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명·친문 모두 검찰 사정권? '이재명 리스크' 이어 '이정근 게이트' 열리나

검찰, 윤관석·이성만 등 '전당대회 돈봉투' 수사…與 "부패·매표행위 경악"

문재인 정부 고위직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10억 알선수재 사건을 저지른 혐의로 1심 유죄 판결을 받은 이정근 전 더불어민주당 사무부총장 사건이, 2021년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으로 확산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사건의 고리는 이 전 부총장의 휴대전화 녹취파일. 검찰은 이 전 부총장의 휴대전화에서 정치권 인사 등과의 대화가 녹음된 음성파일 수만 개를 찾아내 분석한 결과, 이 전 부총장의 원래 혐의인 알선수재 사건 외에도 그가 전당대회 전후로 민주당 의원들에게 금품을 살포했다는 추가 혐의를 잡아냈다.

구체적으로는 이 전 부총장이 강래구 한국감사협회 회장과 2021년 3~4월 통화하면서 '송영길 당시 대표 후보의 당선을 돕기 위해 투표권을 가진 대의원, 국회의원 등에게 윤 의원을 통해 돈봉투를 나눠주자'는 취지의 대화를 했다는 것이다.

이 전 부총장과 윤 의원, 강 회장은 모두 당시 송영길 캠프에서 선거운동을 돕고 있었고, 송 후보가 당 대표에 당선된 후 윤 의원은 당 사무총장에, 이 전 부총장은 사무부총장에 각각 임명됐다.

검찰, 윤관석·이성만 압수수색…"다섯 명이 빠졌더라" 尹 육성도 보도

검찰은 지난 12일 민주당 윤관석·이성만 의원의 주거지와 사무실 등 20여 곳을 대상으로 압수수색을 펼쳤다. 압수수색 혐의는 정당법·정치자금법 위반이었다.

같은날 저녁 JTBC <뉴스룸>은 이 전 부총장의 휴대전화에서 나온 음성파일들을 입수해 보도했는데, 이에 따르면 강 회장은 2021년 4월 24일 이 전 부총장과의 통화에서 "관석이 형이 '의원들을 좀 줘야 되는 것 아니냐' 나한테 그렇게 얘기하더라. 필요하다면 돈이 최고 쉬운 것 아니냐"고 말하고, 사흘 뒤 이 전 부총장이 강 회장에게 "윤관석 오늘 만나서 그거 줬다. 봉투 10개로 만들었더만"이라고 말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그 다음날인 4월 28일에는 윤 의원이 이 전 부총장에게 "다섯 명이 빠졌더라", "안 나와가지고"라고 말하고, 이 전 부총장은 윤 의원에게 "아니 오빠 모자라면 채워야지. 무조건 하는 김에 다 해야지"라고 말하는 대화도 있었다고 JTBC는 보도했다.

앞서 이 전 부총장의 휴대전화를 포렌식한 검찰은 강 회장이 이 전 부총장에게 "봉투 10개가 준비됐으니 윤 의원에게 전달해 달라"라고 말한 음성파일, 이 전 부총장이 송 전 대표의 보좌관 박모 씨에게 보낸 "전달했다"라는 문자메시지 등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 전 부총장과 박 보좌관 간의 문자메시지는 모두 2차례 있었는데, 2021년 4월 27일 이 전 부총장은 윤 의원과 만난 지 몇 시간 후에 "전달했음"이라고, 이튿날 "잘 전달"이라고 재차 메시지를 보냈다. 돈봉투가 2회에 걸쳐 나눠 전달됐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검찰은 이 '돈봉투'가 윤 의원과 이 의원을 거쳐 민주당 의원들에게 전달됐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돈의 흐름은, 먼저 강 회장이 이 전 부총장에게 6000만 원을 줬고, 이 전 부총장은 이를 300만 원짜리 돈봉투로 만들어 윤 의원 등에게 건넸고, 윤 의원 등이 민주당 현역의원 10명에게 두 차례 이를 전달했다는 게 검찰이 두고 있는 의혹이다. 이는 전날 MBC <뉴스데스크>가 보도한 검찰의 압수수색 영장 내용에서 드러났다.

