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의를 입은 갈매기섬

[시로 쓰는 민간인학살] 전남 해남군 산이면 학살

우리의 현대사는 이념갈등으로 인한 국가폭력으로 격심하게 얼룩지고 왜곡되어왔습니다. 이러한 이념시대의 폐해를 청산하지 못하면 친일청산을 하지 못한 부작용 이상의 고통을 후대에 물려주게 될 것입니다. 굴곡진 역사를 직시하여 바로잡고 새로운 역사의 비전을 펼쳐 보이는 일, 그 중심에 민간인학살로 희생된 영령들의 이름을 호명하여 위령하는 일이 있습니다. 이름을 알아내어 부른다는 것은 그 이름을 존재하게 하는 일입니다. 시간 속에 묻혀 잊힐 위기에 처한 민간인학살 사건들을 하나하나 호명하여 기억하고 그 이름에 올바른 위상을 부여해야 합니다. <프레시안>에서는 시인들과 함께 이러한 의미가 담긴 '시로 쓰는 민간인학살' 연재를 진행합니다. (이 연재는 문화법인 목선재에서 후원합니다) 편집자

백의를 입은 갈매기섬

경찰들이 탄 범선이 흰 옷에 덮인 섬으로 돌아왔다

갈매기섬은 그들이 감추고 싶은 학살현장이었다

돌아온 경찰들은 시체들을 향해 다시 방아쇠를 당기고

기름을 붓고 불을 질렀다 흰 옷 입은 섬을 태웠다

1950년 7월, 타다 남은 시체의 분노와 땡볕이 뜨거웠다

해남 산이면 부동리 김정오는 친구와 지게를 지고 산으로 갔다

갈퀴로 마른 솔잎을 모으고 있을 때 총소리가 들렸다

경찰한테 쫓기던 보도연맹원들과 산이면 상공리 사람들이

부동리 쪽으로 쫓기고

땅끝을 향해 달아나고 있었다 전쟁 중의 전쟁이었다

솔잎이 놀라 숨을 죽였다 총소리에 솔잎 한 움큼 떨어지고

놀란 짐승이 뛰고 사람들이 숨을 곳을 찾았다

땔감을 모으던 열대여섯 살 사내아이들이 경찰한테 붙잡혔다

숨바꼭질 놀이가 아니었다 머리에 손을 얹고 혼이 나간

정오가 허둥지둥 논길로 달아났다 총구가 정오를 향했다

혁명은커녕 좌우이념도 봉기도 모르는 농사꾼의 아들이었다

김정오가 죽은 그날 붙잡힌 사람들이 갈매기섬으로 끌려왔다

벼랑 끝에 선 사람들이 총알을 맞고 쓰러질 때마다

동백나무 그늘이 검붉고 푸른 잎이 두꺼워졌다

주검 밑에 깔려 살아남은 사람과 증언이 동백나무 숲에 숨었다

그는 시신의 검은 옷을 입고 고무신을 벗겨 빗물을 받아마셨다

진도군 의신면 멀리서보면 평온한 무인도 갈매기섬은

다친 날개를 폈으나 미처 날아가지 못한 새 한 마리

갈매기들이 울었다 바위와 바람과 파도가 끌어안고 울었다

하루도 울지 않는 날이 없었다 사람들은 울음을 막고

수백 명의 민간인이 학살당했지만 입을 틀어막고 말문을 막고

아버지는 정오형의 제사를 지내고나면 얼굴이 벌그죽죽해졌다

갈매기섬 희생자 위령탑에는 김정오란 이름은 없다

끌려가다 죽고 수장당하고 저항하다 죽은

백의를 입은 사람의 이름을 다 알 수 없었다 부를 수 없었다

▲ 해남군 산이면 부동리. 상공리 사람들이 부동리 쪽으로 달아났던 들판. 예전 소나무 숲이 무성했던 솔숲을 개간에서 농경지로 만들었다. ⓒ김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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