지만 말만 무성한 뒤, 사그라들었다. 기후 위기에서도 그런 전철을 밟지 않도록 광범위한 분야에 퍼져있는 노동자들을 사전적으로 찾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그들이 우리 사회에서 부각되는 경우는 사망하거나 병에 걸릴 때다. 그렇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으로 하는 게 아니라 사전적으로 그런 위치에 놓인 노동자들을 물색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프레시안 : 기후 위기로 인한 문제로 홍수를 이야기했는데, 폭염도 문제인 듯하다. 한여름 더운 날씨에 야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일사병 등으로 죽거나 병원으로 이송되는 일이 비일비재해졌다.

이상윤 : 폭염 관련해서 그간 한국 사회에서도 이를 심각하게 여겼다. 사회적 논의도 활발히 이뤄졌다. 우리나라 재난기본법에 폭염은 재난으로 들어가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한 행정적 대책들이 마련되고 있다.

전수경 : 폭염 관련해서는 노동부 중심으로 가이드라인 등이 제시되고 있다. 하지만 현장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일반론적으로 나오는 대책들이라 매우 미흡하다. 일례로 일정 온도 이상 올라가면 작업을 중단하라고 하는데, 그것이 일선 현장에서 가능하겠나.

▲ 전수경 대표. ⓒ프레시안

"사고 발생하면 전체 시스템 살펴봐야 하지만..."

이상윤 : 대책들이 실제 현장에서 이행되기에는 상당히 어렵다. 현장에서의 권력구조는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노동자 스스로 자신의 노동조건을 결정할 수 없다. 그렇기에 폭염이라고 안전수칙을 지키며 일할 수 없는 구조다.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면 이것이 권고안에 그치는 게 아니라 톱다운 방식으로 기업들에게 반드시 지키라고 해야 한다.

프레시안 : 쿠팡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폭염으로 정신을 잃고 병원에 실려 간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럴 경우, 노동부는 회사를 조사한 뒤, 만약 폭염 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으면 기업에 과태료를 부과하든 조치를 취한다. 이것이 지금까지 운영되는 시스템이다. 문제는 노동 현장에서 폭염 수칙을 지키는 곳이 매우 적다는 점이다. 노동부가 이것을 모를리 없다. 그러면서 사람이 죽거나 다칠 경우에만 그 기업에 조치를 취한다. 이는 문제가 발생한 기업만이 문제라는 식으로 전체의 문제를 넘기는 효과를 가져온다.

전수경 : 노동조합이 있다면, 힘의 불균형이 어느정도 맞춰진다. 폭염에도 어느 정도 자신의 건강권을 지키며 일할 수 있다. 반면, 영세 사업장 등 노조가 없는 곳은 상황이 심각하다. 정부나 언론에서 폭염 수칙을 아무리 외쳐도 남의 이야기로 국한된다. 그렇기에 노동부가 기업에 대해 더 많이 관리감독하는 게 필요하다. 이를 하지 않으면, 사실상 노조 없는 사업장 노동자들은 스스로 알아서 하라는 뜻밖에 되지 않는다.

이상윤 : 어떤 사고가 발생했을 때, 이를 접근하는 방식은 두 가지다. 하나는 평소에는 잘 운영됐는데, 하필 그날따라 그 작업장에 특별한 문제로 인해 예외적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예외적 사건에 대해서 잘 보상하면 된다는 식이다. 또 하나는 사고가 발생한 것은 그간 잠복해 있던 문제가 터져 나온 것이기에 전체 시스템을 살펴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접근 방식이다.

한국의 노동부는 첫 번째 방식을 취하고 있는 셈이다. 사건 하나만 핀셋으로 꺼내서 인과관계를 따지고 그에 따른 책임만 묻는다. 결국 사건에 대한 사후적인 대처만 하는 셈이다. 평상시 현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절대 건드리지 않는다. 현장이 이런 식으로 돌아가면 이런 사고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노동부가 모르지 않는다. 그런데 이는 함구한다.

사고가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현재 시스템에 개입해야 한다. ‘이런 방식으로 물류 시스템을 구성하면 안 된다, 이런 방식으로 기계를 돌리면 안 된다’ 이렇게 지적하면서 시정조치를 해야 하는데, 이를 전혀 할 생각이 없다. 결국, 윤석열 정부의 노동부는 큰 틀에서 손을 대지 않으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세간의 우스갯소리처럼 노동부는 그냥 ‘보이지 않는 선생님’처럼 보이지 않는 부처가 되기를 지향하고 있다고 본다.

프레시안 : 그런 의문도 든다. 만약 의지를 가지고 개선을 하려고 한다면, 과연 할 수 있을까.

이상윤 : 특별한 법과 제도를 도입해, 이를 매개로 현장을 개선해나가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도 마찬가지다. 이 법 하나로 모든 걸 바꿀 수 없다. 이를 매개로 하나씩 바꿔나가는 게 필요하다. 다만, 이런 게 복잡하고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한국 사회의 특수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첫째로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실업률이 매우 낮다. 이는 노동자와 기업 간 힘의 균형이 기업에 기울어지는 효과를 가져온다. 하나씩 이야기해보자. 그간 여러 사람이 죽는 과정을 거쳐 우리 사회의 인식은 일하다 사람이 죽는 것이 굉장한 문제라고 생각하게 됐다. 이런 인식이 기반에 깔리면 보통 두 가지 해법이 나온다. 하나는 아까 말한 것처럼 정부가 개입해 개선을 한다. 사회 전체적으로 이것이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정부가 안 나설 수 없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이를 하지 않는다.

