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이, 군사 쿠데타와 518만 빼면 '그야말로' 정치는 정말 잘 했을까?

[프레시안books] <5공 남산의 부장들> 김충식, 블루엘리펀트

"곡필은 하늘에 베이고 제대로 직필을 쓰다간 사람에 베이는 운명."

유일하게 역사를 갖는 건 인간이다. 인간과 동물을 가르는 지점은 추상할 수 있는 능력이다. 우리는 역사의 단편 사실들을 기억하고 언어를 사용해 이를 기록한다. 더 중요한 건 그 사실들을 엮어 서사로 만드는 작업이다. 인과관계를 활용해 현상의 근원을 추론하고, 과거와 현재의 시간 상에 놓여진 병렬적 사실 다발을 추려낸 뒤 연결해 잘 뽑힌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거기에서 윤리와 사상을 수확한다.  

<5공 남산의 부장들>은 저자 김충식의 전작 <남산의 부장들>에 이어 피식민과 독재를 겪어온 20세기 한국 현대사 속에 나타난 독특한 경찰국가(警察國家, police state) 시대에 관한 웰메이드 리포트다. 한국에서 이런 리포트가 세상에 선 보일 수 있다는 점은, 어쩌면 다른 수많은 피식민 경험의 독재 국가들과 21세기 한국을 구분지어주는 일종의 증거가 되기도 하겠다. 그래도 이런 책은 쉽게 나오는 게 아니다. "곡필은 하늘에 베이고 제대로 직필을 쓰다간 사람에 베이는 운명"의 시대에, 작가의 외로운 투쟁이 한몫 해야만 했다. 김충식은 아무도 쓰지 않으려 했던 이야기를 쓰기로 결심한다. "곡필은 하늘에 베이고 제대로 직필을 쓰다간 사람에 베이는 운명"임에도 불구하고.

동아일보 기자로 30년간 치열하게 권부를 취재한 김충식은 "1992년 최초로 (박정희 시대를 다룬) <남산의 부장들>을 쓰게 될 때 박정희 18년이 끝난는데 지금 1990년이 되는데 아무도 그 18년의 정보부 역할을 안 쓴다. 이건 역사에 대한 직무유기 아닌가. 제가 편집국에 늘 주장을 했다. 이건 누군가는 써야 된다"고 회상했다. 당시 이런 말로 간부들을 설득해 작업에 착수, 유일무이한 리포트를 만들어내고 52만부 이상 팔리는 '베스트셀러'를 달성한 뒤 후속 작업에 돌입했다. 5공 시절 '남산'의 이야기다. 민주화 된 후 아직까지 그 이야기를 여전히 '직무유기' 하고 있던 게 이상할 정도다. 

이 책에 담겨 있는 한국의 역사는 이중 구조로 돼 있다. 상부구조가 대통령 권력의 변화와 정치 구조의 변화 등 '정사'를 의미한다면, 토대는 아무래도 '남산'으로 상징되는 정보부의 이야기다. 인터넷도 없던 시절 시민과 권력의 정보.수단의 비대칭은 '어둠의 세력'이 한국사를 좌지우지하도록 했다. 논쟁의 소지가 다분한 단체이긴 해도, 20세기 시민과 정부간 권력 투쟁의 상징 위키리크스가 설립된 게 2006년의 일이다. 20세기 말까지 이어진 정보 비대칭 시대에 시민들은 고군분투했고, 권력은 그 힘을 악용해 정권을 만들고 유지해 왔다. 특히 한국은 그 표상과도 같은 국가였으며, 그런 권력의 구조를 <남산의 부장들>, <5공 남산의 부장들>과 같은 리포트로 드러낼 수 있는 '민주화의 힘'도 함께 겪어낸 거의 세계 유일의 국가다. 

▲<5공 남산의 부장들> 1, 2권 ⓒ블루엘리펀트

권력, 그 치명적 유혹에 휘말려 권력의 광기와 함께 춤을 춘 인간들의 이야기

박정희 권력 18년의 핵심이었던 스산한 이름 남산. 부하 김재규의 총탄에 숨진 박정희 권력이 끝나는 시점에 전두환은 다시 남산으로 기어들어간다. 전작 <남산의 부장들>에 이어 다시 남산이다. 여기에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김충식은 일개 보안사령관 전두환이 12.12쿠데타를 일으킨 후 권력의 핵심으로 나아갈 발판으로 삼은 결정적 '한 수'를 '중앙정보부장 편법 겸임'으로 봤다. 남산에서 호령하던 중앙정보부에 남아 있던 '통치 자금' 120억 원을 빼돌리기 위해선 전두환이 스스로 남산에 들어가야만 했다. 김재규의 거사 이후 죽어 있던 정보부가 가진 권력은 반드시 필요했다. 결국 전두환은 스스로 '셀프 승진'해 중장을 달고 협박과 편법을 동원해 "법적으로 불가"한 일인 정보부장 겸직 재가를 기어코 받아낸다. 이게 1980년 2월. 전두환 나중에 회고한 '대통령이 될 계획이 없었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이었다. 왜곡은 이런 기록에 의해 바로잡혀야 한다.