강 회장은 이와 별개로 민주당 대의원 등 전당대회 관계자들에게 수십만 원이 든 돈봉투를 돌리는 등 3000만 원가량의 돈을 더 뿌린 혐의도 받고 있다. 강 회장이 뿌린 총 9000만 원의 출처는 대전 지역 사업가들로부터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관계자들이 지난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윤관석 의원실 앞에서 압수수색을 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검찰은 지난 2021년 치러진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 선거 과정에서 불법 정치자금이 오간 정황을 잡고 강제 수사에 나섰다. ⓒ연합뉴스

이정근 게이트? 민주당 친명·친문, 모조리 검찰 사정권에

검찰로서는 민주당에 대해 △현재 진행 중인 '이재명 리스크' 관련 의혹들 외에도 △이 전 부총장의 알선수재 의혹과 관련한 문재인 정부 고위직과 친문 정치인들의 혐의 규명, △송 전 대표와 그 측근그룹, 나아가 돈봉투를 받은 민주당 의원들까지 수사를 확대할 가능성이 열린 셈이다.

송 전 대표는 대표적인 '86그룹' 정치인 중 하나이고, 2021년 전당대회 당시에는 비문(非문재인) 포지션으로 당선됐다. 2022년 대선 이후 6월 지방선거 서울시장 후보 출마 국면에서도 친명계와 이해관계를 같이했고 친문·비명계와 대립했다.

이 전 부총장은 12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알선수재 등 혐의 재판 1심에서 검찰 구형보다 무거운 징역 4년6개월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는 이 전 부총장이 문재인 정부 당시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의 직무 관련 사항에 대한 청탁·인허가를 빌미로 기업인 등에게 10억 원에 이르는 금품울 받았다는 것이다.

1심 재판부는 노 전 실장 등에 대한 청탁이 실제로 이뤄졌는지, 이들에게 돈이 건네졌는지 등에 대해서는 별도로 판단하지 않고 '이정근이 노영민 등에게 청탁을 해주겠다고 하고 사업가로부터 돈을 받았다'고만 판시했다. 다만 재판부는 그러면서 "피고인은 금품 수수 과정에서 정관계 인맥을 과시하면서 공무원 및 공공기관의 임직원 과 특수한 관계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알선의 대상을 특정해 장래의 구체적인 처분 내용까지 적시했으며, 일부 알선행위의 실행에까지 나아가기도 했다"고 했는데, '일부 알선행위 실행'이란 부분이 눈길을 끈다.

결과적으로는 이 전 부총장 한 명으로 인해 민주당 친명·친문 양대 계파가 모두 검찰의 사정권 내에 들어오게 된 셈이다. 검찰이 지난해 수사해 올 3월 불구속 기소한 노웅래 의원 관련 의혹도 금품 공여자인 사업가 박우식 씨를 고리로 이 전 부총장과 얽혀 있고, 검찰이 수사 중인 이학영 의원의 지역구 보좌관 특혜취업 의혹 사건도 취업 대상 기업인 한국복합물류에 이 전 부총장이 부정 채용됐다는 의혹에서부터 시작됐다.

당사자들 강력 반발…윤관석 "다른 상황에서 다른취지로 한 발언"

검찰로부터 피의자로 지목된 윤관석·이성만 의원은 강력 반발하고 있다. 윤 의원은 전날 압수수색 당시 "이 전 부총장의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과 저는 아무 관련이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며 "보도에 언급된 인물들 이야기에 본인이 거론되었다는 것조차 황당하기 짝이 없다"고 했다.

윤 의원은 "압수수색에 심히 유감"이라며 "오로지 사건 관련자의 진술에만 의존해 이뤄진 검찰의 비상식적 야당 탄압 기획수사와 이로 인한 무차별적인 압수수색을 규탄한다"고 했다.

윤 의원은 전날 JTBC 방송에 자신의 육성이 보도된 데 대해서는 추가 입장을 내어 "일부 언론의 본 의원 녹취 관련 보도는, 다른 상황에서 다른 취지로 한 발언('다섯 명이 빠졌더라', '안 나와가지고' 등)을 상황과 관계없이 마치 봉투를 전달한 것처럼 단정해 왜곡했는데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유감"이라고 했다.

