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5년간 영국에서 살고 있다. 영국 여성과 결혼해 애 낳고 살며 느낀 점이 '밤하늘의 별' 만큼 많다. 자녀들은 초·중·고·대학교를 영국에서 나와 지금은 다 독립해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아무리 영국에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어도, 나는 자주 한국이 그립다. 한국의 문화, 냄새, 심지어 소음까지도 그립다. 전에 가족과 함께 한국에 갔다. 그런데 한국에 머무는 동안, 이번에는 영국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영국의 문화, 풍경, 심지어 영국의 날씨까지도 말이다.
이상하게도, 영국에 있을 땐 한국이 그립고, 한국에 있을 땐 영국이 그립다. 어쩌면 나는 욕심쟁이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중국적자'는 아니지만 분명히 '이중감정자'다. 하지만 그게 바로 나다. 삶이 힘들고 슬플 땐, 우리는 평화로운 천국을 그리워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설령 평화로운 천국에 있더라도, 우리는 이 바쁘고 소란스러운 삶이 그리워질 수도 있다. 자, 이제 그러면 내가 느끼는 한국과 영국의 자원봉사 문화에 대해 나누고 싶다.
"영국은 취미로, 한국은 미션으로"
자원봉사라고 하면 흔히 "좋은 일" 정도로 여기기 쉽다. 그런데 같은 '좋은 일'에도 한국과 영국은 접근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
비유하자면, 영국은 애프터눈 티 같은 봉사를 한다. 여유 있고 일상 속에서 은은하게 스며든다. 반면, 한국은 삼각김밥 같다. 빠르고 실용적이며, 때로는 꽤 뜨겁다.
영국에서 나는 1주일에 두 번, 지역의 옥스팜(Oxfam) 가게에서 자원봉사를 했다. 내 자녀들도 학생 시절 자원봉사활동을 했다. 코로나19로 록다운이 시작되었을 때는, 내가 전공한 역사 지식을 살려 독거노인들께 '2차 세계대전 이야기'를 들려주는 자원봉사도 했다. 아내는 자원봉사로 동네 Help Line 전화상담을 통해 외로운 어르신들의 말벗이 되었다.
우리 동네엔 공원 정비, 도서관 정리, 거리 청소 등 다양한 자원봉사 활동이 일상처럼 이루어진다. 심지어 고위공직자나 정치인조차도, 보여주기 식이 아닌 당연한 사회적 책임으로 자원봉사를 한다.
자원봉사, 영국에선 '교양', 한국에선 '인증'
영국 성인의 약 54%가 매년 정기적으로 자원봉사에 참여한다. 그중 30% 이상은 매달 1회 이상 꾸준히 활동한다. 자원봉사는 이들에게 '책임' 보다는 '취미', 혹은 '교양' 의 일환이다.
반면 한국은 어떤가. 행정안전부와 한국자원봉사포털 자료에 따르면, 자원봉사 경험자 비율은 32.7%, 정기 참여자는 20%도 되지 않는다. 그 마저도 주요동기는 '생활기록부', '회사 평판', '스펙 관리' 등 외적 이유가 많다.
현장에서 흔히 들리는 말이 있다.
"이게 봉사지, 노동이지…"
"봉사 인증서 어디서 받죠?"
"사진 찍어야 봉사한 거 맞는 거 아녜요?"
자원봉사가 때로는 '미션 클리어(작전 성공)' 처럼 여겨 지기도 한다.
위기에는 뜨겁고 강한 한국, 평상시엔?
한국인의 봉사정신은 특별히 국가위기상황이나 재난 시에 빛을 발한다. 재해복구 현장에서 맨손으로 땀 흘리는 시민들, 김장철 뜨거운 열정으로 나누는 어머니들. 이런 모습은 한국 사회만의 강점이다.
하지만 질문은 남는다. 평소엔 왜 이렇게 조용할까?
그 차이는 한국과 영국의 교육과 문화, 제도 속에 있다. 영국은 초등학교 때부터 '봉사는 공동체 삶의 일부' 라는 교육을 한다. 봉사는 시민 됨의 첫걸음이자, 이웃과의 연결이다. 반면 한국에선 입시·취업을 위한 '스펙화' 된 활동으로 기능하는 경우가 많다.
김치찌개형 봉사 대 홍차형 봉사
한국의 자원봉사는 김치찌개 같다. 얼큰하고, 뜨겁고, 강렬하다. 하지만 매일 먹기엔 다소 부담스럽다.
영국의 자원봉사는 홍차 같다. 은은하고, 차분하며, 매일 마셔도 질리지 않는다. 즉각적인 임팩트는 적을지 몰라도, 오래도록 지속 가능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 '홍차 김치찌개 봉사'?
어쩌면 우리는 두 문화의 장점을 절묘하게 섞은 자원봉사 DNA를 만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한국의 열정과 영국의 여유가 만난다면, 그것이야 말로 진짜 '글로벌 자원봉사' 아닐까?
자원봉사는 국적을 초월한 인간애의 표현이다. 방식은 달라도, 그 본질은 같다. 중요한 건, 얼마나 멋지게 했느냐가 아니라, 그 봉사를 통해 누군가의 마음에 얼마나 따뜻함이 전해졌느냐 일 것이다.
이번 주말, 우리 모두 한 잔의 홍차 혹은 한 그릇의 김치찌개 같은 '자원봉사'를 해보는 건 어떨까?
* 참고자료
한국 자원봉사자 현황 (2023, 행정안전부/한국자원봉사포털)
등록 자원봉사자 수: 약 1,480만 명
연 1회 이상 자원봉사 경험자 비율: 약 32.7%
주 참여층: 10대 학생, 60대 이상 고령층
주요 분야: 환경정화, 급식, 행사 지원
주 동기: 생활기록부, 회사 요청, 시간 인증 등
영국 자원봉사자 현황 (2023, Community Life Survey/Volunteering Matters)
연간 정기 자원봉사자 비율: 약 54%
월 1회 이상 활동 비율: 30% 이상
주요 참여 계층: 전 연령층 고르게 분포
주요 분야: 지역 공동체, 문화행사, 스포츠
주 동기: 사회적 책임, 이웃과의 관계, 자기계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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