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혹행위로 사망한 '윤 일병' 유족들은 9년 동안 싸우고 있다

故 윤승주 일병 9주기, 軍 항의 방문한 유족들 "아들 죽음 누가 왜 숨겼나"

"반드시 알아야겠습니다. 누가 왜 승주의 죽음을 은폐하고, 사인을 조작하려 했는지 알아야만 하겠습니다."

군대 선임병들의 폭행 등 가혹행위로 세상을 떠난 고(故) 윤승주 일병의 9주기를 하루 앞두고 윤 일병의 유가족들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6일 윤 일병 유족들은 군인권센터와 함께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 일병 사망 은폐·조작과 관련한 육군 및 군 검찰의 행위 일체와 △그 과정에서 일어난 인권침해 등에 대한 진상규명 및 면밀 조사를 인권위 측에 요구했다.

윤 일병 사망 은폐 및 조작이란 지난 2014년 5월 육군이 구타로 사망한 윤 일병의 사인을 '냉동만두를 먹다가 질식사한 것'(기도폐쇄에 의한 뇌손상)으로 특정한 후 그에 따른 공소장을 보통군사법원에 제출한 일을 말한다. 당시 군 검찰은 이를 그대로 받아들여 가해자들의 죄명을 살인이 아닌 상해치사로 공소 제기했다.

그러나 같은 해 7월 군인권센터의 폭로로 윤 일병의 사인이 선임들의 폭행 때문이라는 것이 알려지자 육군은 해당 사건을 3군사령부 보통검찰부로 이송했고, 해당 검찰부의 검찰관은 윤 일병의 사인을 돌연 '과다출혈에 의한 속발성 쇼크 및 좌멸증후군'으로 변경했다. 그에 따라 적용 죄명도 살인으로 다시 적용됐다.

이날 유족들은 "(사건의) 가해자들은 처벌되었지만, 누가 어떤 이유로 윤 일병의 사인을 조작하고 은폐하고자 하였는지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라며 "법원도,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도 그저 육군이 '실수'나 '착오'로 구타를 당하다 사망한 윤 일병이 만두를 먹다 목이 막혀 죽은 것으로 판단하였다는 식의 무책임한 설명을 내놓았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군은 왜 최초 대응 당시 윤 일병의 사인을 질식사로 확정해 공소제기했는지, 이후 갑자기 공소장 변경을 신청한 이유는 무엇인지 사건 이후 9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명확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유족들은 지난 2018년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에 이에 대한 진정을 제기했지만, 6년 간의 조사 끝에 지난 2월 유족들이 받은 답변은 '군이 가해자들에게 속아서 벌어진 착오, 실수'라는 결론이었다.

대법원 또한 지난해 9월 윤 일병 사건 국가배상소송에서 "사건 은폐 의도를 확인하기 어렵다"라며 국가의 배상 책임을 부인했다.

군인권센터는 "유가족은 수년간의 정보공개청구와 각종 자료 수집을 통해 윤 일병 사망 이후 육군이 조직적으로 움직이며 유가족을 기망하고 사인을 은폐한 증거를 수도 없이 많이 제출"했다며 대법원의 해당 판결이 "제대로 기록 검토조차 하지 않고" 나온 것이라 주장했다.

유족들은 지난 2월 22일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에 이의신청을 제기했고, 사망위는 지난달 27일 재조사를 의결한 상태다. 이날 유족들은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가 밝혀지지 않은 진실을 어떻게 규명해나가는지 똑똑히 지켜볼 것"이라며 인권위 소속 군인권보호관에게도 사건의 면밀한 조사를 촉구했다.

윤 일병 사건을 계기로 필요성이 제기된 군인권보호관은 군대 내 인권침해 및 차별행위를 조사하기 위한 독립 기구로, 윤 일병 사건이 일어난 지 8년이 지난 지난해 7월 출범했다.

이날 오전 인권위 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한 유족들은 이날 오후엔 서울 중구 소재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를 항의방문하여 위원장과의 면담을 진행했다.

