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의 '러시아·중국 악마화'가 세계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

[해외 시각] 유럽 및 세계의 안보는 오직 외교로 달성 가능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6개월이 지났지만, 외교적 해법은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세계 인구의 4.2%, 세계 GDP의 16%를 차지할 뿐인 미국이 "세계 패권을 유지하겠다"는 위험하고 헛된, 심지어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다음 글은 컬럼비아대 교수이자 유엔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 소장인 제프리 삭스(JEFFREY D. SACHS)가 '서방의 위험한 러시아와 중국의 인식(The West's Dangerously Simple-Minded Narrative About Russia and China)'라는 제목으로 비영리 미국 소재 뉴스 웹사이트 <커먼 드림스>에 올린 글이다. 편집자

현재 세계가 핵전쟁의 재앙에 다가가고 있는 원인의 상당 부분은 서방의 정치지도자들이 세계적 갈등 심화의 원인들에 대해 솔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서방의 지도자와 언론들은 서방은 정당한 반면, 러시아와 중국은 오로지 세계에 엄청난 해악을 끼치려는 악마(evil)라는 담론을 지속적으로 퍼뜨리고 있다. 이는 한편으로 지극히 화급한 외교적 해법을 무시하면서 서방의 대중여론을 조작하려는 시도일 뿐이다.

서방 측 담론의 핵심은 (2017년 12월 트럼프 행정부가 작성한) 미국의 국가안보전략에 잘 요약돼 있다. 미국의 세계 인식의 핵심은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의 안보와 번영을 해치려 시도하는" 확실한 적대국가라는 것이다. 미국 전략가들에 따르면 중국과 러시아는 "세계 경제의 자유와 공정을 해치고, 자신의 군사력을 증강하며, 엄격한 정보 통제를 통해 시민사회를 억압하고 독재정부의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작정한 국가들"이다.

그러나 미국은 1980년 이후 무려 15차례 이상 해외에서 불필요한 전쟁을(wars of choice : 아프간, 이라크, 리비아, 세르비아, 시리아, 예멘 등) 벌인 국가인 반면, 중국은 한 번도 전쟁을 벌이지 않았고, 러시아는 단 한 차례 해외 전쟁을(시리아) 벌였을 뿐이다. 또한 미국은 85개 나라에 군사기지를 갖고 있는 데 비해 중국은 세 나라, 러시아는 한 나라(시리아)에만 해외 군사기지를 보유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 시대의 최대 과제는 이들 독재국가들과의 대결이라는 주장을 끊임없이 되풀이하고 있다. "오늘날의 지구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자신들의 억압적 정책들을 정당화하면서 오로지 자신만의 국가 이익을 추구하고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려 하는" 중국과 러시아를 저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의 안보전략은 어느 한 행정부의 작품이 아니다. 국민들의 감시와 통제를 벗어나 자율적으로, 그리고 비밀리에 작동하는 (군산복합체 등) 미국의 안보세력이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낸 것이다.

러시아와 중국에 대한 과도한 공포 조성은 사실의 조작을 통해 서방의 시민들에게 주입되고 있다. 20여 년 전 아들 부시 대통령은 미국에 대한 최대 위협은 이슬람근본주의라고 국민들을 설득했다. 하지만 그는 이슬람근본주의 세력을 만들어낸 것은 바로 미국의 CIA와 사우디아라비아, 파키스탄 등이며 미국 등의 자금과 군사 지원을 받은 이슬람 무장세력이 미국을 대신해 아프간과 시리아, 리비아 등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은 밝히지 않았다.

서방 언론에 의해 일방적 침략으로 매도된 1979년 12월 소련의 아프간 침공은 또 어떠한가.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우리는 소련의 침공이 실상은 CIA의 비밀공작에 의해 촉발됐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 않았는가! 이러한 정보조작은 시리아 내전에서도 일어났다. 서방 언론들은 2015년 이후 시리아 아사드 정권에 대한 푸틴의 군사지원을 매섭게 비난했으나, 이미 2011년부터 미국이 아사드 정권 제거를 위해 이슬람 무장세력을 동원했다는 사실은 일체 함구했다. 아사드 제거를 노린 CIA의 비밀공작(단풍나무작전 : Timber Sycamore)은 푸틴의 군사지원보다 무려 4년이나 앞섰는데도 말이다.

한편 최근에는 펠로시 하원의장이 중국의 강력한 경고를 무시하고 무모하게도 대만 방문을 강행했다. 이에 대해 G7의 외무장관들은 펠로시의 도발을 비판하기는커녕 중국의 "과도한 대응"을 비난하기에 급급했다.