이 의원도 전날 "황당한 압수수색"이라며 "이 전 부총장과 관련해 보도된 의혹들과 저는 전혀 관련이 없으며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이 의원은 "관련 진술만으로 야당 의원들을 줄줄이 엮으며 정치탄압에 몰두하는 검찰의 야만적 정치적 행태"라며 "제 무고함은 드러날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힘 "부패가 고구마 줄기처럼 드러나"…민주당, 신중·동정론

국민의힘은 민주당에 대한 공세에 나섰다. 최근 정당 지지율 여론조사에서 민주당에 역전당하고 격차가 벌어진 상황에서 김기현 당 대표가 직접 이를 언급하며 선봉에 섰다.

김 대표는 13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에 '이정근 게이트'가 열리고 있다"며 "보도 내용이 사실이라면 송 전 대표도 자신의 당선을 위해 돈봉투가 오고 간 사실을 모를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김 대표는 특히 "돈봉투 선거가 169석 원내1당 당내 선거에서 횡행했다니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며 "대통령 후보를 뽑는 전당대회에서도 이재명 대표 최측근인 정진상·김용 씨에게 대장동 검은 돈이 흘러들어간 정황이 하나 둘 드러나고 있다. 2021년 2번의 민주당 전대에서 모두 돈봉투가 오갔다는 의혹이 점점 가시화되고 있다"고 민주당 전체를 싸잡아 비난했다.

김 대표는 "이쯤 되면 민당의 전대는 '돈당대회', '쩐(錢)당대회'라고 표현될 정도로 부패한 것"이라며 "돈으로 매표하는 행위는 반민주 부패 정당의 가장 대표적 특징인데 민주당이라는 당명이 부끄러울 정도"라고 했다. 그는 "노웅래 의원부터 노영민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 이어 윤관석·이성만 의원에 이르기까지 '이정근 녹음파일'에서 민주당 부패가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드러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또 "거론되는 당사자들은 당치도 않은 야당 탄압이라는 주장만을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다"며 "국회 최고의 권력을 가진 민주당이 비리행위가 나올 때마다 탄압이라며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핏대를 세워 본들 국민적 의혹은 더 커져만 간다는 것을 민주당은 직시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민주당에서는 검찰의 의도를 의심하는 반응이 많다. 민주당 윤건영 의원은 이날 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본인들은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을 하고 있으니 추이를 좀 봐야 되지 않을까 싶다"면서 "잘못이 있으면 당연히 조사를 하고 철저하게 진실을 밝혀야 되겠지만 곶감 빼먹듯이 이렇게 검찰 수사를 해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은 든다"고 했다. 

윤 의원은 "관련 내용을 알지 못해서 단언하는 게 조금 무리가 있을 수는 있지만, 2021년 전당대회에서 돈봉투가 돌아다니고 그럴 리는 없을 것 같다"며 "지금 세상이 어느 때인데"라고 관련 의혹 자체를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민주당 우상호 의원도 이날 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미 도감청 사건을 덮으려는 의도로 급하게 꺼내든 것 같다"며 "최근에 검찰에서 무슨 충격적 사건들을 꺼낼 때 보면 항상 이 정권에 불리한 현안이 될 때"라고 했다.

우 의원은 "검찰이 너무 정치적인 행보를 심하게 한다"며 "국면 전환용 수사 아니냐. 사건은 벌써 2년 된 것인데 이제 와서 터뜨리느냐? 검찰이 도대체 왜 이런 식의 발표들을 이런 국면에서, 오해받을 국면에서 하는가 하는 의심은 있다"고 했다.

민주당 권칠승 수석대변인은 이날 오후 의원총회 후 기자들과 만나 "(권·이 의원의) 압수수색 관련 당의 정리된 의견"이라며 "현재 녹취파일이 유일한 근거로 제시되고 있는 것 같다. 사실관계는 좀 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권 수석대변인은 "압수수색 당일인 어제(12일) 언론에서 녹취파일이 공개됐다. 이것은 검찰이 기획을 했거나 최소한 개입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라며 "이런 측면에서 검찰 수사가 국면 전환용 수사 아닌가 하는 국민적 의혹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권 대변인은 "이미 오래 전에 녹취파일을 검찰이 입수했을 것인데 상당 기간이 지난 지금, 대일외교와 여권 지도부의 막말로 여권 지지율이 바닥을 치고 있는 이때 이런 사건이 나왔다는 게 상당히 의아하다"고 검찰에 대해 의심어린 시선을 보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