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 최대 20명 연루? "이정근-윤관석 통화서 '돈봉투 리스트' 실명 열거"

"수감중 李, 검찰에 추가혐의 인정"…민주당 '술렁'

지난 2021년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당시, 송영길 당 대표 후보 캠프 인사들이 9000만 원이 넘는 돈을 봉투에 담아 당 소속 의원·대의원 등에게 돌렸다는 의혹의 파장이 점점 커지고 있다. 돈봉투를 전달했다는 의원의 육성이 보도된 데 이어, 이번에는 돈을 받았다는 의원들 일부의 실명도 전달자의 육성으로 방송에 보도됐다.

특히 이 사건에 깊이 관여한 이정근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은 현재 별건의 범죄 혐의로 수감 중인데, 돈봉투 사건과 관련해 검찰에 협조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래저래 민주당의 고심은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윤관석, 이정근과 통화에서 돋 받은 의원 실명 언급"

13일 JTBC <뉴스룸>은 전당대회를 앞둔 2021년 4월 28일 민주당 윤관석 의원이 이정근 전 부총장과의 통화에서 '돈봉투'를 받은 의원들의 실명을 거론했다며 해당 대화의 육성파일을 공개했다.

보도에 따르면, 윤 의원이 "우리 했던 ○○이나 ○○이나 ○○이나 ○○이나…. 둘은 또 호남이지 않나"라고 말하자 이 전 부총장은 "거기 해야 돼 오빠. 호남은 해야 돼"라고 답한다.

또 윤 의원이 "나는 인천 둘하고 ○○이는 안 주려고 했는데, 얘들이 보더니 '형님 기왕 하는 김에 우리도 주세요' 그래가지고 거기서 세 개 뺏겼어"라고 말하는 육성도 공개됐다.

방송은 실명을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윤 의원이 언급한 인물들은 당시 전당대회에서 송 전 대표를 도운 현역의원들"이라고 보도했다. 

JTBC는 또 윤 의원이 "5명이 빠졌더라", "안 나와가지고"라고 말한 자신의 육성이 전날 보도된 데 대해 "다른 상황에서 다른 취지로 한 발언을 상황과 관계없이 마치 봉투를 전달한 것처럼 단정해 왜곡했는데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이날 해명하자, 이를 재반박하는 추가 보도를 내놨다.

방송은 윤 의원이 2021년 4월 28일 '5명이 빠졌다'고 말한 대화의 전후 맥락에 대해 추가로 설명하면서, 이 전 부총장이 윤 의원에게 "똑같이? 어제 그만큼?"이라고 묻자 윤 의원이 "응. 다섯 명이 빠졌더라고. 안 나와가지고. 오늘 빨리, 그래야지 회관 돌아다니면서 만나서 처리하거든"이라고 답한 것이 해당 발언의 앞뒤 내용이었다고 설명했다.

방송은 이에 대해, 대화가 이뤄진 날은 윤 의원이 이 전 부총장으로부터 돈봉투 10개를 전달받은 것으로 지목된 이튿날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즉 27일에 돈봉투 10개를 받은 윤 의원이 이 전 부총장에게 '오늘 빨리', '어제 그만큼 똑같이' 추가로 봉투를 만들어 달라고 주문하고, 그 이유에 대해 '의원회관을 돌아다니면서 만나서 처리하겠다'고 한 정황이라는 것이다.

방송은 또 그로부터 사흘 전인 2021년 4월 25일 강래구 한국감사협회 회장(당시 한국수자원공사 상임감사)이 이 전 부총장에게 "관석이 형을 꼭 돈을 달라고 하면 돈 1000만 원 주고…"라고 말한 육성, 이틀 후인 4월 27일 강 회장이 이 전 부총장에게 "저녁먹을 때쯤 전화 오면 10개 줘라"고 하자 이 전 부총장이 "누구한테? 윤한테?"라고 되묻자 다시 강 회장이 "예"라고 답하는 육성도 추가로 공개했다.

