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불쾌한 골짜기' 지났나?

[프레시안books] <선을 넘는 인공지능>

2016년 3월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꺾으면서 위력적인 AI(인공지능) 시대를 체감했다. 쏟아진 평은 가히 '충격과 공포'. 2020년에는 혐오까지 학습하는 AI 말동무 '이루다' 사태로 경악했다.

2022년 11월에 공개된 지 반년 남짓 만에 빠르게 영역을 확장 중인 챗GPT는 어느새 옆집 이웃 같은 이름이 됐다. '세종대왕 맥북 투척 사건'처럼 사실과 다른 엉뚱한 답을 유도하며 챗GPT 조롱에 열심인 모습은 AI를 마주한 인간의 양면성이겠다.

충격이든 친근함이든, '불쾌한 골짜기(인간과의 유사성과 인간이 느끼는 호감도의 상관관계를 나타낸 그래프. 인간이 아닌 존재가 인간과 유사할수록 거부감이 커지다가 인간과 구별하기 어려운 정도에 이르면 다시 호감을 느낀다는 이론)'의 어느 지점을 지나는 증거일 터.

레이먼드 커즈와일의 예언처럼, 인공지능 세상이 어떤 기준을 넘어선 '특이점'에 도달한 것일까? 철학자와 공학자가 조금 다른 견해를 보였다.

"기술적 특이점을 의미한다면,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 인공지능의 발달 수준을 곡선으로 나타낸다고 했을 때 그 곡선상에 특이점이 있다면 그건 차라리 인공지능에 신경망이 도입된 지점이라고 해야 할 겁니다."(이진경 서울과기대 인문사회교양학부 교수)

"꼭 그렇지는 않아요. 챗GPT를 '생성형' AI라고 하는 것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다는 뜻이에요. 여러 단어를 조합해서 새로운 단어를 만들 수 있고, 기존의 단어들을 사용해서 새로운 구절이나 문장을 생성해 낼 수도 있죠."(장병탁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

'인공지능에 관해 호기심과 불안을 동시에 갖고 있는 독자'를 콕 찍은 책이 나왔다. <선을 넘는 인공지능>(이진경·장병탁·김재아 지음. 김영사). AI 동향 전달이 아닌 '다른 이야기', '깊은 이야기'를 원하는 독자를 목표 대상으로 삼았다고 한다. 철학자 이진경 교수와 AI 전문가 장병탁 교수가 15차례 나눈 대담집이다. 김재아 소설가와 출판 편집자도 대화에 참여했다.

출판사가 밝힌대로, 독자들을 AI 신세계로 이끄는 친절한 안내서는 아니다. 데카르트, 스피노자, 비트겐슈타인을 넘나드는 철학자의 사유와 'AI가 사람을 닮아가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이 뭘까'를 매일 고민한다는 공학자의 시선이 만나기도 하고 엇갈리기도 한다.

▲ <선을 넘는 인공지능> ⓒ김영사

인공지능에 관한 즉각적인 위기감은 '인간은 기계에게 일자리를 빼앗길까'다. 행간의 숨은 뜻이나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해야 하고 윤리적 판단이 필수적인 직업 현장에 아직 "말귀도 못 알아듣는" 수준인 인공지능의 침범이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데에는 철학자와 공학자의 견해가 일치한다.

그래도 "100명이 하던 일을 로봇 10대가 하면, 로봇 10대를 관리하는 사람은 한두 사람 정도가 되지 않을까요?"라는 산술적 미래는 불문가지다. 일자리가 사라져 생존이 위협받는 세상이라면, 일찍이 영화 <블레이드 러너>로 잘 알려진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에서 필립 K. 딕이 그린 디스토피아에 가까워진다.

다만 이 교수는 "사람 없는 기계의 시대가 오리라는 예언은 그리 믿을 만하지 않아요. 기계와 인간이 함께 일하는 것"이라며 "결국 인간은 '기계 이상의 노동'과 '기계 이하의 노동'을 하게 되겠죠"라며 협업과 공존에 주목한다. 나아가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면, 일 없이 살 수 있다는 건 즐거운 거 아닌가요?"라고 되묻는다.

"인공지능이 사람의 일을 대신해주는 건 그 자체론 분명 좋은 일이죠. 사람이 이제 노동을 하지 않아도 살 수 있게 된 것이니까요. 그러나 그게 정반대로 걱정거리가 되는 건, 고용과 임금 없이는 생존할 수 없는 자본주의 때문이죠. (…) 인공지능이 인간에 공생적인 보완재가 되기 위해서는 고용과 무관하게 최소 생계를 보장해줘야 해요."(이진경)

장 교수도 "일자리가 없어진다는 건 개인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개인이 알아서 각자도생하게끔 두어서는 안 되고, 국가적 차원에서 함께 책임져야 한다"고 호응했다.

사실 이런 현실적인 이슈는 15차례 대담의 언저리다. 두 사람의 주된 테마는 인간 수준의 지능은 어떻게 구현할 수 있는지다. "자신의 존속 자체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이 "눈치 없는" 인공지능에 '신체'가 허락된다면?

"(AI가) 사람처럼 유연하게 사고하지는 못하죠. 그러한 기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인공지능도 신체를 갖춰야 한다고 생각해요. (…) 언어를 통해 학습할 때조차 신체와 관련된 원초적 감각이 기반이 되어서 녹아들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는 거예요. 이 점이 현재 AI의 가장 큰 한계로 보여요."(장병탁)

"지능이란 외부 조건에 대해 적절한 신체적 대응 방법을 찾기 위해 발전한 것이기 때문에, 신체 없는 지능은 어쩌면 전제조건 없이 공중에 붕 뜬 거라고 할 수 있죠. (…) 인공지능이나 로봇이 의식이 있으려면 자아가 있어야 하고, 그게 있으려면 신체적 생존의 지속을 자신의 목적으로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이진경)

'AI 월드' 적응을 서둘러야 할 것 같은 노심초사에서 한걸음 물러나, '인간 흉내내기'에 진심인 어떤 기계를 거울삼아 인간 의식과 자아, 감각, 감정의 체계에 관한 사유를 한번 쯤 해볼 수 있다면, 인간과 AI의 조화로운 공존을 모색한 책의 목적에 얼추 부합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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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구

2001년에 입사한 첫 직장 프레시안에 뼈를 묻는 중입니다. 국회와 청와대를 전전하며 정치팀을 주로 담당했습니다. 잠시 편집국장도 했습니다. 2015년 협동조합팀에서 일했고 현재 국제한반도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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