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은 남성에게도 이롭다"

[프레시안 books] <남성 해방>

2023년 현재 네덜란드에 거주 중인 대학 교육을 받은 이성애자 백인 중년 남성 옌스 판트리히트(Jens van Tricht)는 자신의 책 <남성 해방(Why Feminism is Good For Men)>(노닐다 펴냄)에서 "페미니즘은 남성에게도 이롭다"고 주장한다.

"남성은 페미니즘과 해방이 자기 이야기이기도 함을 깨달을 때에만, 삶에서 마주치는 모든 문제가 - 스트레스, 경쟁, 번아웃, 고독, 우울, 중독, 불안, 폭력 등 - 그들이 남자로서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고 배웠는지, 또 남자로서 어떻게 대우받는지와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이런 문제들은 남성의 본성이 아니라 사회가 남성성을 해석하고, 그에 따른 기대와 규범, 요구를 형성하는 방식에서 생겨난다. 그러므로 우리는 문제 해결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위의 책, 110쪽)

문제 해결을 위한 '무언가'가 바로 '페미니즘'이라고, 판트리히트는 역설한다. 여성과 남성, 혹은 여성성과 남성성이라는 단어에 갇힌 인간의 잠재력을 '해방'해야 하며, 이때 페미니즘은 '해방'을 구체화하기 위한 이론이자 실천이라는 것.

판트리히트는 '해방'을 구체화하고 실천하기 위해 네덜란드 남성해방단체 '이맨시페이터(Emancipator)'를 만들었다. 이맨시페이터는 '남성 해방'이라는 영역에서 전문성을 결합하기 위한 네트워크로, "여성과 여성성을 남성과 남성성과 연결하고, 개인적인 것을 정치적인 것과, 지역을 세계와 연결하기"를 목표로 하고 있다.

▲ 네덜란드 남성해방단체 '이맨시페이터(Emancipator)' 홈페이지(www.emancipator.nl) 갈무리.

가부장제의 피해자는 남녀 모두

사회는 오랜 기간 남성에게는 '남성적'인 것을, 여성에게는 '여성적'인 것을 요구했다. 남성에게는 '딱딱한, 이성적인, 강인한, 일, 뚫고 들어가다, 힘 있는' 등을, 여성에게는 '부드러운, 감성적인, 연약한, 포용하는, 돌봄, 받아들이다, 무력한' 등을 가르쳐 왔다. 우리가 어릴 때부터 경험한 '파랑'과 '분홍'이라는 젠더 경계 역시 마찬가지다.

이 같은 구분은 남녀를 끊임없는 '차별'로 몰아갔고, '평등'에서 멀어지게 했다.

판트리히트는 "세월이 흐르면서 많이 바뀌긴 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남성과 남성성을 기준으로 여기는 가부장적 사회에 살고 있으며 남성과 남성성과 관련된 것이 여성과 여성성에 관련된 것보다 더 높이 평가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가부장제는 여성과 남성을 구별해 그들의 차이를 위계질서 안에 자리 잡게 한다"면서 "아무리 가부장제에서 남성이 갖가지 혜택을 누린다고 해도, 크나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출발점"이라고 했다.

예를 들어, '남자라면 혼자 해결해야지'와 같은 일상적 표현 역시 가부장제에서 남성이 치러야 하는 대가 중 하나다. 판트리히트는 건강을 돌보는 것은 여성스럽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양육되었기 때문에, 남성은 부채 문제가 있어도 우울증이나 외로움이 있어도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또 판트리히트는 길거리 싸움, 가정 폭력, 동성애자 공격, 성폭력, 축구 훌리건, 테러 등 남성 폭력은 엄청난 사회적 문제인 동시에 "온갖 종류의 폭력에서 남성은 주요 피해자"라고 말한다.

남자아이들도 여자아이들처럼 아침에 학교 운동장에 들어설 때 자신이 안전한지 살피면서 운이 좋기 만을 바라며 "이런 위험을 예측하는 일은 평생 계속된다"는 것. 그러나 "남성은 흔히 자각하지 못할 정도로 이를 내면화"하고 있다고 했다. 