이성만 "내일 오전 10시에 돈 주면 안 되나" 육성도 공개

JTBC 방송은 또 '강래구-이정근-윤관석' 루트로 전달된 6000만 원 외에도, 거꾸로 '이성만-이정근-강래구' 순으로 1000만 원이 전달됐고 이 돈으로 강 회장이 2021년 3월말 당내 인사 10여 명에게 100만 원씩 돈봉투를 돌린 것으로 보이는 정황도 보도했다. 검찰 영장에 따르면, 이 1000만 원은 조택상 전 인천부시장 등이 만들어준 것으로 지목됐고 이 의원은 인천지역 현역의원이다.

방송에 공개된 녹취록을 보면, 3월말 당시 강 회장은 이 전 부총장에게 "세 테이블 정도 하면 12명이면 충분하잖나. 사실은 그날 돈 100만 원씩이라도 봉투 하나씩 만들어주면 좋은데"라며 "한 돈 1000만 원만 줘라. 그날 ○○○들 오면 100만 원씩이라도 봉투에 넣어서 조용히 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 대화 이후 이 의원이 이 전 부총장에게 "돈, 내가 내일 주면 안 되나? 내일 오전 10시에 갈 테니까"라고 하고, 그 직후 이 전 부총장이 강 회장에게 "이따 이성만이 10시에 만나자더라"고 하자 강 회장이 "왜? 아, 비용 준다고?"라고 되물으면서 "받으면 50만 원씩 정리해서 봉투를 나한테 만들어 달라"고 요청하는 대화 내용도 이날 방송에 공개됐다.

전당대회 후에는 이 전 부총장이 이 의원에게 "고생했다. 우리 팀에 와서 또 수금 전달하고 하느라고"라고 인사를 건네자 이 의원이 "아니 뭐 안사람이 그런 거나 서포트나 해야지"라고 답하는 대화도 보도됐다.

이 의원 측은 "불법적 정치자금을 받은 적도 전달한 사실도 없다", "열심히 득표 활동을 한 것에 대해 수고했다는 의미이지 다르게 해석될 수 없다"는 입장을 방송에 밝혔다.

"이정근, 검찰 조사에서 돈봉투 조성 인정"

JTBC가 보도한 이같은 대화의 출처는 모두 이 전 부총장의 휴대전화에 녹음된 음성파일로 지목된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대화 내용이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혐의를 뚜렷이 드러내지 않는 한, 이 전 부총장과 대화 상대방들이 일관되게 대화의 의미·맥락을 부인한다면 윤 의원 등으로서는 향후 사법 절차에서 이를 다퉈볼 만한 여지도 있다.

문제는 현재 10억 알선수재 혐의로 1심 유죄를 선고받고 수감 중인 이 전 부총장 본인이 돈봉투 조성 사실을 인정하는 등 비교적 협조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전해진 것이다. JTBC는 "검찰 수사에 속도가 붙은 건 이 전 부총장의 진술이 결정적이었다"며 "이 전 부총장은 최근 검찰 조사에서 '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돈봉투가 조성된 게 맞다'고 인정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보도했다.

방송은 또 "나아가 (이 전 부총장은) 여러 관련 인물들과 나눈 대화의 의미와 전후맥락도 자세히 진술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녹음파일에는 이름을 생략하고 성씨만 얘기한 경우도 있는데 누구를 지칭하는지까지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도 했다고 한다. 실제로 이날 JTBC에 보도된 녹음파일에는 이 전 부총장이 "누구한테? 윤한테?"라고 말하는 대목이 있다.

방송은 이 전 부총장이 검찰에서 한 진술 내용에 대해 구체적으로 전하지는 않았으나, 이 전 부총장에 대한 검찰 조사의 결과는 지난 12일 집행된 압수수색 영장에 오롯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이날 MBC <뉴스데스크>는 검찰 압수수색 영장을 확보했다며, 전당대회 당시 모두 9500만 원의 자금이 조성됐고 돈이 전달된 경로는 세 갈래였다고 영장에 적시돼 있다고 보도했다. 같은날 SBS <8뉴스>와 <연합뉴스>도 역시 영장을 입수했다며 보도했지만 액수는 9400만 원으로 다소 차이가 났다.

다만 세 매체 모두 보도 내용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들 보도에 따르면, 검찰은 지난 12일 집행한 압수수색 영장에서 윤 의원이 먼저 강 회장에게 돈을 요구했다고 적시했다. 검찰은 윤 의원이 강 회장에게 '국회의원들의 기존 지지세를 유지하기 위해 의원들에게 돈을 뿌릴 필요가 있다'며 돈을 마련해달라는 요구를 한 것으로 봤다.

