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이유로 세상 떠났지만, 원통한 마음은 같습니다"

"군 책임 인정하고 변희수 순직 인정하라" … '군 참사' 유족들 한 목소리 냈다

"서로 다른 이유로 세상을 떠났지만, 원통한 마음은 다르지 않습니다. 변희수 하사의 뉴스를 보고 남일 같지가 않았습니다." - 고(故) 홍정기 일병의 어머니 박미숙 씨

변희수 하사, 이예람 중사, 홍정기 일병, 황인하 하사, 박세원 수경, 남승우 일병…. 군(軍)을 위해 일했으나 군에 의해 외면당했던 이들의 부모들이 모였다. 복직투쟁 끝에 목숨을 잃은 고(故) 변희수 하사 유가족들의 '순직투쟁'에 연대하기 위해서다. 

27일, 사망 2주기를 맞은 변 하사의 유가족은 이날 오전 서울 서대문구 군인권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변 하사 순직에 대한 국방부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의 재심사를 신청한다"고 밝혔다.

변 하사 유족들을 대리해온 '변희수 하사의 복직과 명예회복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가 기자회견을 주관하고, 유족들이 재심사 신청서와 입장문을 전달해왔다. 변 하사의 유가족이 언론에 직접적으로 입장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육군은 변희수가 개인적인 이유로 사망했다고 설명합니다. 군에서 쫓겨난 것과 별개로 성정체성 때문에 사망했다는 것입니다. 자기 모습대로 살겠다고 수술을 한 사람이 왜 성정체성 때문에 사망합니까? 자기 하고 싶은 걸 하지 못해서 죽는 사람은 있어도, 하고 싶은 걸 해서 죽는 사람은 없습니다." -고(故) 변희수 하사 유가족 입장문 중 일부

▲27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군인권센터 사무실 내부에 고(故) 변희수 하사의 생전 모습을 담은 사진이 전시돼 있다. ⓒ프레시안(한예섭)

군복무 중 성정체성 고민을 이어오던 변 하사는 지휘관들의 승인을 받고 성전환수술을 받았으나 해당 수술을 빌미로 2020년 군에 의해 강제전역 처분을 받았다. 이후 변 하사는 2차 가해와 생활고에 시달리면서 복직투쟁을 벌였지만 지난 2021년 2월 27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같은 해 10월 법원은 '변 하사 강제전역은 부당하며, 이를 취소'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변 하사의 사망이 군 복무 중에 이루어졌으며 △그 죽음에 대한 업무관계성(부당대우)도 인정된 셈이지만 지난해 12월 육군보통전공사상심사위원회는 '변 하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유는 업무와 관계없는 본인의 성정체성 때문'이라며 변 하사의 사망을 순직이 아닌 일반 사망으로 처리했다. 

유족들은 이날 밝힌 입장문에서 "지휘관들의 승인으로 수술을 하였고, 계속 군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쫓아내니 사망한 것이 합리적인 설명이다. 수술을 하고 와서 겪었던 부당한 대우들이 사망의 원인"이라며 "육군은 희수가 성정체성 때문에 죽었다고 억지를 쓰며 희수를 두 번 죽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군은 사건 이후 "이 순간까지 사과 한 번을 하지 않고 있다." 유족들에 따르면 군은 '변 하사 강제전역 처분은 위법'이라는 법원의 판결이 나오고도 유족에게 '위법하게 전역 처리된 1년간의 임금을 받아가라'고 통보했을 뿐, 강제전역 처분 및 이후의 부당대우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유족들은 그 이유가 "자기들의 책임을 인정하기 싫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며 "법을 어기고 잘못한 건 희수가 아니라 대한민국 육군이다. 변희수는 명예로운 육군 하사로 기억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23일엔 국가인권위원회 또한 국방부 측에 '전공사상 재심사를 진행하고 변 하사의 순직을 인정하라'는 권고를 전달했다. 군 당국은 인권위 권고에 "군 인사법에 의거해 순직 심사할 예정"이라고만 언급한 상황이다. 군이 변 하사 사건과 관련한 인권위 권고를 받은 건 이번이 세 번째다. 군은 지난 2회의 권고에 대해서는 불수용 입장을 명시한 바 있다.

이날 기자회견엔 2016년 육군 복무 중 의무대의 부실 진료 끝에 뇌출혈로 사망한 고(故) 홍정기 일병의 어머니 박미숙 씨가 참여해 변 하사 순직투쟁에 대한 연대와 지지의 의사를 밝혔다.

