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 김영호 후보, 36년 전엔 4.3 항쟁에 '혁명 전사' 칭송

통일부 장관 후보자, '전향' 전 국가보안법 유죄 판결문 살펴보니…

극우 발언으로 자격 논란이 일고 있는 김영호 통일부 장관 후보자가 과거 출판사 대표 시절 제주 4.3 사건을 '미군정과 정부의 무차별한 주민 학살극'으로 묘사한 시를 발행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상 유죄 판결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후 뉴라이트로 전향한 김 후보자는 2008년 '대안교과서' 필진으로서 제주 4.3 사건에 대해 '좌파 세력이 대한민국 성립에 저항한 반란'으로 규정했다. 같은 사안을 두고 입장이 180도 달라진 것으로, 그가 전향한 배경에 이목이 집중된다.

<프레시안>이 13일 더불어민주당 전해철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1987년 김 후보자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판결문을 살펴보면, 당시 김 후보자는 지금과 달리 좌파 지식인으로서 사회주의 이념에 경도돼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김 후보자는 당시 소련 공산주의 철학서와 안토니오 그람시 번역서 등을 펴낸 사회과학 전문 출판사인 '도서출판 녹두'의 대표로서 당시 정부가 '불온서적'으로 지정한 다양한 책의 출판·간행에 관여했고 이로 인해 법원으로부터 징역 3년, 자격정지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김 후보자가 펴낸 가장 대표적인 '불온서적'은 1987년 3월에 출간된 잡지 <녹두비평>이다. 이 잡지에는 '제주 4.3의 시인'으로 알려진 이산하 시인의 장편 서사시 '한라산'이 수록됐는데, '한라산'은 4.3 대량 학살의 진실을 최초로 사회에 폭로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시인은 제주 민중 시점에서 당시의 처참한 학살 현장을 고발하면서 4.3 항쟁 참가자들을 '혁명전사'로 지칭했다.

"붉은 피를 흘리며 끝내 숨져간

이름 없는 혁명전사들의 끊어질 듯 끊어질 듯

끝내 이어지는 저 붉은 핏자국을 누가 잊는가.

제주도의 혁명전사들은 그렇게 갔다.

미제의 각을 뜨다가

적들의 심장에 불을 지르다가

끝내 다 뜨지 못한 채

끝내 다 지르지 못한 채

한줌 피 묻은 뼛가루로 날아갔다.

우리는 보고 쏘았지만

그들은 보지도 않고 쏘았다

학살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시 '한라산' 중 일부 발췌)

검찰은 '한라산'이 수록된 <녹두비평>에 대해 "제주도 4.3 폭동을 빨치산 전사들의 영웅적인 투쟁으로 미화한 이적 용공시 '한라산'을 게재하고 있는 서적"이라며 "서적들의 출간 목적이 단순히 경제적 이득을 위하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조직적으로 사회주의 사상을 사회에 유포시키고자 하는 데에 있다"고 김 후보자 등의 혐의를 제시했다.

김 후보자 등 피고인들은 이에 대해 "사건의 주체인 대부분이 공산주의와는 무관한 양민이었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위 시(한라산)가 북한 공산집단의 활동에 동조해 이를 이롭게 하는 행동이라고 볼 수 없다"고 항변했지만, 재판부는 피고인들에 대해 이적표현물 제작·소지·반포·취득에 관한 처벌 규정인 국가보안법 제7조 5항,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한 자에 대한 처벌 규정인 7조 2항(해당 조항은 국가보안법 개정으로 삭제됨) 등을 인정했다.

다만 법원은 "정치경제적인 측면에서 대내외적으로, 나름대로 보는 불만족스러운 상황에 대한 바른 인식과 그 문제점의 제기에 일부 그 출판 동기가 있었다고 인정되며, 이 사건 출판물들이 반드시 사회주의 내지 공산주의의 선전·선동물에까지는 이르지 아니한다"고 판시했다.

▲신임 통일부 장관 후보자에 지명된 김영호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30일 오전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종로구 남북회담본부로 출근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가보안법 위반 전력까지 있을 정도로 급진 좌파였던 김 후보자가 하루아침에 강경 보수로 전향한 배경을 두고는 정치권과 시민사회 안팎에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주진오 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명예교수는 지난 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쓴 글에서 "김영호 후보자가 바로 <녹두서평> 발행인이었다는 글에 많은 분들이 놀라셨다"면서 "몇 년 전에 저 역시, 그 사실을 처음 알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 후보자를 향해 "이 질문에 답해야 할 의무가 있다"며 몇 가지 의문점을 던졌다. 주 교수는 "김영호는 1988년 2월 27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3년과 자격정지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집행유예 기간에, 어떻게 유학을 갈 수 있었나. 누가 주선해 주었나"라고 물었다.

이어 "그는 당시 운동권 내에서도, 가장 북한을 옹호하던 그룹에 속해 있던 인물이었다"면서 "그랬던 그가 대북 강경론자가 된 계기가 궁금하다. 장관까지 하게 된 마당에 무슨 설명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야당은 김 후보자의 과거 행적과 별개로, 김 후보자가 보여주는 극우적 사고가 통일부 장관 역할에 맞지 않다고 보고 있다.

앞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지난 달 30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김 후보자 지명에 대해 "어제 개각 발표는 실망을 넘어 참 당황스러웠다. 쇄신이 아닌 퇴행 그 자체"라고 맹비난했다.

이 대표는 "통일부 장관 후보자는 '김정은 체제' 파괴를 주장해 왔다. 친일 독재를 미화하고 제주 4.3 사건을 '좌파 세력이 대한민국 성립에 저항한 반란'으로 규정했던 대한교과서 필진이기도 하다"며 "극단적인 남북 적대론자라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 평화 통일 기반을 마련하고 남북 대화에 앞장서야 하는 통일부 장관에 적합한 인사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지명 철회를 촉구했다.

4.3은 5.18과 함께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에서 매우 민감한 역사적 이슈로 간주된다. 국민의힘도 앞서 김재원·태영호 전 최고위원의 4.3 폄훼 발언 등을 이유로 당원권 3개월 정지 처분을 내린 바 있다. 당시 국민의힘 윤리위원회는 이들에 대해 "4.3 폄훼 발언 등으로 4.3 희생자 유족에게 상처를 주고 국민 통합을 저해해 당의 명예를 실추했다"며 징계 결정 이유를 설명한 바 있다.

여당 내에서도 4.3 폄훼 발언이 최고위원 징계 사유로 작용한 만큼, 김 후보자에게도 그에 준하는 불이익이 따라야 하지 않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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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어리

매일 어리버리, 좌충우돌 성장기를 쓰는 씩씩한 기자입니다. 간첩 조작 사건의 유우성, 일본군 ‘위안부’ 여성, 외주 업체 PD, 소방 공무원, 세월호 유가족 등 다양한 취재원들과의 만남 속에서 저는 오늘도 좋은 기자, 좋은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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