우크라이나전쟁에 대한 서방 측 담론은 러시아 제국을 재건하려는 푸틴의 도발되지 않은 공격(unprovoked attack)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냉전 종식 당시 서방은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에게 나토의 동진 금지를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네 차례에 걸쳐 나토를 확대했다는 것이 역사적 진실이다. 1999년 폴란드, 체코, 헝가리를 시작으로 2004년 발트 3국 등 7개 국가가 가입했고, 2008년에는 우크라이나와 조지아의 가입이 약속됐으며, 올해 6월 마드리드 나토 정상회담에는 중국 봉쇄를 겨냥해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4개국이 옵서버 자격으로 참가했다.

또한 서방 언론들은 2014년 2월 이른바 마이단 쿠데타를 통한 우크라이나의 친러파 대통령 야누코비치의 제거에서 미국의 주도적 역할, 이후 프랑스와 독일이 민스크2 협정을 중재했으면서도 우크라이나에 협정의 이행을 요구하지 않았다는 사실, 그리고 트럼프와 바이든 행정부가 우크라이나에 막대한 무기 지원과 군사 훈련을 제공하면서 전쟁을 부추겼다는 점, 나토 동진과 관련한 푸틴의 거듭된 협상 요구를 미국이 일방적으로 거부했다는 사실 등은 전혀 보도하지 않았다.

물론 나토는 자신들의 행위가 순전히 방어적인 것이며 푸틴이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푸틴은 아프간과 시리아 등에서의 CIA 비밀공작, 1999년 (사회주의 형제국) 세르비아에 대한 78일간의 무차별 공습, 2011년 나토에 의한 리비아 가다피 정권 제거, 20년에 걸친 나토의 아프간 점령, 푸틴의 제거를 요구한 지난 3월 바이든의 "말실수"(물론 전혀 말실수가 아니다), 그리고 러시아의 돌이킬 수 없는 약화가 미국의 우크라이나전쟁 목표라는 오스틴 국방장관의 발언 등에 대해 전혀 걱정하지 말라는 얘기다.

이러한 미국의 시도들의 목표는 서방 국가들과의 군사동맹을 통해 중국과 러시아를 봉쇄, 또는 패퇴시킴으로써 미국의 세계 패권을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위험하고, 헛된 꿈이며,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이다. 현재 미국은 세계 인구의 4.2%, 세계 GDP의 16%를 차지할 뿐이다. G7의 GDP를 다 합쳐봐야 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공)보다도 적다. G7의 인구는 세계 인구의 6%에 불과한 반면 BRICS는 41%나 된다.

현재 세계의 지배 국가가 되겠다는 헛된 꿈을 꾸고 있는 국가는 단 한 나라, 미국뿐이다. 이제 미국은 안보의 진정한 원천이 무엇인지를 깨달아야만 한다. 안보의 진정한 원천은 패권 유지라는 헛된 꿈이 아니라 국가 내부의 사회적 융합과 세계 다른 나라들과의 책임 있는 협력이다. 이러한 깨달음으로 기존 외교정책을 수정했을 때, 비로소 미국과 그 동맹국들은 중국 및 러시아와의 전쟁을 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현재 지구촌에 닥친 환경, 에너지, 식량, 사회적 위기 등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인류 사회가 극단적 위기에 처한 현재, 유럽의 지도자들이 유럽 안보의 진정한 바탕을 추구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미국의 패권 유지가 아니라 모든 유럽 국가들의 정당한 안보 이익을 보장하는 유럽의 새로운 안보질서를 만들어내야 한다. 물론 여기에는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나토의 흑해 진출에 강력 반대하는) 러시아의 안보 이익도 고려되어야만 한다. 유럽은 나토의 확대 중단, 그리고 민스크2협정의 성실한 이행이 참혹한 우크라이나전쟁을 중단할 수 있는 길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현 단계에서는 군사적 대결 심화가 아니라 외교만이 유럽과 세계의 안보를 보장할 수 있는 확실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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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규

서울대학교를 나와 경향신문에서 워싱턴 특파원, 국제부 차장을 지내다 2001년 프레시안을 창간했다. 편집국장을 거쳐 2003년부터 대표이사로 재직했고, 2013년 프레시안이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면서 이사장을 맡았다. 남북관계 및 국제정세에 대한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연재를 계속하고 있다. 현재 프레시안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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