같은 날 오후 7시에 진행되는 변 하사 2주기 추모제에는 2021년 공군 성폭력·사망 사건의 피해자 고(故) 이예람 중사의 유가족 이주완·박순정 씨, 2013년 공군 가혹행위·사망 사건의 피해자 고(故) 황인하 하사의 아버지 황오익 씨, 2015년 구파발 검문소 총기사고 피해자 박세원 수경의 어머니 등 또 다른 '군 참사' 유가족들이 참석할 예정이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서로 다른 사건의 유가족들이 모인 배경에 대해 "군인임에도 불구하고 순직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변 하사 사건에 대해 다른 유가족분들 모두가 안타까움과 분노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27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군인권센터에서 '변희수 하사의 복직과 명예회복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변희수 하사 순직 인정 촉구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프레시안(한예섭)

특히 현장을 찾은 박미숙 씨는 2016년 홍 일병 사건 이후 7년째 홍 일병 순직 판단을 두고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순직투쟁' 당사자이기도 하다. 군은 부대 지휘관, 군의관 등 담당자의 안이한 대처로 사망한 홍 일병 사건을 두고 '국가수호·안전보장, 국민의 생명·재산 보호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직무수행, 교육훈련 중 사망한 사람'에 해당하는 '순직3형' 판단을 내렸다.

이에 박 씨는 2021년 국방부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에 순직 유형 재심을 요청했지만 당시 군은 이를 단 10분 만에 기각했다. 7년째 이어온 박 씨의 투쟁은 지난 10일이 돼서야 분기점을 맞았다. 법원이 홍 일병의 죽음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며 화해를 권고하면서다.

"죽음의 원인을 찾고, 책임을 묻고, (죽은 이의) 명예를 회복시켜주는 일은 국가가 할 일입니다. 유가족들도 국가와 싸우고 싶지 않습니다. 슬퍼하는 데에도 모자란 게 시간입니다. 하지만 국가가 할 일을 안 하고 내팽개쳐두니, 유족이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정기 일로 7년째 싸우고 있습니다. 7년을 싸우고 나니, 얼마 전 법원에서 국가가 유족에게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라는 권고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요? 7년이나 유가족이 거리를 헤매고 다녀야만 하는 일인가요?"

박 씨 또한 순직 유형(2형) 인정을 위한 국방부의 재심사를 '싸움'의 최종 과제로 남겨둔 상황이다. 이날 박 씨는 "지금의 순직 심사 제도는 죽음의 원인을 제공한 군이, 즉 가해자가 피해자를 심사하는 이상한 제도"라며 "자기(군대)가 잘못했다고 스스로 인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유족들은 매번 순직 인정 문제를 놓고 군과 긴 싸움을 벌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찰청, 소방청 등 순직심사에 대해 인사혁신처의 관리를 받는 다른 기관과 달리, 군의 순직심사는 군 소속 보통전공사상심사위와 중앙전공사상심사위에 의해 단독으로 처리된다. 유족들은 보통심사위의 결정에 이의신청할 수 있지만, 중앙심사위에서 이의신청을 기각하면 행정소송마저 불가능하다.

박 씨는 "변 하사의 부모님들도 마찬가지의 고통을 겪고 있다"라며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차별하고 쫓아내고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다면 그건 국가 책임이다. 국방부는 변 하사를 순직자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대위 또한 이날 기자회견문을 통해 "군인사법 제54조의2 제2항은 군인이 의무복무기간 중 사망한 경우 원칙적으로 순직자로 분류하게끔 하고 있다"라며 "변 하사는 (법원 판결로 인해) 의무복무기간 중 사망하였기 때문에 해당 규정의 적용을 받으며, 고의·중과실 및 위법행위를 원인으로 사망한 것도 아니므로 순직자로 분류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들은 "지금 국방부가 해야 할 일은 변희수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게끔 제도와 규정을 정비하고 다양성을 포용할 준비를 하는 것"이라며 "그 첫걸음이 순직인정이다. 과오를 인정하고 고인과 유가족 앞에 통렬히 사죄해야 한다"고 군에 촉구했다.

군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의 재심사 결정에 걸리는 시한은 통상 6개월이다. 다만 중대하거나 시급히 판단할 수 있는 사안은 기관의 재량으로 빠른 판단이 나올 수 있다. 공대위 소속 유가족 법률대리인 강석민 변호사는 "변 하사 사건의 경우 사안이 분명한 데다 이미 구체적으로 조사할 것이 더 없는 경우"라며 "군의 신속한 판단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했다.

▲27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군인권센터 사무실 내부에 고(故) 변희수 하사의 생전 모습을 담은 사진이 전시돼 있다. ⓒ프레시안(한예섭)

[전문] 국방부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 재심사 신청에 관한 고(故) 변희수 하사 유가족 입장문(성소수자부모모임 '하늘' 활동가 대독)

안녕하세요, 변희수 하사의 부모입니다. 희수와 관련된 뉴스 기사를 접할 때면 댓글을 살펴보게 됩니다. 주변 사람들이 다 그러지 말라고 하는데 뜻대로 되지를 않습니다. 저희도 모르게 하염없이 수백 개의 댓글을 살피게 됩니다. 자식에 관한 얘기라면 내 얘기 같다고 느끼는 게 부모 마음이기에 궁금해서 그런가 봅니다. 댓글에 쓰인 오해와 날 선 말을 볼 때면 희수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한편으로 저희도 두려운 마음이 생기는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직접 나서 입장을 전하는 것이 예의지만 이렇게 다른 부모님을 통하여 대신 전달하게 되기까지의 고민을 이해해주십사 합니다.