그 밖의 사회적 문제, 일의 영역에서는 "돈을 버는 것으로 삶의 의미를 지닌다"고 배우며 성생활에 있어서도 "음경은 반드시 발기할 수 있어야 하"며 "나서서" 해야 한다고 떠밀려진다.

판트리히트는 이에 대해 "이젠 정말 지친다"고 말한다.

페미니즘의 수혜자 역시 남녀 모두

인간에게 여성성과 남성성을 강요하는 가부장제가 '앙시앵 레짐(구체제)'이라면, 페미니즘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본성에 충실하게 만드는 구체제의 대안이 되지 않을까?

판트리히트는 ""페미니즘은, 여성이 인간이라는 급진적 생각이다"라는 선언은 남성에게도 적응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성성과 남성성에 관한 통념에 의문을 품고 바꿔감으로써, 스스로 남성성에 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여성도 여성성에 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움으로써, 불평등과 폭력에 주의를 환기함으로써, 사회 구조를 바꾸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함으로써, 육아를 맡은 여성이 발전할 수 있도록 지원함으로써, 그 밖에도 많은 것을 함으로써 남성 자신과 사회를 바꾸려고 노력할 수 있다."(위의 책, 162쪽)

그는 사회를 바꾸기 위한 노력으로 다음과 같은 여섯 가지를 제시했다.

□ 하나, 자신과 관계 맺기

: 남성이 자신과 관계 맺는 데 페미니즘이 도움이 되는 까닭은, 남성에게 인간성이 있음을 페미니즘이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 둘, 다른 남성과 관계 맺기

: 더는 '계집애'라며 까발림을 당할까 봐 혹은 괴롭힘, 따돌림, 폭력의 피해자가 될까 봐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저 진짜 남자임을 증명하려고 자신과 타인의 경계를 넘을 필요가 없다.


□ 셋, 여성과 관계 맺기

: 자신의 '여성성'과 다르게 관계를 맺게 되면, 삶에서 만나는 여성과의 관계도 바뀐다.


□ 넷, 사랑하는 사람과 관계 맺기

: 반려자가 여성이든 남성이든 자유롭게 사랑하는 것은 이상적 남성성 이미지 안에 갇혀 사랑하는 것과는 다르다.


□ 다섯, 아이들과 관계 맺기

: 아이들은 내 안의 아이에게 다가갈 수 있게 해줄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와 이 세상에 본질적인 것, 요컨대 거리낌 없는 관점, 놀이, 조건 없는 연대 그리고 취약성에 다가설 수 있게 해준다.


□ 여섯, 세상과 관계 맺기

: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사회를 이루는 최소한의 개체로서 우리 자신을 바꿔야 한다. 우리가 자본주의, 민주주의, 환경, 법치주의, 안보, 공정한 분배에 관해 근본적인 의문을 던질 때는, 인간으로서 우리 자신이 이 모든 것과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 살펴야 한다.

판트리히트는 서문에서 <남성 해방>의 의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 책의 의도는 남자아이와 성인 남자가 페미니즘에 참여하도록 용기를 북돋는 것으로, 페미니즘에 참여하는 일은 그들을 위해서도, 여자아이와 성인 여자를 위해서도, 또 온 세상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해방이란 혼자서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다. 이 책은 남자아이와 성인 남자와 남성성을 다루지만, 어떤 식으로든 이와 관계를 맺는 누구든, 그러므로 당연히 여자아이, 성인 여자, 그리고 젠더 스펙트럼 어디에 있든 그 모든 이를 위해 쓴 것이기도 하다."(위의 책, 14쪽)

<남성 해방>은 "페미니즘은 남성에게도 이롭다"에서 한발 더 나가 '페미니즘은 우리 모두에게 이롭다'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책이다. '화성 남자 금성 여자'와 같은 이분법, '파랑'과 '분홍'이라는 젠더 경계에서 해방되고 싶은 이들에게 권한다. 

▲ <남성 해방>(옌스 판트리흐트 지음, 김현지 옮김, 노닐다 펴냄) ⓒ노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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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선

프레시안 이명선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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