<5공 남산의 부장들>은 남산에 의해 살해당한 권력자를 이어 권력을 잡기 위해 남산으로 스스로 기어 들어간 자와 함께,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한 후 대통령직에 오른 권력자(전두환)을 모셨던 부장들의 이야기다. 5공의 부장들은 다섯명이다. 전두환, 유학성, 노신영, 장세동, 안무혁. 유학성 부장 시절, 3공을 상징하던 이름 중앙정보부는 안전기획부로 이름을 바꾼다. '안전을 기획한다'. 중앙정보부가 정적인 이름이라면, 안전기획부는 동적인 이름이다. 민주화를 앞둔 단말마같은 독재 시절, 그들은 '권력 안보'를 적극적으로 기획했다. 그러나 안전이 실제로 '기획'될 수가 있었다면, 살인과 정치 공작으로 내달린 그들은 아마 훗날에도 평온한 삶을 살았으리라. 어쩌면 '안전기획부'는 뜬구름잡는 허망한 이름일 수 있겠다.

전두환은 박정희 시대의 마지막 정보부장 김재규, 이희성 임시 정보부장의 후임으로 1980년 4월 14일 '셀프 취임'했다. 그리고 최초로 보안사령관과 중앙정보부장을 겸임했다. 당사 합수부의 핵심 보안사의 정보력과, 김재규 체포로 머리를 잃은 정보부의 돈(예산)을 잡고 정권을 탈환의 핵심 포스트(위치)를 장악했다. 그는 자신을 총애하던 박정희, 그리고 박정희 시대 정치를 쥐락펴락했던 육사 선배들의 가르침을 토대로 권력을 잡았다. 유학성은 12.12 쿠데타 핵심 중 한명으로, 12월 12일 '경복궁 모임'의 주동자였다. 전두환의 후임으로 5공 출범과 함께 정보부장에 취임한 후 '장영자 어음 사기 사건'에서 전두환 친인척 단죄 주장을 했다가 경질된다.

노신영은 최초의 문민 출신 안기부장이었다. 외교부 관리로 잔뼈가 굵은 그는 전두환식 통치의 기반을 닦았고, 야당에 유화책과 강공책을 썼으며, 5공 초반 북한, 중국과 외교 문제를 다뤄 북방 외교의 초석을 놓기도 했다. 한편에선 '영리한 탄압'과 이간책에 능했다. 그는 전두환의 인정을 받고 안기부장에서 국무총리로 직행한다. 장세동은, 전두환 정권의 몰락을 자초했다. 아니, 자초했다기보단, 몰락과 함께 했다. 박종철 물고문 사건, 정치 깡패 용팔이 사건 등의 중심에 섰던 그는 5공 몰락을 감지했던 권력의 마지막 몸부림같은 인물이었다. 안무혁은 사실상 노태우의 사람으로, 권력 교체기에 잠시 안기부장을 지내지만, 노태우 당선 후 노태우의 처고종사촌이자 실력자였던 박철언에 밀려 스스로 떠난다.

'악의 평범성'이라 하던가. 박정희를 죽인 김재규도, 광주 시민을 학살한 전두환도, 툭하면 학생들, 운동가들, 기자들, 심지어 국회의원들과 공무원들까지 잡아다 두들겨패던 정보부서의 주요 인물들부터 말단의 고문 경찰도, 그들의 일상에서 사적으로 살인을 일삼거나,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거나, 술과 마약에 쪄들거나 하지 않는 인간들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일상에서 종교인이고, 좋은 이웃이고, 좋은 가장이었을터다. 자기 아들이 부당하게 얻어맞고 들어오면 분노하는 그런 '일상적 정의감'도 있었으리라. 박종철을 죽이는데 일조한 고문 경찰은 교도소에 갖히자 울면서 찬송가를 불렀다. 찬송가는 죄가 없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권력'에 충성케 하고, 무엇이 그들에게 잔혹한 짓을 '국가'와 '애국심'의 이름으로, 때론 '안보'를 위한다는 이름으로 자행하게 하는 것일까. 김충식은 수많은 이들의 증언, 그리고 회고록, 역사적 기록, 기자 시절 메모를 교차대조하며 꼼꼼하게 써내려가면서도, '무엇이 그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라는 질문을  놓지 않는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 노력한다. 