두 번째 해법은 당사자, 즉 노동자가 ‘저렇게 위험한 곳에는 가서 일하지 말아야지’라고 해서 가지 않게 되면서 시작된다. 그렇게 노동자가 가지 않을 경우, 위험요소가 존재하는 기업은 노동자를 구할 수 없기에 시스템을 변화할 수밖에 없다. 노동자가 없으면 회사가 운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이것 역시 작동하지 않는다. 사람이 죽는 공장에도 노동자가 일하러 계속 오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 왜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이상윤 : 문제에 대한 의식은 있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 이를 떠받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죽는 현장이지만 여기라도 오지 않으면 생활이 힘들어지는 사람들이 오는 것이다. 이주노동자, 여성, 노인 등 그런 곳이라도 가서 하나의 톱니바퀴를 차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들이다. 그런 일자리라도 없으면 경제적으로 위기에 몰리는 분들이다. 아까 말했듯 한국은 취업률이 높다고 하지 않았나. 이런 분들이 다 취업을 하니 실업률이 매우 낮고, 현장에서의 변화가 요원하다.

전수경 : 사회적 시선도 한 몫 한다. 취업을 하지 않은 이들을 우리는 바보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취업을 하지 않은 이들을 매우 비윤리적인 사람으로 분류한다. 오죽하면 설날 때 친척들 인사가 ‘취업했냐’ 이겠나. 그렇다 보니 위험한 일자리라도, 성희롱이 있는 곳이라도 가는 식이다.

▲ 이상윤 대표. ⓒ프레시안

"새로운 서사를 대중에 어필하는 게 필요하다"

프레시안 : 그런 위험한 일자리에 들어가는 이들 중에는 청년들도 상당하다. 특정 시기에 취업을 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그리고 사회에서 루저가 된 존재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들어간 회사에서 일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전수경 : 2023년 1월에 국가인권위원회가 청년 노동자의 정신 건강이 매우 위험하다며 정부에 권고한 게 의료 서비스 바우처를 늘려서 심리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정작 그런 정신 건강에 위협을 느끼는 청년 노동자들이 심리 치료를 받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리고 이들이 심리 치료를 받는 게 올바른 처방법인지도 의문이다. 이들 청년 노동자들이 힘들어하는 건, 노동 현장의 왜곡된 구조와 갑질 때문이다. 일자리 때문에 굴욕을 감수하고 회사를 다니는 이들은 엄청난 공포와 우울감을 느낀다.

왜곡된 구조는 그대로 두고 힘들면 심리 치료를 받으라는 결론은 앞뒤가 맞지 않다. 전세 사기를 당한 사람이 심리 치료를 받으면 문제가 해결되나. 주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건 그대로 두고 마음의 안정을 얻으라고 하는 식이다.

프레시안 : 일하다 다칠 수 있고, 정서적으로 피폐해진다는 것을 청년들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은 이러한 사회 시스템에 적응하려 부단히 노력하는 듯하다.

이상윤 : 그렇다고 두각을 나타내서 인정을 받겠다기보다는 약간의 체념 정서가 깔려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어딜 가도 다 비슷비슷하다는 생각이다. 그렇게 문제가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는 반면, 그것을 개인 힘으로 바꾸기는 무리라고 생각하는 정서를 체념의 정서라고 표현했다. 그렇다고 스스로를 톱니바퀴로 평생 헌신하겠다고 생각하는 건 또 아니다. 문제의식은 분명히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체념의 정서는 언제든 다른 방식의 에너지로 전환될 수 있다. 한국 사회는 다이나믹한 요인들이 존재하기에 이런 정서가 또 정치 지형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전수경 : 자신이 어떻게 이 사회에서 수탈당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인지한 상태에서 지금 시스템에 잘 안착하고 싶어한다. 만약 도태되었다 싶으면 심리상담 같은 걸로 약간의 위로를 받고 다시 시스템에 들어가 안착을 꿈꾼다.

이상윤 : 프리랜서는 4대 보험을 적용 받지 못한다. 여성 노동자는 남성에 비해 70% 수준의 임금을 받는다. 이런 문제들이 존재하지만, 노동자들은 개별화된 노동으로 각자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를 바꾸기 위해서는 분절된 이들에게 공통적인 어젠다를 던지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프레시안 : 쉽지 않은 일인 듯하다.

전수경 : 새로운 서사가 필요하다. 다만, 대중들의 관심은 분절된 노동에서 오는 부조리함이 아니라 김건희 명품백이나 한동훈의 설전 등에 가 있다. 여기에서 틈새를 만들어내고 새로운 서사를 대중들에게 어필하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프레시안 : 숨겨진 구조적 모순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변화까지 이끌어오는 것은 긴 여정일 듯싶다. 그렇기에 부단히 준비하고 노력하는 과정이 필요할 듯하다. 오랜 시간 말씀 감사하다.

▲ 전수경(왼쪽), 이상윤(오른쪽) 노동건강연대 공동대표.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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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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