먼저 희수를 기억하고, 사랑해주시는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제게는 세상을 먼저 떠난 아픈 자식이지만, 다른 이들에겐 힘이 되고, 고맙고, 미안한 사람이었다는 걸 매일 매일 조금씩 이해해나가고 있습니다. 희수가 외롭지 않게 해주어서, 희수의 명예를 되찾는 과정에 늘 많은 도움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처음 전역처분 취소소송을 이어받아 진행하게 되었을 땐 큰 기대를 갖지 않았습니다. 국가와 군대가 작심하고 희수를 쫓아냈는데 법원에서 그걸 뒤집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원통하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법은 잘 모르지만, 법원에 육군 법무관이 나와서 하는 말을 듣다 보면 그들이 희수를 모욕하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습니다. 희수는 생전에 군대를 참 좋아하고, 열심히 복무했습니다. 하지만 군은 희수를 전우로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점도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재판을 이긴 뒤에도 이런 느낌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저희는 군이 법을 어겨가며 희수를 억지로 내쫓았다는 판결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당연히 군에서 사과라도 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재판이 끝나고 얼마 뒤에 저희에게 전화를 걸었던 육군 관계자는 집으로 문서를 보냈으니 잘 살펴보고 작성해서 회신해달라는 말만 했습니다. 문서를 받아보니 희수가 위법하게 전역 처리되어있던 1년 간의 임금을 받아가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저희는 밀린 월급이나 받자고 소송을 한 것이 아닌데 기가 막혔습니다. 조금의 미안함도, 양심의 가책도 느낄 수 없었습니다. 불쾌한 마음에 답신을 안 했더니 독촉 전화를 몇 번 하다 말았습니다. 그렇게 육군은 이 순간까지 사과 한 번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희수는 17살 어린 나이에 군인이 되겠다며 기숙사 생활을 하는 부사관고등학교에 진학했습니다. 졸업을 하고는 바로 부사관이 되었습니다. 어린 나이부터 부모의 품을 떠나 지냈습니다. 걱정이 많았지만 국가에서 데려갔으니 국가가 책임져 줄 것이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군대는 그런 걸 기대할 만한 곳은 아닌가 봅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어떻게든 가지 말라고 해볼 걸 그랬나 봅니다.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살면서 희수의 일로 처음 들어본 국가기관들이 희수의 죽음이 군의 위법한 전역 처분 때문이라는 결론을 여러 전문가들의 자문과 의학적 분석을 통해 밝혀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국방붑와 육군에 희수의 죽음에 국가의 책임이 있음을 인정하고 순직자로 인정하라는 권고를 한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방부와 육군은 끝까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 역시 잘 알고 있습니다.

육군은 변희수가 개인적인 이유로 사망했다고 설명합니다. 군에서 쫓겨난 것과 별개로 성정체성 때문에 사망했다는 것입니다. 자기 모습대로 살겠다고 수술을 한 사람이 왜 성정체성 때문에 사망을 합니까? 자기 하고 싶은 걸 하게지 못해서 죽는 사람은 있어도, 하고 싶은 걸 해서 죽는 사람은 없습니다. 지휘관들의 승인으로 수술을 하였고, 계속 군생활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쫓아내니 사망하게 된 것이 합리적인 설명일 것입니다. 수술을 하고 와서 겪었던 부당한 대우들이 사망의 원인인 것입니다. 그런데 육군은 희수가 성정체성 때문에 죽었다고 억지를 쓰며 희수를 두번 죽이고 있습니다. 자기들의 책임을 인정하기 싫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끝까지 해보려고 합니다. 부모와 자식도 서로 다른 삶이 있고, 온전히 모든 걸 다 이해하고 살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내 자식이 바라는 것, 하고 싶은 건 이뤄주고 싶은 것이 부모 마음이기도 합니다. 변희수는 대한민국의 군인으로 살아가고 싶어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기에 모자람이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법을 어기고 잘못한 건 희수가 아니라 대한민국 육군입니다. 그러니 변희수는 명예로운 육군 하사로 기억되어야 합니다.

국방부는 육군이 위법하게 희수를 강제 전역시키고, 그로 인해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는 점을 인정하고 유가족과 고인 앞에 사과하십시오. 그 첫 순서가 순직 인정입니다. 국방부는 재심사에서 순직을 인정해야 합니다.

희수가 어려운 결심을 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늘 많은 분들의 도움과 사랑이 함께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부디 끝까지 함께 해주시길 바랍니다.

2023. 2. 27 고(故) 변희수 하사 유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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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섭

몰랐던 말들을 듣고 싶어 기자가 됐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비겁하고, 조금이라도 더 늠름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현상을 넘어 맥락을 찾겠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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