이에 따라 강 회장은 대전지역 기업인 등을 통해 6000만 원을 만들어 이 전 부총장을 통해 윤 의원에게 전달했고, 이는 300만 원짜리 돈봉투 20개로 바뀌어 국회의원 10명에게 2차례에 걸쳐 전달됐다는 게 검찰이 현재 갖고 있는 관점이다. '돈봉투' 수령자는 중복이 없다면 총 20명인 셈이다. 검찰은 자금 조달자·전달자 등에 대한 조사를 마무리하면 돈봉투를 받은 이들에 대해서도 수사를 확대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남은 3400~3500만 원 가운데 1400~1500만 원은 조택상 전 인천부시장 등이 마련해 강 회장, 이 전 부총장을 거쳐 3월 30일 지역본부장 10여 명에게, 4월 11일 지역본부장 7명에게 50만 원씩 쪼개져 건네진 것으로 검찰 영장에 적시됐다고 한다. 나머지 2000만 원은 4월말 강 회장이 마련했고, 이는 50만 원씩 나뉘어져 지역 상황실장 20명에게 두 차례 건네졌다고 검찰은 봤다.

ⓒJTBC <뉴스룸> 방송화면 갈무리

송영길 "이정근 개인 일탈 감독 못해 도의적 책임"

전날 윤 의원 본인은 "다른 상황에서 다른 취지로 한 발언"이라며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했고, 민주당도 당 차원의 입장이라며 "국면 전환용 수사 아닌가"라고 했지만 윤 의언 육성 등이 추가 보도되며 곤란한 상황이 됐다.

민주당은 전날 권칠승 수석대변인이 "(권·이 의원의) 압수수색 관련 당의 정리된 의견"이라며 "현재 녹취파일이 유일한 근거로 제시되고 있는 것 같다. 사실관계는 좀 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권 수석대변인은 "압수수색 당일인 12일 언론에서 녹취파일이 공개된 것은 검찰이 기획을 했거나 최소한 개입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라며 "검찰 수사가 국면 전환용 수사 아닌가 하는 국민적 의혹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권 대변인은 "이미 오래 전에 녹취파일을 검찰이 입수했을 것인데 상당 기간이 지난 지금, 대일외교와 여권 지도부의 막말로 여권 지지율이 바닥을 치고 있는 이때 이런 사건이 나왔다는 게 상당히 의아하다"고 하기도 했다.

프랑스 파리에서 방문연구교수를 하고 있는 송영길 전 대표는 이날 현지에서 채널A 방송과 만나 "이 전 부총장의 개인적인 일탈 행위를 감시·감독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 당시 당 대표로서 도의적 책임을 느끼고 국민과 당원 여러분께 죄송한 마음"이라고 했다.

다만 송 전 대표의 이같은 입장은 이 전 부총장의 '10억 알선수재' 사건에 대한 것이며, 돈봉투 사건 의혹에 대해서는 "상황을 잘 모른다"며 "(정부가) 도청 의혹 사건 등 수세에 몰리니까 국면을 반전시키기 위해 검찰이 정치적 행위를 하고 있는 것 아니냐", "모든 녹음파일을 조사했다는데 왜 묵혀놨다가 12일 이정근 1심판결 선고 때 맞춰서 압수수색에 들어가느냐"고 했다. 송 전 대표는 현재 돈봉투 의혹사건과 관련해 검찰에 피의자로 입건된 상태는 아닌 것으로 전해졌다.

방송은 한편 민주당 국회의원들의 정치자금 회계보고서를 살펴보니 이 전 부총장이 선거에 출마했을 때 40여 명의 의원들이 후원을 했다며 "이 전 부총장은 송 대표가 직접 챙길 정도로 신임을 받았던 터라 의원들이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당 관계자 전언을 보도하기도 했다. 이 전 부총장에게 가장 많은 후원을 한 의원은 공교롭게도 이 전 부총장 관련 불법 정치자금 혐의에 연루된 이성만·노웅래 의원(각 300만 원)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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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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