항의방문에는 고 이예람 중사의 아버지, 고 황인하 하사의 아버지, 고 홍정기 일병의 어머니, 고 남승우 일병의 어머니, 고 박세원 상경의 어머니, 고 김상현 일병의 아버지 등 군 내 폭력 및 인권침해 사건의 피해자 유족들이 연대 동행했다.

아래는 고(故) 윤승주 일병 유가족의 6일 입장문 전문이다.

▲6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고 윤승주 일병 사인 조작 진실 규명 진정 제기 기자회견에서 윤 일병의 어머니 안미자 씨가 발언 후 눈물을 닦고 있다. ⓒ연합뉴스

안녕하세요, 윤승주 일병의 어머니, 안미자입니다.

내일은 우리 승주가 세상을 떠나고 9년 째가 되는 날입니다. 아직도 그 날이 생생한데 벌써 10년이 다 되어 갑니다. 그리고 9년이 다 되어가도록 아직도 소송이며 진정을 제기하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 어이없고 화가 나기도 합니다. 대체 국가는 무얼 하고 있는 것입니까?

저희는 반드시 알아야 하겠습니다. 누가 왜 승주의 죽음을 은폐하고, 사인을 조작하려 했는지 알아야만 하겠습니다. 1년에 군대에서 사망하는 아이들이 100여명입니다. 많은 유가족이 자기 자식의 죽음의 원인을 믿지 못하고 불신합니다. 오랜 세월 군 스스로 쌓아온 불신의 결과입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우리 승주의 죽음도 놓여있습니다. 선임병들에게 구타를 당해 사망한 아이를 냉동만두를 먹다가 질식해서 죽었다고 조작한 자가 누구인지, 왜 그런 일을 벌인 건지 진실을 규명해야 합니다. 진실이 밝혀져야만 군이 다시는 이처럼 천인공노할 행동으로 소중한 우리 아이들의 죽음을 갖고 장난치지 못합니다. 그것이 10년이 다 되어가도록 저희 유가족이 계속 국가를 상대로 싸우고 있는 이유입니다.

최근 대통령 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가 윤 일병 사건 사인 조작, 은폐는 없었다는 황당한 결론을 내렸습니다. 저희가 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에 진정을 넣은 건 2018년의 일이고, 결정을 받은 건 2023년 2월 6일의 일입니다. 장장 6년 가까이 조사를 해놓곤, 결론이라고 내놓은 것이 군이 가해자들에게 속아서 착오, 실수로 사인을 ‘만두 먹다 질식사’한 것으로 발표했다는 것입니다. 과연 조사는 제대로 한 것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뿐입니다. 유가족의 편에서 군 사망사고의 진실을 밝혀 이러한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게끔 만들려고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 둔 특별 조사 기구에서 이렇게 일을 처리해도 되는 것입니까?

대법원도,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도 모두 유가족의 주장을 억지인양 표현합니다. 그렇다면 저희가 군으로부터 들었던 숱한 기만은 대체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까? 처음에는 폭행이 없었다더니, 멍 자국이 선명하니 나중에는 폭행은 있었지만 만두 먹다 목이 막혀 사망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다 군인권센터가 사건의 전모를 폭로하니 다시 사인을 바꿔 폭행으로 인한 사망이 맞았다고 시인했습니다. 다행히 사망의 진실은 밝혀졌지만, 누가, 왜, 무슨 목적으로 우리 승주의 죽음을 둔갑시키려고 한 것인지 대한민국은 궁금하지도 않습니까?

이제 국가인권위원회 군인권보호관에게 마지막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진정을 제기합니다. 윤일병 사망 사건 은폐, 조작의 진실을 처음부터 다시 들여다보고 밝혀주십시오. 그래야 같은 기만이 반복되지 않습니다.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도 최근 재조사를 결정했다고 들었습니다. 똑똑히 지켜보겠습니다. 진실을 밝히는 책무를 게을리 하지 않길 바랍니다.

승주를 위해 기도해야 할 날에 누군가에게 아직도 무언가 항의하고 부탁해야 하는 이 애달픈 가족의 마음을 꼭 헤아려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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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섭

몰랐던 말들을 듣고 싶어 기자가 됐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비겁하고, 조금이라도 더 늠름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현상을 넘어 맥락을 찾겠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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