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정부 '공정'은 안티 페미? ... 여가부 '버터나이프크루' 폐지 논란

"권성동 전화 한 통에 사업 사라져" ... 사업 정상화 서명 1만 명 돌파

여성가족부가 지난달 '버터나이프크루(청년성평등추진단)' 사업을 전면 폐지한 일에 대해 사업 참여 단체들이 일제히 반발하면서 정부여당을 둘러싼 '반(反) 여성주의'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특히 여가부의 이번 사업 폐지 결정이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의 전화 한 통으로 이뤄진 결정"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이른바 '절차적 공정'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정부여당의 이미지에도 타격이 가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버터나이프크루는 지난 2019년부터 출범한 여성가족부의 시민참여 사업이다. 크루로 선정된 단체들은 여가부 지원을 통해 성평등 문화 확산을 위한 연구, 캠페인, 콘텐츠 제작 등 프로젝트 활동을 진행한다.

해당 사업은 전 정부에서 시작된 사업이지만, 지난 7월까진 현 정부 또한 사업을 정상적으로 추진했다. 지난 4월 20일 4기 크루로 선정된 사업 참여 단체들은 여가부 내부 인사변동 이후에도 사업을 '원래 일정대로 진행'한다는 안내를 받았다. 지난 6월 30일엔 김현숙 여가부 장관이 직접 참여한 크루 출범식도 열렸다.

문제는 7월 초, 권 원내대표의 소셜미디어 게시 글로부터 발생했다.

권 원내대표는 지난 7월 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버터나이프크루에 대해) 여러분으로부터 우려를 전달받았다"라며 이에 본인이 "여가부 장관과 통화하여 해당 사업에 대한 문제점을 전달했다"는 글을 썼다. 권 원내대표는 해당 글에서 △남녀갈등 개선에 효과가 없는 점 △지원 대상이 페미니즘에 경도된 점 등을 버터나이프크루 사업의 "문제점"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의 7월 4일 페이스북 게시물

크루로 선정된 참여 단체들이 여가부의 '버터나이프크루 4기 사업에 대한 전면 재검토' 입장을 접한 건 권 원내대표의 페이스북 게시물이 업로드된 이튿날인 7월 5일이었다.

지난 11일 성명을 낸 '버터나이프크루 정상화 공동대책위원회'는 이에 대해 "여성가족부는 사업 수행사 및 선정 단체들과 일절 논의가 없었으며, 크루들은 언론을 통해 소식을 접했다"고 주장했다. 논의는커녕 사전 통보조차 없었던 일방적인 결정이었다는 것이다.

성명에서 이들은 "출범식까지 마치고 사업비 지급이 예정된 날 취소된 결정이 여성가족부의 자체적인 판단이었다는 것은 신뢰하기 어렵다"며 "공식적인 경로도 아닌 여당 원내대표의 전화 한 통이 사업 폐지를 결정하게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입장을 전하기도 했다.

이어 이들은 폐지 결정 후 2주가 지난 7월 22일에서야 "성평등 주제를 제외하고 다른 주제로 사업내용을 변경하면 지원이 가능하다"는 여가부의 입장을 전해 받았으며, 이후 여가부 주재로 만들어진 간담회 자리에서도 여가부 측은 "사업을 취소하기로 하였다고 통보하였을 뿐 크루들의 입장, 의견을 수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단체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여가부는 '성평등 문화 추진'을 주제로 출범한 단체들에게 사업의 내용 자체를 뒤바꾸는 결정을 아무런 논의 없이 통보한 셈이다.

대책위는 특히 "아직 활동을 시작도 하지 않은 프로젝트가 남녀갈등을 증폭시킨다고 하기엔 근거가 부족"하며, "노골적으로 여성혐오에 치우친 의견만 듣고 이를 수용하는 것은 오히려 남녀갈등을 부추기"는 행위라며 권 원내대표 등이 사업의 문제점이라 제시한 내용에 대해서도 반박의 뜻을 밝혔다. 

여성가족부 등 성평등 전담 부처나 성평등 활동과 관련한 시민단체들이 '남성혐오를 한다', '사회갈등을 조장한다'는 등의 주장은 '에펨코리아' 등 남성 중심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주로 제기되는 것으로, 지난 3월 대선 국면에선 이준석 대표, 하태경 의원 등이 이를 적극적으로 인용한 바 있다. 

지난 10일 사업 정상화를 요구하는 온라인 서명을 시작한 대책위는 "사회적 자원이 부족한 청년의 특수성을 이용하여 여성가족부는 일방적으로 사업취소 결정을 내렸다 ... 이것이 정부가 말하는 '공정'한 방식인가"되물으며 △여가부의 공식 사과 △사업중단 철회 △부처 내 성평등 사업 지속 등을 여가부 측에 요구한 상태다. 

버터나이프크루 참여 단체이기도 '사회적 협동조합 빠띠'의 온라인 플랫폼 빠띠 캠페인즈에 올라온 해당 서명 요청엔 15일 기준 1만3000여 명의 이용자가  동의 서명을 남겼다.

한편 권 원내대표는 버터나이프크루 사업 철폐와 관련해 야권에서 비판이 제기되자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남기고 "성평등과 페미니즘이 그렇게 중요하면 자기 돈으로 자기 시간 내서 하면 된다"며 "오히려 버터나이프 크루와 같은 사업에 혈세가 3년 동안 들어갔다는 게 개탄할 일"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절차적 공정성 논란을 넘어, 사업 자체의 '생산성'을 지적하며 '혈세낭비' 프레임으로 대응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책위는 해당 사업이 "도대체 어디서 시간과 에너지가 나서 이 활동을 하겠다는 걸까?" 싶을 정도로 지원 규모보다는 청년들의 의지로 유지되어온 사업이었으며 권 원내대표가 '생산성이 없다'고 지적한 토론 등 여러 활동들도 '사적인 활동'이 아닌 "공공의 기록물"이라는 입장이다. 이에 대책위는 사업에 선정된 이전 단체들의 활동 방향과 의의를 설명하는 인터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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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섭

몰랐던 말들을 듣고 싶어 기자가 됐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비겁하고, 조금이라도 더 늠름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현상을 넘어 맥락을 찾겠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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