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한 간호법 제정안 재의결 안건이 국회 본회의에서 최종 부결됐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통한 법안 부결은 이번 정부 들어 2번째다.
국회는 30일 본회의에서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따라 국회로 되돌아온 간호법 제정안을 재표결에 부쳤다. 안건은 재석 289명에 찬성 178명, 반대 107명, 무효 4명으로 부결됐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의 국회 재의결을 위해서는 재적 과반수 출석과 출석 의원 2/3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간호법 재의결 안건은 여야가 합의한 의사일정에 포함되지 않았으나, 더불어민주당은 의사일정 변경을 요청했고 의사일정 변경 동의안은 재석 278명에 찬성 175명, 반대 102명, 기권 1인으로 통과됐다. 다만 본 표결에서는 재석 2/3선을 넘지 못했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간호법 부결 이후 밝힌 입장에서 "여야가 한 걸음씩 양보해 간호법 조정안을 마련할 것을 여러 차례 당부드렸음에도 정치적 대립으로 법률안이 재의 끝에 부결되는 상황이 반복되어 매우 유감"이라며 "국민 여러분께 송구하다"고 밝혔다.
김 의장은 "앞으로 여야가 협의해 마련하는 법안이 국민들에 대한 의료서비스 질 제고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여야정이 마주 앉아 간호사 처우 개선, 필수 의료인력 부족 해소, 의대 정원 확대, 의료수가 현실화, 무의촌 해소 등 지역 의료기반 확충을 포함한 정책 대안을 마련해 달라"고 당부했다.
앞서 지난달 27일 국회를 통과한 간호법에는 △ 국가·지방자치단체의 간호 직종 처우 개선 지원 △ 간호 직종 자격 및 업무 범위 △ 행정복지센터 등 지역사회에서 행해지는 간호 직종 의료 활동의 법적 근거 등이 담겼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지난 16일 국무회의에서 "유관 직역 간의 과도한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며 재의요구권을 행사했다. (☞관련 기사 : 尹대통령, 간호법에 '2호 거부권' 행사)
간호법 재의결을 앞두고 여야 원내대표는 이날도 설전을 벌였다. 박광온 민주당 원내대표는 오후 의원총회에서 "간호법은 정쟁과 무관하고 정쟁 대상이 돼서는 안 되는 아주 중요한 민생법안"이라며 "간호법은 선진국형 공공의료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데 하나의 중요한 조건"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오전 원내대책회의에서 "우리 국민의힘은 이미 (간호법) 부결을 당론으로 정했다"며 "간호법은 직역 사이에 과도한 갈등을 불러일으켜 국민의 건강권 보호에 큰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높다"고 맞섰다.
다수 야당인 민주당이 법안을 통과시키고, 정부‧여당이 거부권으로 무력화하는 일은 한동안 반복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민주당이 강행 추진 의사를 밝힌 법안은 △ 노조법상 사용자와 노동자의 범위를 넓혀 노조할 권리를 확대하고 파업에 대한 사용자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노조법 개정안(노란봉투법) △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를 국회, 시청자위원회, 미디어 학회와 직능단체 등이 추천하도록 한 방송3법 개정안 △ 대학‧대학원생의 학자금 대출 이자를 취업해 소득이 생길 때까지 면제하는 학자금상환법 개정안 등이 있다.
윤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노란봉투법, 방송3법, 학자금 무이자법 등 민주당의 매표용 악법 밀어붙이기가 6월에도 계속될 전망"이라며 "민주당의 망국적 입법 폭주를 막을 수 있는 것은 대통령의 재의요구권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밝혔다. 본회의 직전 기자들과 만나서도 윤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통과시킨 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가 고착화되고 있다'는 질문에 "국민의 입장에서 막아야 될 법이라면 대통령께 재의요구권을 건의할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특히 야권 주도로 본회의에 직회부된 노조법 개정안에 대해 국민의힘 법제사법위원들은 이날 자신들의 법률안 심의‧표결권이 침해됐다고 주장하며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하기도 했다. 전주혜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전날 "(헌재 결정이 늦어져) 본회의에 두 법안(방송법, 노란봉투법)이 올라오는 시기를 보고 필리버스터를 고려할 가능성도 상당히 있는 상황"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한편 이날 본회의에서는 '2021년 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 사건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무소속 윤관석·이성만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보고됐다. 체포동의안 표결은 다음달 12일 본회의에서 이뤄질 예정이다.
이날 <동아일보>는 이 의원이 압수수색 당일 및 그로부터 이틀 뒤 현재 구속 중인 강래구 전 한국감사협회장과 통화를 했으며, 검찰은 두 사람의 접촉을 '증거인멸이 우려되는 정황'으로 구속영장 청구서에 적시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 의원은 이날 낸 입장문에서 "검찰은 제가 혐의사실을 부인하고 있고 사건에 대한 언론 인터뷰를 한 사실에 비춰 증거 인멸 가능성이 높아 구속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검찰이 요구하는 대로 진술하면 구속하지 않고 방어권을 행사하면 구속해야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항변했다.
이 의원은 "저는 이미 조사에 성실히 응했고 충분히 소명했다. 혐의에 대한 실체적 진실 규명엔 관심없고 단지 저와 야당을 망신주려는 정치적 의도"라며 "도주·증거인멸 우려가 없음에도 정치적 의도 아래 일단 신청하고 보자는 식으로 사법권을 남용하는 것은 헌정질서 유린"이라고 주장했다.
윤 의원도 입장문을 내고 "당당하게 사법절차에 응해 저의 결백과 억울함을 밝힐 것이지만, 검찰의 부당한 야당 탄압과 정치 수사에는 강력히 대응해 나갈 것"이라며 "유일한 증거인 녹취록의 증거능력이 부인되고 뚜렷한 물증을 찾지 못한 검찰은 또다시 구속을 통한 망신주기, 강압적 자백 강요에 나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본회의에서는 일부 국회 상임위원장 선거도 이뤄졌다. 국회 행정안전위원장이었던 국민의힘 장제원 의원은 이날 재석 282명에 찬성 173명으로 21대 국회 남은 임기 동안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을 맡게 됐다.
이는 지난해 7월 여야가 행안위원장과 과방위원장을 1년씩 번갈아 맡기로 합의한 데 따른 절차였다. 다만 행안위를 포함해 민주당 몫으로 배정된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환경노동위원회, 교육위원회, 보건복지위원회 등 총 6개 위원회의 위원장 선출은 보류됐다.
김한규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의원총회 뒤 기자들과 만나 "여러 의원이 국민이 쇄신·혁신을 기대하는 상황을 고려했을 때 (상임위원장 추천안을) 좀 더 논의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주셨다"며 "오늘은 저희 당이 추천한 상임위원장 후보에 대한 국회 선출 과정은 진행하지 않고 당내에서 좀 더 논의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