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 툭 던져지는 대통령 거부권, 정치적 책임을 망각했다

[인권의 바람] 거부권은 정쟁의 도구가 아니다

올해 법 제정‧개정 관련 뉴스에서 '대통령 거부권'이란 단어를 자주 보게 되었다. 헌법 53조에 따라 대통령은 국회에서 의결된 법률안에 이의가 있을 때 재의를 요구할 수 있다. 이를 대통령 거부권이라고 말한다. 대통령 거부권이 행사된 법안은 국회에서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재의결하면 법률로 확정된다.

이승만 대통령 이후 문재인 대통령까지 대통령 거부권 행사는 66건인데 그 가운데 45건이 이승만이 행사한 것이다. 박정희 5건, 노태우 7건, 노무현 6건, 이명박 1건, 박근혜 2건이다. 거부권 행사 빈도는 감소하는 추세이다. 그런데, 이제 취임 1년이 겨우 지난 윤석열 대통령은 2건의 거부권을 행사했다.

툭 하면 거부권 언급

지난 4월 4일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후 첫 대통령 거부권을 행사했다. 3월 2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서다. 이번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쌀 생산량이 3~5%를 넘거나 쌀값이 평년보다 5~8% 이상 하락한 경우 정부가 쌀을 의무적으로 매입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윤 대통령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포퓰리즘 법안", "정부가 국민의 막대한 혈세를 들여서 모두 사들여야 한다는 남는 쌀 강제 매수법"이라며 거부권 행사 이유를 밝혔다.

한 달이 지나고 대통령 거부권이 또 발휘되었다. 지난 5월 16일, 윤 대통령은 간호법 제정안에 대해 "간호법안은 유관 직역 간의 과도한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간호 업무의 탈 의료기관화는 국민들의 건강에 대한 불안감을 초래하고 있다"라며 거부권을 행사했다. 간호법 제정안은 의료법에서 간호사에 대한 규정을 분리해 간호사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취지로 발의된 법안이었다.

결국 양곡관리법 개정안과 간호법 제정안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대통령 거부권에 막혀 재투표에서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을 받지 못해 폐기되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1년이 지난 후 한 달에 한 번씩 거부권을 행사하고 있다. 6월 중에도 어느 법안에 거부권이 또 발휘될지 모른다. 노조법 2‧3조 개정안과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방송법 개정안에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지 모른다. 이미 대통령실과 정부여당은 입장을 정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2월부터 "노조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도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방침"이라는 대통령실 고위관계자의 말이 기사들을 통해 나왔다.

대통령 거부권으로 밀려나는 인권과 민주주의

윤 대통령 거부권 행사는 여야의 의견이 엇갈리는 쟁점 법안에 대해 이뤄졌다. 그렇다보니 대통령 거부권 행사가 단순히 정쟁으로만 비춰질 수 있다. 거부권이 행사된 두 법안은 현재 국회 의석비율이 큰 야당 더불어민주당의 주도로 국회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치닫는 듯 보이는 여야당 대치구도에서 윤 대통령은 거부권을 정쟁의 도구로써 생각하는 것 같다.

거부권이 남용되면 삼권분립 체계에서 국회의 입법권이 침해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우려가 있다. 대통령 거부권은 입법부의 법률 제정권에 대통령이 직접적이고 실질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권한이기에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거부권을 매우 남발하고 있다. 쉬이 쓰이는 거부권에 대통령으로서의 정치적 책임을 망각한 것은 아닌가 싶다.

대통령 거부권을 남발하고 있는 윤 대통령에게서 사회문제에 대한 국가책임을 논의하고 함께 대책을 세우는 문제 해결의 틈이 보이지 않는다. 정치 파트너로서의 야당과 다양한 삶의 문제로 정치적 요구를 하는 시민과의 대화 가능이 없어 보인다. 윤 대통령이 독선적으로 흔들어대는 거부권 행사에 민주주의는 심하게 훼손되고 있다. 한편 윤 대통령은 법안의 위헌성을 이유로 거부권을 행사한다고 한다. 과연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시민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에 대해 고민을 해보긴 했는지 의문이다.

대통령 거부권 행사 이후 농민들과 간호사들은 규탄의 목소리를 높였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쌀생산자협회 등 농민단체들로 구성된 '국민과 함께하는 농민의 길'은 기자회견을 통해 생산비가 보장되는 양곡관리법 전면개정이라는 농민들의 요구가 담기지 않은 이번 개정안조차도 거부하는 농업포기 선언이라는 규탄했다. 행동하는간호사회는 코로나 팬데믹을 지나오며 더욱 절실해진 공공의료와 간호인력 문제에 대한 논의를 차단하는 것이라며 규탄했다.

국회를 통과한 법안이 문제에 직면한 이들의 목소리를 적극 반영한 내용이 아니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있어 국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있었다. 그런데 그 부족한 법안조차 대통령이 거부했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그 문제들을 해결할 의지가 있는지 의심하게 한다. 두 법안이 기득권의 이해와 어긋나는 법안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쌀값 안정화 정책이나 간호사 안전 대책 등 농민과 간호사의 문제에 대한 대안을 가져오지 않고 거부만 하고 있다. 지속되어온 농민과 간호사의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 법‧제도‧정책의 변화가 필요한 것인데 여기에 대통령이 의지가 없다. 오로지 거부 의지, 적극적으로 막아내겠다는 의지뿐이다.

대통령 마음대로 거부할 수 있는 것 아니다

다시 짚자면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지 이제 겨우 1년 넘었다. 그런데 대통령 거부권 행사가 2건이다. 헌법에 규정된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지만 정치권력을 가진 대통령이 그 권한을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거부권이 행사되는 데는 진짜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이유는 모든 사람들의 존엄한 삶과 권리를 침해하는 법안을 막아야 할 경우여야 할 것이다. 툭 하면 "거부권" 탁 하면 "위헌"을 말하는 윤 대통령은 무책임한 거부권 폭주를 멈춰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1년 동안 대통령 거부권을 두 차례 행사했다. 행정부가 입법부의 고유 권한을 침해해 삼권분립 원칙을 훼손하는 반헌법적 태도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7차 비상경제민생회의 겸 반도체 국가전략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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