"감시받지 않는 권력으로서 뭔가를 꾸미고 싶다고 하는 권력의 생리가 있단 말이에요. 그걸 객관적으로 견제하고 감시하고 시스템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된다. 그게 제 생각입니다. 그러니까 중앙정보부도 그게 안 돼 있었고, 법적으로 관행적으로. 안기부도 안 돼 있었고 국정원도 덜 돼 있다가 서훈, 박지원에 이르러서 국정원은 완전히 정리가 된 것 같은데 그 유령 같은 권력의 횡포의 근거가 되는 실체가 떠돌고 있어요, 하늘에.(...) 정치 깡패를 동원할 때 그것이 역사적으로 김충식이 언젠가 쓴다고 생각했으면 쓰겠냐고요. 수지김 간첩으로 그렇게 하는 게 진중권 교수가 언젠간 그걸 캐낸다고 하면 그걸 했겠냐고요. 영원히 덮일 것이다라는 생각 하에 하는 것이다. 그런 것을 사람들이 깨닫도록 하는 것이 우리들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5공 남산의 부장들> 1, 2권 저자 김충식 가천대 교수(전 동아일보 기자) ⓒ블루엘리펀트

인간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결국 폭정도 '평범한 인간'이 하는 것

"전두환 대통령이, 군사 쿠데타와 5.18만 면, 그야말로 정치는 잘했다고 얘기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거는 호남 분들도 그런 얘기 하시는 분들이 꽤 있어요. 그 왜 그러느냐, (전문가에게) 맡긴 거예요. 이 분은 군에 있으면서 조직관리를 해봤기 때문에 맡긴 겁니다."(2021년 10월 19일, 윤석열 대통령 대선 후보 시절)

12.12 쿠데타 발발일을 이틀 앞구고 있다. 전두환에 대한 평가는 이렇게 다양한데, 이런 생각을 가진 분들에게 이 책을 꼭 권하고 싶다. 이 책은 5공 남산의 부장들을 줄기로 한 전두환 시대의 역사서다. 강준만은 이 책을 두고 "최초의 전두환 평전"이라고 평가했다. "권력학 교재"이면서 "인간학 교재"라 표현하며 "권력의 몹쓸 악행은 반드시 밝혀지고 기록되게 돼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하면서 깨닫게 해주는 것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고 말했다. 하늘 위에 놓인 '그들만의 정치사'를 땅으로 잡아 끌어내리는 작업은 후세 사람들의 일종의 의무다. 김충식의 기록은 그런 면에서도 값진 일이라 할 수 있다. 

정제된 사실을 나열했으면서, 과거의 사건과 과거의 인물들 그 얽히고 설킨 인연을 날카롭게 역어내는 힘도 이 책의 매력이다. 운명론은 역사에 사치겠지만, 역사의 '교훈'은 항상 운명론처럼 다가 오는 게 사실이다. 무감각한 사람들을 일깨우는 힘은 스토리다. 세상은 시스템이 존재하고, 관련 없는 사실들이 나열돼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치사를 종합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선 씨줄 날줄로 엮인 인물의 관계와 계량될 수 없는 욕망 덩어리들, 그리고 수많은 우연들이 만들어낸 커다란 물줄기의 종착점은 누군가 짚어 줘야만 한다. 기본적으로 정치라는 건 계량할 수 있는 자원을 계량할 수 없는 욕망들에게 분배하는 방법 아니겠는가. 

이 책이 어떤 정치학 교과서보다 한국 정치를 이해하는 데 더 도움이 된다는 남재희의 평이 인상깊었다. 기자도 초년병 시절 남재희(기자 출신)의 <아주 사적인 정치 비망록>을 읽으며 느꼈던 '한국 정치의 속성'에 대한 이해력이 <남산의 부장들>과 <5공 남산의 부장들>을 거치면서 단단히 벼려진 느낌을 받았다. 이런 책을 쓰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다. 게다가 한번 펴면 중간에 덮더라도, 짬을 내 읽을 시간을 찾게 만든다. 이야기의 힘이다. 조지오웰의 산문 '나는 왜 쓰는가'의 한 구절을 저자와 공유하고 싶다. 

"책을 쓴다는 건 고통스러운 병을 오래 앓는 것처럼 끔찍하고 힘겨운 싸움이다. 거역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어떤 귀신에게 끌려다니지 않는 한 절대 할 수 없는 작업이다. 아마 그 귀신은 아기가 관심을 가져달라고 마구 울어대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본능일 것이다. 그런가 하면 자기만의 개별성을 지우려는 노력을 부단히 하지 않는다면 읽을만한 글을 절대 쓸 수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좋은 산문은 유리창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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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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